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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시낭송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곽인숙
제1회 유관순애국시낭송대회- 성재경 시 (청소년, 성인)
1.독립 삼남매 - 이름의 시작
겨레시인 성재경
중근 오라버니는 스물네 살 연상
봉길 아우님은 여섯 살 연하
우리는 죽음 밖에 모르는 독립 삼남매
중근 오라버니 거사 날은 나보다 10년 앞
여순 감옥 슬픈 교수형 날도 10년 앞
내 나이 8살 1910년 3월 26일
나 서대문 감옥에서 매 맞아 죽은
우악스런 어른들이 구둣발로 짓이기던
아 피로 단풍 들던 1920년 9월 28일
봉길 아우님 거사 날은 13년 뒤
십자가 형틀에서 총살당한 슬픈 날도
광복을 13년 앞둔 1932년 12월 19일
하얼빈 역에서 이등박문을 쏘던 단총소리
아우내 장터에서 외치던 맨손 만세소리
홍커우 공원을 뒤흔들던 물통 폭탄소리
슬픈 날도 기념식이 있는가
햇빛도 돌아앉은 통토의 벌판에서
울며울며 쓰러져가던 조국 영가여
한걸음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을
차례로 왔다가 차례로 떠난
우린 심장마저 잃어버린 광복 삼남매
2.독립삼남매 - 봉길아우
겨레시인 성재경
물통이 폭탄이 되고
도시락도 폭발하는 무기가 된다면
아우여 그렇지
우리 손발은 줄 이은 군대가 되고
가슴은 언제나 전장이 되는 것이지
내 단총만큼이나 파괴력 있는
관순 누이의 맨손 태극기나
봉길 아우 물통 도시락처럼
대한의 정신이 깃들기만 하면
지푸라기 솜뭉치도 병기가 되고
역 장터 공원도 적진이 되는 것이지
아우가 뒤따라오지 않았다면
하늘에 세운 정삼각형은 미완성 이었고
삼태성 별자리도 무너져 있었겠지
홍커우공원 적군을 향해 폭탄 던질 때
하늘에서 우리도 힘을 합쳤고
감격의 눈물로 밤을 지새웠었지
내가 시작하고
관순 누이가 이어주고
봉길 아우가 끝장을 낸
목숨 건 1인 혁명은
비록 우리가 천수를 누리진 못했지만
조국에게 은혜는 갚은 셈이지
나라를 위한다고 큰소리치면서도
자기 욕심에 눈 어둡고
비겁한 명줄이나 늘리는 사람들에게
평생 본보기는 된 셈이지
3.태극기 안동네
겨레시인 성재경
태극기 속 하늘 공간에는
누가 들어 있는가
창공에 나부끼기 위해서는
어떤 눈물에도 젖지 말아야 하고
마음도 한 떨기 깃털이어야 하는데
태극기 속 영혼의 마을마다
누가 살고 있는가
겨레를 위하여 숨져간 사람들
민족을 대신해서 몸 바친 사람들
나라를 구하려고 목숨 던진 사람들
그 태극기 안동네에 안중근이 산다
어머니 아내 자녀 그리고 형제들이
날마다 태극기 바깥세상을 바라보며
조국에서 들려오는 만세소리에
귀 기울이며 산다
태극기 안동네에 함께 사는 사람들
가만히 들여다보면 선명하게 보이는 얼굴
죽어서도 나라걱정뿐인 그들은
어디서든 태극기가 펼쳐지기만 하면
아 오늘은 무슨 일이지 촉각을 세우며
늘 외출복에 함성 부를 차림이다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리 뻗고 편히 쉴 날이 없었다
일본인들 꼬락서니에 밤잠을 잃고
친일파들 아부소리에 입맛을 잃어
하얼빈 역에 떨어뜨린 단총을 찾아서
태극기 안동네 사람 모두 데리고
현해탄을 건너 진군할 생각에
휘날리는 태극기 모서리를 부여잡고
우렛소리 바람에 실려 보내고 있다
4.햇살 눈
겨레시인 성재경
햇살도 눈발이 되는 북방의 계절
따스한 조국을 떠나 떠도는 얼음나라
고구려 발해가 말 달리던 벌판으로
언젠가 독립이 오는 날
고토가 함께 회복되는 꿈
총칼의 날선 울음소리 들으며
힘겨운 전투를 끝내고 돌아선 아침
햇살 한 조각 부여잡고 누운 초원
무릎이 빠지는 눈 속에서
환영으로 다가서는 그리운 사람아
몇 개의 산을 눈물 작대기로 넘고
몇 구비 강을 피 묻은 노로 건너야
숨 쉬는 조국을 만날 수 있을까
오늘도 어머니는 안녕하신가
한번 빼앗기면 다시 찾기 힘든 조국
일본군 하나를 과녁 해 죽여도
한 평 내나라 땅을 되찾기 어렵고
일본군 한 부대를 전멸시켜도
조국 산 하나를 회복할 수 없다면
무엇인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전투의 기본은 적장을 베는 것
승리를 위해서 흉수를 부셔야 한다면
생명의 계절이 안타깝게 지나고
