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산에 불심은 깊어가고
이명철
목적지 도착 전에 만남의 장소가 경남 거창의 수승대(搜勝臺) 안의 ‘다우리밥집’이었다. 고창에서 전주, 전주에서 거창 수승대까지 직접 운전하고 갔다. 초행인데 핸드폰 네비개이션에 의지하고 가려니 여러 번 행로를 변경하여야 했다. 고행(苦行) 없는 여행(旅行)이 어디 있으랴 싶어 시간 안에 도착한 자체가 깜냥 후련하였다.
금원산자연휴양림 삼나무펜션 201호는 관리사무소 결재 후 상당히 산속으로 올라간 거리에 있었다. 여장들을 푼다. 펜션은 사방이 산으로 빙 둘러섰는데, 사촌들은 쉴 틈도 없이 폭포수 구경을 간단다. 상당한 거리라 하여 나는 조금 따라가다가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 산골 물 시원하게 흐르는 너럭바위 옆 벤치에 앉았다. 몸을 아끼기로 한 것이다.
앉아서 천리(千里)를 본다고, 앉은 채로 봄이 오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살핀다. 산골 물 흐르는 소리, 간간히 들려오는 청아한 새소리. 겨울을 이겨낸 산죽(山竹)은 산허리에 수(繡)를 놓았고, 바위 사이로 솔 향이 감미로웠다. 노란 생강나무 꽃이 봄의 첨병처럼 계곡 양지 편에 피어 있었다.
마애삼존불상이 깊은 계곡에 있다하여 아내와 함께 제일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계곡 징검다리를 2개소나 건넜다. 아내의 무릎수술 후유증이 있을까봐 디딤돌 하나 건널 때마다 손을 잡아주었다. 봄날 같은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문바위를 만났다. 큰 바위 오른쪽에 선계(仙界)로 통하는 문인 양 통로가 있었다. 바위 앞 표지판에 ‘문바위’는 신라시대의 고찰이었던 ‘가섭사(迦葉寺)’의 입구에 있다하여 ‘가섭암’이라고도 하였으며, 고려 말의 충신인 달암 이원달 선생이 망국의 한을 달랬던 바위라 하여 ‘순절암’ ‘두문암’이라고도 부른다. 문바위는 마고(麻姑)할멈의 전설을 가지고 있고, 단일 암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바위이다.’라고 적혀있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절은 없고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像)이 바위 절벽에 나란히 새겨져 천년 세월 잔잔한 미소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였다.
마애불(磨崖佛)이란 한문이 뜻하는 바와 같이 갈 마(磨) 낭떠러지 애(崖), 벼랑이나 낭떠러지 등에 갈거나 깎아서 조성한 불상이다. 이렇게 절벽에 새겨진 불보살은 그것이 어디에 있던 모두 마애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합장을 한다.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서산 마애삼존불 등이 바로 그와 같은 것이다.
가섭은 아난과 같이 석가모니부처님의 10대 제자 중의 한 분이시다. 가섭은 노인의 모습으로, 아난은 젊은 스님의 모습으로 불화(佛畵)에 나타난다. 여기 마애삼존불 앞 어딘가에 ‘가섭사’가 있었다면 본존불은 석가모니부처님일 것이고 부처님의 좌협시가 가섭존자, 우협시가 아난존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겠다.
마애삼존불 발아래로 맑은 계곡물이 흐른다. 아직 덜 녹은 눈이 응달의 군데군데 쌓여 있어 웃날은 따뜻한데 마음은 춥게 느껴진다. 눈 녹은 물인지 물의 양이 상당히 많다. 산이 높아야 골짜기가 깊고, 골짜기가 깊어야 물도 많다는 말 허언이 아니다. 계곡 저 멀리 산봉우리 아득하다.
문득 김삿갓의 시 한 수가 생각난다.
아향청산거(我向靑山去)[나는 청산을 향해서 가거니와]
녹수이하래(綠水爾何來)[녹수야 너는 어디로부터 오느냐).
무릇 인생이란 흘러가는 물과 같은 것.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이 봄이 가면 새는 울고 꽃은 떨어지겠지. 산란하게 일어서는 봄의 마음, 마음속 봄의 물결을 잠재워야 눈앞의 삼라만상이 잘 보일까? 그런데 어쩌랴! 마음속 물결을 잠재울 줄 모르는 것을.
옛 사람들은 “인생행로가 어려운 것은 산에 있는 것도 아니고, 물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마음의 변화 속에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나를 다스리는 것은 바로 나의 마음속에 있건만, 왜 나는 알면서도 아직도 부질없는 공상에 사로잡혀 생각의 늪에 빠져있을까.
언제 다시 올 줄 모르는 산을 내려오면서 옛 시인의 시 한 수를 다시 속으로 읊어본다.
생년불만백(生年不滿百)[백년도 못다 사는 주제에]
상회천세우(常懷千歲憂)[천년의 근심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