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댐을 허물어야
2016년 9월 4일(일) 09시 46분에 상봉역 경춘선 승강장 2-3에서 조단스 서류바 씨모우 위찌추 까토나 다섯명이 만났습니다. 오늘의 행선지는 경기도 마석역 근처에 있는 송라산( 497.6m)으로 향합니다. 계속되던 폭염경보가 해제가 되었다고 하지만 30℃까지 낮 기온이 오른답니다. 마석역 2번 출구로 나와서 좌측으로 직진하다가 심석 중고등학교 앞을 통과합니다. 지나는 행인에게 물어보아도 송라산 이름도 모른답니다. 마석 시가지를 중심으로 둘러 보아도 많은 산들이 애워싸고 있습니다. 천마산을 바라보며 가다가 오른쪽 방향에 있는 산으로 오르기로 합니다. 분명히 송라산이라는 느낌만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하늘은 청명하니 바람 한점 불지 않는 날씨로 햇살은 벌써부터 온 몸을 땀으로 적시고 있습니다. 신도브래뉴를 지나서 산쪽으로 들어가니 화도초등학교 뒷편으로 올라섭니다. 이번에는 지난번 지지난번처럼 헤매지 말고 제대로 등산로로 가자는 튕기는 소리들이 나옵니다. 하지만 나의 방향 감각에 의지하여 길이 안 보이는 풀숲으로 들어섭니다. 저 쪽 능선만 오르면 반드시 등산로가 있다고 장담하며 오릅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 북아메리카를 발견할 때 그 곳의 위치나 정보를 알고 출발한 것이냐고 묻습니다. 한번이라도 가보지도 듣도 보도 못한 곳입니다. 방향 하나만 잡고 신념 하나로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게 된 것이라고 말입니다. 우리 노객들이 즐겨 찾아서 가는 산도 둘레길도 너도 나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그냥 동서남북을 눈여겨 보며 오르고 오르면 정상은 바로 눈 앞에 전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가다보면 도중에 가시덩쿨과 쓰러진 잡목들에 할퀴고 찔리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히말리야산맥도 킬리만자로 산 줄기도 태평양 바다도 아닌 자그마한 500m도 아니되는 동네 뒷산에 불과합니다. 한 두시간 동안이나 아닌 길을 헤매며 없는 길을 오르는 그 순간은 살아 숨쉬고 있다는 기쁨입니다. 이런 곳에 올 수 없고 오를 수 없는 그 날이 곧 노객들 앞에 보이고 있습니다. 그 날이 오기 전에 투덜대고 불평 말고 오를 수 있으매, 헤매고 있으매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매리카 신대륙을 정복하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생각을 바꾸심도 좋을 것입니다. 땀은 온 몸을 적시고 앵앵 에 ~앵 귓전을 스치는 모기 소리가 신경을 예민스레 건드리기도 합니다. 선그라스에는 습기가 서려서 앞을 가리우며 날파리 공습으로 벗을 수가 없습니다. 솔잎으로 등산티를 문지르며 솔잎 향으로 날파리에 방패막을 만들어 봅니다. 한시간을 넘게 헤매여도 등산로는 보이지를 않고 시간은 열두시를 넘고 있습니다. 약간 뒤쳐진 조단스 서류바의 갈증과 혈당 저하를 염려하며 바위에 자리를 잡습니다. 위짜추는 웃옷을 훌러덩 벗어 제끼며 탄탄한(?) 근육질을 자랑하지만 날파리들의 조롱의 대상이며 사냥감일 뿐입니다. 서류바의 사모께서 손수 만들어 준 쑥떡과 씨모우 싸모의 맬론, 위짜추의 앙꼬 쑥떡과 영양떡, 조단스의 초코파이와 요구르트 그리고 각자 준비한 어름물로 잠시 잠깐이나마 노객들의 심신을 달래줍니다. 추스린 팔다리와 심장의 펌프질하는 고동소리가 아직은 쓸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상에는 태극기가 나무 가지에 걸쳐 있으며 누군가의 붓글씨로 송라산(497.6m) 정상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시원스레 펼쳐지고 있는 주위의 경관은 한 마디로 탁트임 그 자체입니다. 발 아래로는 마석 시가지가 밟히며 서북 방향으로는 천마산 백운봉 축령산 철마산이 파노라마를 이루고 있습니다. 오후 1시 33분이 스마트폰에 뜨고 있습니다. 산행 중에는 한 사람의 객도 보지 못 한 우리 노객들만의 송라산입니다. 마음껏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며 심호흡으로 말초 혈관도 깨끗하게 닦아내는 상큼한 느낌입니다. 아쉬움은 몇 컷의 스마트폰 SHOT으로 달래며 하산의 발걸음을 옮깁니다. 14시 52분에 망우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흐시기와 또파파의시간을 조준하면서 가볍게 가속도를 더해 가면서 내려갑니다. 저 아래 마석역을 기준으로 등산로를 따라서 거침없는 발걸음은 어느새 화도 초교 교정이 시야에 잡힙니다. 여기서부터는 아스팔트 통행로입니다. 대로변에 도착하니 오전에 스쳐 지나간 송라산 들머리 입구입니다. 