햇살 눈이 북방을 뒤덮기 전에
이토를 만나러 하얼빈에 가야만 한다
5.조린공원 문답
겨레시인 성재경
송화강이 만년세월 흐르는 하얼빈
오래 묵은 공원에 힘없이 서 있는
푸석한 나무들에게 물었다
백년 조금 전에 너희들 가지 아래서
고뇌에 차 있던 젊은이를 보았니
한국 독립을 위해 수많은 전쟁터를 거쳐
마지막 인생의 큰 결단을 준비하던
젊은 영웅의 탄식소리 들었니
그때는 너희들도 젊은 눈 밝아서
왼손 무명지 한마디 잘려진 특징이 있고
문무를 겸비한 범상치 않은 젊은이를
금방 알아보고 주목했을 것이고
그때는 너희들 젊은 귀가 열려서
며칠 후 역전에서 총소리 들릴 때
그 젊은이가 외치던 코레아 우라 들었니
그때는 너희들 손도 푸른 섬섬옥수
나라가 독립되고 모두가 평화로운 세상을
직접 가져오기 위하여 이 공원을 서성이며
가장 정확한 방법을 꿰뚫어 보던
젊은이의 아픈 가슴 만져 보았니
아 보았어 우리 모두 똑똑히 보았어
사실 우리가 백년 넘게 살면서
구부러지고 헝클어진 고목인 채로
아직 떠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은
그 이야기를 물어올 사람 기다리고 있었어
우리들의 푸른 잎새가 낙엽으로 지던 날
진지한 표정으로 하늘을 우러르며
주먹 움켜 쥘 때 잘려진 무명지를 보았어
삼일 후 플랫폼이 몹시 소란스러워지고
하얼빈 시내가 터져나가는 우렛소리 들었어
중국과 대한나라 침략자가 죽어갔고
그 젊은이 묶여 열차로 떠난 소식 들었어
죽기 전 우리들 뿌리 나란히 묻었다가
자기 조국이 독립되면 옮겨 달라 했다는데
그들이 독립 된지 7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젊은이는 돌아오지 않았어
그날의 그리움을 눈물로 묻는 순례자여
우리 늙어 흐린 눈으로 그대에게 되묻나니
그 젊은 영웅은 언제 우리 뿌리로 돌아오는가
6.그날은
겨레시인 성재경
그날은
아무도 물건을 사지 않았다
굴비 한 손 보리쌀 한 됫박 머리빗 한 개
아무도 물건을 팔지 않았다
식육점도 포목점도 어전도 닫혀있었다
아우내장터 그날은
아무도 소리 내어 웃지 않았다
수다쟁이 할매도 짓궂던 더벅머리 총각도
비틀거리거나 들내지 않았다
무거운 발걸음 앞만 보고 내 디뎠다
기미년 사월 초하루 그날은
아무도 부모자식 걱정하지 않았다
보고 싶은 사람도 생각나지 않았다
하늘 아래 땅 위에 사람들이 모여
가슴과 가슴이 손과 손이 만났다
목이 터져나가던 그날은
그들의 손엔 어떤 쇠붙이도 없었다
그 흔한 낫 한 자루 부엌칼 호미마저도
삐뚤게 그린 태극기와 맨주먹
만세 부르는 입과 충혈 된 눈이 전부였다
유관순의 아우내장터 그날은
붉은 피에 또 뜨거운 피가 엉기고
죽음 위에 볏단처럼 주검이 덮여갔지만
그날은 이 나라 정신이 바로 세워지고
비로소 광복이 시작되는 날 이었다
7.하늘나비
겨레시인 성재경
사랑아 홀로 떠나려느냐
달무리 지는 언덕 나뭇잎들이
호랑나비 떼로 내려앉은 가을 하룻날
단풍 숲을 뚫고
나비 한 마리 하늘을 날아올랐다
하얀 나비 싫어 검은 나비 싫어
눈물에 얼룩진 갈색 나비는 더욱 싫어서
흰 저고리 검은 치마 분장에
태극무늬 선명한 날개를 달고
삼층천 하늘을 날아오른다
나비야 유관순 영혼 나비야
살아서 왜놈들 벌레가 되느니
죽어서 별빛 강물 흐르는 은하수까지
아버지 손잡고 어머니 어깨 감고 가고파
바람 타고 구름 헤치며 날아오른다
하늘엔 창살이 없겠지
창공엔 지독한 구둣발이 없겠지
날개 찢어지고 피 흘리는 아픔 없이
꽃을 만나면 꽃길에 놀고
나무를 만나면 숲길에 노닐며
나라만 걱정했던 천사나비야
독립에 목이 말랐던 소녀나비야
욕심에 눈 먼 우리 용서하는 마음으로
아우내장터 한 바퀴 돌아서 가렴
매봉산 중턱 한 걸음 쉬었다 가렴
사랑아 그대 홀로 떠나는 하늘나비야
8.유관순과 독도
겨레시인 성재경
난 독도의 딸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한날 죽어서
서러운 고아가 되었을 때
서도가 날 불러 아버지 되고
동도가 날 불러 어머니 되어
이사부길 안용복길 내 마음 길입니다
천년 동안 우리를 괴롭힌 왜인들은
틈만 나면 나를 죽이려 하고
끊임없이 독도를 빼앗으려드니
나 다시 고아 될 수 없어
하늘나라 가는 길 잠시 멈추고
내 영혼 독도에 가서 살렵니다
우산봉에 해 뜨고 대한봉에 달뜨면
동해 가득 내리는 별빛으로 단장하고
가슴 속 피 묻은 태극기 다시 꺼내어
아우내장터 목 놓아 부르던 그 목소리로
