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경변증(肝硬變症)
간경변증(肝硬變症) 말기 환자인 모하메드 알마리(58세)씨는 최근에 서울삼성병원에서 12시간에 걸친 간이식(肝移植)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했다. 중동(中東)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거주하는 알마리씨는 지난 2011년 3월 간경화 판정을 받았고, 올해(2012년) 1월에는 복수(腹水)가 차오르고 정신도 혼미해지는 간성혼수(肝性昏睡)에 빠졌다. 사경(死境)을 헤매다, 간 절반을 기증할 아들과 함께 우리나라에 지난 3월에 입국하여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두바이 보건부와 환자는 당초 독일ㆍ싱가포르ㆍ한국 등을 놓고 저울질하다가, 한국이 생체(生體) 간 이식을 잘한다는 정보를 접하고 우리나라를 택했다. 두바이 보건부가 치료비를 책임지고, 외국 병원에 보내 간이식을 받게 한 첫 사례이다. 간 이식 비용 약 2억5000만원은 두바이 보건부가 부담한다.
두바이, 아부다비 등 도시(都市) 연합국인 아랍에미리트(UAE)는 한 해 약 13만명의 환자가 치료를 위해 외국 병원을 찾는다. 지난 2011년 11월 UAE가 우리 정부(보건복지부)와 환자 송출 협약을 맺음에 따라, 다양한 중증 환자가 우리나라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9년 외국인 6만201명이 우리나라 의료시설을 이용하였으며 이 중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환자 수는 611명으로 집계되었으며, 2010년에는 8만1789명(중동 환자 949명 포함)으로 증가했다. 최근 중증(重症) 환자 유치가 늘면서 해외 환자 유치 시장이 1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서울대학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우리나라 주요 대형병원들의 간(肝)이식 수술 생존율이 90% 이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또한 위암, 대장암, 간암 등 각종 암 수술과 첨단 방사선 치료, 심장 혈관 스탠트(stentㆍ금속 그물망) 삽입술, 척추 디스크, 척추관 협착증(狹窄症) 레이저 치료 등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우리 몸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시켜주는 장기(臟器)인 간(肝)은 파괴되어 기능이 떨어질 위험이 생길 때마다 손실된 만큼 스스로 보충하는 재생(再生) 기능을 갖고 있다. 하지만 간의 재생 능력이 무한정 유지되지 않기 때문에 간에 반복적으로 손상을 주면 간에 섬유화(纖維化) 현상이 일어나 회복되지 않는 상처가 남는다. 그 결과, 간경변(肝硬變)이나 간암(肝癌)으로 진행한다.
간경변(liver cirrhosis)이란 염증으로 딱딱해지는 간 섬유화가 심하게 진행된 것으로 말랑말랑한 간(肝)이 딱딱한 타이어처럼 변한다. 간은 재생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상처가 나도 쉽게 아물지만, 오랜 기간동안 반복하여 상처가 나거나 염증(炎症)이 생기면 재생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정상적인 간세포가 죽고 새로운 간세포가 생기지 않아 간경변으로 진행되면 간의 구조가 뒤틀리게 되고, 간조직 혈액순환에 이상이 생기면서 간은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모든 형태의 간경화증은 간기능 상실과 간문맥의 혈류폐쇄를 초래한다.
라에네크간경변(Laennec's cirrhosis)은 서구(西歐)에서 가장 흔한 간경변으로 장기간 알코올을 많이 마시고 영양상태가 좋지 않을 때 주로 생긴다. 알코올과 간경변이 서로 관계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간경변증 초기에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나 간세포가 죽어갈수록 체액의 정채와 혈액 응고를 조절하는 단백질의 생산량이 감소하며 빌리루빈을 대사는 능력도 줄어들어 여러 가지 증상과 합병증이 나타난다. 소화불량, 식욕부진, 오심, 구토, 복통, 메스꺼움, 변비 등 소화 관련 증세들이 나타나며 기력(氣力)이 떨어지고 쉽게 피곤해진다. 소변 색깔이 진해지고 황달(黃疸)이 나타나며, 잇몸이나 코에서 피가 자주 난다. 목이나 가슴에 거미 모양의 혈관 반점이 생긴다. 간경변이 진행돼 말기에 가까워질수록 이런 증상들은 심해진다.
