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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10월26일(日)雲
▲천관산[天冠山](2)(장천재-종봉-환희대-연대봉-팔각정)*사진88컷
해봉산악회(24명)
♠참 고
천관산[天冠山]
위치 :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冠山邑)과 대덕읍(大德邑) 경계
높이 : 723m
천풍산(天風山)·지제산(支提山)이라고도 한다. 1998년10월 13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지리산(智異山)·월출산(月出山)·내장산(內藏山)·내변산(內邊山)과 함께 호남지방의 5대
명산 가운데 하나이다.
수십 개의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것이 마치 천자(天子)의 면류관과 같아
천관산이라는 이름이 생겼으며, 신라 김유신(金庾信)과 사랑한 천관녀(天官女)가 숨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삼림이 울창하고 천관사·보현사를 비롯해 89개의 암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석탑과 터만
남아 있다. 산 정상 주변에는 당암(堂巖)·고암(鼓巖)·사자암(獅子巖)·상적암(上積巖) 등이
이어져 있으며, 봄에는 진달래와 동백꽃이 붉게 물들고 가을에는 억새로 뒤덮이고 단풍이
들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문화재로는 천관사오층석탑(天冠寺五層石塔:전남유형문화재 135)·천관사석등(天冠寺石燈:
전남유형문화재 134)·천관사삼층석탑(天冠寺三層石塔:보물 795) 등이 있다.
♥천관사[天冠寺]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농안리 천관산에 있는 사찰.
종파 : 대한불교 조계종
창건시기 : 신라 후기
창건자 : 통영화상
승보사찰 송광사의 말사이다. 관산읍과 대덕읍 경계에 있는 천관산(723m) 중턱에 있으며,
신라 애장왕 때 영통화상이 세웠다고 한다.
지금은 말사지만 예전에는 화엄사라 불리며 89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1,000여 명의 승려가
모여 수도하던 곳이라 한다. 폐찰된 것을 1963년 극락보전을 다시 세우고 요사채와 종각
등을 짓고 천관사라 하였다.
주위에 흩어져 있던 3층석탑(보물 795)과 석등(전남유형문화재 134), 5층석탑(전남유형
문화재 135), 탑산사지 석등(전남문화재자료 196) 등 유물을 모아 옛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사찰이 자리한 천관산은 기암괴석과 더불어 봄이면 붉은 동백나무, 가을과 겨울이면 산
전체를 뒤덮는 억새밭으로 유명하고, 특히 다도해의 풍경과 어우러진 경관이 빼어나
찾는 이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산행 코스
12:28 2번국도
12:38 주차장
12:45 팔각정
12:49 장천재
12:59 능선
13:16 전망대
13:42 선인봉
13:55 조망바위
14:01 종봉, 금강굴
14:07 노승봉
14:17 대세봉
14:25 구정봉
14:37 환희대, 식사출발 14:47
15:17 연대봉
15:38 정원석
15:43 양근바위
16:15 장안사갈림길
16:25 장천재,조망
16:33 팔각정
16:55 2번국도
총 4시간27분
☞☞☞1999년4월 첫 산행 후 두 번째 산행,
당시 산행하면서 천관산의 아름다움을 그런대로 촬영하였지만 구석구석 넉넉하게 담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번엔 디카에 마음껏 담기로 작심하고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예상보다 적은인원으로 출발하여 남해고속도로상의 가락 나들목에서 오랜만에 집행부의
하회탈군이 승차합니다. 배기사가 본사의 통신망을 통해 창원터널 안에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극심한 정체현상을 빚고 있다 는 걸 감지하여 마산 나들목 코스로 진입, 일사
천리로 달려 산인으로 빠져나가 사천휴게소를 들리고
10시31분, 순천나들목으로 빠져 2번 국도를 달려 기러기휴게소를 들려 다시 휴식을 하고
좌측으로 제암산을 바라보며 달리다 장흥을 거쳐
달리는 우측차창 밖으로 천관산을 디카에 담습니다.
장장 4시간25분만인 12시25분,
천관산 들머리에 도착했는데 관리인이 주차장이 초만원이라며 통제하여 가을걷이가
한창인 도로변에서 하차합니다.
캠코더는 정 대장에게 인계하고 바로 출발합니다.
천관산을 바라보며 좁은 도로를 따라 한참 가다 나이 탓인가 내 건망증을 깨닫고 실소합니다.
날씨가 너무 포근하여 더위를 예상하고 버스 안 좌석 앞의 냉장고에 내 녹차와 미수가루
물병을 넣어둔 체 그냥 하차했기 때문입니다.
