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2026년 주요 일간지의 '신춘문예'(시. 시조)를 대충 훑어봤다.
이곳에는 5개 매체에 시조를 포함해 평균 5천여 편의 투고작 중 당선작 5편을 실었다.
이는 매체마다 약 1천여 명의 투고자(1명 5편 기준)가 있었다는 것이고 평균 연령대는 20대이다.
시는 대세인 산문시이고, 시조는 당선작이라 해서 게재하기는 했는데 1수를 3장에서 4장으로 나눈 것은
시조라 할 수 없다. 전통시조와 현대시조는 형식의 차이일 뿐으로 한 수는 3장이 원칙이다. 이를 벗어나면
시조가 아니다.
.
개인적으로는 아래 작품들 중 한국일보 당선작인 '고해성사'에 공감이 간다.
202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조금 늦었지만 괜찮아' 연우
조카만의 규칙 보이지 않는 선을 그려놓고 나는 넘어오지 말라고 한다 아이들은 동시에 여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오른손은 송곳니 없는 개의 입 왼손에는 칼을 쥔다 아직 울지 마요 이모가 바라는 걸 구해올게요 말한다 무엇을 구해올 거니? 할머니를 구해올 거예요 어디에서? 할머니 안에서요
나는 등뼈 하나를 놓친다 데구르르 굴러가다 고모가 밟고 넘어진다 고모는 우울증 환자라 실비도 없는데 큰일 났대요
울지 않는 아이들은 씩씩하게 옷장 속에서 튀어나오고 쌓아둔 방석 위로 뛰어내린다 정말 용감하구나
그 안에 뭐가 있었니?
방금 전까지 할머니가
더 낮게 허리를 접는다 무너지지 않게 손끝으로 아이의 말 밑을 받친다
조카는 벽을 두드린다 벽이 아니라 뻥 뚫린 초원을 할머니를 내놔! 두 주먹이 하얗다 그러면 뱀처럼 얇고 길어진 할머니가 쑥 하고 튀어나올 것처럼
아이는 뛰어다니며 모든 사람들의 표정에 대해 간섭한다
조카가 손가락질하면 다들 입을 뗀다
밥맛이 좋군요 비가 오지 않네요 그제야 주변이 생겨난 것처럼
조카는 옆 호실에 뛰어들어갔다가 하얀 그릇을 손에 쥐고 나온다 그건 돌려줘야 한단다 하지만 어른들이 내게 쥐여 줬어요 밥을 꼭꼭 씹어먹으라고 했어요
아이는 수저로 식탁을 두드리다 가장 아낀다는 분홍 스티커를 할머니 사진에 붙인다 내가 정말 아끼던 사람이었어요…
아이니까요 아이니까 그래서 더 무섭다
조카가 내 등을 두드린다 무언가가 쑥 뼛속에서 나오려는 것처럼 나는 무릎을 모으고 작아진다
그제야 조카가 기쁜 얼굴로 나를 안아 준다
<심사평>
상략
최종적으로 ‘조금 늦었지만 괜찮아’를 당선작으로 내놓는다. 할머니(의 죽음과 슬픔)를 구하기 위해 “옷장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조카의 활약상은 혁혁하다. ‘간섭’하면서 ‘주변’을 만들어내는 조카의 무해한 생명력과 무애한 상상력을 통제하는 정련된 메시지와 성찰은 시적 숙련과 시적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주었다. 이 새 시인이 빚어낼 시의 그릇됨이 많은 독자의 생각과 마음을 ‘간섭’하고 ‘주변’을 만들기를 기대한다.
<정끝별 . 문태준 시인>
|
2026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디아스포라' / 이형초 우리에게 박물관이 생긴다면 입구는 화물차처럼 만들자 좁은 열차에 갇혀 초원을 가로질렀던 순간처럼 긴 철로를 지나 부모를 만나러 가고 싶다 척박한 평야에서 씨앗을 뿌리고 토굴을 짓고 새를 잡아먹으며 봄이 오기를 기다렸던 먼 사람들의 이야기 흠뻑 젖은 곡괭이와 밤의 나뭇가지들 따뚯한 진열창에 넣어두자 우연한 행인처럼그곳을 지나치며 우리의 역사래, 러시아어로 중얼거릴 것이다 유리창 사이로 언어와 계절이 바뀌고 러시아인도 카자흐인도한국인도 아닌 우리에게 박물관이 생긴다면 무국적자의 밤이 쌓이는 곳 비가 오든 눈이 내리든 자신들만의 농장을 만들었답니다, 말하던 큐레이터는 사실 그들의 가족이고, 새벽마다 불을 밝히는 경비원은 자기 이름대신 그들의 이름을 외우던 가득 찬 박물관 모두 연결된 사람들 텅 비어 있어도 가득 차 있다고 믿으면 어디든 둘러볼 곳은 있지 결국 우리는 같은 출구로 나갈 테니까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에서 사람은 늘 몰려든다 어디에서 불어온 눈바람이 머리가 되고 어디에서 쌓인 눈송이가 몸이 되는지 몰라도 되는 박물관, 다 사라져도 기억해주는 이야기, 우리에게 박물관이 생긴다면
<심사평> 이번 본심에는 특이사항이 2개 있었다. 첫째, 이례적으로 응모작이 많이 늘었다고 들었으나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이 예년에 비해 썩 만족스럽지만은 않았다. ... 최종적으로 검토된 것은 ‘눈사람’ 외 4편과 ‘디아스포라’ 외 4편이었다. 둘 중 어느 작품이 당선작이 되더라도 충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 심사위원들은 재독과 숙고를 거듭했다.
