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장 이모가 된 사연 / 박선애
4년 전에 근무하던 학교에는 본관 옆 빈터에 쓰레기를 분리 수거하는 곳이 있었다. 함석으로 벽과 지붕을 한 가건물로 두 칸으로 나뉘어, 한 칸은 상자, 헌 책 등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를 모으는 창고이고, 다른 칸은 문이 없이 열린 공간으로 안쪽에 분리 수거함들이 줄줄이 놓여 있다. 급식실 가는 길에 있는 그곳을 지나가다 보면 분리수거함에 가까이 갈 수도 없게 입구에서부터 온갖 쓰레기들이 뒤엉켜 있어서 보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곳이 우리 반 특별 청소 구역이라 더 그랬다. 담당 선생님이 오라고 해도 학생들이 잘 안 나온다고 하는데 담임인 나는 교실, 복도 청소하느라 도울 수도 없어 안타까웠다.
해가 바뀌어 담임을 하지 않게 된 내가 그 곳 청소를 맡았다. 평소에 재활용 쓰레기 분리 배출 등이 안 되어 쓰레기 양이 너무 많은 것을 문제로 여기던 나는 한번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행정실에 부탁해서 우선 입구에 있는 쓰레기부터 치웠다. 그런 후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릴 수 있게 했다. 옛날에야 청소 구역 담당 교사가 지시만 하면 학생들이 다 알아서 했지만 지금은 귀하게 자란 아이들이 청소를 할 줄도 모를 뿐만 아니라 힘든 일은 잘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내가 먼저 고무장갑을 끼고 아이들이 들고 온 쓰레기에서 플라스틱, 깡통, 유리병, 종이 등을 가려내서 각각의 자리로 보낸다. 담임 교사들이 교실에서부터 분리해서 버리도록 지도하고 있지만 무서운 중학생들은 그런 것쯤은 무시하기 때문에 쓰레기장은 청소 시간 내내 바빴다.
그 때까지 일반 쓰레기는 수거차(암롤 박스)에 버리면 되었는데, 그 해 5월달쯤에는 학교에서도 규격 봉투에 담아 지정된 장소에 내놓아야 된다는 공문이 시청으로부터 왔다.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일까 회의를 했는데 내가 해보겠다고 자원했다. 그동안 파란 비닐 봉투를 쓰레기통에 씌워서 거기에 쓰레기를 모으고 채워지면 수거차에 갖다 버리던 대로 파란 비닐에 쓰레기를 담아 와서 규격 봉투에 담으려고 했다. 그러면 공간이 비어 규격 봉투가 금방 차버리고 비닐을 이중으로 사용하는 것이 문제였다. 파란 비닐을 쓰지 않을 수 없는지 학생들과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문제는 이해하면서도 쓰레기통에 바로 버리면 물기 있는 것이 들어갈 경우 오물이 들러붙어 지저분하고 냄새가 나서 안 된다고 했다. 대신에 그것을 최대한 여러 번 다시 쓰기로 했다. 이제는 재활용 쓰레기 분리와 일반 쓰레기를 규격 봉투에 부어서 눌러 담는 일까지 해야 하니 더 바빠졌다. 다행히 한 달에 한 번씩 청소 구역을 바꿔가면서 하던 아이들 중에 계속 하겠다고 자원하여 도와주는 아이들이 생겼다.
여름날 하루 종일 뜨거운 햇빛에 달궈진 함석 지붕 아래 쓰레기장은 들어가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흘렀다. 겨울에는 본관 건물과 쓰레기장 사이의 좁은 길을 서로 먼저 나가려는 매서운 바람으로 정말 추웠다. 그래도 열심히 하면 아이들이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이 애들이 가정에까지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그래서 환경 오염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청소 시간만 되면 그 곳으로 달려갔다. 손으로는 쓰레기를 받아서 비우고 재활용할 수 있는 것은 가려내면서 입은 쉬지 않고 분리 수거를 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말하였다.
쓰레기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교실과 교무실을 비롯한 여러 사무실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보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 생활 습관 등의 일부분이 조금은 짐작이 되었다. 우리가 환경 문제를 좀 더 심각하게 여겨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손만 뻗어 책상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이것저것 다 버리는 습관,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 코팅하는 것, 뒷면이 깨끗한 하얀 종이들을 그대로 버리는 행동 등은 고쳐야 한다.
김순원의 아들과 함께 걷는 길에 보면 아들을 데리고 고향 길을 걸어가면서 하는 이야기 중에 ‘나무에게 부끄러운 글은 쓰지 않겠다’는 글귀가 있었다. 작가의 의도야 어떠하든 나는 여기서 그동안 종이를 너무 함부로 쓴 것에 반성했다. 농담 삼아 ‘나는 나무에게 부끄러운 학습지는 만들지 않겠다.’고 따라 하며 내가 쓰는 종이가 곧 나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산다. 그래서 다시 쓸 수 있는 종이가 나오면 따로 모았다. 학생들도 연습장 정도는 이런 걸로 써도 좋을 것 같아 주려고 해도 대부분은 싫다고 한다. 가끔 좋다고 하는 아이가 있으면 주고, 내가 두고두고 썼다.
어느 날 복도에서 만난 1학년 담임 선생님이 장난스럽게. 꾸뼉 인사를 하며 ‘쓰레기장 이모님 안녕하세요?’라고 한다. 어리둥절한 나에게 그 반 학생이 쓰레기 버리고 교실에 들어오면서 ‘쓰레기장 이모가 연습장하라고 줬어요.’라고 자랑삼아 이면지를 보였다고 말한다. 학교가 커서 3학년 수업만 하는 나를 쓰레기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알았던 모양이다. 쓰레기장 이모가 되어 쓰레기 문제를 좀 해결해 보려고 했지만 사람들의 우선 편하려는 습관은 고치기 어려웠다. 2년 동안 하고 나니 몸도 힘들지만 좀체 변하지 않는 모습에 마음이 지쳐 그 일에서 손을 뗐다. 하지만 그 기간에는 쓰레기가 조금은 줄었을 거라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훗날 이 학생들이 중학교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환경에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바랄 뿐이다.
첫댓글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을
2년 동안이나 도맡아
하셨군요. 선생님을
모범 교사상 대상자로
추천하고 싶네요.
읽어 주시고 칭찬까지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입으로는 무언들 못하겠습니까? 이 년이나 그 힘든 일을 몸소 실천하신 선생님께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네요.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