간경변을 일으키는 주범은 만성 간염(肝炎)과 알코올이다. 국내 간경변 환자의 약 70-80%는 만성 B형 간염이 원인이 되어 발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성 간염이 간경변으로 넘어가는 기간은 평소 간염 관리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즉, 평소 관리만 잘하면 간경변으로 넘어가지 않거나 간경변으로 진행되더라도 수십 년이 소요된다. 술(알코올)을 오랜 기간 많이 마시면 간경변이 생길 수 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하루에 소주 1병이나 맥주 3병 정도를 15년 이상 마신 사람의 1/3에서 간경변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간경변을 진단하기 위하여 우선 혈액검사를 통하여 간 효소(肝酵素)수치, 혈액 단백질, 간염 바이러스 감염 여부, 빌리루빈 수치, 응고 인자 등 기본적인 정보를 통해 간경변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초기에는 혈액 검사만으로 간경변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초음파, CT, 복강경 검사, 조직검사 등 간의 상태를 직접 관찰하고 판단할 수 있는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치료는 간세포가 더 이상 파괴되지 않도록 간경변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바이러스성 만성 간염에 의한 간경변일 경우에는 원인 바이러스 증식을 막는 치료를 한다. 알코올성 간염에 의한 간경변일 경우 금주(禁酒)와 균형 잡힌 식사요법을 실천해야 한다. 간경변 상태에서 술을 마신다는 것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다. 간에 무리를 주는 일을 삼가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간경변으로 진단 받았을 경우 대개 3-6개월마다 검사를 받아 간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또한 간에 특효(特效)가 있다고 추천받은 보양(補陽)식품이나 민간요법(民間療法)은 간에 상당한 부담을 주는 경우가 많으므로 반드시 전문의(專門醫)와 상담을 거치도록 한다.
간경변증 환자는 칼로리를 충분히 섭취하여 간 기능 보호와 재생(再生)을 돕고 영양결핍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곡류, 국수, 빵, 감자 등 당질(糖質)식품을 충분히 섭취하고, 단백질 식품(고기, 생선, 달걀, 콩, 두부 등)을 적정량 섭취한다. 복수(腹水)나 부종(浮腫)이 있는 경우에는 소금(나트륨) 섭취를 하루 5g 이내로 제한한다.
간경변 자체는 관리만 잘하면 생활하는 데 큰 무리가 없지만, 합병증(合倂症)이 생기면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간경변으로 생길 수 있는 합병증은 복수(腹水), 간성혼수((肝性昏睡), 식도 정맥류(靜脈瘤) 출혈, 간신증후군(肝腎症候群), 자발성 복막염(腹膜炎) 등이 있다. 간경변으로 간기능이 심각하게 손상된 경우에는 ‘간 이식(肝移植)’을 통해 간을 회복시키는 최후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대한간학회(肝學會)가 지난 2006년 간경변증의 대표적인 합병증인 복수, 정맥류출혈, 간성뇌증의 치료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으나, 새로운 근거를 가반으로 보완되고 통합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2011년 12월에 간경변증 임상연구센터와 공동으로 공표했다.
새로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진단에서 병력청취와 신체진찰을 통한 간경변증 소견을 살피고, 만성간질환 환자는 말초혈액 전체혈구계산 검사와 간기능검사, 프로트롬빈 시간 연장, 영상검사, 상부위장내시경 검사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간암(肝癌) 검진은 B형 및 C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 간경변증 등 만성 간질환을 진단받은 사람이 주 대상이다. 간암은 간혹 간경변 없이도 발생할 수 있으나, 대부분 만성 간염의 단계를 지나 간경변으로 진행했을 때 발생한다. 즉 간에 만성 염증이 생기고 딱딱해지면 암이 생길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간암을 발견하기 위한 기본 검사에는 혈청 알파태아단백(alphafetoprotein: AFP) 수치를 측정하는 혈액(血液)검사와 복부 초음파(超音波)검사가 있다. 초음파 검사로 대부분의 간암을 진단할 수 있다. 간암은 초기에 급속히 자라지 않기 때문에 초음파 검사에서 결절이 발견되어 초기 간암이 의심되면 CT와 같은 정밀 검사를 한다. 혈청 알파태아단백을 포함한 암표지자(標識者) 검사는 영상 검사로 놓칠 수 있는 간암을 확인하는 검사다.
간암 조기 진단을 위한 검진(檢診)을 6개월에 한 번씩 받으면 간암 발생 시 생존율과 완치율은 높이고 전이율(轉移率)은 낮출 수 있다. 간암을 예방하려면 위험 요인인 만성 간염, 간경변, 알코올성 간질환 등의 만성 간질환을 먼저 예방해야 한다.
직장인의 30% 이상이 앓고 있는 지방간(脂肪肝)을 치료를 하지 않아 만성 간염, 간경변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방간은 알코올성과 비(非)알코올성 지방간으로 분류할 수 있다. 알코올성 지방간은 금주(禁酒)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의 가장 흔한 원인은 비만(肥滿)에 의한 것이므로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하여 체중을 줄여야 한다.
글/ 靑松 朴明潤(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서울대학교 보건학박사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