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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5장 11-15절. 주님이 날 위해 죽으셨으니 우리도 주님을 위해 삽시다. 요약설교
11-13절. 바울은 앞의 10절에 말씀한 두려운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기억케 하면서, 3가지를 엄중히 권면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11절.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1. 바울 사도는 주님의 두려우심을 경험적으로 알았습니다.
즉 바울이 스데반을 죽이는 데 앞장섰는데, 그때는 예수님이 바울을 가만두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계속 기독교인들을 핍박하여 외국 성 다메섹까지 가서 기독교인들을 잡아 오려고 하자, 예수님이 도중에 나타나셔서 바울의 눈을 멀게 하시고 쓰러뜨리셨습니다.
그때 하늘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책망하시고, 바울이 <주여 누구십니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바울은 “이제 죽었구나, 지옥 가게 되었구나” 하고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바울을 용서하시고,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셨으나, 그 직전에 바울은 두려워 떨었을 것입니다.
만왕의 왕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핍박했다>고 하셨으니,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2. 그래서 바울은 과거 자기의 경험을 통해서 지금 고린도 교인들에게 <주의 두려우심으로 권면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즉 지금 바울은 자신을 거짓 사도요 도둑놈이라고 비방하는 고린도 교회의 대적자들에게 <주의 두려우심을 가지고 권면하노니 그러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해서 살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애굽에서 바로 왕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 모세를 대적했다가 나라가 쫄딱 망하게 되었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기름 부은 종 다윗을 죽이려고 했다가, 오히려 자기가 죽었고, 사울의 가정은 쫄딱 망했습니다.
여로보암 왕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말씀 잘 순종하여 훌륭한 나라를 만들라고 말씀했는데, 하나님 버리고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했다가, 아들 대에 쫄딱 망하고 말았습니다.
아합 왕도 하나님 버리고 바알 우상을 숭배하다가, 그 아들 대에 가서 부하인 예후에게 모두 몰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해서 형통한 사람이 없습니다.
나훔 1:2-3.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1. 바울 사도는 아무리 반대자들이 자신을 거짓 사도니 도둑놈이니 하고 비방할지라도, 자신은 하나님 앞에 알려진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 사도는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복음 전도자로 들어 쓰시고,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능력으로 함께 하셔서 병자들을 낫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수많은 사람을 예수 믿게 하고, 여러 교회들을 설립했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하나님께 알려진 주의 종이었습니다.
2. 정말 이렇게 위대한 주의 종이 거짓 사도요 도둑놈이라고 비방을 받았으니,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러나 바울 사도는 좋게 <권면한다>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주의 종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가 하나님 앞에 알려진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알려지고 인정받기를 원했습니다.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1.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진실을 인정받지 못하고 왜곡된 대접을 받으면, 얼마나 괴로운지 모릅니다.
진실을 몰라주면 참 억울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도 그렇습니다.
예수 믿으면 영생 복락 얻는다는 것과, 부활 천국이 있다는 것과,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복된 말씀이라는 것을 말해도 불신하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2. 그리고 귀신에게 제사하는 것은 저주를 자청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살아야 복을 받는다고 해도, 이런 진심 어린 말을 무시하면, 얼마나 속이 상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대체로 우리 지방 사람들은 전도해도 대적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4. 그래서 바울 사도는 하나님 앞에 자신이 알리어졌지만, 그래도 고린도 교인들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고 인정받기를 원했습니다.
한 교회에 살면서, 교인은 목사를 인정하지 않고, 목사도 교인들을 불신하면, 얼마나 불행한 교회 생활이겠습니까?
그런데 바울 사도는 자기가 개척한 고린도 교회로부터 거짓 사도요 헌금조차 횡령해 먹은 도둑놈이요, 설교도 잘못하고, 자기 고질병도 고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았으니,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5. 우리가 한 집에서도 부인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데, 남편은 예수님을 불신한다면, 얼마나 괴롭습니까?
이처럼 부인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말씀을 믿는데, 그 남편이 믿지 않는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남편이 자기 부인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말 부인의 말과 인격을 믿는 남편이라면, 부인이 믿는 예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남편이 부인의 말과 인격을 신뢰하지 않으면, 부인이 목숨처럼 믿는 예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겠습니까?
