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1-24
믿음으로 건강하게 살자 / 이근수 목사
원시종교의 기능은 믿는 자에게 안녕과 복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병들었을 때에 건강을 빌었고 자신과 자손이 잘 되기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셨고 보존하시고 섭리하십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인간의 건강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이 건강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건강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병을 고치십니다.
창20: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생산케 하셨으니“
이 말씀은 구약성경에서 최초로 언급된 치료의 예입니다. 아비멜렉 집 식구들에게 큰 병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여인들은 태가 닫혀 아이를 생산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을 위해 하나님의 종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종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주셨고 태를 열어 잉태까지 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 일로 아브라함은 저들에게 대단한 사람으로 인식 되었고 하나님은 저들에게 높힘을 받으셨습니다 (18절). 이 처럼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도 병든 환자를 위해 기도함으로 아브라함의 사역을 하여 효과적으로 전도를 할 수 있습니다.
치료하시는 여호와 [출15장 26절]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임이니라"
“너희가...규례를 지키면” -하나님은 그 백성이 신앙의 표준으로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 - '나 여호와는 너희의 치료자'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절대자이신 동시에 우리의 모든 질병을 치료해 주시는 전능하신 분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치료하는'- '라파'는 '의사' 또는 '의원'을 가리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의사가 되셔서 우리의 모든 병을 고치 는 치료자 이십니다(마 9:12).
예수님이 병을 고치십니다 <마태 8:14-5>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touched)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마 9:35). 치유 사역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하나님과 질병 치료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궁극적 목표인 구원이라는 말(sozo)은 병든 사람이 나음을 받는 것으로도 쓰였습니다. 예를 들면, 마태 9장 21-22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sozo)하였다." 막5:34절에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sozo'-는 ‘구원받았다, 병 고침 받았다‘는 뜻입니다.
2000년 전에도 의사가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당시 의사에게 12년간 치료를 받았지만 병은 더 악화되고 돈만 허비했습니다.[막5:26]
비슷한 예가, 눅 8:48, 17:19, 18:42 에 있습니다.
눅8장 48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눅17장 19절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눅18장 42절 “예수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물리적인 난관과 신체적인 병으로부터 구출해내는 것이 구원입니다. 치료하다는 헬라어 'therapeia'는 '섬김(therapon)과 어원이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섬기기 위한 것’이었고, 그 섬김 중의 하나가 곧 치유였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환자를 치료하는 일은 당연한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믿는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환자 치료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성경은 수도 없이 많은 치유의 예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출 15:26]
이사야의 종의 노래 (사53:5)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 고 하며 치유가 메시야 사역의 중요 사역임을 선포하였습니다. 치유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중요사역 입니다. 하나님의 일군들도 치유 사역을 하였습니다.
본론
사르밧 과부가 받은 복[왕상 17:1-24]
못된 아합 왕이 폭정을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아합왕에게 말하기를 ...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과연 그후 이스라엘 땅에 비가 내리지 않이 기근이 심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게하시고[3] 그 시냇물을 마시게 하시고 까마귀들을 통하여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4] 까마귀들이 아침 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가져다 주어서 먹었습니다. [6] 가뭄이 지속되자 마침내 시내가 말라버렸습니다. [7]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그릿 시내에서 사르밧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8] [지도] 60KM 떨어진 해안 입니다. 선지자가 사르밧에 이르니 한 과부가 나무를 줍고 있었습니다.
선지자는 목이 너무 말라 그녀에게 물 좀 달라고 하였습니다.[10] 고맙게도 그녀는 물을 가지러 집으로 내려갔습니다. 선지자는 그녀에개 한가지를 다 부탁하기를 집에 떡이 있으면 떡 한 조각만 달라고 하였습니다.[11] 그녀는 떡은 없고 밀가루 한움큼과 기름이 조금있는데[12] 나뭇를 주어다가 그것으로 마지막 음식을 만들어 아들과 먹고 죽으려고 한다고 비참한 말을 하였습니다.[12] 참혹하고 가난한 얘기를 들은 엘리야는 그래도 그것으로 먼저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가져오고 그 후에 남은 것으로 너와 네 아들이 먹으라[13]고 하였습니다.
