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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예화
▣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시몬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라는 곳을 향하여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심문을 당하시고 모진 고난을 당하시어 기력조차 쇠잔 하셨지만 십자가의 형틀은 언제나 그 사람의 몫이였기에 예수께서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시다가 쓸어지고 넘어지시자 형편이 좋지 않다는 병사들의 판단에 한 사람을 억지로 끌고 와서 십자가를 지게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당황했으며 어떻게 피해 보았으면 했지만 결국 로마 병사들의 강요에 못이겨 십자가를 대신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는 사람입니다
그가 십자가와 죄인의 형틀을 만진다는 것은 곧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유대인에게 자기가 그 형틀을 진다는 것은 아주 부끄럽고 부정한 것이였기에 그에 마음은 고통스러웠습니다.
그가 십자가를 대신 지고 일어서려는 순간 그는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에게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무엇인가 자신이 눌리어 도무지 일어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잠시 후 예수께서 일어나시자 그도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한 걸음 걸어 보려고 하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아니합니다. 또다시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애를 써 보지만 발걸음이 걸어지지 아니합니다.
그때 예수께서 한 걸음을 하시자 그도 발걸음이 움직여졌습니다. 그는 신비한 체험 속에 예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분이 바로 메시야였구나 하는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이 일 후 그는 부정하다는 유대인의 비난을 받으며 성 밖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한없는 기쁨과 감사의 마음이 생겼고 그에 가정도 구원을 받았고 그 아들도(루포) 그 아내도 바울의 칭찬을 받았습니다(막15:21 롬16:13) 예수의 십자가는 진정 우리에게 부끄러움이 아니라, 구원이요, 자랑이요 축복입니다.
▣ 그래도 끝까지 사랑하는 길밖에
동양 기독교계의 위대한 인물 중에 일본의 가가와 도요이꼬 선생이있었습니다. 그는 빈민굴 전도를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입니다. 그는 살인자, 도박꾼 창녀, 알콜 중독자, 마약 중독자 등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전도하고 구제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다 했습니다.
한번은 그가 일하는 현장을 보겠다며 가가와 도요이꼬의 친구되는 분이 찾아왔습니다. 친구가 와서 보니 그 현실이 너무도 한심한 것이었습니다. 겨우 몇 명 앉혀놓고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어떤 청년이 와서 예배드리고 있는 창녀를 불러냅니다. 그런가 하면 술 취한 사람이 들어와서는 돌을 던져 얼굴에 상처를 냅니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일은 예배가 끝난 후 어떤 사람이, 예배에 참석해 주었으니 그 대가로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도박할 돈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가가와 도요이꼬 선생은 그러면 그렇거니 하고 또 돈을 주어 보냅니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던 친구는 "자네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군. 이건 위선이야! 이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며 사회적으로 옳은 것인가? 이건 오히려 악을 조장하고 있는 거잖아!" 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가가와 도요이꼬 선생은 대답하기를 "다만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조금 흉내 내서 하고 있을 뿐이지. 그래도 끝까지 사랑하고, 끝까지 믿어 주는 길밖에는 도리가 없지 않아?"라고 했답니다.
▣ 최선 이하로 노래는 안 해
엔리코 카루소가 테너 가수로 세계적인 명성을 날리고 있을 때 한 자선 음악회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주최 측의 한 스테프가 카루소에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자선 음악회에 출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명성 때문에 많은 군중이 모일 것입니다. 하지만 자선 음악회이니 선생님께서는 부담없이 편하게 노래하십시오. 특별한 연주기법이 없어도 됩니다."
그러자 카루소는 몸을 일으키며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나, 카루소는 어떤 자리에서도 최선 이하로 노래한 적이 없습니다."
▣ 나는 최선을 다했다.라고
프랑스 대통령 미테랑이 집권 말기에 유명한 학자 한 사람과 대담을 했습니다. 그 학자가 대통령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대통령께서 2010년까지 사신다면 프랑스 국민에게 어떻게 알려지기를 원하십니까?
그때 미테랑 대통령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독일수상 빌리 브란트의 비석에 있는 비문을 아십니까? 저는 그 비문에 있는 것처럼 알려지기를 원합니다. 그 비문에는 '나는 최선을 다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 복은 제네가 받았네
과거 폭력배 두목이었던 김익두 목사님이 어느 날 부흥회를 인도하러 가시다 높은 산길을 오른 후에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고 있었습니다.
잠시 앉아 있었는데 맞은편에서 어떤 술취한 사람 하나가 올라오더니 "너 왜 나보다 먼저 올라왔느냐?" 하며 마구 때리더랍니다. 김 목사님은 치는 대로 아무 저항없이 그대로 매를 맞았습니다.
그러다 저쪽에서 때리는 것을 멈추었을 때에 김익두 목사님이 먼저 입을 열고는 "형님 다 때렸소?" 하고 물었더니 "다 때렸다 왜?" 하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자 김익두 목사님은 정색을 하면서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자네가 받았네"라고 하며 나는 김익두다!" 하자
그 사람은 '이제는 죽었구나'하고 싹싹 빌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합니다.
