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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우환(李禹煥)의 근작(近作)에 대하여 이 일(미술평론가)
『회화가 회화이기를 그치는 한계에 도달하기를 나는 좋아한다.』라고 말한 사람은 쟝 뒤뷔페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바라는 그 「반회화적(反繪畵的)」인 미술을 두고 스스로 「아르 브뤄트」(Art Brut; 原生美術)라 했다.
이우환의 작품을 놓고 뒤뷔페의 예술을 들먹인다는 것은 너무 당돌한 이야기 같기는 하다. 이 두 화가는 실상 두 극(極)을 이루고 있는 듯이 보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동(東)과 서(西), 정신과 물질이라는 양극을 각기 하나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표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문명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도 양자가 다같이 탈(脫)문명적인 시각에 서 있기는 하나, 그것은 서로가 각기 판이한 문명관(文明觀)에서 기인된 것이다.
따라서 이우환의 「반회화적」 자세도 물론 뒤뷔페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다를 뿐만 아니라, 정반대의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우환의 그와 같은 자세는 회화의 구조적인 문제의 차원을 넘어서, 오히려 그 구조자체를 거부함으로써 「그리는」행위 그 자체에 대한 문제와 직접 관련지워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에게 있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급기야는 「그림」을 떠나서도 존립할 수 있는 행위로 환원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귀결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점에서』에서 『선에서』에로의 이행, 그리고 지난 '84년의 서울전에서 보여 준 바 있는 『동풍(東風)』연작에도 이어지는 이우환의 회화적 행적은 이 작가의 논리적 사고만큼이나 정연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번의 근작들에서는 점과 선이 그들의 논리성(論理性)을 거부하며 점도 아니고 획(劃)도 아닌, 일종의 그 「중간항(中間項)」같은 것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쿡쿡 찍어 문지르고 때로는 일부로 뭉개버린 것같은 붓자욱이 아무렇지 않게, 마치 어쩌다 잘못 모습을 나타낸 것처럼, 그리고 금새 사라져버리고 말듯이 흰 화면 위를 부유하고 있는 것이다. 「부유하고」있다고 한 것은, 어두운 청회색의 붓자욱들이 막막한 공간을 점유하며 정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말해서 스스로를 규정지우려고 하지 않은 채 생성과 소멸을 동시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붓자국 하나하나가 바로 그 생성과 소멸의 찰나적인 만남의 장(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그 만남의 장의 흔적이 이를테면 이우환의 작품에 있어서의 회화적 어휘의 전부이다. 거기에는 이미 회화의 기본 구조로서의 공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공간과 함께 모든 감각적인 요소가 화면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다시 뒤뷔페 투의 말을 빌리거니와, 「회화가 회화이기를 그친」상태의 작품을 우리는 어떻게 상정(想定)할 것인가? 시작도 끝도 없고, 완성도 미완성도 아예 없는 작품, 회화로서 스스로를 규정지을 수 없는 회화작품. 색채·형태·구성·공간·이미지 등 일체의 회화적 요소가 배제된 회화작품. 이우환은 회화를 그 최저한의 한계에로까지 무화(無化)시킴으로서 다시금 회화의 가능성을 새롭게 검증하려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곧 이우환 자신에게 지극히 소중한 『만남의 현상학』을 검증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2)
오늘날 현대 미술사에서 분명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우환은 미술시장에서 가장 작품가격이 비싼 작가 중 한 명이다. 정작 그는 가격으로 평가되는 것에 관심 없다고 하지만, 작품이 해마다 고가를 경신하고, 위작 논란까지 있었던 것을 보면 그의 유명세를 실감하게 된다.
