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과 기도생활(9)
신비(神秘) 기도(2)▶ 신비 체험이 있다 해서 반드시 위대한 성덕이, 최대의 사랑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신비 체험을 못한 성인들도 많은 것 같다. 그다지 성덕이 높지는 않으나 이런 체험의 은혜를 풍부히 받은 사람들도 더러 있다. 또 신비 기도는 가톨릭교회 안에서만 발견되는 것도 아니다. 회교의 신비 체험도 있다.
마지막으로, 신비 체험이란 평범한 이들은 도달할 수 없는 것이냐 하는 문제가 있다. 수많은 선행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두드러진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생애가 있다. 그러나 하느님은 흔히 이런 사람들의 기도를 매우 깊고 단순한 기쁨으로 승화시켜 주신다. 따라서 -그들이 이 말을 안다면- 그것을 신비 체험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어떻든 용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Sine dolore no vivitur in amore. -고통 없는 사랑의 생활이란 없다.- 신비 체험의 밝은 땅을 밟은 사람들도 재삼재사 암담한 회의를, 거의 절망에 가까운 어두운 골짜기를 거치게 된다. 상당히 예사로 즐거운 기도의 초원을 찾아갈 줄 아는 신앙인들도 안개 낀 싸늘한 광야를 지나간다.
기도는 무슨 고상한 소일거리가 아니다. 사랑은 시련에 부딪치는 법이다. 우리는 이런 시련을 무슨 엉뚱한 사건인 양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기도에 싫증이 난다는 것은 공통된 현상이다. 주위 환경에서의 소외감, 끊임없는 의심과 우울 등, 기도에 따르는 시련들이란 흔히는 뜻밖에도 진부할 만큼 예사스런 일이다.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간다 해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나이다.(시편 23,4).
시편(詩篇)▶ 인간의 기도하는 자세에 대한 온갖 풍부한 보화를 간명하게 묘사한 것을 보려면 150편의 시편이 있다. 이 가운데는 하느님께 말씀을 여쭈는 것도 있고 하느님에 관하여 묵상하는 것도 있다. 애통과 탄원의 비가도 있고 환희와 감사의 송가도 있다. 우리는 시편으로 우리의 안전과 불안을 되새길 수 있다.
그 말씨는 생소하고 구식이다. 가장 오래된 것은 거의 3,000년 전의 것도 있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도와주시는 손, 지켜보시는 눈, 번쩍이는 빛 등, 거의 모든 낱말과 표상들이 오늘도 익숙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시편은 인류가 가장 자주 또 열중해서 애독하는 시집이다. “나에게 생기를 주는 시편의 위로가 없었던들 나는 불행 중에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봉델
시편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기록된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시편이 우리에게 무용지물이 된 것은 아니다. 그 의미는 벌써 구약성경 자체 안에서 넓고 깊게 발전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완전히 성취하셨고 그 가장 깊은 진리를 드러내셨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에 대하여, 시편을 노래할 수 있다. 이것은 체험해 보아야 할 어떤 것이다.
때로는 5분간에 불과 몇 마디 못 읽을 때도 있고, 때로는 줄줄 쉽게 읽어나갈 때도 있다. 우리는 각자가 마음에 드는 5~6편의 시편을 찾아서 하느님께 드리는 우리 자신의 말씀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시편 가운데는 일인칭이 복수로 된 것이 많다. 그리고 온 교회가 매일 함께 모여 시편으로 기도하며 노래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 신자가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지 않으면 참으로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첫댓글 인간의 기도하는 자세에 대한 온갖 풍부한 보화를 간명하게 묘사한 것을 보려면 150편의 시편이 있다. 이 가운데는 하느님께 말씀을 여쭈는 것도 있고 하느님에 관하여 묵상하는 것도 있다.
* 기도는 무슨 고상한 소일거리가 아니다. 사랑은 시련에 부딪치는 법이다. 우리는 이런 시련을 무슨 엉뚱한 사건인 양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기도에 싫증이 난다는 것은 공통된 현상이다.
*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에 대하여, 시편을 노래할 수 있다. 이것은 체험해 보아야 할 어떤 것이다.
하느님께 말씀을 여쭈는 것도 있고 하느님에 관하여 묵상하는 것도 있다. 애통과 탄원의 비가도 있고 환희와 감사의 송가도 있다. 우리는 시편으로 우리의 안전과 불안을 되새길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완전히 성취하셨고 그 가장 깊은 진리를 드러내셨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에 대하여, 시편을 노래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에 대하여, 시편을 노래할 수 있다.
그리스도 신자가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지 않으면 참으로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고통 없는 사랑의 생활이란 없다.주위 환경에서의 소외감, 끊임없는 의심과 우울 등, 기도에 따르는 시련들이란 흔히는 뜻밖에도 진부할 만큼 예사스런 일이다.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간다 해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나이다.(시편 23,4).
시편 가운데에는 일인칭이 복수로 된 것이 많다. 그리고 온 교회가 매일 함께 모여 시편으로 기도하며 노래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 신자가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지 않으면 참으로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샬롬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간다 해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나이다.
인간의 기도하는 자세에 대한 온갖 풍부한 보화를 간명하게 묘사한 것을 보려면 150편의 시편이 있다. 이 가운데는 하느님께 말씀을 여쭈는 것도 있고 하느님에 관하여 묵상하는 것도 있다.애통과 탄원의 비가도 있고 환희와 감사의 송가도 있다. 우리는 시편으로 우리의 안전과 불안을 되새길 수 있다.
찬찬히 살펴보면, 도와주시는 손, 지켜보시는 눈, 번쩍이는 빛 등, 거의 모든 낱말과 표상들이 오늘도 익숙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시편은 인류가 가장 자주 또 열중해서 애독하는 시집이다.
고통 없는 사랑의 생활이란 없다.- 신비 체험의 밝은 땅을 밟은 사람들도 재삼재사 암담한 회의를, 거의 절망에 가까운 어두운 골짜기를 거치게 된다. 상당히 예사로 즐거운 기도의 초원을 찾아갈 줄 아는 신앙인들도 안개 낀 싸늘한 광야를 지나간다.
죽음의 골짜기를 간다 해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나이다.(시편 23, 4)
우리는 각자가 마음에 드는 5~6편의 시편을 찾아서 하느님께 드리는 우리 자신의 말씀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리스도 신자가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지 않으면 참으로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 신자가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지 않으면 참으로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시편 가운데는 일인칭이 복수로 된것이 많다. 그리고 온 교회가 매일 함께 모여 시편으로 기도하며 노래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신자가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다른사람과 함께 가지않으면 참으로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될수없다는 것을 명심하게 하는데에 도움이 될것이다.
인간의 기도하는 자세에 대한 온갖 풍부한 보화를 간명하게 묘사한 것을 보려면 150편의 시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