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렘 드 쿠닝(1904—1997)
네덜란드 계 미국화가로 로테르탐에서 태어나서 1926년에 미국에 왔다. 이때만 해도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작품을 제작하였다.
도착 후에 아실 고르키를 스승으로 삼고 추상표현주의 운동에 참여 하였다. 칸딘스키와 피카소 말기의 화풍에 영향을 받았다. 그는 인물에 관심을 가진 유일한 추상표현주의 화가이다.
1948년에 발표한 흑백 회화에서 추상적인 형태와 격정적인 감정 표현을 담았다.(비평가들은 주로 격정적인 모습의 형상을 중시하였다.) 아비뇽의 처녀들을 닮은 인물상은 증오와 사랑을 동시에 표현하였다. (여인의 이중성을 표현하였다.) 1930년대의 연방예술프로젝트에 참가하여 뉴욕 세계 박람회의 벽화를 그렸다. 이때 그린 그의 그림은 행위적인 경향이 아주 강하였다. 1953년에는 장중한 느낌을 주는 여인상 연작을 그렸다. 이후로 액션 페인팅을 강조하는 추상표현주의에서 리더가 되었다.
드 쿠닝을 유명하게 한 여성 주제의 그림은 에로틱한 상징, 흡혈귀, 출산의 여신 등으로 표현하였다. 순수한 추상이기 보다는 형태, 공간, 색채가 화면에 함께 어우러지고 있다. 쿠닝은 추상적 형태라고 하더라도 유사성이 있어야 한다고 함으로 구상적이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쿠닝의 여인화는 화가가 사물의 재현에서 해방하여 그리더라도 구체적인 형상이 자연스럽게 발견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인체의 구체적인 형태를 수용하였으나 무한히 변이와 변화를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의 회화가 추상표현주의의 명성을 떨어트렸다는 비난도 받는다.
그는 일생 동안 굳이 추상표현주의를 고집한 것은 아니었지만 표현주의만은 버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