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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교육의 네 원리
성경본문 : 잠언 22: 4, 6
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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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영민 목사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가리켜서 ‘교육 홍수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평생 교육이라는 용어가 대학교에서 유행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교육의 혁신적인 이론과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교육 서적들이 물밀 듯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을 올바르게 교육하기란 매우 힘든 현실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기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본주의의 교육이 만연하기에 신본주의의 교육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일이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실용주의의 교육에 밀려서 하나님의 교육방식이 천대를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세속주의적인 교육에 의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교육이 변두리 교육으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읽었던 본문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그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유명한 말씀입니다. 아마도 여러분 가운데에는 이 말씀을 암송하고 있는 분들도 많이 계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 말씀에 담겨져 있는 깊은 의미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
따라서 이 말씀이 담고 있는 진리를 삶에 그대로 적용하며 실천하는 사람은 더더욱 드뭅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에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솔로몬이 가르쳐 주고자 하는 참된 교육의 네 가지 원리에 대해서 증거하고자 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본문의 말씀이 매우 단순하고 특별한 진리가 없는 것처럼 보일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여러분이 사랑하는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하기를 원하신다면 겸손한 마음으로 가장 단순한 것 같으나 그 안에 심오한 진리를 품고 있는 이 말씀을 잘 귀담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진리의 내용들을 항상 가슴에 품고 기억하는 가운데에 여러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신앙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귀하게 쓰임받는 훌륭한 믿음의 거목들로 잘 성장시켜 가시기 바랍니다.
1. 제 1 원리 -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자녀교육의 첫 번째 원리는 원하는 것을 모두 다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자녀들이 원하는 ‘would’가 아니라 자녀들이 당연히 해야만 하는 ‘should’를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어떠한 것을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마땅히 행할 길을 먼저 가르쳐 주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의 제 1 교리는 인간의 전적타락입니다.
우리 동양의 철학에서도 인간의 본성이 본래부터 선하냐 아니면 악하냐에 관하여 많은 연구를 해 왔습니다. 그래서 ‘성선설(性善說)’도 있고 ‘성악설(性惡說)’도 있습니다. 이러한 논증에 대하여 성경은 원래 인간은 처음에는 선한 존재로 태어났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 먹은 후로는 완전히 악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성경의 대답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악한 존재로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우리의 자녀들이 부모를 닮아서 사랑스럽고 예쁘고 귀엽다고 할지라도 본질적으로 죄악의 성품을 갖고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영원불변한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하게 내 버려둔다면 틀림없이 죄악의 성품으로 말미암아 타락하고 부패하고야 말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나중에 장성하여 이 사회에 크게 이바지하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의 사람이 될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한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잘 할 것인지 아니면 머리가 나빠서 공부를 못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키가 훤칠하게 크고 선남선녀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의 칭찬과 부러움을 살 것인지 아니면 평범한 모습으로 성장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부모는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하게 내 버려둔다면 틀림없이 부패하고 타락한 존재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매 순간마다 우리 자녀들의 삶을 간섭하지 않으시면 반드시 죄악의 습성으로 인하여서 나쁜 길로 들어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솔로몬은 이 사실을 잠언을 통하여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잠언 22장 15절의 말씀을 보시면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 자녀들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들이 도저히 끊을 수 없는 끈으로 얽혀 있습니다. 이것은 솔로몬이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로 인간의 전적타락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부모는 아이들을 죄악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죄악의 길로 인도하는 어리석은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자녀들에게 올바른 신앙교육을 마땅히 가르쳐야만 합니다. 심지어 먹는 것도 우리는 철저하게 간섭을 해야만 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어디 몸에 좋은 음식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예를 들자면, 소시지, 햄, 햄버거, 콜라, 사이다, 라면 등 몸에 안 좋은 인스턴트식품만을 아이들이 선호하고 있지 않습니까?
누가 시켜서 아이들이 그러한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이 저절로 좋아해서 그런 음식들을 부모들 몰래 먹고 있습니다.
이처럼 부모는 아이들의 모든 것들에 관심을 기울여야만 됩니다. 그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그대로 하게 내 버려두는 것은 자녀들의 인생을 어긋난 길로 인도하는 일임을 성경은 우리들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의 제 1 원리입니다.
2. 제 2 원리 - 사랑과 인내로 가르치라!