대한독립 만세 독도는 우리 땅
님들이 찾아오는 길목마다 뿌리렵니다
나만이 독도의 딸 독도의 자식 아니라
이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 가축까지도
독도의 딸이고 아들이거늘
한줄기 뿌리라도 가슴에 남아 있거든
다시는 나라 팔아먹는 바보짓 하지 말고
유관순이 사는 독도 보듬으라 외치렵니다
9.달의 노래
겨레시인 성재경
달을 찾아가자
다섯 개의 달이 뜬다는 경포로 가자
하늘에 동해에 호수에 술잔에 님의 눈에
달이 뜬다 명경 같은 달이 뜬다
달을 찾아가자
다섯 개의 달이 뜬다는 한라로 가자
하늘에 남해에 백록에 마라도에 해녀에
달이 뜬다 뭇 섬 같은 달이 뜬다
달을 찾아가자
다섯 개의 달이 뜬다는 백두로 가자
하늘에 천지에 옛 땅에 북녘에 두만강에
달이 뜬다 깃발 같은 달이 뜬다
달을 찾아가자
다섯 개의 달이 뜬다는 독도로 가자
하늘에 동해에 수비대에 울릉도에 등대에
달이 뜬다 강철 같은 달이 뜬다
달을 찾아가자
수 만개의 달이 뜬다는 아우내로 가자
하늘에 땅에 태극기에 만세소리에
이윽고 우리 가슴 가슴에
핏방울 눈물방울 셀 수 없는
달이 뜬다 누님 같은 달이 뜬다
10.그대여, 유관순의 코리아여
겨레시인 성재경
아침에 눈 뜨니 그대가 서 있었네
햇빛도 들지 않는 지옥 감옥
고문으로 피 흘린 상처 도로 터져서
온 몸이 문어 낙지로 뒤틀리는 내 앞에
나 보다 훨씬 남루하고 아픈
거지병자처럼 힘없는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네
그대 나이 오천 살 조금 아래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고려였다가 다시 해 뜨는 조선
이제는 대한민국이라고 부르는
이름도 수 없이 바뀌고
찢기고 할퀸 자국이 아물지 않은
그대가 내 앞에 서 있었네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대가
목숨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네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네
하나 뿐인 작은 목숨이지만
그댈 위해 기꺼이 바치겠노라고
그대는 더욱 슬픈 표정으로 말했네
이제 그만 얻어맞고 따라나서서
광복의 꽃 독립의 씨앗이 되어 달라고
나 그때 확실히 다짐 받았네
이 소녀의 꿈과 소망 모두 드리나니
그대 죽은 피 내 젊은 피로 수혈하고
더 이상 빼앗기거나 업신여김 당함 없이
더 이상 다른 이름으로 바꿈 없이
나의 조국으로 천만년을 가다오
이제는 유관순도 일본군도 나타나지 말고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다운 나라
살아있는 것들의 마지막 존재가 되어다오
그대, 내 사랑 유관순의 코리아여
11.윤봉길을 말하다
겨레시인 성재경
중국 장개석 총통이 말했다
백만 중국 군인도 할 수 없는 일을
대한 청년 한사람이 해냈노라
이제 대한사람들의 독립 열망을 알았노라
그 숭고한 열정과 목숨 건 그리움에
힘을 보태고 무조건 도우리라
백범 김구선생이 말했다
아아 동지여 구국의 영웅이여
우리가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고
그대의 시계와 내 시계를 바꿔 차고
용감하게 홍커우공원으로 떠날 때
위대한 역사의 주인공을 보았노라
윤동지 그대는 조국 심장 이었노라
도산 안창호선생이 말했다
그대가 물통에 목숨을 담아 던진 일로
그 뜨거운 조국 사랑의 징표로
내가 일경에게 잡혀 옥고를 치르고
결국 치명적인 병환을 얻었지만
내 응얼진 슬픔을 풀어준 그대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내노라
진정한 대한의 장부라 인정하노라
팔십 오년 뒤 어느 시인이 말했다
안중근의사가 시작하고
유관순 열사가 이어주고
윤봉길 의사가 끝장 낸 영웅의 길
갈증으로 신음하는 조국에게
하늘 두레박 쏟아 목마름을 적신
거룩한 순국의 종결자여
홀로 치룬 전투 상해 대첩
작은 등불이었다가 큰 별 되신 이여
그 이름 조국과 함께 영원하리라
12,시계를 바꾸다
겨레시인 성재경
선생님 어제 오늘 하제
그런 시간들을 묶어 놓고 싶어서
6원 주고 새 회중시계 샀습니다만
이 시계는 몇 시간 뒤에는 쓸모없으니
2원 짜리 낡은 시계와 바꾸어 주십시오