일본과 유럽에서는 설치미술가로 더욱 잘 알려져 있는 작가 이우환은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조각가이다. 1936년 경상남도 함안에서 태어나 1956년 서울대 미대 중퇴 후 일본으로 건너가 철학을 전공하며, 동양의 전위미술 운동인 모노하(物派)를 이끌며, 가장 중요한 현대미술 동향을 주도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아시아 현대작가로는 처음으로 파리 국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구겐하임, 베르사유궁전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전시를 가졌다. 수십년간 유럽과 일본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그의 작품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와 일본 독일의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그의 작품세계를 상시로 엿볼 수 있는 곳으로는 일본 나오시마 섬에 만들어진 '이우환 미술관'과 부산 시립미술관 별관에 자리 잡은 ‘이우환 공간’이 있다.
모노하(物派) 운동
관계항-지각과 현상(1969) / 출처: art.busan.go.kr
‘모노’ 는 일본어로 물체, 물건을 뜻하는 단어로, 모노하(物派) 운동은 캔버스에 붓으로 그리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종이, 돌, 나무 등의 소재들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는 현대미술운동이다. 서양의 미니멀리즘, 개념미술의 동양적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대신, 실제 사물을 그대로 제시함으로써 물질성을 부각시키고, 후에 가서는 사물들이 위치한 시공간의 관계에 대해 주목하였다.
1970년대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시리즈로 시작하여 80년대 <바람>, 9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큰 캔버스에 한 번의 붓질을 담은 <조응> 시리즈로 작업을 이어나가며, 존재와 사물, 공간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표현했다. 1970년대 중반 평면회화에 집중하였고, 그 과정에서 나온 작품, 점과 선으로 대표되는 시리즈를 통해 자기만의 독자적인 회화양식을 마련하였다.
점, 선, 여백
“무지의 캔버스에 하나의 점을 찍는다. 그것이 시작이다.
그리는 것과 그려지지 않은 것을 관계 짓게 하는 짓이다.
터치와 논 터치의 겨룸과 상호침투의 간섭작용에 의해 일어나는
여백현상이야말로 회화를 열린 것이 되게 해준다.”
- 이우환의 저서 <여백의 예술> 中
여백이 가득한 화면 위에 점들이 진해졌다가 흐려졌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간격은 조금씩 다르지만, 미묘한 규칙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안료를 찍어 캔버스에 묻혀나가는 방식으로, 붓끝의 물감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점이나 선을 그려낸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시리즈는 반복이 계속되면서 차이가 만들어지는 행위의 흔적과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같은 붓질을 반복하면서 작가와 관객은 ‘무한’을 경험하게 된다.
비가 내리듯 파란 물줄기가 흐르고 있는 이 작품은 청색 안료를 이용해 붓끝에 물감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위에서 아래로, '한 방향'으로 내려 그은 것이다. 캔버스의 아랫쪽까지 내려오는 붓질은 위로 상승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곱게 빗어내린 듯한 선은 복잡한 머릿속이 가지런히 정돈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캔버스의 아래쪽으로 갈수록 점점 흐려지는 선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생긴 여백은 화면에 여유를 주고 있다. 작가는 이 '여백'을 통해 '생성과 소멸'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였다. 여백을 보고 있다보면 명상을 하듯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한다. 여백은 단지 비어있는 곳이 아니라, 사물과 공간이 서로 강력한 에너지를 반향하면서 서로에게 응답하는 곳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대담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파란 붓질이 인상적인 이 작품은 70년대의 점, 선 시리즈에 이어 80년대에 그려진 바람시리즈 중 하나다. <바람으로부터>라는 작품명처럼 그의 작품세계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던걸까. <선으로부터>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차분한 붓질 대신 가로, 세로의 대담한 붓질과 시원한 여백을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에서 우리는 그의 호흡과 리듬감 또한 엿볼 수 있다.
“우주의 삼라만상은 점에서 시작되어 점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점은 새로운 점을 부르고, 그리고 선으로 이어간다.
모든 것은 점과 선의 집합과 산란의 광경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점이며 산다는 것은 선이므로, 나 또한 점이며 선이다.
