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배 Photo & Essay _ 독도의 해돋이
장수사진
○○노인종합복지관에서 장수사진 촬영 봉사를 의뢰 해왔다. 전에도 ○○구청에서 장수사진 촬영 봉사를 부탁해서 우리 사진작가회에서 해준 적이 있다. 그 때 노인들이 ‘사진관도 아닌 사진작가라는 이들이 인물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있을까?’하고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외면하는 이도 있었다. 포토샵으로 검버섯도 지우고 깊은 주름도 손보아 제대로 만들어 줬더니, 외면했던 분들이 자기도 찍어 달라고 했지만, 바빠서 못 했다.
그때 사진관을 운영하는 우리 사진 작가회 감사가 영정사진은 자기네 밥그릇인데 그걸 침해했다며 항의하는 바람에 사과하면서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지난 12월에 ○○노인종합복지관에서 경로당 사진 촬영 봉사를 해달라고 했을 때 그 이야기를 하면서 어렵다고 했다. 간곡한 부탁에 딱 한 번만 하겠다며 사무국장과 함께 ○○동 경로당에서 찍었는데 1월에 또 부탁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만 더 해달라고 했다. 마음 약한 나는 사무국장과 함께 가서 촬영했다. 이것도 재능기부의 하나라 생각했다.
오늘은 우리 고유명절인 설 전날로 마지막 촬영일이다. 복지관 직원의 안내로 사무국장과 함께 ○○파인타운 9단지 경로당으로 갔다. 우리보다 앞서 ‘웰다잉 프로그램’ 강사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아들 며느리 손자 등 가족과 화목하게 지내는 방법에 대해 강의하고 있었다.
이어서 영정사진, 아니 장수사진을 촬영했다. 할머니들은 40명인데 할아버지는 네 명으로 십 분의 일에 불과했다. 역시 남자보다 여자가 장수한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할아버지와 먼 데서 오신 할머니들을 먼저 촬영하기로 했다. 남자들을 먼저 보내야 여자들이 옷을 갈아입기에 편하다는 배려에서였다. 할머니들은 한복 몇 벌을 가지고 서로 돌려가며 입고 촬영했다.
어떤 할머니는 파킨슨병으로 손발과 온몸을 떨기도 했다. 혼자 걷지 못해 부축을 받아야 하는 분도 있었다. 내가 “한복은 동정이 맞아야 한다.”고 말했더니 한 노인이 “동정이 맞아야 예쁘다.”며 동정에 신경을 썼다.
어떤 할머니는 말하기를 “기분 좋은 사진은 아니야. 기막힌 사진이지!” 하며 말끝을 흐렸다.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장수사진’이라 하지만 실은 마지막 가는 길에 맏사위가 들고 갈 영정사진이기에 하는 소리일 게다.
촬영하는 사무국장이 “눈 감지 마시고 크게 뜨세요. 입 꼬리가 귀에 걸리도록 웃어보세요.”하고 주문하지만, 할머니들은 잘 웃지 않았다. 웃어도 입이 비뚤어지고 일그러져 예쁜 모습이 아니었다. 웃는 모습이 예쁜 건 젊을 때 얘기지, 늙어서 웃는 모습은 예쁘기는커녕 흉한 분도 있었다.
할머니들끼리 농담을 주고받았다.
“시집갈 때처럼 예쁘게 다듬어야 해. 하나님 앞에 가려면 예쁘게 해야지.”
“난 사진을 처음 찍으니, 버선도 나오는 줄 알고 신었지.”
“영정사진에 버선 나오는 것 봤어?” 하며 웃는다.
오늘 사진 찍으러 왔다가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설 쇠러 가느라 그냥 가신 분도 여럿이라고 했다. “하필 왜 오늘이야. 미리 했어야지.” 하고 아쉬워하는 분도 있었다.
어떤 할머니는 머리카락이 거의 다 빠지고 그나마 남은 것도 하얘서 보기 흉하다고 아이들이 찍지 말라고 했는데, 찍은 다음에 어떻게 손볼 수 없느냐고 했다. 궁리하다가 모자를 씌우고 촬영했다.
장수사진은 주름살이 깊게 파이고 쪼그라들기 전에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늦으면 보기에도 안돼서 60대 초반에 찍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깊은 주름이나 저승꽃은 포토샵으로 지운다 해도 너무 늦으면 눈꺼풀도 내려앉아 눈을 떠도 제대로 떠지지 않아 짝짝이가 되는가 하면 아예 눈을 떴는지 말았는지 구분이 안 되는 분도 있었다.
삶의 마지막 영정사진을 찍으면서 인생은, 늘 준비하는 과정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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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꽃 : ‘검버섯’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첫댓글 장수 사진
제 생각에는
사진은 있는 모습 그대로 나타나게 하면서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모습이 좀다고 생각합니다.
볼에 사마귀가 있다면 그대로
검은 복점이 있다면 그대로.
설령 한 쪽 눈이 다쳐서 감았다고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