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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가대가 정말 적은 숫자였지만 참으로 은혜로운 목소리와 내용으로 해주셔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함께한 모두에게도 동일한 은혜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데 오늘도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16절 17절, 18절 이렇게 길지 않은데 16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경을 쫓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여기에는 권면하고 명령하는 말씀이 하나 있죠? 무엇인가요?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영어로 하면 워크 바이 스트리트 이렇게 돼 있습니다. 이것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서 바울이 주는 권면의 말씀이었다면, 지금 오늘날 예수를 믿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특별히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전하고 기술이 발전하고 스마트폰의 영향이 만연한 시대에 꼭 필요한 말씀이 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이 말씀을 잘 듣고 잘 이해하고 이 말씀에 따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아이들도 있지만 아이들 안에도 이미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가서 그 성령을 따라 행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오늘 주어진 이 말씀에 따라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왜 그의 자녀들을 향해서 성령을 따라 행하라. 말씀을 지켜라고 말씀을 하실 수도 있고, 너희가 잘 배우고 배운 대로 행하라고 말씀하셨는데 특별히 성령을 따라 행하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을 거예요.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거는 너무 당연한 대답이지만 또 그리스도인들이 아주 쉽게 쉽게 잊고 지나쳐버리는 내용이기도 해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성령을 따라 행해야 된다.
그리스도인이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믿고 예수를 따르는 사람만이 아니고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3절 후반부에 보면 뭐라고 하냐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고 이렇게 말할 정도로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 하고 성령의 관계가 그렇게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요. 어느 정도냐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은 즉 그리스도인은 누구든지 그 속에 성령을 갖고 있다고 말할 정도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성령이죠. 그리고 성령에 대해서 우리가 잘 알아야 되는데 많이 배우지만 쉽게 얘기하자면 성경은 우리가 따를 하나님,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지 우리가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가 아니다. 우리의 종이 아니다 하는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을 분명히 우리를 위해서 주셨지만 우리가 우리의 이익을 목적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도구 정도로만 생각하는데 문제가 있다.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따라야 할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말씀을 마음에 잘 받을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할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죄와 사망에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자유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믿으세요? 런던의 바비칸이라는 곳이 있죠. 여기에 보면 알더스케이트 플레임이라고 있습니다. 영국 교회에 부흥을 영국 사회에 번영을 이끈 유한 웨슬리 목사님이 기념해서 그분이 특별히 경험한 날이 있거든요. 그 날에 적은 일기 내용을 이렇게 동판에다가 불꽃 모양의 동판에다가 이렇게 담아놓은 것이에요.
여기 내용은 1738년 1738년 꽤 오래전이죠. 5월 24일에 요한 웨슬리 목사님이 아침에 읽고 저녁에 점심에 만나고 저녁에 들은 그 말씀들을 통해서 어떻게 하루에 변화가 생겼는지를 이렇게 적고 있어요. 그 부분에 끝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맨 끝부분에 보면 저녁에 저는 마지못해 엘더스게이트가에 있는 한 모임에 갔는데 그곳에서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읽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역사하시는 변화에 대해서 설명하는 동안 저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 그리스도만을 믿는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내 죄 심지어 나의 죄를 다 가져가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해 주셨다는 확신이 내게 주어졌습니다고 이렇게 끝에 쓰고 있어요. 이게 너무나 특별한 일기이고 특별한 날이기 때문에 영국에서 런던 시티 웨스트민스터에서 이 동판을 이렇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아주 큰 동판인데 보통 이 날을 웨슬리의 회심의 날이라고 불러요. 회심 컨버전 회심의 날이라고 부르는데 만약에 회심이라는 말이 뜻하는 것이 회개하고 믿고 주께 돌아가는 것이다라는 뜻이든 회신보다는 이 써 있는 내용에 따라 확신의 날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좋겠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웨슬리가 이날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그의 죄를 가져가셨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다. 그것이 강렬한 확신으로 자기에게 들어온 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자유 이 해방은 로마서 8장 1절 2절에 잘 기록되어 있죠. 그런데 웨슬리가 요한 웨슬리 목사님이 35세가 될 때까지는 그의 삶과 그렇게 가깝지 않은 그의 삶에 영향력을 그렇게 미치지 않는 좀 먼 말씀이었어요.