삼라만상이 나의 재생산이 아닌 것처럼
내가 표현하는 점 또한 늘 새로운 생명체가 되리라”
- 이우환의 저서 <여백의 예술> 中 -
여백과 절제미가 드러나는 이우환의 작품들은 일반적으로 단순한 형태이지만, 명확한 이론적 토대와 현대철학과 그 흐름을 같이 하며 상당한 고민을 거친 작품들이다. 그는 의식 넘어에 있는 외부 세계와의 관계에 문제 제기를 하며 작품을 통해 점과 선의 개념, 선의 의미, 관계, 무한한 시공간 개념을 담고자 했다. 언뜻 보기에 선 긋기, 점 찍기 연습처럼 보여질 수 있는 이우환의 작품은 현대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당혹스러울 수 있겠지만, 작가의 의도를 알고나면 감상이 더 풍부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루는 빠르게도 지나가고, 날씨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점과 선, 여백으로 조용히 아우라를 뽐내고 있는 그의 작품을 바라보며 일상의 여유를 찾아가기를 바란다.
* 참고도서 : '여백의 예술', 이우환, 현대문학, 2002
3)
■ 세계 정상급 한국 작가, 이우환에 대하여
미술가. 1936년 경남 출생. 1956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중퇴 후 도일. 1961년 니혼 대학 철학과 졸업. 파리 비엔날레, 카셀 도쿠멘타, 베네치아 비엔날레 등 국제전에 출품. 파리 죄 드 폼 미술관, 서울 삼성미술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등 국내외 중요 미술관에서 개인전. 호암상 예술상(서울), 세계문화상 회화상(도쿄) 수상. 전 파리 에콜 데 보자르 초빙교수, 현 도쿄 다마 미술대학 명예교수.
작품집으로 『LEE UFAN』(美術出版社 및 都市出版, 일본), 『Lee Ufan』(ACTES SUD, 프랑스) 외 다수. 저서로 일본어판 『만남을 찾아서』(한국, 학고재), 『시간의 여울』, 『여백의 예술』, 시집 『멈춰 서서』(이상 3권, 한국, 현대문학)를 비롯해 영역판 『The Art of Encounter, Lee Ufan』(Lisson Gallery London)과 불역판 『L’art de la r?sonance Lee Ufan』(Beaux-arts de Paris ?ditions) 등.
동양 사상으로 미니멀리즘의 한계를 뛰어 넘은 현대미술의 거장 이우환 화백의 철학적 단상을 모은 수필집. 그의 그림은 동양적인 정서의 상징인 '여백'을 현대미술의 중요한 모티브로 끌어올렸다.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이 문학적 감수성과 함께 담겨있는 책이다.
어쨌든 나의 조촐한 터트림은 수다가 아닌,
여백에 눈길을 주고 침묵에 귀기울이는 것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 36 page
여백의 예술
저자 이우환
출판 현대문학
『여백의 예술』로 심오한 예술론과 글쓰기의 새로운 전형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선보인 바 있는 이우환 화백의 첫 시집 『멈춰 서서』. 산문체의 예술관을 새로운 형식의 시로 신선하게 옮겨온 이 시집의 작품 한 편 한 편은 그대로 응축되고 정련된 예술론으로 읽힌다.
그림과 시가 한 뿌리에서 태어났음을 보여주고 있는 이 시집은, 우리에게 익숙한 언어로 낯섦의 미학을 구현하는 시인의 팽팽한 긴장이 매 작품마다 작용하고 있다. 또한 미술관이나 화집을 통해 만날 수 있었던 이우환 화백의 수많은 그림과 조각들이 어떤 어떤 미학적 사유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는지, 그 현장의 모습과 느낌과 색깔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즉, 사물을 응시하는 한 미술가의 “눈길”을 통해 이 시집 속에서는 광대무변의 상상적 공간이 펼쳐진다. 생물 . 무생물을 초월하는 눈길의 교환은 모든 존재들과의 완벽한 화해의 순간을 이루고, 무화의 세계를 거쳐 신선한 양태의 존재를 태동시킨다. 「눈길」이라는 다음과 같은 전문은 응시의 철학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는 그녀가 좋고
그녀는 내가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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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을 마주하고
미소 지으며 식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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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와 나이프를 울리며
식사는 무아지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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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비우고
그녀는 나를 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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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가 끝났을 때 그녀와 나는
자리가 바뀌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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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녀가 좋고
나는 내가 좋다.