6.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복된 말씀이라고 믿고, 그 말씀을 가장 소중한 말씀으로 믿고 전하는데, 교인들이 얼마나 목사를 불신하고 무시하면, 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고개를 숙이고 딴전을 피우면서 듣지 않겠습니까?
과거 저희 교회에 설교 때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장로가 있었습니다.
그 분이 매번 목사를 쫓아내는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이 간섭하셔서 두 번이나 죽을 뻔했습니다.
한 번은 대형면허가 없는 그 사람이 교인들을 태우고 운전하다가 사람을 쳤습니다.
그래도 목사가 온 교인들을 동원해서 탄원서를 써내고, 우리 교회와 목사가 그 지역에서 영향력이 컸기 때문에, 경철서장에게 구조 요청을 해서 그 사람이 구속되지 않고 풀려났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이 목사를 괴롭히자 이번에는 하나님이 간섭하셔서 그 사람 스스로 운전해서 바닷속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도 모르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스스로 목사에게 자백하면서 회개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간섭하시고, 선한 목회자를 보호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7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인정해주신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도 자기를 양심적으로 인정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세계 최고의 사도로 존경을 받는 바울이 당시에 자기가 전도하고 설립한 고린도 교회로부터 이런 비참한 대우를 받으면서, 자기를 인정해주기를 사정하는 것을 볼 때,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르겠습니다.
12절.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1. 바울이 앞에서 <너희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란다>고 하니까, 고린도 교인들은 곧바로 <바울이 또 자기가 참 사도라고 자천하려고 하는구나>하고 비난할 것을 예상해서,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명을 하는 것입니다.
2. 바울은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 가운데서 올바른 신앙생활 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자의 마음이요,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즉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야단하는 것은 자식들이 부모에게 잘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식들이 올바로 커서 성공하라고 야단하는 것입니다.
정말 부모님들은 자식이 밤늦게까지 인터넷하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것을 보면, 복장이 터집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밤에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고 야단하는 것은 자식의 장래가 걱정되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목회자가 성도들에게 밤에 일찍 주무시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기도회에 나오시라고 하는 것은 성도들이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하여 복된 가정을 이루게 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을 받아주라고 권면하고 호소하는 것은 그래야 고린도 교인들이 올바른 믿음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특히 목회자가 교회 중직자들과 기관장들에게 새벽기도회에 나오시라고 권면하는 것은 그래야 교회가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올바른 교회가 되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직자나 기관장이 새벽기도를 하지 않고, 주일 예배만 참석한다면, 성령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마귀의 종노릇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기도하지 않는 중직자는 자기는 올바른 말을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자기가 마귀의 종노릇 하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1. 바울 사도는 자기를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로 말미암아 자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즉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이방인의 사도로 임명되고, 성공적으로 이방인 전도를 하고 있고, 고린도 교회를 설립한 위대한 사도임을 자랑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자기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예수 믿게 해주고 천국 가게 해주신 바울을 자랑해야 합니다.
이처럼 교인들이 목회자를 존경하고 자랑해야 목회자의 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받고, 복을 받는 것입니다.
2. 가정에서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부모님을 존경하는 자녀들은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성공적인 인생이 됩니다.
그러나 부모님을 무시하고 욕하고 대드는 자식들은 부모 말을 안 들을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는 선생님 말씀을 안 듣고 직장에서는 상사의 말을 안 듣기 때문에, 어디를 가도 실패하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3. 그래서 인생의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느냐 안 듣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신명기 30:19-20.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1. 마음에 있는 것으로 자랑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이란 누구를 가리킵니까?
네, 예루살렘 교회의 추천서를 자랑하면서 바울을 비방하는 고린도 교회의 율법주의 거짓 사도들을 가리킵니다.
이 율법주의자들은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추천서를 가지고 고린도 교회로 와서, 자신들이 참사도요 바울은 거짓 사도라고 비방하면서, 바울이 설립한 고린도 교회의 주도권을 빼앗아 가려고 했습니다.
2. 그러나 바울은 율법적인 외모 즉 할례와 예루살렘 교회의 추천서를 자랑하지 않고, 오직 마음속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자랑하고, 복음의 능력을 자랑하고, 사람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을 자랑하고, 하나님 말씀 가르치는 것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율법주의 거짓 사도들의 할례와 추천서를 자랑하지 말고, 복음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가운데 행하는 선행을 자랑하게 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님들도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신앙생활 했느냐는 연수를 자랑하지 마시고, 교회에서 높은 직분을 가졌다는 직위를 자랑하지 마시고, 오직 기도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여러 가지 선한 열매와 봉사와 복음 전도와 하나님의 말씀 순종을 자랑해야 할 것입니다.
