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스님의 생활법문] <1> 새로운 한 해 평온의 길을 걸으리라
광우스님
옛날 옛적에 ‘실단’이라는 이름의 새가 살고 있었습니다. 실단새는 둥지가 없었습니다. 낮이 되면 따뜻한 햇살 아래 여기저기 놀러 다니면서 낮잠을 즐겼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나무 틈에 몸을 웅크리고 오들오들 떨면서 해가 뜨기를 기다렸습니다.
실단새는 매일 밤마다 늘 똑같은 결심을 합니다. “아휴. 너무나 춥고 괴롭다. 내일 해가 뜨면 꼭 둥지를 만들자. 집을 만들어서 밤마다 편하게 잠을 자야지.” 하지만 실단새는 해가 뜨고 날이 밝으면 밤 동안의 결심은 싹 다 잊어버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여기저기 놀러 다니며 낮잠을 즐겼습니다.
그리고 또 밤이 찾아오면 몸을 덜덜 떨면서 또 다시 맹세를 합니다. “아이고 추워라. 진짜 추워 얼어 죽겠다. 내일은 반드시 둥지를 지어서 다시는 이런 괴로움을 당하지 않을 거야. 내일은 꼭 둥지를 짓고야 말리라.” 그러나 날이 밝으면 역시 간밤의 고생은 싹 다 잊어버리고 노는데 정신이 팔려 다시 밤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게 실단새는 평생 동안 둥지를 갖지 못하고 매일매일 결심만 하다가 결국은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다고 합니다.
불교설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게으름에 빠져 수행정진에 나태한 우리 중생들의 모습을 콕 찔러 경책하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오래 전에 ‘실단새’의 이야기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랬습니다. “오! 맙소사. 이거 완전 내 이야기인데. 혹시 누가 나를 감시하나?”
어느 중학생이 있었습니다. 처음 중간고사를 보고 이렇게 맹세합니다. “다음 기말고사 때는 공부 열심히 해야지.” 그리고 기말고사가 찾아왔습니다. 또 이렇게 맹세합니다.“ 그래, 내년 중간고사 때는 진짜 공부 열심히 해야지.” 그러다가 얼떨결에 고등학생이 됩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마음으로 백번 천번 맹세합니다.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진짜 열심히 공부해야지.”
그렇게 또 ‘다음에 잘해야지, 다음에는 꼭 잘해야지.’ 하다가 얼떨결에 점수에 맞춰 대학에 들어가고 그렇게 얼떨결에 사회인이 되어갑니다. 맞습니다. 눈치챘겠지만 역시 저의 어렸을 때 이야기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옛일을 회상하니 눈물이 축축해지네요. 그래도 전생에 공덕을 많이 닦았는지, 이번 생에 소중한 부처님 가르침을 만나 정말 다행이라고 늘 마음에 되새기며 살아갑니다.
어느 날 무심코 심리학 서적을 펼쳤는데 이런 구절이 가슴을 확 때리더군요. “미루는 것도 습관이다.” 별것도 아닌 말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구나. 미루는 것도 습관이구나. 아! 난 참 습관을 더럽게 들였구나.” 이렇게 알면서도 아직도 무언가를 미루고 있으니 중생의 습관은 지독하게 무섭습니다.
인터넷 신문에서 이런 내용을 봤습니다. 나이가 10대에서부터 70대에 이르기까지 각 세대별 수백 명에게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점’에 대해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여러분은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점’이 무엇이었나요? 서로 다른 여러 답변이 나왔습니다만, 놀랍게도 연령이 높아질수록 압도적으로 많이 나온 대답이 있었습니다. ‘조금 더 열심히 공부할걸’입니다.