12시38분, 주차장에 집결하여 인원파악, 상견례를 신호로 산행 길에 들어갑니다.
12시45분, 팔각정 갈림길 등산로안내간판에서 팔각정 왼편 3코스 길로 올라갑니다.
12시49분, 장천재 앞 보호수목(수령600년의 노송)
여기서 장천재에 대한 설명을 옮겨봅니다.
♠장흥 장천재 [長興長川齋]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천관산 중턱 계곡이 있는 사묘재실.
지정번호 : 전남유형문화재 제72호
지정연도 : 1978년 9월 22일
소장 : 사유
소재지 : 전남 장흥군 관산읍 옥당리 산95
시대 : 조선시대
분류 : 사묘재실
1978년 9월 22일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되었다.
본래 이 자리에는 장천암이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 중종 때 강릉참봉 위보현이 장천동에 어머니를 위해 묘각을 짓고 장천암의 승려로
하여금 이를 지키게 한 것이 그 유래가 되었다.
1659년(효종 10) 사찰을 철거하고 재실을 창건하였으며 1705년(숙종 31),1724년(영조 23)
개수를 거쳐 1873년(고종 10) 현재의 형태로 중수하였다.
평면은 ㄷ자형이며 전면은 양쪽날개 1칸씩을 누각형으로 한 것이 특징이다.
장대석으로 짜 올린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기둥은 원주를 세웠는데 포작이 없는
주두와 창방, 장여를 올려 결구하였다.
지붕은 중앙 용마루 부분이 ㄷ자형 양익부와 높이를 동일하게 하고 전면에서는
팔작지붕의 합각이 보이며 배면에서는 맞배지붕으로 처리한 것이 특이하다.
문은 중앙 3칸에만 설치하였는데 3칸 모두 2분합이다.
존재 위백규(魏伯珪:1727∼98)는 어려서 이곳에서 수학하고 후배를 양성하였다.
현판에 적힌 시문으로 보아 유림들이 시문을 교류하였던 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
2000년 현재는 장흥위씨 방촌계파의 제각으로서 이용된다.
장천팔경이 있는 수려한 경관과 함께 관광지로서 각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체육시설을 지나 등산로를 따라 오르막을 거쳐
12시59분, 능선에 올라 좌측 환희대 코스로 올라갑니다.
평탄한 등산로를 따라가는데 앞에서 웃음 속에 영어소리가 들려옵니다.
두어 사람의 젊은 남녀외국인과 한국젊은이들, 그 중에 장년남자가 정장차림에
신사화를 신고 있어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으니 한 시간이면 정상에 올라갈 수 있느냐고
되묻습니다.
어렵다고 했더니 영어로 앞에 가는 외국인에게 이야기합니다.
한 시간 안에 올라가기 힘들다고...
궁금하여 몇 가지 물어본 결과
본인은 순천시청에 있고 외국인은 외국어학원 강사라고 합니다.
최소한 외국인에게 우리산하를 소개하려면 사전지식을 습득해야 할뿐 아니라 신발과 복장
등을 제대로 갖추어 민간외교를 해야 하지 않을까 자문하며 그들을 앞질러 올라갑니다.
13시16분, 첫 전망대에 올라섭니다.
멀리 다도해해상공원과 2번국도, 바로 아래의 주차장등 선두그룹의 회원들이
물을 마시며 조망을 즐기고 있습니다.
잠시 숨을 돌리고 하회탈군의 물병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올라가려는데
모처럼 나온 오 박사(환경분야에서 근무)가
“남 선배님! 우리 집사람입니다.”
하며 젊은 부인을 인사시킵니다.
“네~ 반갑습니다. 앞으로 자주 함께 나오세요!
...저가 기념으로 한 컷 촬영해 드릴 께요.”
그리고 두 사람을 오르막 바위 앞에 함께 서게 합니다.
다정한 오 박사 내외에게
“보기 좋~습니다~”
는 소리를 남기고 먼저 바위 오름을 탑니다.
좌측 암능 하산코스
줌으로 촬영하고 올라가니
선인봉이 위에서 버티고 있습니다.
아기를 등에 지고 내려오는 젊은 아빠가 보기 좋아 잠시 멈추게 하고
“한 컷 찍어도 되겠어요?”
하니 포즈를 잡는데 뒤따라 내려오든 아가엄마도 즐거운 표정입니다.
그리고 좀 전까지 아기가 불편하여 칭얼대었는지 아빠가
“봐~라~ 아저씨가 예쁘다고 사진까지 찍어주지 않아~”
하며 웃는 걸
“보기 좋~습니다!”
한마디 남기고 다시 올라갑니다.
