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과 딸
4 개월 만에 보는 아내는 너무 이뻤다. 처음으로 아내의 얼굴을 천천히 유심히 본 것 같았다.
봄 방학 때 맞선으로 아내를 만나고 4 번 만나고 일본으로 돌아가서 여름방학 때 다시 가서, 결혼을 하고 학교 때문에 급하게 일본으로 왔다. 설악산에 신혼여행 하루 다녀 온 것이 전부다.
그렇게 아내와의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아침에 아내를 자전거 뒷자리에 태워, 학교 외국인 유학생 가족을 위한 일본어 교실에 태워주고 공부를 하고 돌아오면, 아내의 얼굴에는 늘 울었던 흔적이 있었다. 몇 번 만나지도 정체도 자세히 모르는 남자를 따라서 외국에 와서 하루 종일 혼자 있었던 아내 였기에, 아내를 이해 할 수 있었다.
하루 중 아내와 같이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결혼을 하고 아내와 같이 일본으로 돌아오자마자, 난 바로 볼리비아로 가야 했다. 논문을 쓰기 위하여.
그러다가 임신을 했다. 그런 아내를 두고, 학교에 갔다 돌아오면 아내의 얼굴에는 눈물 자욱만 있었다.
난 애써 외면을 했다. 내 욕심 때문에 결혼을 하고, 잘 나가던 아내의 직장을 그만 두게 하고, 무작정 타향 살이를 시작하게 한 나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임신 한 채로 하루 종일 나만을 기다리며, 아내는 하루종일 텔레비전만 보았다.
아내는 그 때 일본어를 배웠다고 했다.
우에노 까지 스카이라이너를 타고 오는 내내, 난 처음으로 여자의 손을 꼭 잡아 보았다. 아내의 손과 얼굴이 그렇게 소중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결혼식은 사실 별거 아니었다.
아내와 전철을 타고 오는 그 순간이 나로서는 진정한 결혼이었다.
아내가 입덧이 너무 심해 어쩔 수 없이 한국에 가야했고, 4 개월 만에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야 했다. 국제 전화비가 너무 들어 도저히 감당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임신한 아내를 한국으로 보내고, 혼자 살 때와는 감당 할 수 없는 외로움이 닥쳐왔다. 혼자 살 때의 외로움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었는데, 결혼을 하고 아내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 다음의 외로움은 그 몇 배나 될 정도가 될 정도였다. 그래서 아내가 4 개월 만에 다시 돌아왔다. 그래서 아내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되었고 아내의 손을 잡았던 것이다.
강릉에서의 결혼식 보다 그 순간이 진정한 결혼이었다.
그 당시 일본은 고도 성장기였다. 외국인 유학생에게도 복지혜택이 주어졌다.
지정 병원이 정해졌고, 매일 산모를 위한 우유가 배달 되었고, 공무원은 전화를 하고 아내에게 안위를 물어 보았다.
그러다가, 한 밤 중에 아내의 진통이 시작되었다. 배 부른 아내와 밤 거리를 뛰어서 두 시간 만에 병원에 도착했으나 병원은 문을 열기 전이었다.
병원 앞 작은 공원에서 아파하는 아내를 다독이며 기다리다 겨우 입원할 수 있었다.
열 시간의 진통 끝에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를 안는 순간, 녀석의 눈 빛은 나를 닮아 또렸했다. 뚫어질 정도로 나를 쳐다봤다. 아이의 본적지가 일본 동경 아다찌 구 아야세가 되는 순간이었다.
딸은 항상 일본을 그리워했다. 자신이 태어난 곳에 대한 동경이었다. 기억에도 없지만 태어난 곳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었을 것이다.
학교 공부는 강요하지도 않았고, 딸 역시도 공부에는 관심도 없었지만, 어느 날, 중학생 때 코스프레를 위해 서울도 간다는 거였다. 너무 놀랐다. 강릉에서 코스프레를 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이를 임신하고 휴일이면 아내와 요요기 경기장과 메이지 신궁이 있었던 하라주꾸에 놀러갔다. 요요기 경기장과 메이지 신궁 사이의 공터는 코스프레의 성지였다.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아내와 나는 너무 놀랐다. 일본 만화의 캐릭터를 그대로 재현하는 모습이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하라주꾸 상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돈을 준다고 해도 갖고 싶지 안을 정도로 신기하고 낯선 물건들이 즐비했다.
뱃속에 있던 아이에게 태교가 된 것일까.
심지어 대학 때는 딸아이는 귀에 구멍을 뚫고 쇠붙이를 관통시키고 돌아다녔다.
모든 것이 내 책임이기에 나는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더니, 대학에 가서 영화 연출을 공부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딸의 기숙사에 대게를 무지막지 하게 보내서 기숙사 전체 아이들이 학교 체육관에서 회식을 하게 하는 것 뿐이었다.
어느날, 딸 아이는 일본에 간다고 했다.
자신이 태어난 곳에 가고 싶었으리라. 나는 아무 말 없이 보내주었다.
그러나, 딸 아이는 일본에 가서 두 달 만에 돌아와야 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숙소에서 짐을 싸놓고 신발을 신은 채로 잠을 자다가, 한국행 비행기를 일주일 만에 타고 돌아왔다.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일본은 딸에게는 악몽이 되었다.
일본은 방사능 유출수를 바다에 버린다고 한다. 잘 처리해서 보내니 안심하라고 한다. 대통령의 외교 성과를 버릴 수가 없겠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핵 폭발에서 파생된 물질 들은, 반감기가 최소 만년에서 십만년이다. 지금도 우주에는 핵 물질들이 떠돌아 다닌다. 그래서 우주인이 우주복을 입지 않으면 바로 피폭이 된다.
방사능 오염 물질을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IAEA 국제원자력기구는 일본과 미국의 하수인이다. 미국이 만든 국제 기구다. 돈만 많이 내면 된다.
방송에 나와 떠들어대는 전문가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에 가서 조사한 전문가 역시 공무원들이고, 며칠 만에 그 많은 자료들을 검사한다는 것은 불가능이다.
유출수를 바다에 버리기로 한 것은, 미리 짜여진 각본에 불과하다.
그것은 윤석렬이 미국에 가서 국회에서영어로 연설하고 백악관에서 팝송을 부르며 미국에 애교를 떨면서부터 이미 예고된 각본이었다.
핵은 지구 뿐 아니라 우주에서 생명이 살 수 없게 만드는 원인 물질이다. 우주의 물질이다. 우주의 별들이 폭발하고 탄생하는 비밀의 원인이다.
핵 물질을 처리한다는 것은, 우주를 따나는 것이다.
오염수 처리는 거짓말이 아니라 사기다.
일본에서 돌아와 딸 아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다행히 직장을 결정하고 집에 한달간 쉬러 왔다가, 백혈병이 발견되었다.
감기 한번 안 걸린 건강한 아이였는데, 의사에게 원인을 물어도 알 수 없다고 했고, 아이에게 자세하게 물어봐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딸아이의 일본행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