13절.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1. 이 말씀은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을 대적하는 율법주의 거짓 사도들이 바울을 미쳤다고 비난한 데 대한 해명의 말씀입니다.
즉 율법주의 거짓 사도들은 바울이 자기 가정생활을 하지 않고, 오직 복음 전도를 위해서 사는 모습을 미쳤다고 비난했습니다.
이것은 베스도 총독이 죽은 자의 부활을 전하는 바울을 미쳤다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사도행전 26:24-25.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그러나 바울이 가정생활도 돌보지 않고 미친 것처럼 복음 전도를 위해서 일한 것은 그만큼 복음 전도가 중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바울 사도는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부터는 결코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 오직 복음 전도와 하나님의 말씀 선포를 위해서 일했습니다.
이것이 바울을 대적하는 율법주의 거짓 사도들에게는 미친 것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2. 여기서 <미쳤다>는 말(ἐξέστημεν)은 종교적 황홀경에 빠진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의 황홀경은 이교도들의 황홀경과는 달리 인격적으로 절제할 수 있는 황홀경입니다.
그러나 이교도가 귀신에게 사로잡혀서 황홀경에 빠진 것은 인격적인 통제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비주의 이단을 조심해야 합니다.
정상적으로 성령님 안에서 성령 충만함과 황홀경에 빠진 사람은 인격과 감정이 정상인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교도나 이단의 신비주의는 자기 감정도 아니고, 자기 인격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귀신에게 사로잡힌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고 아주 위험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너무나 좋으신 인격자이시기 때문에, 성령 충만한 황홀경은 정상적인 인격과 감정을 가진 상태인 것입니다.
3.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극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오로지 예수님을 증언하고, 복음 전도하는 일에만 전력해서 전도에 미친 것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유대 나라에서 누리던 세상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유대인들에게 많은 고난을 당하면서도 복음 전도하는 일에 헌신적으로 일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 능욕과 핍박과 궁핍을 당해도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4. 여기서 바울은 만일 대적자들이 자기를 미쳤다고 비난한다면, 바울은 그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자신과 하나님과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즉 바울은 미친 것같이 예수님과 복음 전도에 전념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도 어디에 몰두하면 미쳤다는 표현을 씁니다.
예컨대, 바둑에 미쳤다, 노름에 미쳤다, 게임에 미쳤다, 주식에 미쳤다, 여자나 남자에 미쳤다고 표현한 것들입니다.
이처럼 미쳤다는 것은 무슨 일에 푹 빠졌다는 뜻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는 만화에 푹 빠진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만화를 보고 있을 때는 누가 밥을 먹으라고 해도 그 말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밥 먹는 것보다도 만화 보는 것에 정신이 팔려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친척 중에 한 사람은 공부에 푹 빠져서, 마당 멍석에 널어놓은 보리쌀에 비가 내려도 모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미쳤다는 것은 어디에 푹 빠졌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대적자들이 바울을 미쳤다고 표현한 것은 그만큼 바울이 예수님과 복음 전도에 열정적으로 헌신했기 때문입니다.
5.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성공하려면, 거기에 미쳐야 합니다.
즉 한 곳에 모든 열정과 정성을 투자하면, 무슨 비법이 터득되는 것입니다.
이런 열정이 없이는 성공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열정이 없는 직분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공부에 열정이 있든지, 운동에 열정이 있든지, 노래에 열정이 있든지, 컴퓨터에 열정이 있든지, 무슨 일에든지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 데도 열정이 없는 사람은 신앙생활이나 교회 생활에도 열정이 없습니다.
주일 학교 교사들도 학생들에게 관심과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구역장들도 구역원들에게 관심과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남녀 전도회 회장들도 회원들에게 관심과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부 교역자들도 성도들과 교회 일에 관심과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각부 책임자들은 누가 결석했는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하고, 결석자에 대해서는 즉시 전화해보든지 심방해야 합니다.
그런데 누가 결석을 했는지도 관심이 없고, 매일 매일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아무런 관심과 계획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6. 우리는 예수에 미친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전도에 미친 사람”- 이 얼마나 멋있는 말입니까?
기도에 미친 사람도 멋있는 말입니다.