우측으로 암벽을 낀 내리막길에 어린이들이 낀 가족등산객들이 내려옵니다.
여기가 선인봉인가, 턱에 올라서고
멀리 전면에 기암 괴봉들이 진을 치고 도열해 있습니다.
잠시 뒤돌아 본 능선을 담고
13시55분, 두 번째 전망대에 올라섭니다.
우측 조망
좌측 조망
14시01분, 우측으로 암벽을 끼고 올라가다 종봉 아래의 금강굴을 지나칩니다.
많은 어린이들이 낀 등산객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조그만 금강굴
종봉(鐘峯)의 바위 오름길은 계속 이어지고
오른편으로 꺾어지며 밧줄이 걸린 된비알이 나타납니다.
14시7분, 주름진 노스님 얼굴을 닮은 노승봉에 올라섭니다.
다시 바위사이의 비탈오르막을 거쳐
14시10분, 두 번째 밧줄을 잡고 오릅니다.
14시17분, 대세봉, 천관사1.8km의 갈림길 이정표 앞에 당도합니다.
대세봉(大勢峯)을 왼편으로 우회하여
능선에 올라
뒤돌아보니 구정봉인가, 천주봉인가...
평탄한 능선 길에 저만큼 환희대가 어서 오라고 손짓합니다.
하지만 다시 나타난 바위사이길이 어린이들을 힘들게 합니다.
14시37분, 지금까지 약 2시간을 힘들게 올라와 구룡봉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이곳에서 어떤 성취감으로 큰 기쁨을 맞보게 된다는 환희대에 올라섭니다.
왼편으로 가슴을 확 트이게 하는 광활한 억새 능선 끝에
연대봉이 가물가물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먼저 도착한 회원들과 떡으로 식사하고
14시47분, 연대봉을 향해 느긋한 촬영을 위해 광활한 억새능선 길로 먼저 출발합니다.
뒤돌아본 환희대
우측사면의 억새군락지
여기서 억새에 대해 잠시 옮겨보기로 합니다.
산과 들에서 자란다. 높이 1∼2m로, 뿌리줄기는 모여 나고 굵으며 원기둥 모양이다.
잎은 줄 모양이며 길이 40∼70cm, 나비 1∼2cm이다. 끝이 갈수록 뾰족해지고 가장
자리는 까칠까칠하다. 맥은 여러 개인데, 가운데 맥은 희고 굵다.
밑동은 긴 잎집으로 되어 있으며 털이 없거나 긴 털이 난다.
뒷면은 연한 녹색 또는 흰빛을 띠고 잎혀는 흰색 막질(膜質:얇은 종이처럼 반투명한
상태)이며 길이 1∼2mm이다.
꽃은 9월에 줄기 끝에 부채꼴이나 산방꽃 차례로 달리며 작은 이삭이 촘촘히 달린다.
꽃차례 길이는 10∼30cm이고 가운데 축은 꽃차례 길이의 절반 정도이다.
길이 4.5∼6mm의 작은 이삭은 노란빛을 띠며 바소 모양에 길고 짧은 자루로 된 것이
쌍으로 달린다. 밑동의 털은 연한 자줏빛을 띠고 길이 7∼12mm이다.
제1 포영(苞穎:작은이삭 밑에 난 1쌍의 포)은 윗부분에 잔털이 나고 5∼7개의 맥이
있으며 제2 포영은 3개의 맥이 있다. 끝이 2갈래로 갈라진 호영(護穎:화본과 식물
꽃의 맨 밑을 받치고 있는 조각)에서 길이 8∼15mm의 까끄라기가 나온다.
내영(內穎:화본과 식물의 꽃을 감싸는 포 중 안쪽에 있는 것)은 길이 약 1.5mm로서
작으며 수술은 3개이다. 뿌리는 약으로 쓰고 줄기와 잎은 가축사료나 지붕 잇는 데
쓴다. 한국(전지역)·일본·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잠시 오른편으로 뒤돌아 구룡봉을 디카에 담고
지나온 가물대는 환희대를 다시 촬영합니다.
헬기장을 지나면서 가까이 닥아 온 연대봉
15시17분, 연대봉에 당도합니다.
연대봉에서 내려다본 다도해해상공원과 수동저수지.
서쪽으로 바라본
구름사이로 뻗혀 나온 찬란한 햇살 풍광이 현란합니다.
4년전 에는 안내간판이 서 있었습니다.
‘옛이름은 玉井峯 고려 의종왕(1160년)때 봉화대 설치.
