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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목/보견회 봄 야유회 파주,연천 유적지를 찾아서 2018.5.31 두목회와 보견회 공동으로 금년도 봄 야유회를 5월31일 경기도 파주군과 연천군의 유적지를 찾기로 했다. 파주에는 율곡 이이 선생의 고향이고, 자운서원을 비롯해 화석정 등이 있다. 오후에는 연천군으로 가서 경순왕릉을 탐방하고 마지막으로 전곡리의 선사유적지를 방문하여 구석기시대의 유적을 통해 고고학 공부를 하기로 하였다. 아침 8시 광화문에서 출발한 버스는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모두 24명의 동문들을 태운 버스는 약속한 8시30분-전원이 탑승 먼저 경기도 파주 임진강변에 있는 화석정부터 찾기로 했다. 버스 안에서 필자가 10여년 전에 탐방했던 경험을 살려 개략적인 시간 일정과 오늘 찾게 될 화석정,자운서원과 율곡선생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리고 오후의 일정인 경순왕릉과 선사유적지에 얽힌 얘기도 소개하였다. 출근시간 교통난을 고려하여 시간을 넉넉하게 잡았던 탓에 근 50분가량 일찍 도착하여 먼저 화석정에 도착했다. 화석정(花石亭) 파주군 파평면 화석정로에 위치한 화석정은 당초 고려말 길재선생이 향리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었다. 그의 사후 그를 추모하는 서원으로 되었으나 세월이 감에 폐허가 된 것을 율곡선생의 5대조 이명신선생이 세종 25년 정자를 세웠다. 증조부 되시는 이의석선생이 중수하였다. 율곡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나 여생을 보내면서 제자들과 시와 학문을 논하였는데 평소 늘 기둥과 서까래에 들기름을 바르고 문질러서 윤이 나게 하였다. 그의 유서를 정자에 남겨 두었는데 유사시 이 정자를 불질러 불을 밝히라고 --실제로 선조 임금이 임진왜란으로 의주로 파천할 시 이곳 임진강을 폭우가 내리는 칠야에 건너게 되었는데 이항복이 이율곡의 유서를 읽고 정자를 태워 무사히 강을 건넜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현재의 건물은 1966년 파주 유림들이 복원하였고 花石亭이라는 현판은 박정희 전대통령이 쓴 것이다. 정자 안에는 율곡이 8살 때 쓴 팔세부시가 걸려 있었다. 林亭秋已晩 숲속 정자에 가을이 깊어지니 騷客意無窮 시인의 생각이 끝이 없구나. 霜楓向日紅 서리 맞은 단풍은 햇살에 붉었네. 江含萬里風 강은 만리 바람을 머금는다. 聲斷暮雲中 저녁구름 속으로 울음 소리 사라지는구나. 화석정에 오르면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이 보인다. 오랜 역사를 아는듯 모르는듯 - 화석정 앞에는 가게 있어 주로 북한술과 과자 간이 음식을 팔고 있다. 기념으로 단체사진을 남겼다. 시간이 남았지만 일단 이율곡 기념관으로 갔다. 일정소개 이율곡기념관 버스로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이율곡기념관을 찾았다. 11시20분에 해설사와 약속이 되어 있었으나 우리일행은 10시반경에 도착했다. 해설사는 10시반에 다른팀을 해설하는 중이라서 기념관 내의 여러 자료들을 미리 견학했다. 11시가 되자 우리 순서가 되어 해설사의 도움으로 전시관을 돌며 해설을 들었다. 기념관을 관람한후 경내에 있는 자운서원(紫雲書院)으로 향했다. 뒷산 이름이 자운산이다. 자운서원(紫雲書院) 자운서원은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에 위치하며 1615년(광해7년) 이이선생의 위패를 모셨다. 1650년(효종1년) 紫雲이라는 사액을 내려받은 사액서원이 되었다. 그뒤 김장생과 박세채가 추가 배향되었다. 1868년(고종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없어졌다가 1969년 복원되었다. 매년 8월 두번째 丁日에 향사를 지낸다. 이이(李珥)는 1536년 강원도 강릉부 죽헌동에 있는 외가인 오죽헌(烏竹軒)에서 덕수 이씨 이원수와 평산 신씨 신사임당 사이에 세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이 때의 이름은 현룡이었으나 뒤에 이(珥)로 바꾸었다. 자는 숙헌,호는 율곡,석담,우재. 이후 경기도 파주에 있는 본가에서 생활하였다. 이율곡은 아홉번이나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16살때 어머니 신사임당이 별세하자 3년간 여묘살이를 한후 금강산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이 일을 두고 훗날 죽은 후에도 승려가 되려다 환속하였다고 동인과 남인의 공격을 받는 빌미가 되었다. 퇴계와 쌍벽을 이루는 대학자로 현재 오천원권에 인물사진이 들어가는 영광을 가졌다. 어머니 신사임당은 오만원권의 주인공이니 두 모자가 함께 가문을 빛내는 최고의 영예를 얻은 셈이다. 자운서원은 자운문을 통해 외문,내문으로 통해 뒷쪽 서원까지 들어가는데 서원에 이르기 전 양쪽에 기숙사에 해당하는 동재인 입지재,서재인 수양재가 있고 전면에는 강당인 강인당이 자리한다. 사당은 문성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가운데는 이율곡선생의 영정이 좌우에는 김장생과 박세체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율관기념관과 자운서원을 탐방한후 식당으로 향했다. 