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 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 거미 쓸려 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 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 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 백석, ‘수라(修羅)’
(나) 먹밤중 한밤중 ㉠새터 중뜸 개들이 시끌짝하게 짖어 댄다
이 개 짖으니 저 개도 짖어
들 건너 갈메 개까지 덩달아 짖어 댄다
이런 개 짖는 소리 사이로
언뜻언뜻 까 여 다 여 따위 말끝이 들린다
밤 기러기 드높게 날며
추운 땅으로 떨어뜨리는 소리하고 남이 아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의좋은 그 소리하고 남이 아니다
콩밭 김칫거리 / 아쉬울 때 마늘 한 접 이고 가서
㉡군산 묵은 장 가서 팔고 오는 선제리 아낙네들
팔다 못해 파장떨이로 넘기고 오는 아낙네들
시오릿길 한밤중이니
십릿길 더 가야지
빈 광주리야 가볍지만
㉢빈 배 요기도 못 하고 오죽이나 가벼울까
그래도 이 고생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못난 백성
㉣못난 아낙네 끼리끼리 나누는 고생이라
얼마나 의좋은 한세상이더냐
그들의 말소리에 익숙한지
어느새 개 짖는 소리 뜸해지고
밤은 내가 밤이다 하고 말하려는 듯 ㉤어둠이 눈을 멀뚱거린다
- 고은, ‘선제리 아낙네들’
31. (가)와 (나)의 공통점으로 적절한 것은?
① 과거를 회상하는 화자의 목소리가 드러나 있다.
② 인간과 자연의 대립을 통해 주제를 부각하고 있다.
③ 시적 대상을 통해 화자가 느끼는 감정이 드러나 있다.
④ 동일한 어구나 표현을 반복하여 애상적인 정서를 전달하고 있다.
⑤ 공감각적 이미지를 활용하여 화자의 내면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32. (나)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은 ‘갈메’와 마찬가지로 토속적 느낌을 주는 구체적인 지명이다.
② ㉡은 ‘선제리 아낙네들’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나타내고 있다.
③ ㉢은 ‘파장떨이’를 하고 귀가하는 아낙네들의 삶에 대한 시적 화자의 감정을 반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④ ㉣은 ‘아낙네들’이 자신의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면서 힘겹게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⑤ ㉤은 ‘눈을 멀뚱거’리는 ‘어둠’에 인격을 부여하여 아직도 시간적 배경이 밤임을 나타내고 있다.
33. <보기>를 바탕으로 (가)를 감상할 때,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기>
이 작품의 제목 ‘수라(修羅)’는 불교 용어인 ‘아수라(阿修羅)’의 준말인데, ‘아수라’는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이다. 이 귀신들이 모여 싸움을 벌이는 것과 같이 주변이 혼란스럽고 어수선할 때 ‘아수라장’과 같다는 표현을 한다. 이 작품을 창작할 당시 시인은 실제로 유랑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일제 강점기의 상황에서 가족 공동체가 붕괴되고 있는 우리 민족의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시인은 자신의 내면적인 생각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자신을 둘러싼 시대와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① ‘밤’을 배경으로 설정한 것은 거미들이 처한 ‘수라’의 비극적 상황을 심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군.
② ‘수라’는 거미 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외적인 시련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찾아온 불행으로 볼 수 있겠군.
③ 화자가 ‘거미 새끼’, ‘큰 거미’, ‘무척 적은 새끼 거미’ 등을 가족으로 판단한 것이 거미들이 ‘수라’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는 인식을 불러왔군.
④ 화자가 ‘거미 새끼’, ‘큰 거미’, ‘무척 적은 새끼 거미’들을 문밖으로 버리는 행위는 그 거미들이 수라의 상황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의도이겠군.
⑤ 화자는 자신의 처지도 거미들과 같다고 여기며 ‘수라’와 같은 현재 상황을 가족애로 이겨 낼 결심을 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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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3] 백석, 「수라」 / 고은, 「선제리 아낙네들」
(가) 백석, 「수라」
http://blog.naver.com/ipsi1004/156782621
http://9594jh.blog.me/220541354406
http://blog.naver.com/vocapia/220204416953
해제 이 시는 새끼 거미와 연이어 나타난 거미들을 대하는 화자의 행동을 통해 가족이나 생명에 대한 연민, 가족 공동체의 붕괴로 인한 서러움과 슬픔 등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화자는 1연에서 ‘거미 새끼’ 하나를 발견하고, 무심코 그것을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그러나 곧 ‘큰 거미’, ‘무척 적은 새끼 거미’를 연달아 발견하고 ‘찬 밖이라도’ 거미들이 함께 있기를 바라며 문밖으로 내어 놓는다. 1연에서 거미를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 버’렸던 화자는 3연에서 는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조심스럽게 내어 놓게 되는데, 이러한 화자의 태도에서 가족 공동체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수라’라는 제목은 ‘가족 공동체가 깨진 참담한 현실과 그로 인한 혼돈의 상황’을 드러내는데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을 1930년대 후반의 민족적 현실과 관련 지어 주제를 ‘일제 강점기로 인한 가족 공동체의 붕괴와 그 회복에 대한 소망’으로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다.
주제 가족 공동체가 깨진 것에 대한 아픔과 그 회복을 간절히 바람.