홍커우공원 누대에 올라 축배를 들던
침략의 선봉들이 폭탄에 쓰러지면
선생님의 낡은 시계는 멈추고
저의 새 시계는 상해 임시정부 품에서
살아있는 맥박처럼 힘 있게 뛸 것입니다
짧은 시간 안에 그들은 나를 죽일 테지만
비로소 뜨거운 독립항쟁이 시작되어
피 흘리는 전선 위대한 의거마다
저의 붉은 영혼 함께 싸우게 하십시오
오천년의 시간 중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
너무 길어져 포기하지 않도록
대한나라 사람들 깃발아래 뭉치고
강한 이웃 나라들을 끝없이 일깨워
머지않아 기다리던 광복이 오는 날
어디선가 저의 굳어버린 시체를 찾거들랑
차가운 손목에 그 시계 조여 채워서
따사로운 햇살이 온몸에 퍼지게 하십시오
제 영혼의 시계도 멈추지 않고
천만년 조국의 시간과 함께 가오리다
13.순국 막대기
겨레시인 성재경
덕산 윤봉길 기념관에는
조명 흐린 유리상자 속에
벌거죽죽 흉측한 막대기가 세워져 있다
직경 반 뼘이나 될까
길이 여섯 자나 될까
울툭불툭 작은 돌기들이 튀어나오고
굵기도 전혀 일정하지 않은
살은 녹고 뼈만 남은 나무
젊은 영웅이 총살당할 때 묶여있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한 비련의 막대기
막대기만도 못한 섬나라 통치자들이
영원히 일본을 부끄럽게 할 암매장 현장
가나자와 공병 작업장 쓰레기장 통로에
두개골을 흐른 피를 뒤집어 쓴 채
영웅 곁에 십 사년을 나란히 묻혀
무른 부분부터 천천히 썩어 갔던 목심
두 팔을 묶었던 가로 막대는 없어지고
땅 위에 세워 척추를 받치던 수직목
젊은 영웅 죽음의 도구로 쓰임이 슬퍼서
그의 살과 힘줄이 증발할 때마다
눈물로 피부를 깎아가며
그의 마지막 기도소리 잊지 않으려고
툭 툭 불거지는 옹이를 틀어잡고
그가 바라던 대한나라가 독립되어
왕릉보다 위대한 무덤을 찾을 때까지
영웅의 뼈처럼 굳건하게 남아있고 싶었다
14.마지막 사진
겨레시인 성재경
안공근 선생님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진사
마음을 찍을 줄 아는 섬세한 예술가
중근 형님 친 아우님으로
애국의 피가 강하게 흐르는 집안 말고도
대한독립군과 상해 임시정부 큰 기둥
살아있는 저의 마지막 사진을 찍으시며
조국의 아픈 역사가 또 하나 새겨진다고
사진기를 적시던 선생님의 눈물은
저의 투지를 불태우는 소리 없는 행진곡
한인애국단 푸른 기치아래
스스로 적진에 나아가 싸운다는
비장한 선서문 팻말을 목에 걸고
한 손엔 수류탄 한 손엔 권총
턱까지 굳게 다문 숨 막히는 각오는
수많은 애국투사들이 그토록 외치던
조국독립을 항한 뜨거운 맹세
저의 영정사진이 되어버린 명품 사진은
제가 가는 길 망서리면 안 된다는
이천만 동포의 마지막 전송이었고
짧은 며칠 사이 영원한 동지 되어
형제처럼 서럽게 나눈 이별의 악수는
민들레 강산에 울리는 장부의 노래였지요
15,별빛 아리아
겨레시인 성재경
그 밤은 별들 사이에 아리아가 계속 되었죠
아직 하늘은 불화살이 날으는 전쟁 중이었고
불타는 별들의 사막 같은 은하강에선
악기들의 불협화음이 끊임없이 이어져
지휘자 잃은 연주자들 늘어진 현을 당길 때
북극성에서 시작된 서정 하나 흐르고 있었죠
날이 밝은 공원엔 밤새 쌓인 별빛이
새들을 날게 하고 봄꽃을 피우고
부지런히 많은 사람을 불러 모았죠
이제 지상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아름답고 슬픈 아리아가 울릴 객석엔
때늦은 운명에게 쏟아질 불꽃놀이를 보러
일장기 흔들며 마른침 삼키는 군상들
그렇게 감동의 아침이 흐르고 있었죠
이윽고 햇살에 바랜 별빛을 헤치며
하늘 소풍 가듯 도시락과 물통을 들고
고독한 회오리 속에 입장한 지휘자
숨 한 번 크게 쉴 세상을 열고 싶다며
물통 지휘봉에서 우주가 연주 되었죠
억압에 대하여 자유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어느 오페라 어떤 칸타타도 이를 수 없는
최고의 별빛 아리아가 흐르고 있었죠
16.벼리가 되어
~논개가 이순신에게
겨레시인 성재경
살아서 대장군 죽어서 오라버니
강물은 아무리 잘났어도 바다로 가듯이
남쪽 바다에서 싸우는 대장군 찾아서
남강 푸른 물결 따라 낙동강을 흐르다가
시 짓는 달밤 그리운 한산섬에 가오리다
호롱불에 별빛어리는 외로운 섬마다
거룻배 타고 돌아보는 백성의 어버이