이곳으로 올랐으면 없는 길에서 헤매지는 않았으려니 생각하지만 산행의 묘미는 별로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없는 산길에서 헤매이는 순간이 없었다면 소나무 위를 오르 내리던 도마뱀도 어쩌면 만날수 있는 영광은 없었으리라 믿습니다. 에너지와 흘린 땀방울의 양(量)은 많았지만 예상치 않은 풍광의 묘미를 맛볼 수 있는 시간이었으므로 행복한 산행이기도 합니다. 고로해서 평탄한 등산로를 버리고 우리만의 산행길인 없는 길도 필요악(必要惡)의 선(善)이라고 하겠습니다. 망우역 대합실에서 또파파를 만나고 흐시기는 보이지를 않습니다. 둘만이 쌓여 있는 오해의 방파제를 시원하게 허물어야 할텐데 하는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출구를 빠져 나옵니다. 서로가 오늘 여기서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있습니다. 흐시기가 올 것이라고, 또파파가 참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각자에게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말입니다. 팔년여 동안 서로가 등을 돌리고 있었던 실타래를 이 기회에 풀었으면 하는 바람만이 있습니다. 1957년도에 만난 중학교 동창이며 1963년도 디비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청소년기의 죽마고우들 입니다.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겁없는 시절의 꿈을 먹고 살던 10대들의 학동(學童)들입니다. 더구나 디비고교의 밴드부에서 함께 음정 박자의 호흡을 맞추며 합주를 하던 친구입니다. 또파파는 CLARINET을 흐시기는 FLUTE으로 음악의 세계를 탐닉하기도 합니다. 관현악단에서는 둘 다 모두 없어서는 안될 존재들 입니다. 흐시기가 선그라스를 끼고 밖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피할 겨를도 이유도 없이 두 녀석이 서로의 손을 맞잡습니다. 일이분 정도의 순간이지만 또파파와 흐시기의 눈빛은 반가움 그 자체입니다.한 순간에 봇물이 터져 버리고 눈 녹듯이 모든 억측과 오해가 그냥 사라져 버리는 순간입니다. 옆에서 바라보는 노객들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고 홀가분합니다. 더 이상의 변명도 이유도 말도 필요가 없습니다. 다시 그 시절 그 때 그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까까머리에 책가방은 옆구리에 끼고 모자는 삐딱하게 눌러 쓴 디비 중고등학교 학생들입니다. 인간은 어머니 뱃속에서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 자신만의 세상을 상상하며 만들어 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갓난 아기들도 배가 고프면 엄마에게 울고 보채며 불만을 표출하곤 합니다. 커가면서 더욱 더 자기 뜻대로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큰 소리도 지르고 화를 내기도 합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도 의견 충돌로 싸우고 만나지도 않으며 기여코 웬수처럼 등을 돌리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몇십년을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형제 자매들도 철천지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부모 자식간의 의리도 천륜도 저버리는 최악의 인생 쓰레기들도 존재합니다. 지구상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인종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보잘것 없는 미생물까지도 자기 위주로 생존을 하고 있습니다.특히나 인간들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자신들만의 사상과 종교를 앞세우며 여타 인종과 국가들을 내전과 전쟁의 소용돌이로 편할 날이 없습니다. 이러할진대 백년지기 벗들이지만 자신만의 입장과 감정으로 상대방을 판단하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조그마한 앙금으로도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느새 커다란 댐의 크기만큼으로 단단히 굳어져 버립니다. 한컵의 물만으로도 깨끗이 씻어서 흘려 버릴 수 있는 마음의 앙금이었습니다. 네가 먼저 마음을 열고 잘못을 빌며 사과를 하기 전에는 나는 절대로 너를 친구로 생각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은 상대방 녀석도 나와 똑 같은 마음뿐입니다. 따지고 보면 별것도 아니고 웃어 넘길수 있는 오해일 수도 있습니다. 만나서 서로간의 속내를 한잔 술에 타서 마시며 털어버리면 그만인 것입니다. 