그러나 이날 특별한 말씀들을 통해서 이제는 그의 마음을 그 짧은 순간이라도 뜨겁게 할 수 있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고 그리고 그의 남은 인생을 우리 후대가 알고 있는 대대로 그리스도를 위해서 온전하게 다 바치게 할 정도로 확실한 말씀이 된 것이에요. 그러니까 성경에 문자로 바뀌어 있던 말씀이 그의 삶에 살아있는 말씀으로 확 다가와서 그의 삶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리고 남은 인생을 끌고 갔는데 이것은 우리가 회심이이라고 부르든 확신이라고 부르든 모든 성도가 사실 경험해야 할 중요한 신앙의 요소가 되어 왜냐하면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 집안에서 엄마 아빠를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이거는 굉장히 종교적으로만 남을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는데 종교적으로 신앙을 생활하잖아요. 아 아무 의미가 없을 수가 있어요. 그냥 짐만 되고 부담이 되면 언젠가는 떠날 것처럼 여겨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꼭 목사만 아니라 선교사만 아니라 우리 모두도 교회 모든 성도들도 지금 외설 목사님이 말하고 있는 이 특별한 경험 말씀으로 성령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특별한 경험이 꼭 있어야 됩니다. 그거는 다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한 것만 아니라 우리 자신들,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하는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 그렇다.
여러분이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이하은 많은 액티버티들이 있죠. 일들이 있죠. 그런 데 있는 그 마음에 10분의 1도 없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너무너무 많이 있는데 오늘날 우리가 이 요한 웨슬리 목사님의 눈으로 볼 때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일 수 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성령으로 부르키는 새로운 불길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런 마음이 심령이 다 살아나기를 하나님 앞에서 살아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요한 웨슬리 목사님처럼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났어요.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그다음에 문제가 됩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사람이 어떤 법을 지킨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사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의롭게 되는 것이지 아니죠. 한국인이든 영국인이든 유대인이든 다 지켜야 할 법이 있어요.
그리고 당연히 지킬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 법을 지키지 않으면 오히려 어떻게 돼요? 벌을 받아요 벌금을 내거나 벌을 받는 겁니다. 혹은 감옥에 가거나 그런데 그런 법들을 지킨다고 해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거는 아니다. 이거는 복음이 확실하게 해준 겁니다. 유대인에게는 절기와 관련된 것, 음식과 관련된 것 또 할례와 관련된 법들이 있었어요. 이거는 유대인들이라면 다 지켜야 하는 법들입니다. 특별히 할례는 모든 유대인 남자라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생후 8일 후에 받아야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 모든 유대인들을 가리켜 성경은 악인이 있고 선인이 있고 죄인이 있고 의인이 있다 이렇게 말을 해요. 이게 무슨 뜻일까요? 유대인일지라도 율법을 지킨다고 해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할례를 받는다고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 되죠. 이것은 구약 성경에도 이미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뜻이지만 복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가장 확실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세요.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있는 말씀인데 이 말씀에 보면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반복해서 두 번이나 한 구절에 두 번이나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믿고 따르는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 말씀이 전하는 대로 우리 율법의 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방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유대인에게도 적용되는 하나님의 뜻 성경의 진리예요.
세상에 법을 행해서 의롭게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참석자 1 14:13
아까 말한 영국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유럽 독일 사람이든 자기들에게 주어진 그 법을 지킨다고 의로운 사람 없게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복음에서 중요하게 말하는 것은 할례나 무할례 어떤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라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도 그냥 아무 믿음이 아니고 사람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다.
그냥 죽은 믿음이 아니고 머릿속에 있는 믿음이 아니고 우리 삶에 우리의 행실에 살아서 역사하게 하는 특별히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다라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 되죠.
그래서 성령을 따라 행하라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리스도인이 얻은 자유에는 두 측면이 있어요.