선지자는 참으로 어려운 부탁을 여인에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네가 만일 내 말을 순종하면 하나님이 비를 다시 내리실 때 까지 너의 식량 통에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의 기름도 없어지지 아니한다고 [14] 하였습니다.
순종한 여인
그 여인은 선지자의 말을 듣고 큰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여인의 통에는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에는 기름도 마르지 아니하였습니다. [16] 할렐루야!
그 후 그 여인은 아들과 함께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아들이 별안간 병이 들었습니다. 병세가 급박했습니다. 손 쓸 새도 없이 아들이 죽었습니다. [17]
너무나 슬픈 여인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다고 여인은 선지자에게 말했습니다.[18] 그리고 '당신이 내 아들을 죽이려고 내 집에 왔느냐'고 쏘아붙였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엘리야는 아들을 달라고 하여 다락으로 올라 가서 자기 침상에 죽은 아들을 누이고 [19]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20] 선지자는 그 아이 위에 자기 몸을 세번 엎드려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21]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아이를 살려주셨습니다.[22] 여인은 엘리야에게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24]하고 고백을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빵 한조각을 먼저 드린 여인은 양식과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기적의 복을 받았고, 죽었던 아들이 살아나는 복을 받았습니다. 여인은 믿음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사도들의 치유사역[행3:16]
예수님이 치유 사역을 하셨던 것처럼 사도들도 치유 사역을 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문 앞에서 앉은 뱅이를 고쳐주는 치유의 이적을 베풀었고, 사도 바울이 선교 여행을 할때는 그의 물건들 조차도 치유의 이적을 일으켰습니다.
행19장 11-12 .“..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초대 교회에는 병 고치는 은사로(고전 12:9) 병든자를 고침으로 복음이 널리 전해졌습니다. 치유 사역은 교회의 중요 사역이었습니다. 그래서 병든자가 있으면 교회는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위하여 기도하여 치유(약 5:14-16)하였습니다. 15절,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치유의 역사적 변화
기독교 역사에서 치유가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4세기 즉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공인을 받은 때입니다. 그 당시 사회에는 주술적이고 미신적이고, 통속적인 치료행위가 있었으나 교회는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교부 요한 크리소스톰은 한 여인에게 '부적'을 사용하여 어린아이를 치료하기보다는 차라리 어린 아이가 죽어 천국에 가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교회에서는 환자를 치료할 때 기도도 하였지만 바울 사도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사용하여 병을 고친 것처럼 사도들이나 속사도들의 유물을 치유의 도구를 사용하였습니다.[행19:11,12] 이러다 보니 교회로 각종 환자로 넘쳤습니다. 교회는 매일 환자를 치료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건강한 사람들이 믿기 위해 교회에 오는 일보다 환자들이 치료받기 위해 교회에 오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기도처소와 수도원으로 옮긴 환자들
교회가 환자들로 넘쳐나자 교회는 예배를 드릴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환자를 수용하기 위한 기도처와 수도원을 만들었습니다. 기도처와 수도원에서 환자와 그 가족이 거하면서 기도하며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수도원과 기도처소가 환자들로 넘쳐났습니다. 이렇게 하여 교회의 앞문에서 시행되던 환자 치료는 옆문이나 뒷문인 기도원이나 수도원으로 밀려났습니다. 예배시에 시행되던 환자 치료는 특별 기도시간이나 부흥집회 시간에 시행되었습니다
결론
하나님을 믿는 것, 기도하는 것, 건강을 얻는 것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병든자도 하나님이 믿음으로 기도하면 건강하게 되고 죽은 자도 기도하면 하나님이 살려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병든 자는 믿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고 치료해 주십니다. 이렇게 믿음과 순종과 기도로 건강을 얻는 복된 성도들과 가족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