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창제와 활용
이문영
훈민정음은 창제 후에 잘 이용되었다.
조선 시대에 훈민정음이 세종 이후에 사용 안 된 것처럼 말하는 건 너무 몰라서 하는 말이다.
한글 실 사용례로 처음 등장하는 것은 수양대군이 문종에게 보낸 편지다.
왕족이야 쓸 수도 있겠지라고 한다면... 단종 때 궁녀 묘단이 혜빈 양씨에게 고자질하는 편지를 보낸 기록이 있다.
훈민정음 반포 6년 만에 궁녀들도 한글을 쓰고 있다.
세조 11년에 궁녀 덕중이 구성군 이준에게 한글 연서를 써서 보낸 일도 있다.
이런 것도 다 궁중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1490년대에 함경도에 있던 군관 나신걸이 충청도에 있는 부인에게 보낸 언문 서찰이 2011년에 발굴되었다.
지방에서도, 그리고 남자도 언문을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다.
조선의 역대 왕들은 "언해"라 부르는 번역 사업을 꾸준히 진행했다.
세종 - 초학자회, 훈몽자회, 유합, 동몽선습 등등.
세조 - 능엄경언해, 법화경언해 등등.
성종 - 내훈, 상감행실도, 두시언해, 구급간이방언해 등등
중종 - 속삼강행실도, 여씨향약, 번역소학, 이륜행실도, 정속언해, 경민편, 여훈언해, 고열녀전 등등.
선조 - 소학언해, 효경언해, 사서언해, 삼경언해 등등.
예종 때 신미라는 승려는 한글 상소문을 올렸다. 종교 쪽에도 한글이 널리 퍼진 것을 알 수 있다.
불경 언해본은 지속적으로 계속 만들어졌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겠다.
농서나 의학서도 한글 언해본이 많이 만들어졌다.
성종은 근검절약을 권하는 포고문을 한글로 작성하기도 했다.
선조도 임진왜란 때 한글 포고문을 썼다. 영조나 정조가 쓴 사실도 있다.
편지나 뭐나 남자는 안 쓰고 여자만 한글을 사용했다는 편견도 많은데,
여자가 남자한테 편지를 보낸다는 것은 남자가 한글을 읽을 줄 안다는 이야기다.
너무 당연하지 않나? 송강 정철이 쓴 한글 편지도 남아있다.
임진왜란 때 학봉 김성일(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 안 일으킨다고 한 그 사람)이 전장에서 아내에게 보낸 한글 편지도 남아있다.
그러니까 양반들도 다 한글 읽고 쓸 줄 알았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한글이 조선의 공식 언어로 작동하여 국가의 공문서에서 한문을 몰아내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런 점에 대해서 불만스럽거나 한 점은 논할 수 있겠다.
다만 한글이 일제가 왔을 때나 되어서 재발견되었다는 식의 뉴라이트적 관점은 엄청난 착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