이미 여러 번 전한 말씀인데 이거는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반복해서 해도 돼야 할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자유에는 두 측면이 있는데 이거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먼저 이해하고 세상 모두에도 적용해 볼 수 있는 자유예요.
한편으로는 무엇이 있습니까?
참석자 1 15:37
무엇인가로부터 해방된 벗어난 자유 그리고 다른 편에는 무엇인가에 속한 자유 그러니까 사람이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는 이 세상에 없다.
우리가 우주 밖으로 가더라도 땅에서는 벗어났지만 우주에 속하는 것이 그러니까 우리가 자유를 말할 때 벗어나는 곳과 다시 들어가는 곳이 있다.
이것을 잘 알아야 돼요. 그래서 사람들 중에는 가난에서는 벗어날 수 있어요.
돈을 많이 벌어서 가난에서는 벗어날 수 있는데 그 상태에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의 돈에 매일 수가 있다.
거기에 속할 수 있다. 하나님 말고 또 질병에서 벗어나서 몸이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 것처럼 다 건강한 몸을 갖고 있는데 그 건강한 몸은 또 완전히 자유 상태가 있는 게 아니고 무엇인가에 속할 수 있는데 방탕한 삶에도 속할 수 있다.
그렇죠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사람이 율법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그 상태에 가만히 있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나 아니면 자기 의 빠질 수 있는 것입니다.
참석자 1 17:06
그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 득 측면인데, 복음이 말하는 자유라는 것은 우리가 잘 알죠.
벗어났어요. 그리고 다시 속했습니다. 무엇으로 벗어났죠?
죄와 사망에서 벗어났어요 그것과 관련된 모든 어두운 세계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생명의 하나님께 섭축한 거예요.
하나님을 위해서 의를 위해서 자유한 것입니다. 이게 우리가 가진 자유의 두 측면입니다.
첫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으로 자신의 삶으로 우리를 위해서 이미 다 이루어 주신 자유예요.
두 번째는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이루실 자유라 하는 거죠.
마치 에덴 동산에 완전한 아담과 하와 하나님께서 올려놓으셨죠.
그때 사람의 상태 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셔서 가나안 땅에 드셨을 때, 사 또 바벨론에서 떨어져 나온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살 때 해방되었지만 가야 할 길이 있는 방향이 있는 그냥 중간에 가만히 서 일 수 없는 그런 상태예요.
참석자 1 18:44
그런 때에 우리가 따라갈 수 있는 여러 가지 원칙이 있지만 오늘 말씀 말한 게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뭐라고 그래요?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말씀하시는 이 육체 혹은 로마서에서는 육신이라고 번역하고 영어로는 보디가 아니가 플래시입니다.
이거는 우리가 함께 사는 이 몸을 가리키는 거 아니라고 했죠.
이것은 성령과 같이 사람을 움직이는 사람보다 더 근원적으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으로서 그런 뜻으로서 육신이요 육체예요.
성경적으로 보면 사람을 영과 혼과 육으로 몸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의 눈은 몸과 그냥 영 이 두 개로 보기도 하지만 저는 영과 혼과 허는 정신으로 그리고 몸으로 이렇게 봐요.
그게 우리 사람이에요. 그래서 이것이 따로 딱 뗄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는 논리적으로 구별해서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이 사용하는 이 손과 입 몸 그리고 표정 제 표정이 좀 심각한가요?
참석자 1 20:18
지금도 네 아니면 환하게 웃거나 웃고 싶은데 잘 웃을 수가 없어요.
이런 표정들 내와 내 몸이 잘 되어 있어서 움직이면 좋지만 또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아무튼 요점은 제가 손을 움직이고 말을 하는 거는 그냥 되는 게 아니죠.
뇌의 명령을 받아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습관적으로 하는 게 아니고 하는 부분도 있지만 뇌 뇌에 뇌신경 소위 정신이라고 하는 것이 명령을 따라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근데 그래서 만약에 제 뇌에 어떤 사람의 뇌에 문제가 생기면 그 부분과 관련된 몸의 신체에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렇게 연결되어 있어요. 이거는 과학이나 의학에서도 다 알고 있고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내용이죠.