죄 없이 오랏줄 묶여 서울로 떠날 때나
백의종군 머나먼 길 남쪽바다 돌아올 때도
눈물로 오라버니를 따르던 논개 였습니다
한 번도 싸움에지지 않은 대장군 곁에서
소녀도 두 번 죽지 않을 수 있어
손가락 장구처럼 물불어도 빼지 않던 가락지
진주성 의암 아래 적장을 옥조이던 가락지로
적선 뱃머리 부여잡는 벼리가 되오리다
소녀의 가락지 밧줄에 왜선이 딸려오거든
배 밑에 갈고리 걸어 끌어 내리고
꼬챙이로 구멍 내어 물속에 가라앉히다가
왜구의 때 묻은 시체 뭉텅이로 내려오면
우리 맑은 물 먹거리 더럽히지 못하도록
현해탄 너머 섬나라로 돌려보내고
피 묻은 남도 장병들 눈 뜬 주검 내려오면
내 겉옷으로 감싸 양달 물무덤에 누이리다
아아 그러다 순신오라버니 영혼이 내려오면
내 순결한 속옷으로 구국의 영웅을 싸매어
7년 동안 밤낮없이 누비던 바다 전쟁터
함께 싸우고 함께 이긴 오누이처럼
어머니 같은 다도해에서 천년을 가오리다
17.무명손수건
겨레시인 성재경
어머니 그렇게 서둘러 가셔야만 합니까
흰 쌀밥에 고깃국 한 그릇 수저 못 대시고
병든 몸 아들 찾아오던 뱃전에서 숨지실 때
손에 꼬옥 쥐셨던 무명손수건은
못난 자식 그리움 담은 눈물 젖은 손수건
어머니 수수깡처럼 빈 방에 홀로 계셔도
손톱 발톱 때맞춰 깎아드리지 못하고
냉방에 군불조차 지펴드리지 못한 자식을
기다림이 숙명인양 기다리고 만 계시다가
홑상여 타고 동구 지나 청산에 가셨나요
간신들 무고한 참소로 장수마저 빼앗기고
감옥에 갇혀 죽음안개 몰려 왔다가
벼슬도 녹봉도 없이 전쟁터로 가는 길
백의종군 눈감아도 흐르는 눈물길을
어머니 더는 못 보시겠다고 먼저 떠나셨나요
서울 한복판에 태어났지만 가난 때문에
아산 외가 어머니 고향으로 옮겨 살 때에
무명 옷고름 헤어지도록 일하시던 어머니
그 고임 빚 시묘살이 못 갚고 떠나는 발길
천 육 백리 서러운 이별 노래 불효 아리랑
어머니 다른 약속은 다 못 지켰어도
도적떼를 남쪽 바다에 묻어버리고 나면
삼세번 마지막 백의종군 홀로 가는 하늘 길
기다림에 지친 어머니 찾아 가오리니
그 징표로 축축한 무명손수건 남기셨나요
18.고뇌하는 이순신
겨레시인 성재경
해남을 등 뒤에 업고 진도를 향하여
당신은 밤낮 없이 서 있었습니다
누구도 이루기 힘든 무패의 신화를 안고
해전의 고전을 넘어 전설이 되어버린
역사 상 조국수호의 가장 위대한 영웅
소용돌이치며 울부짖는 바다가
당신의 발치를 몇 번 씩 휘감아 돌아도
백두대간 같은 어깨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에게 남겨진 전선은 고작 13척에
주민들이 스스로 몰고 온 어선 몇 척 뿐
곧 까마귀 떼처럼 왜적선이 몰려올 텐데
당신만 믿고 있는 노략질에 지친 백성들이
이야! 이야! 어버이여! 옷자락에 매달리는데
이곳이 무너지면 호남 충청 이윽고 서울
임금이 계신 육조사직마저 무너질 걱정에
격랑의 파도가 가슴을 돌아나갔겠지요
바다도 더러는 시퍼런 무덤이 되는가요
울돌목 회오리 물결처럼 흘러 온
칠백 번도 넘게 섬나라에 수탈당한 역사
이 나라 이 민족 선조들의 눈물을 기억하며
백의종군 천리 길을 달려 숨 가쁘게 달려서
여기 땅 끝 시린 바닷물에 두발 담그고
당신이 죽어 적들을 바다에 묻어야 한다고
뜨거운 눈물 명량에 보태고 계신건가요
당신부터 사백 몇 십 년이 흘러간 지금도
그 바다에 평상복 차림으로 지도를 든 채
독도를 내놓으라는 정신 빠진 헛소리와
반도를 겨냥하는 자위대의 무수한 포신이
태평양 깊은 바다에 아주 가라앉을 때까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고뇌 상은
우수영 언덕 꽃처럼 나부끼던 강강술래처럼
울음 맺힌 서편제 가락 듣고 계시는가요
19.한산섬
겨레시인 성재경
한산섬이 울고 있다
저 앞바다에 떠있는 거북선 등대아기
파도치면 넘어질 듯 뒤뚱거려도
젖 한 모금 물릴 수 없어
사무치는 어미가슴으로 울고 있다
제승당 주인이 떠난 자리에는
텅 빈 옛 삼도수군통제영 운주당과 활터
시린 달빛은 한산대첩 학익진을 펼쳐들고
뭇 섬 사이에서 바람도 묵념하다 가면
창자를 끊는 한줄기 피리소리도 잠잠해져
난중일기 묵향이 온몸으로 번져 오는데
아직도 한산섬 동쪽 서쪽 천리 물길
깊은 바다 속 거친 물살 통로 한켠에서
사백년 전 이름 없는 장병들의 피가
냉동고처럼 응고 되어 모여 있을 것이고
영웅의 뜨거운 눈물이 언 피 녹여 이끌고
일본 열도를 지나 태평양 먼 바다까지
