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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생명 삶을 함께 꽃 피운 ‘토지길’
십리벚꽃길
먼 길을 갈 때 심심하지 않고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답은 다정한 벗, 좋은 사람과 함께 어깨를 맞대고 두런두런 함께 가는 것이라 한다.
홀로 걷는 길은 무념무상의 시간이고
둘이 걷는 길은 상대를 배려하며 시공을 초월한 아득한 멋을 즐길 수 있다는데,
조금은 느리게 살면서 사람의 맛과 향기를 나누고 싶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모쪼록 걷는다는 건 무엇을 얻으려는 마음이 아니라 있는 것을 하나씩 놓아주는 행위임은 분명할 터,
칠순의 도보여행가 황경화씨는
“배낭을 메고 혼자 낯선 길을 걷다보면 가장 정직한 나 자신을 발견하고,
살아가는데 정말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다”고 말한다.
[1구간(18km)]
섬진강 평사리공원-평사리 들판-동정호-고소성-최참판댁-조씨고택-취간림-섬진강변-화개장터.
이 중 섬진강변에서 화개장터까지는 국도 19호선을 따라 걷는다.
섬진강
주어진 시간을 잠시 잊고 봄비 잦은 4월 어느 날 찾은 하동포구 80리길.
섬진강변 하동 땅, 악양면과 화개면에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와 역사를 이야기로 엮은
박경리 ‘토지길’이 열렸다.
우리나라 현대문학 사상 최고 역작으로 손꼽는 소설의 배경이 된 곳으로
문학인들에게는 일종의 순례길로 잘 알려진 토지길은 평사리공원에서 시작된다.
예전의 개치나루터로서 악양들판의 들머리이다.
서희와 용이, 월선이가 탔을 법한 그런 나룻배가 은빛 모래톱이 아니라 잔디위에 걸터앉아 있다.
장승을 세운 동산과 섬진강을 노래한 여러 모양의 비도 있다.
재첩을 잡을 수 있어 어린이들에게는 훌륭한 현장 학습장이요, 어른들에겐 좋은 휴식처다.
하동장터에서 주막을 연 월선이,
용이를 보기 위해 그믐날 밤배를 타고 살짝 왔다가 별빛처럼 평사리로 젖어든 것처럼
이정표는 무딤이 들판으로 길을 알려준다.
83만여 평의 평사리 들판
오백리 섬진강 물길 일부를 너른 들과 맞바꾼 악양면 평사리 들판은 두 눈에 담기도 벅차다.
만석꾼 두엇은 족히 낼만한 83만평 큰 땅은 물기 가득 머금어 넉넉히 보인다.
소설은 평사리를 배경으로 최씨 집안의 이야기를 4대에 걸쳐 풀어간다.
‘마른 논에 졸졸졸 물 들어가는’ 소리, ‘아기 목구멍으로 젖 넘어가는’ 소리,
그리고 ‘자식 놈 책 읽는’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라는데,
그래서일까.
얼마 후면 너른 땅은 푸릇푸릇한 보리가 쑥쑥 자라 바람결 따라 흥겹게 춤을 출 것이고,
가을에는 또 다시 황금빛으로 농군 마음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소설 ‘토지’는 1969년부터 1994년까지 25년 동안 원고지 4만 장에 6백만 글자로 쓴 한민족 대서사시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 듯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소설 속 등장인물은 무려 6백여 명.
최치수 최서희 길상이 용이 두만네 석이네 구천이 윤보 월선이 강청댁 영팔이 판술네 임이네 운봉할배 서금돌….
이들의 일생은 한마디로 ‘평사리 공동체’ 삶이었다.
평사리를 떠나 살아도 영혼은 늘 이곳에 닿았다.
같이 울고 웃고 싸우기도 하고 왁자하게 살다가 하나 둘씩 강물처럼 그렇게 흘러갔고,
그의 자식들도 그렇게 살다가 또 그렇게 사라졌다.
용이와 월선이 소나무, 부부송
들 한가운데 훤칠한 소나무 두 그루가 다정하게 마주본다.
사람들은 부부소나무 혹은 인연을 맺지 못하고 서로 바라만 보던 용이와 월선이 소나무라고 말한다.