버스로 불과 2~3분 거리다. 식당 이름도 사임당식당이다. 미리 예약을 하고 메뉴도 확정해 놓은지라 일사분란했다. 불낙전골과 불고기전골을 섞어서 식성에 맞추어 먹도록 배려했다. 최문택회장의 건배구호에 따라 건배부터 했다. 배불리 식사를 마치고 오후는 연천으로 가야하니 1시30분에는 출발키로 했다. 경순왕릉 2시가 조금 넘어 경순왕릉에 도착하니 해설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경순왕는 신라 제56대 마지막 왕으로 성은 김,이름은 부(傅)이다.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사망한 후 왕위에 올랐다. 후백제의 잦은 침입과 지방호족들의 할거로 국가기능이 마비 상태에서 신하들과 태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백성을 위하는 마음에서 고려 왕건에 귀부했다. 고려에 귀부하여 경순왕은 태자보다 높은 정승공에 봉해지고 유화궁을 하사받고 경주를 식읍으로 받았다. 또 태조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하여 여러 자녀를 두었고 귀부한지 43년 후인 978년에 세상을 떠났다. 경순왕릉은 신라의 여러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경주를 벗어난 고랑포 나룻터 뒤편의 남방한계선과 인접한 나지막한 구릉의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 개국후 방치되었다가 1747년(영조23) 후손들이 왕릉 주변에서 묘지석을 발견하었는데 조선후기의 양식으로 재정비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신라 왕능은 평지묘이나 경순왕능은 조선식이라 능위에 능을 쓴 모습으로 그의 사후 800년에 정비된 것이다. 묘 주변에 가리막이 쳐저 있고 제사는 가리막 밑에서 1년에 봄,가을 두번에 걸쳐 지낸다. 해설사의 말대로 비록 신라는 망했지만 나라의 백성들은 다치거나 상하지 않고 온전히 삶을 이어가게 하였으니 현명한 조치였다고 해야할까? 세상에 영원함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로 해석된다. 진입로 주변은 철조망으로 가려져 있고 지뢰가 매설되어 있어 철조망 안은 출입이 철저히 규제된다. 해설사의 해설 참배 전곡리 선사유적지 연천 전곡리 유적은 한탄강변에 위치한 구석기시대 유적이다. 미국 인디아나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주한 미군병사 그렉보웬은 한탄강변에서 연인과 데이트를 하던중 석기로 보이는 유물을 발견 서울대 김원룡박사와 연결. 1978년부터 18차에 걸친 유적지 탐사로 지질연구와 3천여점의 구석기시대 유물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슐리안형 주먹도끼,찍개등은 연구결과 30만년전 구석기 시대의 유물로 밝혀졌다. 현지 여 해설사의 유창한 해설과 영상물로 어느정도 선사유적의 지식을 가진후 다시 더 안쪽에 있는 전곡선사박물관으로 걸어서 찾았다. 거기서 다시 해설사를 만나 고고학에 관해 비록 짧았지만 많은 지식을 얻게 되었다. 24만평이라는 엄청 넓은 5개 권역으로 나누어져 있고 곳곳에 알기쉽게 당시의 인류와 가옥 형태 그리고 사냥하는 모습과 동물들을 재현해 놓았다. 마치 선사시대에 온 느낌이 들 정도다.그리고 때아닌 고고학도가 된 느낌이라 흐뭇하기도 하다. 오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이제 귀경길이다. 발굴작업 4호실 해설사 호모사피언스 24만평의 5개지구 연천 전곡리 출토 주먹도끼 진짜와 가짜 구분이 힘드네 골프 어드레스 폼? 매머드뼈로 이은 집? 아슐리안 주먹도끼 이남장에서 석식 교대역의 설렁탕전문집 이남장에 예약을 해뒀기에 퇴근시간과 겹쳐 혹 늦을까 걱정했는데 예약한 7시보다 먼저 도착했다. 바쁜 일로 탐방에는 빠졌던 보견회 김민효 사무총장이 식당에 미리 와 있었다. 책임감의 발로로 고맙게 생각한다. 저녁은 동기회 이창수회장이 비록 참석은 못했지만 풀 스폰서를 해 주었다. 고맙다는 힘찬 박수를 보내고 보견회 심부름을 맡은 필자가 건배제의를 하였다. 오늘 하루를 뜻있게 보내면서 지원을 아끼지 않은 두목회 최문택회장 특히 박두열 사무총장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스폰서 하신 두목회 김능태,김문헌,김민효 세분과 보견회 이훈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보견회는 4십만원이 배정이어서 한분만 스폰서 하고 나머지는 본부비용으로 충당했다. 빠른 시간에 정산을 마치고 약간의 남은 금액까지 송금을 하셨네요. 감사합니다. 두목회, 보견회 공히 6월 모임은 쉽니다. 다음 모임때 까지 건강히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참석자>강종웅,강태일,고재화,김능태,김문헌,김상철,김수철,박두열,박정륭,박준천,박호, 서강조,서상호,손창식,안연효,오상평,이근효,이선국,이이춘,이훈,장극두,전현석, 최문택,허현,김민효--25명 *선이 있는 분은 보견회원 <보견회 정산> 전월이월 4,757,794원 (이훈회원 스폰서 200,000원은 직접 박두열총장에게 전달) 본부스폰서지원 -200,000원(중식대 일부) 수입이자 +1,230원 정산후 입금 +174,800원 금월잔고 4,733,824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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