성경 읽는데 미친 사람도 멋있습니다.
교회 일에 미친 사람도 멋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사업에 미친 사람도 참 멋있습니다.
또한 자기 아내와 자기 남편에게 미친 사람도 참 멋있습니다.
그러나 술에 미친 사람, 노름에 미친 사람, 백화점 쇼핑에 미친 사람, 춤추는데 미친 사람, 여자에 미친 사람, 남자에 미친 사람은 문제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 전도에 미친 사람이란 비난을 받았으니, 얼마나 멋있는 사람입니까?
우리가 새벽기도회에 다니면, 불신자들은 교회에 미친 사람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난은 참 좋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복 받을 일이기 때문입니다.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1. 바울이 정신이 온전한 사람으로 보인 것은 성도들을 하나님 말씀으로 섬겼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할 때는 미친 사람처럼 열정적이었고,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교훈할 때는 차분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바울 사도는 복음 전도를 열정적으로 감당했고,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을 가르칠 때는 이지적이고 차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4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1.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주님 말씀 순종하고 전도하도록 강권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바울은 주님이 명하신 대로 전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사랑만 생각하면, 누구에게든지 전도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는 뜻입니다.
2. 그렇습니다.
내가 누구에게서 약을 소개받아서 죽을 병이 나았다면, 이 약을 소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자동차에 치여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누가 나 대신 죽어주었다면, 나는 그 사람을 위해서 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가 나를 가난과 질병과 죽음에서 건져주었다면, 나는 그분을 위해서 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영 죽을 자신을 용서하시고, 전도자로 삼아주신 예수님을 위해서 전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사랑이 바울을 전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시는도다!>
3. <강권한다>(συνέχει: compels, controls)는 것은 누가 욕하고, 돌로 때리고 죽인다고 해도 주님 섬기고, 그 말씀 순종하고, 기도하며 전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1차 전도여행 때 사도행전 14장의 루스드라 전도 때,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2차 전도 여행 시에는 사도행전 16장의 빌립보 전도 시에 귀신 들린 여종의 주인들의 고소로 매를 실컷 맞고 감옥에 투옥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지진을 통해서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8장의 고린도 전도 시에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했으나, 총독 갈리오가 고소를 기각해서 살아났습니다.
3차 전도여행 시에는 사도행전 19장에서 에베소 전도 시에 아데미 우상 숭배자들의 데모로 죽을 뻔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 매를 맞고 고소를 당하여 여러 번 재판을 받고, 가이사랴에서 2년간 미결수로 감옥 생활을 하고, 로마로 호송되다가 죽을 뻔했습니다.
그리고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3년간 감옥 생활을 했으나, 네로 황제의 재판으로 풀려났습니다.
이 외에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에 기록된 대로 27가지의 고난과 위협을 당했으나, 그치지 않고 다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모든 열정이 어디서 나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열정을 가졌더라도, 사람들이 자꾸 하지 말라고 하면, 주눅이 들어서 못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강권에 사로잡혀서 죽도록 충성했습니다.
4. 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는 평생 부모님께 효도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죽을병에서 고쳐주신 분을 위해서도 죽도록 감사합니다.
이와같이 우리를 영원한 지옥 형벌에서 영생 천국으로 구원해주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해서 우리는 죽도록 충성합니다.
이렇게 사랑의 강권은 우리가 살아갈 동력을 제공해줍니다.
5. 중국 위나라에서는 <오기 장군>이 병사들의 등창 고름을 빨아줌으로써, 이 사랑에 감동한 병사들이 죽도록 충성하여, 오기 장군은 127회 전쟁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 이 말씀은 바울 사도가 자기중심적인 삶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과 복음 전도를 위해서 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나는 에수님을 위해서 살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나를 대신하여 물속에 빠지고 나를 건져주었다면, 나는 그분을 위해서 일생동안 감사하며 충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나를 위해서 일평생 희생했다면, 나는 그분을 위해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도 부모님이 나를 낳아주시고, 죽을 고생을 하면서 일생을 희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아버지가 자식을 버리고 평생 술 먹고 노름만 하고, 가족들을 고생시켰다면, 어떤 자식이 그 아버지를 위해서 충성하겠습니까?
그렇지만 어떤 여인이 한 남자를 위해서 자신의 행복을 포기했다면, 그 남자는 그 여인을 위해서 평생 충성하고 사랑할 것입니다.