주변은 온통 매화가 꽃을 피워 늦은 봄을 향기로 속삭임을 들으며 공사가 한창인 동정호를 만난다.
나당연합군 소정방이 백제를 칠 때 이곳을 지나며 당나라 악양의 ‘동정호’와 비슷하다 해서 얻은 이름이다.
‘동정추월(洞庭秋月)’,
동정호 위로 가을 달빛이 잦아들면 사방이 고요할 만큼 환상적이나 지금은 과거의 모습을 잃은 지 오래.
야생조수와 물고기, 식물이 공존하는 자연늪지대로서 달빛 이상의 풍요로움을 남겨 체면을 유지한다.
동정호 전경.
최참판댁 입구 삼거리다.
먼저 한산사 방향으로 굽은길을 잡아 30여 분 오르면 형제봉 중턱에서 섬진강을 향해 삐죽 머리 내민 고소산성이 걸려있다.
사방이 트여있어서 섬진강을 거슬러 오르거나 구례 쪽에서 내려오는 배들을
손바닥 보듯 샅샅이 살펴볼 수 있는 천혜의 군사요새다.
발아래로는 평사리의 반듯한 들판이 두부모처럼 정리된 모습이 정갈하게 펼쳐진다.
‘하동군읍지’에 따르면 고소산성은 신라가 쌓았다고 한다.
최근에는 5세기 전반 고구려 광개토왕이 신라를 거쳐
왜군을 토벌하려 남하했을 때 쌓은 고구려 계통의 성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네모나게 다듬은 돌과 자연석을 사용하여 견고하게 쌓은 성벽은 사적 제151호로 지정했다.
토지세트장
박경리가 ‘토지’의 무대를 찾기 위해 고심하던 중 외동딸(김영주)과 탱화자료 수집여행에 함께 나섰다.
이때 한산사 대웅전에 있는 국보급 탱화를 보러 갔다가 그 아래로 펼쳐진 평사리를 보면서
“바로 이곳이다!”라며 무릎을 쳤다고 한다.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이 닿은 것’이다.
훗날 그는 '토지'의 무대를 경상도에서 찾았던 이유는 말(언어) 때문이라고 했다.
통영에서 낳고 자라 진주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쓰는 말은 자기가 아는 경상도 말이 전부였기에...
여기에다가 ‘만석꾼’이 나올만한 땅은 모두 전라도에 있었으니......
하동 평사리는 전라도 어느 곳보다 빠지지 않는 넓은 들이 있고......
게다가 섬진강과 지리산도 작품의 든든한 뒷배가 됐다는 속내를 밝혔다고 한다.
다시 길을 잡아 최참판댁으로 가려면 TV 드라마를 찍은 토지세트장을 거쳐야 한다.
조선후기 생활모습을 재현했는데 돌담 고샅길가에는 봄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쉼 없이 돌아가는 물레방아가 마치 옛 고향에 온 듯 따뜻함을 건네고,
외양간에는 실제로 소도 키우고 있다.
그 안에 소설 속 인물들-용이네, 두만네, 월선네가 살던 초가가 그림처럼 놓여 있다.
최참판댁은 그곳에서 조금 더 위쪽에 있었다.
최참판 댁
하동군은 조선 말 영남사대부 집을 틀로 삼아 소설 속 가상공간을 재현해냈다.
최치수가 머물던 사랑채, 서희가 머물던 별당과 연못, 더욱이 집 뒤편 대밭까지
소설과 현실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다.
사랑채 뒤로 빠져나와 ‘조씨 고가’로 돌린 발길이 대숲길을 거쳐 마을 농로로 이어진다.
맑고 부드러운 바람이 녹차밭과 매화밭 사이를 물결치듯 타고 도는 작은 길을 지나니 대촌마을,
다시 작은 고개를 넘으면 정서마을이고 예서 또 고샅길을 몇 번 돌아 오르내리면
집들마다 둘러싸고 있는 키 작은 돌담이 꽤나 다곰다곰한 상신마을에 닿는다.
조씨 고가는 그 길 끝머리에 있다.