그런데 성경은 이거보다 조금 더 나아가지 그래서 영을 말합니다.
스피릿을 말해요. 영을 말해요. 왜 영이 필요할까요?
왜 우리가 영에 대해서 말할 필요 할까요?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영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 영이 필요하냐는 거죠.
참석자 1 21:47
정신이라고 하는 것 이 뇌에서 하는 활동이라는 것이 다 같은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몸짓 손짓, 발짓 이것이 사람마다 다 다른 것이 뇌에 영향을 정신에 영향을 받듯이 정신이라고 사람이 다 똑같은 게 아닙니다. 이 정신에서 이루어지는 생각 느낌 감정 명령 의지 이 모든 것도 다 달라요.
왜 다를까요? 잘 모르지만 그렇게 다음을 일으키는 장소가 있으니 우리는 그것을 영의 자리 라고 말을 할 수가 있고, 그 영조차도 우리 각 사람의 영적인 존재인데 그 영조차도 그냥 홀로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힘의 영향을 받는데 그 힘 중에 하나는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성령 더 스프릿 아니면 더 홀리 스피릿 그리스도의 성령이고 다른 하나는 플래시 육신 육체라 하는 것이에요.
한번 17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17절을 읽어볼까요? 시작
육체의 소원 성령을 거스르고 성경은 육체를 걸었으리라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함이니라
여기서 육체의 소욕이라고 하는 것은 아까 말한 그 근본적인 힘이라는 뜻으로서 육체가 사람을 통해서 이루려고 하는 것들을 가리켜서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육체의 소요 영어로 하면 디자이어 플래시 아니면 러스트라고까지도 하는데 육체가 바라는 게 있어요. 그 육체는 여기서 말하는 육체는 단순히 배고파서 목말라서 아파서 생겨나는 그런 육체적인 피로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여기서 말하는 육체라는 것은 성령에 거스르는 욕구,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욕구, 세상적인 욕구 그거를 가리키는 겁니다.
성령도 사람을 통해서 행하기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도 여러분을 통해서 행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성령의 소욕이죠. 그러므로 사람과 사람은 성령을 쫓을 수도 있지만 또한 거기서 말하는 육체를 쫓을 수가 있는 겁니다.
성령과 육체는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두 가지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따라 행할 수 있고 육체를 따라 행할 수 있는데 오늘 이어진 말씀에 보면 그 결과도 있어요. 그거는 다음 주에 볼 것, 다음 주 시간들을 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오늘 정리를 하면서 말씀을 전하고 싶은 것은 이런 말씀은 그 속에 성령이 없는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을 향해서 주는 말씀이 아니고 우리와 같이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이에요. 성령을 가진 사람에게도 육체가 있다. 육체의 힘이 있고 육체의 소욕이 있다. 이것을 우리가 잘 기억을 해야 됩니다. 육체로부터 성경이 말하는 육체로부터의 자유하려면 이 몸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때에 가능할 겁니다.
세상을 떠날 때 가능할 때 세상에 있을 때는 지금 말씀하는 성령과 육체가 우리 안에서 큰 두 가지 힘으로 함께 있어요. 그러므로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육체를 따라갈 수 있기 때문에 육체와 성령이 내 안에서 싸울 때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정말로 화가 날 때 내 감정을 통제할 수 없을 때 내가 육체를 따라 화를 내서 상대방을 무너뜨릴 수가 있고, 그때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화를 참고 기다리고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를 살리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 됩니다. 끝으로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할 이유, 끝으로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말씀을 정말로 행할 수 있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13절을 볼까요? 여기도 귀한 말씀이 있는데 오늘 본문보다 앞에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다 알고 계시는 말씀 우리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서로 사랑하라,
서로 종 노릇하라 서로 섬기라. 자유를 육신의 기회로 삼지 말라 이런 말씀이잖아요. 이 말씀 중에 여러분이 그냥 지나갈 수도 있지만 자세히 생각하면 굉장히 어려운 말씀이라는 거 알아요.