어떤 의사가 바쁜 일정을 취소하고, 죽게 된 나를 헌신적으로 치료해주었다면, 나는 일평생 그분에게 감사하고 충성할 것입니다.
하물며 나를 대신하여 수 없는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심으로써 나를 영원한 지옥 형벌에서 영생 천국으로 구원하시고, 이 세상에서도 복된 삶을 살게 해주신 예수님을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충성해야 하겠습니까?
2. 그런데 오늘 말씀은 이 예수님이 나만을 위해서 죽어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 믿는 모든 성도들을 위해서 대신 죽어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바울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도 다 바울처럼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 성도님들을 보면, 교회에서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닌데, 새벽부터 나와서 기도하시고, 식당 봉사하시고, 낮에도 나와서 심방하고, 물리치료 봉사, 목욕 봉사, 주일학교 교사와 찬양대 등 여러 가지로 봉사하시는 것을 보면, 참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해서 이렇게 봉사하시는 것이지요.
15절.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1. 예수님은 우리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얼마든지 죽지 않으실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목숨을 얻을 권세도 있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0:18. 이를(내 목숨을)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로마 총독은 자기가 예수님을 살릴 권세도 있고, 죽일 권세도 가지고 있다고 오해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었으나,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끝까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고 죽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달려 있는 예수님을 향해서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우리가 믿겠노라고 비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모독을 참으면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 덕분으로 영생 천국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목숨을 버리셨다는 사실은 바울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진리는 복음 중에 복음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대신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 덕분에 모든 죄를 용서받고,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은 사도 베드로도 증언했습니다.
베드로전서 3: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 이 말씀은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어주신 이유는 이제 예수님 덕분에 영생을 얻은 우리가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이제부터는 우리 대신 죽으셨던 예수님을 위해서 살게 하려는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가 나를 낳기 위해서 목숨의 위험을 감수하고 나를 낳아주셨고, 나를 기르기 위해서 온갖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의사가 죽게 된 나를 살려주었다면, 우리는 나를 살려준 의사에게 평생 감사하면서 살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가 영원한 지옥에서 영생 천국으로 구원받았으니, 이제는 우리가 나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예수님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고자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4:8-9.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2. 찬송가 143장
(1)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 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2) 내 지은 죄 다 지시고 못 박히셨으니 웬 일인가 웬 은혠가 그 사랑 크셔라
(3) 주 십자가 못 박힐 때 그 해도 빛 잃고 그 밝은 빛 가리워서 캄캄케 되었네
(4) 나 십자가 대할 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 들고 눈물 흘리도다
(5)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아멘
주님 웬 말입니까, 웬 은혜입니까?
주님이 날 위해 돌아가셨으니 이 은혜를 어찌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늘 눈물 흘리면서, 평생 주님께 충성하게 해주시옵소서!
3. 장사하는 분들을 보면, 손님에게 잘해주기 위해서 얼마나 마음을 비우고, 고객에게 잘해주는지 모릅니다.
고객을 내 단골로 만들기 위해서 화나는 것도 참고 비위를 맞추면서, 얼마나 고객을 위해서 좋은 말과 행동을 하는지 모릅니다.
어떤 손님은 물건을 탈만 잡고 기분 나쁘게 하는 손님도 있습니다.
그러면 저 손님은 다른 가게에서도 저렇게 기분 나쁘게 굴었겠다 생각하면서, 내가 저 손님에게 감동을 주어서, 내 고객으로 삼아야 하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손님 하나를 고객으로 삼기 위해서 얼마나 애쓰고, 쓸개를 빼고 비위를 맞추는지 모릅니다.
우리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복음 전도를 위해서 살려면, 사람들에게 사랑과 용서로 대해주어야 합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쓸개를 빼고 고객에게 잘해주는 것처럼, 우리들도 전도 대상자들에게 쓸개 빼고, 속상한 일이 있더라도, 기도하면서 잘 넘기고 잘해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속 상하는 것을 잘 넘기고, 기분 나빠 하지 않을 때, 상대방이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장사하는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서 잘 참지만,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전도하기 위해서 기도로 잘 참아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대신 죽음의 고난을 당하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을 전도하기 위해서, 마음 상한 것을 기도로 성령으로 잘 치유하고, 이웃에게 선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고, 주님을 기쁘시게 함으로써 큰 상급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