조씨 고택
조선 개국공신 조준(1346-1405)의 직계손 조재희가 낙향하여 16년에 걸쳐 지은 집이란다.
동학혁명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사랑채와 행랑채, 초당과 사당들이 불에 타 없어지고
지금은 안채와 방지(方池)만 남아 있다.
들에 나갔는지 집안에 인기척이 없어 이내 발길을 되돌려 마을 아래로 향한다.
만석꾼 집안이라 늘 밥 짓는 연기가 끊이지 않았고,
쌀 씻은 쌀뜨물로 섬진강이 뿌열 정도로 많은 식솔과 손님들이 줄을 섰다던 조부잣집.
소설 속 최참판댁의 실제 주인공이라고 한다.
취간림에는 ‘지리산 항일투사기념탑’(사진 중앙), 민주․자유․평화를 위해 산화한 선열들을 추모한 충혼탑(오른쪽),
2004년 2월 81세로 생을 마감한 고 정서운 정신대 할머니를 기리는 ‘평화의 탑’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취간림
조씨 고가에서 악양천을 따라 타박타박 내려가면 취간림이다.
크고 굵직한 나무들이 운집했는데, 살짝 지친 나그네를 위한 그늘과 쉴 자리가 마련돼 있다.
고려말 서당을 열고 후학양성에 정진한 녹사 한우한 선생을 위해
악양천변 섬등에 모한정을 지었으나 뒤에 취간정으로 이름을 바꿨다.
정자는 없어졌지만 대신 숲이 번창하여 2006년에는 ‘아름다운 마을 숲’ 우수상을 받았다.
5백 살 먹은 향나무가 있는 이곳에는 ‘지리산 항일투사기념탑’을 비롯,
민주․ 자유․ 평화를 위해 산화한 선열들을 추모한 충혼탑,
2004년 2월 81세로 생을 마감한 고 정서운 정신대 할머니를 기린 ‘평화의 탑’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화계사 입구에 있는 차 시배지를 알리는 기념비
악양농협 맞은편에는 악양의 차(茶) 역사를 소개하는 매암차박물관이 있다.
다원팔경 가운데 유일하게 악양에 있는 체험다원으로 매년 5월, 하동야생차문화축제와 연계하여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다.
또한 대봉감은 맛과 색깔, 모양이 아름다워 옛날 임금에게 진상되던 악양 특산품으로
가을에는 평사리공원에서 대봉감축제가 열린다.
서희는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양현에게 듣고는 모녀는 서로 부둥켜 안는다.
그동안 자신을 옥죄던 쇠사슬이 요란하게 끊어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읍내에 나갔던 장연학은 둑길에서
“만세! 우리나라 만세! 아아 독립만세! 사람들아! 만세다!” 외친다.
“춤을 추고, 두 팔을 번쩍번쩍 쳐들며, 눈물을 흘리다가는 소리 내어 웃고, 푸른 하늘에는 실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명장면으로 기억되는 토지의 마지막 구절이다.
비닐하우스가 없는 유일한 마을, 사계절 풍요로운 평사리를 떠난 발길은
햇살같이 바람같이 섬진강변 19번국도를 따라 화개장터에 닿는다.
토지길 2구간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십리벚꽃길과 차 시배지를 지나 국사암, 불일폭포, 쌍계사로 이어진다.
차 시배지 기념비 뒤에는 차밭을 거닐 수 있도록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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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요즘 "길"이 대세군요,,아름다운 우리의 산하를 끼고 도는 나즈막한 구릉과 토담들를 끼고 흐르는 개울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논밭들의 어우러짐은 다른 세계에선 찾아볼 수 없는 우리들 만의 길이지요,,,같이 걷다보면
어느새 토지를 다 읽어들인 맘입니다.....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길들이 우리 주위에는 참 많습니다.
다소 여유는 없을지라도 조금은 넉넉해 보이려는 작은 욕심을 가지고 살면 참 좋겠지요?
부순형님 잘들어가셨는지요, 어제 잠깐 보여주신 강원도 답사 코스들, 차차 연재 될 길의 모습들을 상상해봅니다. 이 아침 올려주신 첫사진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