우리 중에 이 말씀대로 정말로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요? 이렇게 우리가 물을 수 있어요. 나는 이 말씀대로 정말로 사랑하고 사랑으로 서로에게 종로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인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원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할 수 있으며 지키지 않아도 막 그렇게 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서로는 적어도 세상 모든 사람은 아니어도 부르심을 받고 모인 사람들, 우리 모두는 해당이 돼요. 우리 모두 안에서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도 않고 오히려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 사람까지도 이렇게 말씀대로 살아가고 섬길 수 있는가 우리가 물을 수 있는 것이 정말로 쉽지 않습니다. 힘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영을 다해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고 유일한 명령으로 주셨고 또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했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것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기 위해서 주신 말씀이 바로 성령을 따라 행하라 하는 말씀인 것이 다시 반복하면 너희는 성령을 따라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육체의 욕심 그것이 성격이 무엇인지 이 말씀 안에서 생각을 해볼 수가 있어요. 앞에 읽은 13절 말씀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여기서 말하는 육체의 욕심은 또 디자이어브드 플래시는 뭐예요? 그것이 무엇이든지 서로 사랑하라 서로 섬기라. 사랑으로 서로 봉사하라. 종 노릇하라. 이 말씀을 따르는 것을 어렵게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말씀 앞에서 우리가 좀 더 자세히 생각을 해보면 이런 깨달음을 하나 얻을 수가 있어요.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주님께서 주신 계명이고, 주님께서 그를 믿는 자들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한 그렇게 중요한 내용인데 그것을 우리가 지키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인간으로서 연약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 아니라 철저히 나를 위해 역사하는 육체의 욕구를 따르기 때문이라고 우리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기 바랍니다.
반대로 얘기하면 우리가 육체의 욕구를 욕심을 내려놓고 성령을 정말 따른다면 그렇게 힘들게 여겨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따를 수 있다는 것이에요.
어떤 삶을 원하세요? 여러분은 평생 동안 한 말씀 지키기도 힘들어하는 삶을 원하세요? 아니면 모든 어려운 것들을 다 이겨내게 하시는 길을 따르고 싶으세요? 두 번째라면 성령을 따라 행하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에서 앞에서 각자 잘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관계만 아니고 부모와의 관계, 부 간의 관계, 또 자녀와의 관계, 형제 간의 관계,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 육체의 욕심을 따르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서 힘들어진다 어려워진다. 그런 생각을 해서 저와 여러분이 과연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 앞으로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잘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산다고 하는 그 인생에서 우리의 중심을 나의 혼과 육과 영을 이 움직이는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오늘 성경이 말하는 대로 육체의 욕구인가 욕심인가 아니면 성령인가 교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일하게 생각할 수 있어요. 각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듯이 교회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볼 수 있어요.
우리 교회는 육체의 소욕이 가득하고 그 안에서 갈등하는 교회인가 아니면 성령의 소욕을 따라 나아가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교회인가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겁니다. 오늘 말씀에 따라서 우리 중에는 아무도 육체의 요구를 쫓으면 있어도 우리가 노 할 수 있고 따르지 않고 모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사랑과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네 성령을 따른다. 굉장히 차원이 높은 말과 같잖아요. 정말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하고 연결되기 때문에 그런데 이것은 기독교에만 있는 가능한 아주 귀한 것이고 우리 매일의 삶의 실질적인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반복하자면 우리 안에는 성령도 있고 육체도 있어요.
오늘 본문이 말하는 대로 두 가지 근원적인 힘으로 성령도 있고 육체가 있습니다. 그리고 육체의 소욕이 있듯이 성령의 소욕도 있다. 둘 다 우리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하기 원하는 영적인 파워이다입니다.
우리가 할 것은 성령을 따라 가는 것이다. 그러면 말씀하신 대로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할 것이다. 원하세요. 아멘 하시고 우리가 따라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으로 주셨잖아요. 그래서 마음에 잘 생기고 때마다 기억을 해서 육체라는 게 있구나 육체가 원하는 게 있구나 성령이 계시구나 성령이 원하시는 것도 있구나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한 사람인데 나는 누구를 따라갈까 어디로 가야 할까 잘 생각하고 그 안에서 인도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다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