중략
심사위원들은 두 작품 모두 당선에 값한다는 판단을 공유했지만 역사적 상상력에 가닿는 시적 상상력의 규모와 넓이, 그리고 예컨대, 시의 제목과도 맥락이 닿는, “우리에게 박물관이 생긴다면//입구는 화물차처럼 만들자”라는 표현에 담긴 재기 역시 손색이 없다는 것에 동의하면서 ‘디아스포라’를 올해의 당선작으로 내밀기로 결정했다.
정호승, 조강석
|
202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고해성사 / 사강은
오늘 경찰이 내 집에 들이닥쳤다
문을 두드리거나 초인종을 누르지도 않고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내가 할 말을 경찰이 했다 이러시면 어떡해요 분명 내가 해야 할 말 같은데 나를 연행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수갑을 채우고 서로 데려갔다 원래 이런 식으로 이뤄집니다 생각해 보니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랬던 것 같기도 그것들은 현실에 기반한 이야기니까 이런 식이 맞는 것 같기도 죄는 나의 것이고 벌은 경찰의 것이라 했다 역할은 바뀔 수 없어서 그 사실 역시 바뀌지 않을 거라 했다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해 놓고 나 먼저 말해 보라 했다 아무것도 알려 준 적 없으면서 대답하라 했다 하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았다고 증명하라 했다 언제 어디서 일어난 일인지 말해 주지도 않고 알리바이를 성립시키라 했다 나는 드릴 말씀이 없었다 취조는 인정할 때까지 계속됐지만 알지 못하는 일을 인정할 수 없었다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불쌍하게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러자 유리창 건너편에 있던 다른 경찰이 들어오더니 증거가 없어서 풀어 드린다고 원래 법이 그렇다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이것도 어딘가 많이 본 장면 같아서 감사합니다 대신 나도 모르게 죄송합니다 소리가 나왔고 경찰서는 문 닫을 시간이 됐다 조사실 밖 마지막 계단까지 내려가 바닥에 도착하자 더 이상 경찰서가 아니었다 그때 평생 지었던 죄가 모조리 기억났다 손목에는 수갑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내일 자수할 예정이다
<심사평>
상략
전반적으로 시가 길어졌다. 시가 꼭 짧아야 할 이유는 없겠으나, 반대로 길다면 긴 연유가 있어야 한다. 긴 시의 부자연스러움은 산문시보다 되레 행 구분이 확연한 시에서 도드라졌다. 많은 시에서 따로 독립된 한 줄은 독립된 만큼의 의미를 지닌다. 그 의미를 지탱하지 못한 문장이 종종 보였다. 혹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가 과도하게 노출된 알레고리로 인해 납작해진 시도 있었다. 시의 모든 주제는 꼭 필요한 명제일 테지만, 그것이 시가 될 때 어쩌면 쓸모없어지기도 한다. 그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중략
최종적으로 당선작은 '고해성사'로 결정되었다. 응모작 전체에서 시의 길이와 리듬, 형식과 주제 모든 면에서 균형감 있는 새로움을 선보였다. '고해성사'는 산문시가 드러낼 수 있는 최대한의 리듬감을 가지면서, 산문시의 장점이라 할 서사성을 갖추었다. 명징한 메시지를 유연하게 풀어가는 능력과 희미한 상징을 뚜렷하게 표현하는 감각이 새로 태어날 시인에게 신뢰를 보내게 한다. 짧은 꿈인 듯하면서 굳건한 현실인 듯한 이 시에서 우리는 마지막에 와서야 각자의 손목을 쳐다보았다. "수갑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듯하여.