당황하는 그 사람에게 김 목사님은,
"내가 방금 뭐라고 하던가? 내가 예수 믿기 전에 이러한 일을 당했다면 당신은 여기에서 아주 장례식까지 끝냈을 거야. 내가 예수 믿은 덕에 자네가 살지 않았나?"라며 그를 안심시켰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이 사람이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묻자, 그때 김 목사님은 "무얼 어떻게 해, 나를 따라와야지" 하고서는 그 사람을 데리고 가서 부흥회에 참석하게 하였는데 후일에 그는 장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 항상 하나님과 가까이
폴 칼슨이라는 의료 선교사는 아프리카 콩고에 가서 수 많은 주민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면서 하루에도 백여 명씩이나 치료해주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칼슨 박사님, 당신은 피곤하지도 않습니까?"하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나는 항상 하나님과 가까이 생활하기 때문에 피곤을 알지 못합니다. 나는 매순간 보람을 느끼며 살아갑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그 후에도 계속해서 성경을 연구하고 말씀을 전하며 의료 봉사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는 반란군에게 피살되어 순교하였다. 그의 주머니 속에서는 포켓용 성경이 발견되었는데, 그 첫 장에 '평화'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고 한다.
암흑의 대륙 아프리카 밀림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더위, 빈곤 질병과 맞서서 싸우던 칼슨 선교사는 비록 순교자가 되긴 했어도,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에게 선한 목자가 되심을 믿고 내 잔이 넘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 아직도 김익두가 살아있구먼
한국 초대교회 '김익두'라는 유명한 목사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는 한 때 과거시험에 낙방한 후 방랑 생활하면서 강패의 생활을 하며 두목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그런 그가 한 부흥회에 참석하였다가 예수를 믿게 되었고 과거의 모든 생활을 청산한 후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까지 되었습니다. 그의 설교는 힘이 있고 능력이 있어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고 그로 인해 예수를 믿는 사람이 많게 되었습니다.
그가 부흥강사가 되어 어느 교회에 설교하러 가기 위하여 한 열차를 타고 가는 중에 한 노인과 자리를 마주하여 앉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노인이 장죽의 담배 대를 꺼내 물고는 연신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목사님 코 앞에다 대고 연기를 뿜어대니 목사님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옛날 같으면 한 주먹에 날려 버릴 그였는데 회개하고 예수 믿고 목사님이 되셨고 그것도 부흥회를 인도하려 가는 중이니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한도가 있는지라 목사님은 참다 참다 못해서 화을 내며 그 노인에게 싫은 소리와 함게 그 담배 대를 꺽어 버렸습니다.
그때 그 노인이 하는 말이 "그러면 그렇치, 김익두가 죽었다고 하던데 아직 살아 있구먼" 하고 한마디 합니다. 이 말을 들은 김익두 목사님이 크게 깨우침을 받아 열차에서 내려 한 작은 동산에 오르시며 눈물로 회개하면서 "하나님 아직도 이 못된 김익두가 살아있습니다." 하며 그 동산에 풀을 뽑아가며 몇 날, 며칠을 한없이 통곡하며 회개하였다고 합니다.
그 자리가 길이 될 정도로 풀을 뽑았다고 하니 이 얼마나 진실한 회계였습니까? 이 일 후로 그는 더 겸손하여지고 더 능력을 많이 나타내는 목사님이 되어 한국교회에 큰 인물로 빛을 내었던 것입니다.
*집회 중 들은 이야기를 글로 만들었습니다.
▣ 삶에 보람은 무엇인가?
우리가 잘 아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이탈리아의 부요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문화적인 교육을 받은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의 부모는 그 딸에게 좋은 가정을 갖도록 행복한 결혼을 권유했지만 나이팅게일은 다 거부 했다.
그가 31세 되던 해 어느 날, 허무감에 젖어 일기에 이렇게 썼다.
"살아갈 의욕이 없다. 텅 빈 공허감... 나는 죽을 수밖에 없다."
"삶의 가능성은 무엇인가?" 공허 속에 살던 그는 31세 때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전쟁터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가는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간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부모의 만류에도 뿌리치고 이 젊은 여인은 전쟁터를 찾아갔다.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전상자들을 붕대로 싸매 주고, 닦아 주고, 붙들어 주고 사랑으로 돌보아 주며 3년 동안을 도왔다. 외로운 군인들은 나이팅게일이 지나갈 때면 천사처럼 생각하고 인사를 하였다고 한다.
나이팅게일이 세상을 떠나기 전 그의 시체를 영국 웨스터민스터 사원에 묻으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그는 자신에게는 그런 자격이 없으니 자기가 죽으면 가족묘에 묻어 달라고 했다.
▣ 세상을 대하여 죽다
어떤 사람이 성 마카리우스에게,
"세상에 대하여 죽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공동묘지에 가서 무덤에 대고 누워 있는 시체에게 욕을 한바탕 퍼부어 보게." 그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그가 시키는 대로 하고 왔다.