한바탕 휘돌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한산섬이 울부짖고 있다
조국의 미래를 지키다 죽어간 장군과
부모와 고향 나라 지키던 젊은 아들들이
육지가 아닌 바다에 묻혀야 했는지
양지가 아닌 캄캄한 물속에 누웠는지
생각 없는 이 나라 젊은이 들을 향하여
절룩걸음 걸으며 어디를 가고 있는가
거북선 바다로 깨어나라 외치고 있다
20.충무공 이순신을 위한 헌시
겨레시인 성재경
님께서 지킨 것은 바다만이 아니었습니다
들 뫼 가람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별
그 안에 살고 있는 임금과 대신과 백성들
어울려 사는 가족 소 돼지 닭 뭇 짐승들
풀과 나무와 꽃 새 나비 물고기와 벌레들
님이 아니었으면 모두 잊혀 진 이름
백의민족 역사는 거기서 멈췄을 것입니다
님께서 바친 것은 목숨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의 목숨 아내의 눈물부터
간신들의 참소와 질투를 견뎌낸 인내
왜구의 수탈에 울부짖는 백성들의 안녕까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충성심 애민심 효심 무엇 하나 모자름 없이
님처럼 살아야 한다는 모범답안을 주셨습니다
님께서 남긴 것은 승리만이 아니었습니다
첫 싸움 옥포에서 견내량 명량 관음포까지
23승이니 40몇 승이니 따지는 전적보다도
무패의 신화와 불멸의 전설인 신보다도
고난과 질곡을 이겨내는 불굴의 정신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자는 영웅이 아니고
진정한 위인은 침략자를 무찌르는 것입니다
님께서 주신 것은 조국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리의 후손에게 무엇을 물려주어야 하는지
정치 경제 교육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평화와 자유 그리고 민주의 소중함에서
우리를 둘러싼 나라가 적인지 아닌지를
분별하고 미리 대비하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21.태궁화
겨레시인 성재경
태극기가 무궁화로 피어난 태궁화
그 꽃 속에서 뛰노는 겨레의 심장
해마다 나라 안팎에서 삼천 번 휘날리는 깃발
해마다 한 그루에서 삼천송이 피어나는 꽃
태극기가 꽃이 되고 무궁화가 깃발 된다면
하늘과 땅엔 평화가 가득하리라
1882년 박영효 일본행 배에서 그린 태극기에
백의민족 순백의 배달계 무궁화를 심고
1883년 조선정부 공식 반포 태극기에
흰 꽃잎 붉은 단심 백단심계 꽃을 저미고
1897년 독립문 빨.노.파 삼색 태극기에
영원한 사랑 불타는 적단심계 꽃을 수놓고
1945년 한국광복군이 서명한 태극기에
푸른 생명이 숨 쉬는 청단심계 무궁화 넣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반포 깃발에
높은 이상을 노래하는 자단심계 꽃을 담고
1997년 국기규정에 따른 현재 태극기에는
대한의 미래가 아롱진 아사달계 무늬를 새겨
독립삼남매 안중근 유관순 윤봉길 무궁화
이 땅에 피고 지고 피고 지고 또 피어나면
김구 김규식 안창호 윤동주 김좌진 태극기
조국 하늘에 숨결처럼 휘날리게 하라
우리가 살아서 태극기 흔드는 바람이 되고
우리 죽어서 무궁화 꽃피우는 기름 된다면
한라에서 백두까지 태궁화 춤추는 꽃밭이어라
22,금강송
겨레시인 성재경
붉은 비늘 용들이 하늘을 오르고 있었다
해거름 홍학 무리 나래짓이 구름을 부르면
가녀린 두 낱 잎새로 청학 울음소리 들렸다
뿌리 깊은 나무 누천년을 버텨 서서
여러 갈래로 부채살 그림 뽐내는 반송이나
바닷바람 소금바람 검게 견디는 곰솔보다도
백두대간 휘감은 자태 청산마다 푸르렀다
귀 대면 웃고 울고 외치는 아리랑나무
거북선 판옥선 만들어 나라 지킨 이순신나무
훤칠해서 미인송, 속고갱이 누러 황장목
왜인들은 부러 하찮게 적송이라 불렀지만
우리 모든 이름을 잘못 바꾼 무허가 작명꾼들
사람이 아름드리나무보다 더 무겁다
한국의 집을 짓는데 금강송이 대세였고
가장 큰 집 광복의 집은 실한 목숨이 들어
독립삼남매 안중근 유관순 윤봉길과
많은 순국영웅이 기둥으로 받치고
별 같은 독립투사들은 서까래로 들보로
평생을 무겁게 독립을 짊어진 백범 김구가
굵은 먹글씨 안고 대들보로 올랐다