- 「사랑」 -
“우리가 이우환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나무를 만나는 그 기쁨과도 같은 것이다.” _이어령 · 문학평론가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된 「뱀」「아크로폴리스와 돌멩이」 등,
생명력으로 가득 찬 시간의 떨림을 기록한 작가 이우환의 명 에세이를 만난다!
『시간의 여울』은…….
『시간의 여울』은 1987년 일본에서 처음 출간된 이후 『뱀』과 『아크로폴리스와 돌멩이』 등 몇몇 단편이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거나 대학 입학시험에 자주 출제되면서 화제를 모으다가 1994년 국내에 번역 소개되었다. 이번 현대문학에서 출간된 개정판은 월간 《현대문학》에 발표한 단편들을 추가하고 번역도 새롭게 다듬어 꾸며 낸 것이다. 출간된 지 20년도 더 되었지만 이우환의 글에 빛바랜 세월의 흔적은 없다. 오히려 세상 모든 것을 향한 열린 마음과 사소한 것도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 집중력이 삶에 대한 새로운 감각, 좀 더 큰 시각을 열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우환은 평범한 우리 밥상에서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고, 낡은 구두에서 묵직한 시간의 자취를 본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버릴 돌멩이 한 개조차 그에게는 가장 오랜 자연을 인식하는 매개체가 된다. 이우환의 예술은 ‘세계 내 존재’의 철학적 사유에서 출발한 자연과 그 대상화로서의 인위적인 것을 조응하는 하나의 세계를 만듦으로써 그것을 초월하고자 하는 작가관을 드러낸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인위적인 손길을 최대한 자제함으로써 여백의 세계를 존중한다. 그의 글 역시 군더더기가 없이 짧고 강렬하다. 그러나 극도로 절제된 문장 속에 담긴 통찰력과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삶에 대한 생동감은 우리에게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준다.
“나의 모든 예술은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일종의 ‘암시’다. 점은 그림이 아니라 그려지지 않은 여백을 인식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표식일 뿐이다.”
심은록은 이 책의 첫머리 「만남」에서 이우환의 조각과 회화를 개략적으로 소개하면서 “보지 않는 듯 보며, 드러내는 듯 숨기며, 숨기는 듯 드러내는, […] 회화의 시공간적 지층과, 철과 돌의 관계의 신비를 이해하고 싶어서 이우환을 만났다”라고 ‘양의兩義의 예술’을 탐구하게 된 출발점에 대해 밝힌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몽마르트르에 자리한 이우환의 아틀리에에서 대부분 이루어진 대담들은 “예술은 시이며 비평이고 초월적인 것”이라는, 이우환이 평소 이야기해온 ‘예술의 세 가지 요소’를 기반으로 하여 정리되었다.
“[…] 오랫동안 해온 가운데 자연과 산업사회라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수렴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을 대표할 수 있는 게 뭘까. 지구처럼 오래된 시간성을 내포하고 현재에도 그리고 먼 미래에까지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이 뭘까’ 하고 생각하다 보니 돌이었습니다. 그리고 돌 안에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추출해서 산업사회적 개념의 용광로에 녹여 규격화하고 추상화시킨 것이 철판이고, 이는 산업사회를 대표하는 것 중의 하나라고 보았습니다. […] 이러한 철판과 돌을 어떤 연관 속에 둔다면 산업사회와 자연의 대화가 이뤄지지 않을까, 자연과 산업사회에 놓인 여러 가지 문제를 암시하는 데 중요한 다리를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고, 이는 나의 이슈가 되었습니다.”
- 67~68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