<강성은 서효인(대표 집필)> |
2026년 경향신문 시 당선작
졸업반/ 김남주
우리는 술에 취해 무궁화 무궁화 흙바닥에 선을 죽 그어놓고 꽃이 피었습니다 내가 술래, 무궁화는커녕 나무 하나 없는 운동장에서 너희들은 내게 다가온다 한 발 두 발 시치미를 떼며 나는 노래를 부른다 전주도 후렴도 없는 첫 소절이 마지막 소절인 그러니까 반복해서 불러야 해 노래가 끝나지 않도록 놀이가 끝나지 않도록 한 소절이 노래의 전부가 되지 않도록 노래보다는 구호에 가까운 한 문장을 우리는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 집 안에는 우리가 없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 뒤의 인기척 무엇인가 오고 있다 손가락과 손가락이 끊어지는 서늘함 우리들은 달린다 우리가 그어놓은 출발선을 향해 저기서부터 출발이야,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는 울지 마 울지 마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모두 혼내주자 그게 설령 우리를 낳아준 사람이라도 이 도시는 깨끗해서 외롭고 무엇인가 오고 있어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재난 경보 문자들 일기예보처럼 읽어내는 재난 말고 고개를 돌릴 때마다 선명해지는 나를 웃기기 위한 해괴한 표정과 자세 말고 뒷덜미에 울리는 숨소리 과장된 웃음소리 오고 있어, 무궁하고 무진하고 꽃 같은 것들이
심사평 - 리듬·생동감, 읽을수록 또 읽고 싶게 만드는 힘 한 명의 시인을 처음 만나는 일은 그간 함께한 시인들을 다시금 한 번씩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문학과 문학적인 것. 시와 시적인 것. 미학과 미학적인 것. 우리가 서로 딛어온 영토를 재확인하고 흐릿해진 경계선을 다시 그어봅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이 우리를 우리에 가두는 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상기합니다...
중략
‘졸업반’ 외 4편을 202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정합니다. 투고한 5편의 작품 모두 리듬감과 생동감 덕에 읽으면 읽을수록 또 읽고 싶게 만든다는 의견이 있었고, 엄숙함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시적 태도가 돋보인다는 의견이 있었고,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 시적 긴장을 효과적으로 유지하는 과감한 진술이 인상적이라는 의견이 있었고, 시의 묘사에 관해 더 깊은 고민을 해보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부디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의 눈과 함께하시기를. 그리하여 더 멀리 나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안타깝게 낙선된 분들에게도 아쉬운 마음과 함께 같은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심사위원 박준·이경수·진은영·황인숙
|
2026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거북 익스프레스 / 최애경 최애경 몸 하나가 집인 거북이를 알고 있다 다리가 짧아서 하루는 높고 멀지만 이삿짐 사다리차에 고층이 특기라지 딱딱한 등껍질에 냉장고가 실리고 수입산 바닥재엔 뒤꿈치도 무거웠다 밤에야 뉘어보는 몸 꿈조차 등이 휘는 반쯤 낮은 방 한 칸, 더 낮은 오늘이지만 물소리 모이는 방 여기가 출발이지 느려도 단단한 생을 업고 바다로 가는 중이다 <심사평> ‘거북이 짧은 다리’에 도시 노동자 애환 담아 중앙시조백일장 한해 결실이 담긴 두툼한 파일 속에는 매월 입상자들이 땀과 눈물로 직조해 낸 100여 편의 작품이 반짝이고 있었다. 네 명의 심사 위원이 긴 시간 토론을 나눈 결과 최애경의 ‘거북 익스프레스’를 당선작으로 선했다. 뽑아 올린 당선작은 각 수의 유기적 연결성과 선명한 시상을 정형미학의 틀 안에 잘 녹여내고 있다. 낮고 느리지만 “단단한 생을 업고” 나아가는 거북, 그들 삶의 지속성이 생태계를 떠받치는 근본임을 드러낸 시적 발화도 돋보였다. “다리가 짧아서”로 집약되는 메타포로 도시 노동자의 애환을 담아냄과 동시에, “물소리 모이는 방”이라는 출발지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희망적 완결성을 보여주고 있어 깊이 공감했다. 하략 심사위원 : 손영희 시인, 정혜숙 시인, 이태순 시인, 강정숙 시인(대표집필)
|
첫댓글 고맙습니다.
나이 들어도 신춘은 읽어봐야 하는데요.
아, 이런 시도 있구나 ᆢ 자신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돌아봐야 지나온 시간이 길이 되지요.
중앙일보 시조는 당선작이라 해서 게재하긴 했습니다만 한 수를 4장으로 한 것이 문제로 보입니다.
확인해 보니 전통시조든 현대시조든 3장이 원칙이고 4장은 시조라 볼 수 없답니다. 따라서 3장이라는 원칙을 벗어나면 시조가 아닌 자유시가 되는 것이지요..
이시찬 발해인 님
겨울바다에 올려주신 댓글에 감사드리며 새해인사 올립니다
언제나 문ㆍ봄 작가회 회원임에 자부심을가지고 있습니다
새해에도 건강과 행운이 함께하시길
기원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작품이 좋아서 댓글 달았지요.
나는 특이하게도 카페 외에는 유튜브나 카톡에는 댓글을 잘 달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