누구를 기둥 서까래 들보로 바꿔도 되지만
따로 단청 안 붙여도 이미 피로 붉은 목재들
영화로다 소나무 같은 조국의 아들딸들아
문화재 목수나 국보급 배무이들도
금강송 만질 때 맨손으로 끌을 치는 것은
이 겨레 혼과 힘줄이 깃든 나무라서
신령한 마음을 촉꽂이로 벼리는 것이다
23.위대한 어머니상 시상식
겨레시인 성재경
하늘나라에 멋진 시상식이 열렸어요
가장 위대한 어머니 세분을 선정하여
최고의 영예와 영원한 찬사를 드리는
단 한번 처음 제정된 큰상 이었지요
구름처럼 응모자가 몰려들었고
백 명 심사의원이 삼년 걸친 논쟁 끝에
최종 여섯 분으로 압축 되었어요
아들을 위해 이사를 다닌 맹자어머니
불 끄고 떡을 썰었던 한석봉어머니
현모양처로 아들을 교육한 이율곡어머니
모두 당연히 기대했지만 쓴잔을 마셨어요
영광의 얼굴을 공개하면 아마 무서울걸요
왜놈과 전투 중 자주 찾아오는 아들에게
장수는 마땅히 나라를 지켜야 한다며
엄하게 꾸짖던 이순신어머니 변덕현여사
왜놈 흉수를 쏴죽이고 사형 받은 아들에게
항소하지 말고 대한인으로 죽으라던
서릿발 편지 안중근어머니 조마리아여사
밀정의 총 맞고 죽다 살아난 아들에게
왜놈 총에 맞지 않음을 부끄러워하라며
되레 훈계하던 김구 어머니 곽낙원여사
아들의 죽음이 자기 죽음보다 더 아프고
자식이 떠나면 세상이 없어짐을 알면서도
조국을 위해 사랑 제물 드렸던 어머니들
소름끼치도록 공정한 심사로 결정됐는데
끝내 수상을 거부하여 하늘도 울었답니다
24.어머니의 강
겨레시인 성재경
생각하면 눈이 붓고 목이 붓고 얼굴이 붓는
강물 따라 여윈 손 휘저어 오는 어머니
해주옥에서 인천옥까지 너댓 순검들에게
죄인이 되어 끌려가는 스무 살 아들
수 백리 산길 물길을 힘겹게 따라오시며
손 발 보다 가슴이 먼저 부르트던 어머니는
달빛도 없는 나진포 뱃전으로 나를 끌며
왜놈에게 죽느니 맑은 강물에 함께 죽자
낮은 속삭임 우렁우렁 천둥소리로 들려왔다
진남진 건너편 치하포 밥집에서
한복 속에 칼을 숨긴 쓰치다를
국모를 시해한 미우라나 공범일 거라고
칼날을 피하고 주먹으로 패죽이던 날
국모의 원수 갚기 위해 일인을 죽였노라
나는 백운방 텃골 김창수노라
붓글씨 포고문을 길가 벽에 붙여놓고
피 뭍은 손 당당히 집으로 돌아간 한 낮
문지방 부여잡고 속울음 우시던 어머니
그때부터 조국의 강물은 나를 만나면
메마른 어머니의 입술로 울었다
그때부터 어머니 젖줄 같은 강을 만나면
나는 피 묻은 입술로 강물을 울었다
삼천리 피돌기로 흐르는 동맥 정맥 실핏줄
독립 될 때까지 아니 광복이 된 뒤에도
어머니는 손 흔들며 강물에 섞여 흘렀다
25.등뼈가 휘었다
겨레시인 성재경
한국호랑이로 엎드려 웅크린 백범선생
등뼈가 초승달처럼 휘었다
평생을 조국에 바친 서러운 훈장이다
우리나라 요즘 지도를 보고 있노라면
산맥과 긴 강들이 활처럼 굽어있다
백두에서 대간 정간 13개 정맥을 타고
두류 금강 설악 오대를 지나 태백산
남쪽으로 달려 소백 속리 덕유 지리산
바다를 맨발로 건너서 한라에 이르러
목뼈 등뼈 꼬리뼈 12 경락 365혈
홍익인간의 튼실한 골격에 급소를 숨기고
두만강 압록강 대동강 한강 금강 낙동강
어머니 젖줄 같은 강들을 품었지만
외부 침략과 내분으로 달팽이 된 등뼈
청청한 준령 하늘을 받드는 영봉들이
신경준의 산경표, 김정호 대동여지도에서
신령한 뿔을 세워 별을 만지고 있거늘
겨우 14달 한반도를 둘러본 일본 학자
고토 분지로의 조선산맥론을 따라서
마천령 낭림 부전령 태백 소백산맥
이 어찌 하찮고 낯설은 이름인가
하여 우리 뼈들은 소라처럼 말려들고
이 나라 영웅들은 죄다 등뼈가 휘었나니
왜놈도 공산당 사회주의도 밀쳐내어
굽은 척추 힘 있게 바로 세워야 한다
26..도롱섬
겨레시인 성재경
내 고향은 평양성 대동강변 봉상도
도롱섬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아기 섬
서당에서 돌아오다 얕은 강가 이르면
벌거벗고 뛰어들어 멱 감던 마을
넓적한 조약돌 골라 물수재비 뜨다가도
외양간 소 몰아 쇠꼴 먹이던 추억
순흥 안씨 안향의 후손으로 선산은 동촌
일곱 살 노내미집 어린 셋째를 남겨놓고
아버지는 왜 그리 서둘러 가셨는가
둘째 형도 떠나고 큰 형 치호 누이 신호
숙명적 가난에 시려오는 유년의 꿈
할아버지 국수당에서 천자문 배우다가
노남리 심정리 서당 길 걸은 것은
언젠가 조국을 위해 쓰여 질 기초학문
동네사람들에게 책을 읽어 주었다
홍길동전 춘향전 심청전 토끼전 흥부전
