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이어진다. 계절은 영영 바뀌지 않을 기세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맘때면 고향 바다가 그립다. 옥빛 바다에 햇살이 부서져 파도가 일렁이던 고향 바다. 여름 볕에 까맣게 그을린 내 유년의 추억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곳으로 향한다.
부산에서 가까운 곳이건만 편리한 거가대교가 놓여진 이후에도 늘 멀게만 느껴졌다. 고향 바다 칠천량(漆川梁)은 임진왜란 때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이 왜적에 패한 곳이다. 조선 수군 2만 명의 목숨이 수장된 옛 한이 요동치는 물살을 만들어내는 듯, 학교가 있는 본섬으로 등교하는 나룻 뱃길은 언제나 험난했다. 남학생들이 사공을 도와 노를 저어 선창에 도착하곤 했다. 이제는 칠천도에도 연륙교가 놓여 물살을 상관하지 않고 크고 작은 차들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있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게 마련, 선창에서 고삐에 끌려 배에 태워 팔려 가는 장날 소의 슬픈 눈도, 친구들이 등교하던 나룻 뱃길도 추억만 남기고 사라졌다.
요즘 시골이 그렇듯, 고향 어촌도 어느 시골과 다를 바가 없다. 오래전 자식들은 꿈을 찾아 객지로 떠나고 팔십 노인 몇 분만 남아있다. 마을에는 개 짖는 소리도, 닭 우는 소리조차 없다. 쥐 죽은 듯 고요하다.
그러나 고향 바다는 여전하다. 신발을 벗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면 반가운 듯 달려와 발등을 살짝 쓰다듬어 주는 잔물결, 오래전 소금물에 절여놓았던 추억들이 지금, 이 순간 발아래서 녹아 간질된다.
여름이면 바다는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친구들과 물속에서 오래 있기, 선착장까지 누가 빨리 가나 내기도 했다. 깊고 먼바다를 무서운 줄 모르고 새끼 물개처럼 살랑거리며 헤엄을 치고 다녔으니 지금 생각해봐도 아찔하다. 해녀처럼 차오르는 숨을 참아가며 해삼을 건져 먹기도 하고, 해물이 풍부한 부산에 살고 있건만 짭조름한 고향의 향이 있는 맛을 아직도 먹어 본 적이 없다. 가난하기 그지없었던 시절이었지만 그런 추억이 있기에 마음은 느긋해진다. 섬 아이에게 엄마가 바다 같았다면, 맑고 잔잔한 품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며 꿈의 길을 열어준 바다도 내 엄마였지 싶다.
언덕에 우리 집 고구마밭이 있던 곳으로 올라갔다. 밭일을 갈 때 나는 엄마를 따라갔다. 베적삼에 땀이 흠뻑 배도록 일하시던 엄마였다. 한참 풀을 베다 밭 가에 나와 앉은 엄마는 머리에 쓰고 있던 수건으로 얼굴에 흐르는 땀을 훔친 후 챙겨 온 담배에 성냥불을 그어 붙였다. 양껏 담배를 빨아드리고는 청춘의 한을 토하듯 연기를 뿜어냈다. 언제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엄마의 시름을 달래주니 담배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너그 아부지는 참말로 대단했디이라. 서른도 안 된 나이에 혼자 일본에 가서 배를 사서 타고 오더라 카이.”
엄마는 붉은 밭둑에 앉아 많은 어부와 배를 거느린 젊은 선주였던 남편과의 행복했던 날들을 되새김하고 있었다. 엄마는 단숨에 담배 한 대를 피운 후 돌아올 아버지를 기다리는 듯, 먼바다에 시선을 주었다. 어린 마음에도 저러다가 행여 또 눈물을 흘리면 어쩌나 싶었다. 엄마가 끝없이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아버지이지만 내겐 어렴풋한 기억도 없다. 오로지 어린 4남매를 키우며 버거운 삶을 이어가던 고통스러운 엄마의 아픔과 육신만 생생히 기억날 따름이다.
나는 엄마의 마음과 달리 아버지의 빈자리가 그렇게 간절하지 않았다.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고, 느낌도 없는 아버지를 향한 보고픈 마음도, 티끌만 한 그리움도 없었다. 일찍 떠나 아버지 없는 서러움만 남겨 주었다. 엄마가 곁에 있어 마냥 즐거웠고, 엄마의 치마저고리만 잡고 졸졸 따라다니면 행복했다.
팍팍한 삶에 지쳐 다 털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단 며칠이라도 아주 먼 곳으로 유배되어 현실을 잊고 싶기도 하다. 인생도 햇살에 반사되어 은빛으로 반짝이는 저 바다처럼 늘 푸른 청춘이고, 싶다. 하지만 세월은 붙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생전에 엄마는 아버지를 꼭 만나, 못다 한 인연을 저승에서 다하고 싶어 했다. 이승을 떠나는 날, 장롱 깊이 간직했던 결혼 때 받은 사성(四星)을 유언에 따라 가슴에 꼭 안겨드렸다.
사람의 운명은 아무도 모르는 일, 지금 생각해보니 나를 태어나게 해준 아버지를 원망할 일은 아닌 듯싶다. 젊은 나이에 아내와 어린 사 남매를 두고 떠나는 가장인 아버지인들 어찌 편히 눈을 감았겠는가. 지금쯤 엄마가 아버지를 만나 이승에서 못다 한 남편의 사랑 속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청보리가 봄바람에 일렁이던 오월 어느 날이라고 했다. 대문 밖에 있는 보리밭 둑에서 아버지는 채 돌이 지나지도 않는 나를 안아 어르고 있었단다. 그 시절 모든, 아버지들은 자식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고 살던 시절이었다. 아기의 까르르 웃는 소리가 온 보리밭 이랑으로 퍼져나가더라고 했다.
“너그 아부지는 셋째인 너를 유난히 예뻐했제.”
그 옛날 엄마의 세월을 훌쩍 지난 나이건만 나에게 주어진 이별은 지금까지도 가혹하고 절절한 아픔이 되고 있다. 젊었던 엄마는 어린 사 남매를 끌어안고 긴긴 세월 어떻게 살아내셨을까.
하루종일 이글거리던 태양이 서쪽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한때 아버지를 원망했던 마음을 바닷속으로 가라앉힌다. 아늑히 번져가는 노을이 슬프도록 아름답다. 한평생 아버지를 그리워했던 엄마처럼, 나를 두고 먼저 떠나 그리움이 된 그가 수평선 바다를 밟고 내게로 달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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