내용 흐름
1연: ‘새끼 거미 한 마리’를 무심코 밖으로 내어 버린 차디찬 밤
2연: 가족이라 생각되는 ‘큰 거미’를 새끼 거미 버린 곳에 버리면서 서러움을 느낌.
3연: ‘무척 적은 새끼 거미’ 하나를 거미들이 있는 바깥에 조심스럽게 내어 놓으며 슬퍼함.
(나) 고은, 「선제리 아낙네들」
http://9594jh.blog.me/220577364626
http://blog.naver.com/kls12/110174171523
http://blog.naver.com/ongsimjang/220559085535
해제 선제리 아낙네들이 군산 묵은 장에서 채소를 팔고 돌아오는 밤길의 정경을 통해 고단한 생활 속에서도 의좋게 살아가는 민중의 삶을 그리고 있다. 시인은 ‘한밤중’ 같은 생활을 비관하기보다는 ‘못난 백성’, ‘못난 아낙네’들이 모여서 함께 나누는 의좋은 한세상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자 한다. 그것이 어두운 역사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민중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주제 고단한 생활 속에서도 의좋게 살아가는 민중의 모습
내용 흐름
1~3행: 개가 짖고 있는 한밤중 시골 마을
4~8행: 개 짖는 사이에서 들리는 대화 소리
9~14행: 군산 묵은 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선제리 아낙네들
15~20행: 힘겨운 길이지만 함께 고통을 이겨 내며 살아가는 길
21~23행: 평온해진 시골 마을의 모습
31 작품 간의 공통점 파악 ③
정답이 정답인 이유 ▶▶
(가)와 (나) 모두 시적 대상을 바라보는 화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가)에서 화자는 ‘거미’가 방에 나타나는 장면, 그것을 버리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나)에서 화자는 ‘선제리 아낙네들’이 군산 묵은 장에서 돌아오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들이 요기도 못 하고 허기진 배로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서 ‘오죽이나 가벼울까’라고 하여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
① (가)와 (나) 모두 과거를 회상하는 화자의 목소리는 나타나지 않는다.
② (가)와 (나)에서 인간과 자연을 대립시켜 표현한 부분은 찾을 수 없고, 이를 통해 주제를 부각하고 있지도 않다.
④ (가)에서 ‘버린다’라는 시어가 반복하여 사용되고 있으나, 이 자체가 애상적인 정서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나)에서는 ‘남이 아니다’, ‘아낙네들’이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이 또한 애상적인 정서를 드러내기 위한 표현은 아니다.
⑤ (가)와 (나)에서는 모두 공감각적인 표현이 나타나지 않는다.
32 작품의 내용 파악 ④
정답이 정답인 이유 ▶▶
‘선제리 아낙네들’은 늦은 밤 요기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시오릿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한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는 ‘아낙네들’을 바라보는 화자는 그들이 동질감과 유대감을 바탕으로 서로 도우면서,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면서 고단한 현실을 이겨 내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즉 자신의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차원이 아니라 더욱 적극적으로 이 상황을 이겨 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
① ‘새터’, ‘중뜸’, ‘갈메’는 모두 이 시의 공간적 배경으로, 토속적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구체적인 지명으로 볼 수 있다.
② ‘선제리 아낙네들’이 늦은 밤에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이유는 군산 묵은 장에서 물건을 팔고 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중에도 다 팔지 못해서 파장떨이까지 하고 돌아오고 있으니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③ 파장떨이를 하고 오기 때문에 광주리는 모두 비어 있을 텐데, 그들의 배도 제대로 요기를 하지 못해 허기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화자는 그 상황을 ‘오죽이나 가벼울까’라고 반어적으로 표현하면서 그들의 고단한 삶을 드러내고 있다.
⑤ 시의 처음 부분은 ‘먹밤중’이었고, 시가 계속해서 진행되고 마지막이 된 상황에서도 ‘어둠은 눈을 멀뚱거린다’는 의인화된 표현을 사용하여 아직도 시간적 배경이 밤임을 나타내고 있다.
33 외적 준거에 따른 작품 감상 ⑤
정답이 정답인 이유 ▶▶
(가)의 화자는 거미 가족의 이산(離散)을 통해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혈육의 정을 느끼고 가족애로 현실의 어려운 상황을 견디겠다고 다짐하는 부분은 찾아보기 어렵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상황을 가족애로 이겨내겠다는 결심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
① ‘수라’는 혼란스럽고 어수선한 상황, 비극적인 삶을 뜻하는 불교 용어이다. 이러한 상황을 보다 잘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시간적 배경을 ‘차디찬 밤’으로 설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② 거미 가족은 화자 때문에 갑작스럽게 가족이 이별을 하게 된다. 이 상황은 거미 가족에게 ‘아수라장’과 같은 상황으로 볼 수 있다.
③ 화자가 자신의 앞에 나타난 거미들을 가족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그들이 헤어지게 된 상황을 혼돈의 상황이라고 판단했다고 볼 수 있다.
④ 현재 화자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거미 가족들을 다시 만나게 해 주고, 그 가족들이 ‘아수라장’과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화자 자신의 마음도 한결 편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자는 거미들이 한곳에 모일 수 있도록 같은 장소에다가 거미를 내놓고 있는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