통신수단으로 이용, 이후 봉수봉 또는 연대봉(烟台峯)이라 불렀고 삼면이 다도해로
동쪽은 고흥의 팔영산, 남쪽으로 완도의산지 고금 약산도 맑은 날엔 남서쪽 중천에
한라산이 보이고 그밖에 해남의 대둔산, 영암의 월출산, 담양의 추월산이 그리고 더
멀리 속리산의 문장대가 역력히 보인다.“
라고 써 있었는데 문장대가 보인다는 건 좀 과장된 것 같습니다.
15시21분, 왼편으로 꺾어져 내려가는 밋밋한 능선 길로 하산합니다.
연산한솔대장과 대화를 나누는 정 대장.
부산에서 같은 시간에 출발했는데 창원터널안 사고로 뒤늦게 도착하여 천관사 쪽으로
하산한다고 합니다.
정 대장이 캠코더가 작동이 안된다고 하여 확인해 보니 전원이 고갈되어있습니다.
15시38분, 암능이 시작되는 정원석.
뒤돌아본 정원석과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가물대는 연대봉.
좌로 건너다보이는 대세봉과 환희대.
기암, 암능 길을 거쳐
15시38분, 좌측으로 양근암이 나타납니다.
(귀로의 버스 안에서 정 대장이 전해주는 이야기.
오 박사가 이 앞에서 부인에게
“똑 같나?”
하고는 한참 웃었다고.)
좌측 암능의 여근인 금수굴이 반기고...
하산 길의 기암인 전망대가 나타나고
민초들의 작은 소망들을 담은 돌을 얹어놓은 소원성취바위?
너럭바위위의 전망대에 청솔 한 그루가 푸르름과 그 기개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 바위 옆에, 말없이 뒤따라 내려오든 김 신 총무,
황금빛 노을을 받고...
코끼리바위를 지나
장흥군의 수호천사를 만납니다.
쓰레기를 주워 담은 비닐 부대를 등판의 두 배 크기로 얼기설기 엮어
무겁게 짊어진 젊은이가 스틱을 짚고 힘들게 내려가는 모습을 발견하고 깜작 놀라
한 컷 담고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주저하다 명함을 내어놓습니다.
‘장흥군청에 근무하는 이영돈’님
어떤 하산객이
“헬기로 운반하면 될건데 왜 힘들게 그러느냐”
고 해서 싫은 소리했다며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문제는 자기가 갖고 온 쓰레기는 자기가 갖고 내려가야 하는데...
버리는 사람을 보면 충고도 해주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습니다.”
동감을 표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내려가다 온전치 못한 오른 다리 탓인가
비탈진 자갈길에 하마터면 곤두박질 칠 뻔 합니다.
장안사 갈림길을 거쳐
작은 암봉을 넘어
부산의 25산악회회원들과 만나고
다시 내려가다 11시 방향으로 장천재의 특징이라는 ㄷ자 지붕을 내려다봅니다.
빗긴 바위에 흙 자갈이 깔려 미끄러워 밧줄이 쳐져 있는 코스와
망가져 가는 묘지를 지나
16시33분, 원점 회귀의 팔각정에 내려섭니다.
등산안내도 앞을 지나
16시55분, 버스가 기다리는 2번 국도변의
여기도 불황의 여파를 맞았는지 휴업중인
카 센트 앞 마당에 도착.
4시간27분의 산행이 끝납니다.
관광버스 옆의 뒤풀이 장소에 소주와 어묵파티가 열려
서로 권하며 산행후일담과 정을 나눕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한 번도 기념 촬영한 기억이 없어 오 회원에게 부탁
멀리 머리를 내어놓는 천관산을 배경으로 기념촬영하고
회원들과 집행부가 합심하여 주변을 깨끗이 청소,
부산의 연산한솔산악회의 두 부녀회원이 길을 잘못 들어 하산하여
한솔산행대장과 교신 후 동승시켜
17시19분, 부산으로 출발합니다.
차창 밖의 서녘으로 지는 진분홍 홍시 같은 해님을 바라보며
자연의 신비함과 아름다움에 회원들은 탄성을 발하고
행복에 푹 빠집니다.
두 부녀회원들을 천관사 갈림길 도로에 하차시켜주고 달리는데
순천을 앞두고 장시간 정체,
2시간25분만인 19시44분, 순천 나들목을 나와 남해고속도로를 오릅니다.
다시 배 기사는 사천 나들목에서 국도로 빠져 달리는데
고속도로는 빨간 후미등으로 이어져
굼벵이 걸음을 하는 걸 바라보며 달리다
장지나들목에서 다시 고속도로에 올라
일사천리로 달려 예상보다 훨씬 빠른
22시35분, 서부산T/G를 빠져나갑니다.
산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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