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예대학 출신 작가 작품>
두 마음
박두흥
언제부터라고 확실히 말할 수는 없으나, 내 속에는 두 마음이 둥지를 틀고 산다. 그것이 나이가 좀 들고부터는 주로 늙은 마음과 젊은 마음으로 나뉘어 걸핏하면 서로 옳다고 다투기를 일삼는다.
동갑내기들을 보면 나도 저만큼 늙었거니 하면서도 인정하기는 싫을 때가 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도 젊은이가 앉아 있는 자리는 일부러 멀찍이 떨어져서 선다. 그런 행동이 이미 늙었음을 드러내는 것인데도 아직은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양보받을 만큼 노인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다. 이런 것이 내 속에 들어앉은 젊은 마음이다. 한편으로는 젊은이들이 얼른 일어서서 자리를 양보해 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것은 늙은 마음이다.
그날도 모임이 있어서 약속 시간에 맞추려고 좀 일찍 나섰다. 시내 동성로 방향으로 가는 버스는 503번, 706번, 410번이다. 모두 경북대학교를 지나오므로 하교를 하거나 시내로 가는 학생들 때문에 빈자리가 없는 때가 많다. 역시나 오늘도 버스는 학생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그들은 두툼한 등가방을 메고 있어서 통로는 더 혼잡했다. 은근히 늙은 마음이 고개를 들고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배울 만큼 배웠다는 녀석들이……, 다리통들은 또 얼마나 굵은지, 나 같으면 얼른 일어서겠구만, 요즘 아이들은 도대체 예의라는 걸 몰라. 내가 눈길을 주면 아예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 숙이고 핸드폰을 보거나 자는 척하는 놈들뿐이잖아.”
그러면 젊은 마음은 참지 못하고 핀잔을 준다.
“어이구, 또 시작하신다. 두 정거장만 가면 몽땅 내릴 텐데, 그동안도 못 참는 거요. 그 아이들도 하루종일 공부하느라 얼마나 피곤했겠어요. 어른이면 어른답게 좀 처신하시지요.”
“아니, 내가 뭐랬다고 또 나서길 나서나. 노인을 이렇게 세워두는 법이 어디 있나? 공부는 예절 바른 청년이 되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럴 때는 노인 잘 찾으시네.”
젊은 마음은 늙은 마음을 향해 아직 두 다리에 힘이 짱짱한데 왜 그렇게 노인처럼 행동하느냐고 핀잔을 준다. 두 마음은 서로 생각하는 기준이 다르니 잠시도 다투지 않는 날이 없다.
집에 에어컨을 들이는 날이었다. 설치를 마친 기사가 사용법을 가르친다고 천천히 그리고 자세하게 설명한다.
“어르신, 버튼을 누르면, 켜지고 다시 누르면 꺼집니다. 온도를 더 시원하게 하고 싶으면 뚜껑을 열고 세모가 아래쪽을 향한 버튼을 누르면 온도가 내려갑니다. 올리고 싶으면 반대로 향한 것을 누르시면 됩니다.”
그러자 젊은 마음이 참지 못하고 투덜댄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너무 하는군. 내가 무슨 상노인인 줄 아는가? 괘씸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구만.”
그러면서 불퉁해져서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그까짓 것쯤이야 안 들어도 다 할 수 있는데 유별나게 노인 취급을 하는 것 때문에 기분이 좀 상한 것이다. 그 마음이 얼굴에 드러났던지 기사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 자기는 최선을 다했는데 몰라주니 서운했으리라. 그러자, 늙은 마음이 얼른 젊은 마음을 다독인다.
“허허, 왜 그렇게 열을 내시는가? 기사가 어른을 공경하는 것이 얼마나 예의 바르고 보기 좋은가. 내야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니 알아듣기가 좋구만. 성실하기는 또 어떻고. 요즘 참 보기 드문 사람일세그려. 좀 진정하게나.”
두 마음이 사소한 일로 다투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뭘 좀 배워보겠다고 여기저기 교육기관들을 기웃거리면, 늙은이는 이제 와서 뭘 배우려고 하느냐며 핀잔을 준다. 가방만 들고 다니지 머릿속에 남는 것이 뭐냐고. 다 소용없으니 그만두라고. 그러면 젊은이는 “허허, 그럴수록 배워야지. 놀면 뭐합니까?”하고 부추긴다. 늙은 마음은 사사건건 말리려 하고, 젊은 마음은 나서서 적극하라고 한다. 옷을 살 때는 한쪽이 점잖은 색이 어울린다고 하면, 다른 쪽은 충충해 보인다며 밝은색을 고르라 한다.
이렇게 두 마음이 날이면 날마다 티각태각 하니, 지켜보던 몸이 참다못해 지청구를 한다.
“여보게들, 그렇게 다투지만 말고 어떻게 하면 서로를 위해 사이좋게 지낼지 방안을 좀 생각해보게나. 도대체 내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 아무리 그렇게 떠들어대어도 내가 튼튼하게 받쳐주지 않으면 자네들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이야. 그러니 주제 좀 알라고.”
듣고 있던 늙은 마음과 젊은 마음은 몸이 하는 소리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찍소리도 못하고 입을 다문다.
체력은 국력이라 했고, 몸이 튼튼해야 생각도 마음도 건강하다고 했다. 몸이 좀 늙었다고 마음조차 늙어서 젊은이한테 비루한 모습 보이지 말고, 자기 주제도 파악하지 못해서 그저 젊었다고 큰소리만 치는 철없는 사람도 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은 걸음걸이도 힘차지 못하고 오래 앉았다 일어서면 머리가 핑 도는 게 옛날 같지 않다. 걷기 운동뿐만 아니라 웨이트 트레이닝이라도 해서 근력도 좀 키우고, 식사도 골고루 해서 영양 관리를 잘해야겠다. 하루 일과표를 작성해서 규칙적으로 생활한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수필문예》 제20집, 2021. 수필문예회)
-------------------
지은이 프로필
<에세이21> 등단
수필문예회, 대구수필문예회 회원.
수필문예대학 21기 수료
수필집 ‘어머니의 눈빛’
yondam315@hanmail.net
첫댓글 자신을 늙은 이와 젊은 이로 나뉘어 대화함이 재밋고 특이한 구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