제 2 원리는 자녀에 관한 교육은 사랑과 인내로 가르쳐야만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부모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요즈음과 같은 삭막한 시대에 자녀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강요 마치 군대식 명령과도 같은 부모의 강압적인 자세는 자녀들로 하여금 올바른 교육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입니다. 부모의 강요가 어느 정도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반드시 불순종으로 나타나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부모들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신앙안에서 자녀들을 잘 양육해야할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늘 명심해야만 할 줄로 믿습니다. 사랑이 없는 강요는 오히려 더 큰 문제만을 발생할 뿐입니다.
어느 초등학교의 급식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학생들이 줄을 서서 배식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날 음식 메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과와 달콤한 초콜릿이었습니다. 그런데 사과가 잔뜩 쌓여 있는 곳에 선생님이 이러한 안내문을 써 놓았습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니 사과는 하나씩만 가져가세요!” 그래서 순진한 아이들이 착하게도 사과를 하나씩만 들고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초콜릿이 있는 곳에는 초콜릿이 거의 남아 있지가 않았습니다. 대신에 거기에는 한 아이의 장난스러운 문구가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습니다. “초콜릿은 마음대로 가져가도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과가 있는 곳만 지켜보고 계시니까!”
재미있는 이야기이지만 우리들에게 주는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은 강요를 하면 일단은 순종을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반드시 커다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부모가 자녀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과 방법인 강요와 압박과 명령은 올바른 길로 우리의 자녀들을 결코 안전하게 인도할 수가 없음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강요와 탄압과 명령보다는 사랑과 친절과 온유함이 자녀들을 잘 지도할 수 있는 최고의 교육적인 방법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에도 그런 진리가 나옵니다. 한 사람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바람과 태양 중에 누가 더 빨리 나그네의 옷을 벗길 수가 있는가 하는 시합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바람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도전을 하였습니다. 바람은 태풍과 폭풍을 동반하여 그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나그네는 외투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기 위해서 더욱더 외투를 두 손으로 꽉 움켜잡았습니다. 아무리 바람을 노력을 기울여도 도저히 그 사람의 옷을 벗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태양이 도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태양은 바람을 보면서 빙그레 미소를 짓고는 그 나그네를 향하여 따스하고도 온화한 햇볕을 조금씩 비추기 시작하였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온 몸을 외투로 감싸고 있던 그 나그네가 이제는 갑자가 날씨가 바뀌어서 기온이 올라가자 서서히 단추를 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도 몸이 덥고 계속해서 땀이 흐르자 급기야는 외투를 벗고 말았습니다. 바람은 강요와 협박으로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기를 원했으나 실패하고야 말았습니다. 하지만 태양은 사랑과 온유함으로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노력을 하였고 결국에는 성공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제가 신학교를 1982년부터 1985년까지 대전에 있는 침례신학대학교를 다녔습니다.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는 등록금이 필요하니까 제가 신학교를 다니면서 저녁에는 시내에 있는 학원에서 독일어 단과반 강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학원도 학교처럼 담임제도가 있어서 제가 한 반을 맡아서 독일어도 가르치고 담임선생님 노릇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담당하고 있던 학생들 중에서 저보다 덩치가 큰 남학생 3명이 가짜 외출증을 만들어서 몰래 밖으로 나가서 그만 성인영화를 보고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자기들 딴에는 담임선생님이 신학교를 다니는 전도사님이니까 절대를 회초리를 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감고서 그러한 일을 시도한 것입니다. 다른 친구들은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을 시간에 이 세 녀석이 무단 외출을 하였고 영화도 아주 질이 나쁜 성인영화를 보고 왔으니 제 마음속에 거룩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래서 교무실로 불러다가 나무 막대기를 갖고서 사정없이 엉덩이를 각자 10대씩 엄하게 때렸습니다.
그때에 다른 선생님들이 아주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전도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또한 전도사가 학생을 때리는 모습을 처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날의 사건을 기점으로 해서 이 세 녀석이 정신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대학교에 전부 다 진학을 하였습니다. 제가 학원 강사로 있으면서 대학교에 진학 한 학생들 중에서 고맙다고 찾아 온 학생들이 바로 이 세 녀석들입니다.