사람들은 내 목소리를 숨 죽여 들었고
떠돌이 방물장수나 평양 장사꾼 얘기는
우물 안 나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코쟁이 양놈, 되놈 비단장수, 왜놈 게다짝
가끔씩 무시무시한 세상 이야기도 들었다
제너럴셔먼호, 홍경래 난, 일본인의 수탈
내 고향 강마을 섬마을 시절 이었다
27.실향인
겨레시인 성재경
고향을 떠났다고 실향인은 아니다
내 조국 안에 살고 있으면
억지로 고향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서툰 눈물짓는 망향인일 뿐이다
지금은 북쪽이 고향인 사람들
지척에 부모형제 두고도 만나지 못하는
통치가 달라서 갈 수 없는 머나먼 곳
눈물도 메마른 그들이 실향민 이지만
한 세기 전 우리 모두 조국을 빼앗긴
침샘마저 갈라지는 실향민 이었다
어떻게 그리 쉽게 나라를 잃을 수 있는가
전쟁에 져서 넘겨준 것도 아니고
빚에 못 견뎌 팔아 치운 것도 아닌데
슬금슬금 배암처럼 기어 올라와
자박자박 오랏줄 조이듯 나랏목 조이고
기회주의자 탐욕자 매국노 앞잡이
선무당 널뛰듯 날뛰었기 때문이었을까
우리 민족에게 흐르는 실향인의 피
그 피를 새롭게 수혈하려 죽어간 선열들
안중근 유관순 윤봉길 김구 김좌진
아 겨레의 스승 안창호와 수많은 분들
실향민을 이끄는 참한 선장들 이었다
28.발렌타인데이
겨레시인 성재경
그런 날은 없어져야 한다
그게 어려우면 날짜를 바꿔야 한다
삼백육십오일 중에서 하필이면 2월14일
그날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
우리나라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
러시아와 동청철도를 협약하기만 하면
영구히 한국을 지배할 야심에
하얼빈역 안중근의 단총이 불을 뿜었다
명중 명중 명중 지구에서 사라져라
그렇게 1909년은 비장하게 흘러가고
1910년 말도 안 되는 일본식법정에서
따앙 따앙 따앙 사형선고 망치소리
우리 영웅 안중근 사형이 선고되는 소리
그날이 두려운 일본 사람이
달콤한 초콜릿데이를 만들었다
영원히 영원히 혼까지 묻어버리려고
악마의 유혹일을 만들었다
슬픈 전설의 수도사 발렌티노여
로마 황제의 금혼령을 어기고
사랑에 빠진 남녀를 결혼시켜 사형당한
그 아픔이 어찌 일본의 상술로 갔는가
원뜻과 아무 상관없는 일본인의 간계
나라 구한 성인을 기억하는 날로 바꾸자
29.이상촌
겨레시인 성재경
도산 안창호가 만들고 싶었던 이상촌
파라다이스 유토피아 샹그릴라 아니고
이상향 무릉도원도 아닌 모범촌
신선처럼 모여 사는 것이 아니라
농사짓고 훈련받는 독립전진 마을
상해 만주 몽고 아시아 여러 지역에
이상촌을 그렇게 갖고 싶었던 뜻은
일본의 침략야욕에서 벗어나고파
맞싸울 최소 단위 군락을 만드는 것
그것이 어찌 숨겨진 비경 이었겠는가
일본군이 위협하고 중국인이 방해해도
밤하늘 무수한 별자리처럼
독립이 바탕에 깔려 있는 부락 있다면
일본군들도 함부로 날뛰지 못하고
개척민들도 무참히 죽진 않았을 텐데
가족처럼 모여 사는 아름다운 터
함께 웃고 함께 웃는 사랑 마을은
지금도 우리가 가꿔가야 할 이상촌
몇 백 년이 지나도 변함은 없으리
우리가 내 나라에서 살고 있는 한
30.도산의 꿈
겨레시인 성재경
도산이 꿈꾸던 세상을 만져 봤어요
일본에게 빼앗긴 나라 되찾아
마음껏 배우고 힘을 길러서
전쟁과 기아 질병에 시달리는 인류에게
무한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라
선조들의 지혜로 홍익인간이 사는 나라
다시는 침략 당하지 않고 튼튼한 나라
그런 나라를 꿈꾸고 있었어요
도산의 꿈은 늘 흥건한 눈물에 젖어
한시도 마를 날 없었던 진흙탕길
사람들이 말하길 꿈은 이루어진다 했는데
도산이 떠나고 수십 년이 흐른 지금
그 꿈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해방도 되고 독립도 되었고
선진국들과 어깨를 견주며 치솟는 나라
넓히고 뻗어나가고 풍요를 이룬 나라
자유와 정의 질서가 회복되어 가는 나라
그러나 세계에서 하나 남은 분단국
통일의 소원이 자꾸만 늘어지고 희미해져
아직도 허리 잘린 불구로 사는 나라
다시 전쟁의 포신을 닦는 이웃 나라들
정신 바짝 차리고 대비하라는 뜻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