조계종 종정과 해인총림 해인사 방장을 지낸 혜암스님은 평생 장좌불와와 일종식을 하면서 제자들에게 “공부하다 죽어라!”고 일갈했다. 혜암스님이 평생 머물렀던 해인사 원당암 미소굴 앞에는 가르침을 새긴 죽비 모양의 비석이 남아있다.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결과였습니다. 평소에 여러 어른 스님들을 뵙게 됩니다.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생생한 체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어른 스님들께서 늘 한결 같이 말씀하십니다. “수행해라. 정진 열심히 해라. 나도 젊을 때 더 열심히 수행하지 못한 게 항상 아쉽구나.”
젊을 때 수행정진을 제일 열심히 했다고 알려진 분들일수록 하는 말씀이 ‘내가 더 열심히 수행하지 못한 게 늘 아쉽다’였습니다. 그분들 말씀에는 후학을 향한 자상한 격려와 겸손이 느껴집니다.
원효대사의 명문장인 ‘발심수행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만, 오늘만 하지만 오늘은 다할 일 없으니 나쁜 짓은 많아지네. 내일은, 내일은 하지만 내일도 다함이 없으니 착한 일은 적어지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낮과 밤이 빠르게 지나가고, 하루하루 지나는 게 훌쩍 그믐이 지나가네. 달달이 바뀌어 홀연히 한해가 지나 내년에 이르고, 한 해 두 해 지내다 보니 잠깐 사이로 죽음 문턱에 이르렀네.”
시간은 쏜 화살 같고,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한 해가 또 한해가 지나가는 것이 번쩍이는 번갯불 같이 느껴집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때면 늘 아쉬움이 남습니다.“그 때 조금만 더 잘했으면, 그 때 조금만 더 노력했으면.” 온갖 상념이 머릿속에 오르락내리락 마음에 숱한 감정을 일으킵니다.
이럴 때 부처님 말씀 한 구절이 위안과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그대여.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일 뿐입니다. 현재 이 순간이 내가 새롭게 시작할 가장 최고의 시기입니다.
백번을 똑같이 결심하고 천번을 다시 맹세할지언정 우리가 희망으로 살아 숨쉬고 앞으로 도약하는 첫 시작은 항상 ‘지금 여기 이 순간’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부처님 법을 만나기 어렵다’라는 말씀을 참 좋아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부처님 법을 만난 우리 불제자는 정말 복이 많은 존재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항상 ‘인연법’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좋은 일도, 모든 나쁜 일도, 자신이 지은 업의 인연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생을 알고 싶으면 현생을 보고, 현생을 보면 내생을 알 수 있다.” 과거의 내가 지은 업의 인연이 현재의 결과를 만들었고, 현재 내가 지은 업의 인연이 미래의 결과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항상 중생들에게 ‘좋은 인연을 심으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심은 업의 씨앗이 내가 받을 업의 열매가 됩니다.
내가 지은 착한 업은 선업이 되고 행복으로 돌아옵니다. 내가 지은 나쁜 업은 악업이 되고 불행으로 돌아옵니다. 이것은 ‘인과법’이라는 우주의 법칙입니다. 결코 착오가 없습니다. 단, 업보는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선업의 힘으로 악업을 소멸할 수 있고, 공덕의 힘으로 주어진 미래를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것이 불법의 힘입니다. 부처님 법은 ‘운명을 바꾸는 법’입니다. 본래 결정된 운명은 없습니다. 모두 내가 지은 업의 인연입니다. 그 업의 인연을 수행의 힘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내 운명을 내가 바꾸는 부처님 법! 부처님 법을 만난 우리는 참 복이 많은 존재입니다. 이 위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담고 찬란한 불성의 광명으로 밝고 환하게 빛나는 한 해가 되기를 발원해봅니다.
“과거의 환상에 잡혀 아쉬워하지 말며
새로운 것에 빠져들어 안주하지 말며
사라져 가는 것을 슬퍼하지 말며
욕망에 휩쓸려서 끌려 다니지 말라
과거를 불살라버리고 미래는 옆으로 치워놓고
현재도 움켜쥐지 않는다면 평온의 길을 걸으리라”
- 숫타니파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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