오늘날에도 교사들의 체벌에 관한 문제로 아주 떠들썩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얼마나 세게 때렸느냐, 몇 대를 때렸느냐가 아니라 과연 교사의 마음속에 사랑의 마음으로 체벌을 했느냐 아니면 미움의 감정을 갖고서 체벌을 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부모의 강요와 강압과 무자비한 독재자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가 생기면 생길수록 사랑과 애정과 친절과 온유와 자비의 모습으로 부모가 다가갈 때에 우리의 자녀들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진심어린 충고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이들은 연약한 나무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하루아침에 커다란 나무로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약하고 어린 나무일수록 각별한 관심을 필요로 하는 법입니다. 더욱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그 나무에 쏟아 부어야만 합니다. 나무의 성장이 조금 느리다고 해서 조급한 마음을 갖고서 그 나무를 자꾸만 잡아당기면 결코 좋은 나무로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부모는 사랑과 친절과 온유한 마음으로 자녀들을 인내하는 가운데에 잘 양육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자녀들을 양육하는 일은 목이 좁은 물병에다가 물을 넣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한꺼번에 물을 많이 넣을 욕심으로 큰 대야에 있는 물을 사정없이 목이 좁은 물병에 부어버리면 물도 안 들어가고 대부분의 물은 땅바닥으로 떨어지고야 말 것입니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인내하는 가운데에 천천히 물을 부으면 한 방울의 물도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하고 그 병의 입구까지 물을 가득 채우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자녀들을 양육하는 일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사랑과 인내하는 자세입니다. 이 단순한 진리를 항상 명심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제 3 원리 - 자녀 사랑은 영혼 사랑이어야 한다.
우리가 자녀를 사랑함에 있어서 육신을 보살피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그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은 바로 영혼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영혼을 사랑으로 키우는 일이야말로 자녀교육의 핵심입니다.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하신다면 그 영혼을 먼저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무슨 말을 하든지 아니면 무슨 행동을 하든지 이것이 자녀들에게 영적으로 유익한 일인지를 곰곰이 생각해야만 합니다. 이런 부모들도 있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목회자와 교회에 대한 불만이 있는 것을 아무런 생각없이 자녀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부모 밑에서 자녀들이 과연 무엇을 배울 수가 있겠습니까? 배울 것은 뻔합니다.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비뚤어진 신앙심만을 가르쳐 줄 뿐입니다. 부정적인 신앙을 가진 부모에게는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신앙을 가진 자녀가 만들어지게 마련입니다.
우리의 가냘픈 육신속에 존재하고 있는 영혼은 영원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아름다운 건물도 사라지고 막강한 권력자도 사라지고 온갖 부귀영화도 다 때가 되면 사라지고 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신속에 있는 영혼은 영원한 존재입니다. 아무리 무수한 세월이 흘러가도 영혼만큼은 절대로 변하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에도 영혼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육신보다 영혼을 훨씬 더 사랑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부모가 자녀들을 사랑한다면 육신적인 즐거움과 만족을 위한 가르침을 주기 보다는 영원한 영혼을 위하여 유익을 주는 일에 관심과 애정을 더 기울여야만 합니다. 바로 그 방법이 영혼 사랑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1장 9절을 보시면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의 영혼구원을 위해서 믿음의 부모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도를 담대히 가르쳐 주어야만 합니다. 믿음을 얻기에 유익한 환경을 제공해 주어야만 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리모델링 공사를 한창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좀 더 밝고 좋은 환경속에서 신앙교육을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어린 자녀들로 하여금 교회에 대하여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도록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로 하여금 자꾸만 교호에 오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도록 최고의 환경과 장소를 마련해 줄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다시 한번 이렇게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우리의 자녀들이 다 큰 성인이 된 후에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자녀들을 어릴때부터 좋은 영적인 환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친다면 그 아이의 인생을 참으로 복된 형통의 삶으로 늘 인도함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도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서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맹모삼천(孟母三遷之敎)’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아무리 세상의 부모들이 자녀들을 위해서 정성과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육신적으로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줄 뿐입니다. 그리고 육신적으로 제아무리 좋은 환경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영혼의 유익을 가져다 줄 수는 없습니다. 자녀들의 영적인 믿음의 성장에는 조금의 도움도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부모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영적으로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만 할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좋은 환경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아이들에 비해서 훨씬 더 신실한 믿음의 일꾼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 기독교는 영혼의 구원만을 강조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육신의 부활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종교가 바로 우리 기독교입니다. 그러나 영혼구원이 없는 육신의 부활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의 진리는 영혼구원이 우선이요 그 뒤를 이어서 자연스럽게 육신의 부활이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세상의 나쁜 풍습을 절대로 좇아가지 말 것을 가르쳐 주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달려가는 세상의 문화로부터 순결한 자녀들의 믿음을 지켜내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것은 그 무엇이든지 궁극적으로 악한 것입니다. 아무리 선한 종교가 있고 훌륭한 철학과 사상이 있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것들은 모두 다 속이는 것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믿음의 성도님들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영적으로 잘 성장시키는데에 최선을 노력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속한 어두움의 자녀가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빛의 자녀로 만드는 일에 여러분의 남은 인생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헌신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4. 제 4 원리 - 자녀들에게 성경지식을 가르쳐야 한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잘 가르쳐야만 합니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은 습관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 주기 위해서 성경책에다가 꿀을 발랐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책장을 넘기기 위해서 자신의 손에다가 침을 묻혀서 그 책을 넘기다 보면 자연히 꿀의 달콤한 맛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맛있는 꿀을 먹기 위해서 계속해서 아이들이 성경책을 읽게 됩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차츰차츰 흘러서 아이들이 성장하다보면 이제는 꿀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송이꿀보다 더 단 하나님의 말씀의 매력에 빠지게 됩니다.