하잘것 없는 얄량한 자존심 아닌 자아도취에 빠져 끝내 버티기도 합니다. 그 때는 굴착기를 동원하고 다이나마이트로 폭파를 시켜도 흔적은 깊숙이 남아 있기 마련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장벽은 휴전선의 철책보다 더 견고합니다. 소통이 없는 불통으로 달려 나가면 언젠가는 길과 다리는 사라지고 끊어지고 맙니다. 천애의 낭떠지와 까마득한 절벽만이 앞을 가로막고 있을 뿐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국가가 발전하고 세계의 안녕과 평화를 위하여서는 무조건 대화하고 손을 내밀어 맞잡아야만 합니다. 종교나 사상이 다르다고 하여도 상대방을 업신여기거나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동등한 인격체로 국가로 존중해야 합니다. 두 녀석이 손잡고 나누는 대화를 잠시 옆에서 지켜보는 우리와도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나눕니다. 모두가 죽마고우인 백년지기 친구들입니다. 고교 졸업 후에 53년만에 만나는 동기생도 있습니다. 어느 녀석은 서로의 이름도 생각나지 않으며 모습도 생소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통성명 후에는 바로 이름을 부르며 반가움의 이야기 꽃이 핍니다. 회식장소인 음식점에서 우리들의 고정 메뉴로 맑은 알콜 각 한병과 시원한 맥주를 돼지갈비와 함께 완샷합니다. 거듭대는 술잔에 권주가의 음정 박자는 멋대로 터져 나옵니다. 켜켜히 쌓여 있던 마음의 골짜기가 밀물처럼 쓸려나갑니다. 덩달아 기분 좋아진 노객들의 회식비은 또파파의 기부로 2차는 흐시기가 쾌척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백년지기 우정의 징표이기도 합니다. 너와 나는 다시 하나이며 뗄래야 뗄 수 없는 영원한 벗들입니다. 댐으로 막혀 있는 물은 반드시 썩게 되어 있습니다. 나만의 아집과 고정 관념으로 마음의 댐을 쌓지 말아야 합니다. 몇십년 함께한 노부부들이 말을 안해도 내 마음을 알겠지 하는 불통이 있습니다. 상대방인 아내의 마음은 썩을대로 썩어 버리고 맙니다. 예로부터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특히나 사내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라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말을 하지 말라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아직도 침묵은 금이라고 생각합니까. 이제는 침묵은 절대로 금이 아닙니다. 망상과 오해와 배타심의 그물일 뿐입니다. 이런 어리석음은 버려야 합니다. 지금은 손가락 하나로 모든 일을 처리하며 변화시키는 IT 시대이며 SMART 세상입니다. 마음의 문을 댐으로 가두워 두지 말아야 합니다. 가두워 둔 물은 썩을 것이며 썩힌 물은 아무도 마시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악취가 날 것이며 모든 잡균의 온상이 됩니다. 그러면 당신의 세상은 모든 사람 뿐 아니라 친구에게도 버림을 받게 될 것이며 세상에서 낙오자가 될 뿐입니다. 백년지기 벗들이여 ! 이 순간 이후로는 마음의 물줄기를 활짝 열어 제껴야 하겠습니다. 해서 썩힘이 없이 앙금이 없도록 시원스레 흘려 보내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2016년 9월 8일 새벽에 무 무 최 정 남
첫댓글 카토나는 문장럭도 너무좋구려! 그리고 하나에서열까지 구구절절 옳은말씀만~~ 우린마음에문을열고 상대방을 나와동등한 위치에서 같은인격체로 대할때만이 비로서 모든것이 순조롭게 인간이나 미물이나 국가간에도 화해와협력이 이루워 진다는 카토나의 좋은글은 삶에 귀감이 되겠네요. 까토나, 오늘하루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시길~~ . .흐시기와 또파파의 화해는 정말 좋아보였어? 이것이바로 죽마고우 동창이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합니다. 정말너무 좋은 모습올 보았습니다.
위짜추가 역시 없으면 백년지기의 글을 올릴 기분이 없을것 같네요 그리 잘 읽어주고 과분한 칭찬까지 하여간 우리는 영원한디비고교의 학동이요 백년지기라오 산을 오를수 있음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디비고교의 백년지기 행복걷기회 일원이고 그날함께 산행을 했다면 카토나의 성의있는 글에대한 답이라든가 최소한 자기(본인)가 느낀점 정도는 기록해 주는게 우리의 도리가 아니겠어? 오죽하면 카토나의 푸념아닌 푸념을 하겠어,우리회원각자는 명심해서 꼭 답글을 기재하는 성의를 가젔으면 좋겠네요. 여러분! 우리가 뭐 수필가나 작가가 아니잖아? 자기가느낀 점을 그냥올리면 되는거니까, 그게오히려 더 흥미가 있거든!~~2016년10월12일07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