성 마카리우스는 그를 다시 공동 묘지로 보냈다. 이번에는 욕설 대신 칭찬을 하라고 했다. 그는 시키는 대로 했다. 돌아온 그에게
성 마카리우스가 물었다.
"자네가 욕설을 퍼부어 대니까 시체들이 성내던가?" "아닙니다."
"그럼 칭찬하니 좋아하던가?" 이번에도 그는 "아닙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성 마카리우스가 말했다.
"세상에 대하여 죽는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거라네."
▣ 당신과 함께 있으면
인도에 선교사로 간 맥스웰이라고 하는 분은 현지 언어를 습득하는데 대단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인도는 마을마다 언어가 달라서 새로운 마을에 들어갈 때면 그 마을 언어를 다시 습득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어느 마을에 들어가 힌두교인 한 사람을 붙들고 말 좀 가르쳐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내게 와서 말을 가르쳐 주시오" 예수를 믿든 안 믿든 상관하지 않을 테니 말만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힌두교인이 거절을 합니다. 그러면서 한 말이 걸작입니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싫습니다."
▣ 긍정이 성공비결
미국의 학자들이 미국 역사에 공헌을 한 사람들을 뽑아, 지도에 출신지 별로 분류해서 점으로 표시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미국의 북동부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뉴잉글랜드 지방에 많은 점이 찍혔습니다.
'어떻게 이 넓은 땅 중에 저 좁은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미국의 역사를 움직이는 인물이 많이 나왔을까?'
학자들은 거기에 틀림없이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분석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뉴잉글랜드지방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나 실수를 했을 때 타이르면서 주로 이런 말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Boy, be ambitious." "Girl, be ambitious."
이 말은 "소년 소녀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말입니다. 또한 "포부를 키워라, 원대한 비전을 품으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말이 어린이들의 마음에 박혔고. 이 말이 미국 역사를 움직이는 위대한 인물들을 키운 것입니다.
▣ 생각부터 바꿔라
미술계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청년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사람들이 잘 알아주지 않자, 원로작가를 찾아가 어떻게 하면 화가로 성공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선생님, 저는 2, 3일 걸려 한 작품을 완성합니다. 그런데 제 그림이 팔리려면 2,3년이나 걸린다고 화상들이 말합니다."
그러자 이 원로 화가가 청년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여보게, 젊은이. 한 작품을 2, 3년 걸려 완성해 보게. 그러면 2, 3일 내에 팔릴 걸세."
▣ 네 이름을 바꾸어라
알렉산더 대제 휘하에 같은 이름을 가진 알렉산더라는 졸병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형편없는 그의 생활로 말미암아 알렉산더라는 이름이 마구 더럽혀지고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알렉산더 대왕은 어느 날 예고 없이 졸병의 막사를 방문했습니다. 그는 겁에 질려 경례를 하는 졸병 알렉산더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알렉산더라지?" "네."
"내가 두 가지를 명령한다. 네 이름을 바꾸어라.
그게 싫다면 네 삶을 바꾸어라! 그래서 그 이름의 오육을 씻어라."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이름 앞에 영광과 존귀를 돌리고 나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모독이 되지 않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 나는 너를 용서한다
미국 교계에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고 있는 목사 탐스키너 라는 부흥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뉴욕 할렘가의 청소년 갱단 두목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접하고 나서 그의 영혼이 거듭나고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변화되었다는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한번은 옛날 동료 하나가 탐 스키너를 시험해 볼 생각으로 지나가는 그의 뺨을 한 대 후려쳤습니다. 그러자 뺨을 맞은 탐 스키너는 일어나면서 그 사람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친구여,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나는 너를 용서한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자신을 죽음의 자리에 둔 사람만이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모습입니다.
▣ 3등칸의 슈바이처
1960년대, 슈바이처는 노벨 평화상을 받기 위해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파리에 내려서 시상식 장소인 덴마크행 기차를 탔습니다.
그때 슈바이처가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많은 기자들이 취재하기 위해서 같은 기차를 탔습니다. 그들은 슈바이처와 같이 가면서 기차 안에서 여러 가지 대담을 통해 기사를 작성하려고 했는데 슈바이처를 찾을래야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노벨 평화상을 받기 위해서 오신 분 막대한 상금을 받는 그분은 박사학위만도 정식 학위가 3개였으며 명예 박사 학위는 20여 개나 됩니다. 그리고 영국 황실로부터 백작의 칭호를 받은 귀족입니다.
이런 분이었므로 기자들은 당연히 특등실에 가서 슈바이처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1등칸에 가 보았습니다.
2등칸에도 갔습니다. 역시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3등칸에 가니 매우 가난한 시골 사람들이 나무로 된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거기서 슈바이처가 그들을 진맥하고 있었습니다.
기자들이 슈바이처에게
"선생님께서 어째서 이렇게 남루한 3등칸에서 고생하며 가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슈바이처가 대답한 말이 유명합니다.
"나는 나를 필요로 하는 그곳을 찾아다니며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살 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와 같은 삶의 자세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출처] 좋은예화: 아름다운예화 재편(27)|작성자 선한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