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협곡열차(이하 V-train)는 영동선 분천~철암을 왕복하는 관광 열차다. 기차는 봉화부터 태백까지 차가 들어가기도 만만치 않은 오지를 달린다. 백두대간의 정기를 받은 산과 굽이치는 낙동강이 차창을 액자처럼 가득 메운다. 멋진 협곡을 따라 작은 스위스도 느낄 수 있는 V-Train을 타고 떠나보자.
봉화역
코레일에서는 분천~철암 구간을 V-train의 공식 운행 노선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매일 첫차는 영주역에서 출발한다. 이후 봉화~춘양을 거쳐 약 1시간을 달린 끝에 본격 협곡 구간에 접어든다. 우리 가족은 봉화에서 하루를 머물며 여행을 하고, 다음날 가장 이른 편으로 협곡 여행을 시작했다. 봉화역은 특이하고 이런저런 사연을 가진 V-train의 다른 정차역에 비해선 지극히 평범했지만, 시골 역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여행의 설렘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건널목 앞 짧은 덩굴 터널은 좋은 사진 포인트였고, 그 주변으로 아담하게 꾸며진 화단이 보기 좋았다. 높이 솟은 몇 송이의 해바라기와 소박한 장독대는 풍경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 주었다.
열차는 앞선 영주역에서 출발했음에도 거의 모든 좌석은 비어 있었다. 열차의 끝에 서서 선로를 볼 수 있는 1호 차로 예약을 했는데, 이 칸에는 우리 가족 외에는 아무도 타지 않았다. 그래서 분천역으로 가는 동안에는 전세를 낸 것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차내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객차는 천장을 제외하면 사방의 유리가 뚫려있어 어느 자리에서든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일반 열차와는 다르게 창문이 열려 선선하고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가는 재미가 있다. 겨울에는 난로가 가동되어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V-train 객실 모습
열차 뒤 풍경도 통유리 너머로 볼 수 있다.
평범한 시골을 달린 열차는 어느덧 더 깊은 지역으로 들어갔다. 점점 도로를 찾아보기 힘들고, 민가도 몇 채 보이지 않는 푸른 산골로 접어들었다.
분천역
V-train의 기점이자 종점이 되는 역이다. 조그마한 시골 역인 분천역은 2013년에 스위스 체르마트 역과 자매결연하며 새롭게 몸단장을 했다. 당시 한국과 스위스의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양 국가의 대표 기차역으로 선정해 결연을 체결했다. 그리고 역도 스위스풍으로 꾸며졌는데, 역사는 전통 목조 가옥 형태이며 역명판과 더불어 스위스 기차역의 상징이자 철도청 공식 시계인 몬데인 시계가 걸렸다. 스위스에 한 번이라도 다녀온 사람이라면 꽤 반가울 풍경이다. 높은 설산과 첨예하게 솟은 마터호른이 있는 체르마트와는 조금 다른 풍경이지만, 첩첩산중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분천역은 주변 자연과 잘 어울리면서 이국적인 풍경을 뽐낸다. 역 앞에는 크리스마스의 상징 루돌프와 산타클로스 등 다양한 조형물로 산타 마을이 꾸며져 있는데, 매년 겨울에는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양원역
분천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협곡을 가로지르는 철길을 따라 속도를 늦춰서 달린다. 열차는 비동역을 지나 양원역에 닿는다. 분천역보다 더 오지마을에 있는 양원역은 대한민국에 전무후무한 역사를 가진 아주 특이한 역이다. 이 지역은 험한 산세로 도로로 이동하는 게 너무 힘들어 주민들에게는 인근으로 가는 것조차 버거운 일이었다. 마을의 한 줄기 희망인 기차가 지나다녔으나, 정작 마을 앞에는 서지 않아 약 3km 떨어진 승부역에서 타고 내리며 험한 산길을 오르내려야 했다. 짐을 들고 귀가하는 날에는 창밖으로 미리 짐을 던져놓고 내려올 정도로 위험과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마을 사람들은 정부에 직접 사연을 써 올려 고충을 토로했고, 정부에서 작게 승강장을 설치하며 어려움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이후 열차 이용에 필요한 것들은 모두 주민들이 해결해야 했는데, 가장 필요한 게 열차를 기다릴 역사였다. 주민들은 뜻을 모아 목재 등 건설에 필요한 재료를 공수해 작은 역 하나를 지었다. 그렇게 국내 최초의 민자 역사이자 오로지 주민들의 힘으로 세워진 역이 탄생했다.
양원역. 역 시설은 길쭉한 벤치가 전부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성화봉송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이후 이용객이 너무 적어 열차 운행을 중단한다는 당국의 의논이 있었지만,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다행히 기차역으로서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양원역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V-train이 들어오며 완성되었다. 이 관광 열차는 별 볼 일 없는 작은 오지마을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양원역은 기차를 타고 비경을 감상하며 트레킹을 하려는 관광객들의 통로가 되어주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열차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작은 가판대를 열고 손수 만든 간식과 농산물, 특산물을 판매하며 관광객들과 교류하고 있다. 겉보기엔 그저 낡고 허름한 역이지만 이런 사연은 애틋함을 들게 한다.
승부역
시원한 계곡을 따라 달리면 승부역에 도착한다. 기차에서 내리면 산으로 둘러싸인 풍경이 청량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굽이진 철길을 보면 금방이라도 산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풍경이다. 그 위로 내비치는 파란 하늘은 산과 조화를 이뤄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이런 승부역의 별칭은 하늘도 세 평, 땅도 세 평. 1960년대 초대 역장이었던 김찬빈 씨가 승부역에서 풍경을 바라보며 화단에 이 글귀를 새겼다고 한다. 역에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반긴다. 다소 뜬금없지만, 분천역처럼 동화 속 세상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덕분에 승부역을 찾는 사람들은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고 간다.
철암역
승부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마지막 역인 철암역에 도착한다. 태백의 끝자락에 있는 철암역 또한 독특한 풍경을 가지고 있다. 과거 석탄 산업이 발달했던 지역답게 역 안에 선탄장을 비롯해 관련 시설이 늘어선 것을 볼 수 있다. 철암역을 나오면 바로 철암 탄광역사촌을 만나게 된다. 이 일대는 석탄 산업이 발달하면서 호황을 누렸다.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얘기가 있을 만큼 남녀노소며 사람 동물 할 것 없이 웃음꽃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석탄 산업이 점차 몰락하며 지역도 함께 쇠락했다. 지금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건물마다 서린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철암 탄광역사촌은 이런 옛 건물들을 활용해 당시의 모습을 전시하고 있고, 예술가들도 저마다 형태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다양한 형태로 재현한 전시를 보고 있으면 잘 나갔던 철암의 옛 풍경이 저절로 그려진다.
철암 탄광역사촌 전망대에서 본 풍경
철암 탄광역사촌 풍경
V-train 정보
노선 : (영주~봉화~춘양)~분천~비동~양원~승부~철암
요금 : 분천~철암 8,400원(영주~철암 11,700원)
예약 : 코레일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