시편 119편 103편에서 시편의 기자는 이렇게 고백을 하였습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제가 어릴 적에 외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항상 부엌에 숨겨 놓은 조총을 몰래 꺼내어 먹은 기억이 납니다. 인절미에다가 조총을 찍어서 먹는 맛은 아마도 이 세상에서 최고의 맛일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한번이라도 더 그 맛을 맛보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던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습니다.
제가 왜 이 이야기를 여러분께 드렸는가 하면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히기 위해서는 이러한 방법이라도 사용을 하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좋아하는 것을 사주는 방법을 써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읽은 습관을 심어주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어떠한 것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마지못해서 읽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기 때문에 자녀들이 꾸준히 성경책을 읽다보면 나중에는 그 말씀의 맛에 빠져서 좋은 선물이 없어도 이제는 자원하는 심정으로 말씀을 계속해서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자에게는 성경의 약속과도 같이 큰 축복을 받게 됩니다. 정말 여러분의 자녀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잘 되기를 바라신다면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는 좋은 신앙의 습관을 물려주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우리의 자녀들이 성경을 많이 알고 있는 지식이 있다고 해서 구원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성경에 관한 지식이 구원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을 보시면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성경을 아는 지식 자체가 구원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을 아는 지식이 때가 되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로 변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 믿음의 부모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서 어릴 때부터 그림으로 된 성경책을 선물로 사서 주어야만 합니다.
성경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수록된 테이프도 구입해서 선물로 주어야 합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성경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읽는 좋은 신앙의 습관을 키워줘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집 안에서 성경을 자주 읽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 주어야 합니다. 성경책을 자주 읽은 신앙의 부모 밑에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훌륭한 신앙의 자녀들이 만들어지게 마련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우리 강남중앙침례교회의 모든 믿음의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읽는 가운데에 참으로 아름답고도 값지고 귀한 신앙의 유산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물려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결론)
시편 127편 4절을 보시면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장사가 수중에 있는 화살을 갖고서 활시위를 당기면 그 화살은 어디로 날아갈까요? 화살은 장사가 쏘는 방향으로 날아가게 마련입니다. 동쪽으로 쏘면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쏘면 서쪽 방향으로 날아갑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너무나 소중한 자녀들을 기업으로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귀한 믿음의 선물로 주신 사랑하는 자녀들을 어떠한 방향으로 인도할 수가 있을까요?
지금처럼 세상에 죄악이 만연하고 어두움의 권세가 득세하고 있는 영적으로 혼탁한 이 시대에 과연 어떠한 길로 사랑하는 자녀들을 안전하고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삼아 우리의 가정을 경건하고도 신실한 믿음의 가정으로 세워가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귀한 말씀과도 같이 마땅히 행할 길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가운데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자녀들을 변함없이 사랑하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도 강요와 강압과 무자비한 방법으로 자녀들을 대하지 마시고 끝까지 인내하는 가운데에 하나님의 귀한 생명의 말씀으로 성실하게 양육하십시오.
이 세상의 육식적인 환경보다는 영적으로 좋은 환경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
부모인 우리 자신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가운데에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는 참으로 신실한 신앙의 유산을 가업으로 물려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모두가 선포되어진 하나님의 귀한 말씀에 순종하여 네 가지 신앙의 원리를 따라서 자녀들을 잘 양육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