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고군분투기
학교의 유일한 의료인이자 교사인 내게 주어진 법적 업무는 “학생 건강관리와 보건교육”으로 교육 지원 파트이다. 몸이 아파 보건실을 방문하는 아이들을 처치하고, 질병 예방을 위한 활동과 보건교육, 성교육을 전교생 대상으로 해야 하니 주 업무를 잘 해내기도 벅찬데, 그 외 ‘건강’이라는 일상의 삶을 아우르는 영역의 업무가 배정된다. 그 영역에서 발버둥 치다 보면 보건교사는 주로 세 종류로 나누어진다. 팔자에도 없는 싸움닭이 되어 세상과 벽을 쌓고 사는 사람, 아무 문제 일으키지 않고 뭐든 잘해내는 만능인인척하는 사람, 마지막으로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에 희망을 걸고 매일 새로이 태어나는 내공을 가진 사람.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옳은지 정답은 없다.
최근 환경문제가 대두되며 미세먼지의 폐해에 대처하기 위한 공기질 관리 업무가 신생되자 ‘건강’과 관계있다며 대부분 보건교사에게 미뤄졌다. 매뉴얼을 보면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어마 무시한 업무이다. 일단, 매일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여 고농도시 피해예방을 위해 농도 수치와 대처방법을 알리고, 학년 초 파악한 미세먼지 고위험군 학생을 위한 약품 등을 점검하며 조치사항을 보고한다. 매년 같은 연수를 의무로 받고, 수시로 교육하고, 각 학급에 공기청정기를 비치, 정기적으로 필터관리하며, 실효성이 있는지 공기질 검사를 실시하여 그 결과를 제출한다. 일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지시와 감독을 통해 실시했다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보고로, 문제가 발생하면 학교책임일 것이 뻔하다. 자유자재로 흐르는 공기를 막을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이기에 내 어깨에 매달린 ‘공기질 관리자’라는 무거운 추가 그저 부담스럽기만 하다.
작년부터 이어오는 코로나19로 인한 업무도 그랬다. 국가적 비상사태 선포였음에도 “감염병 관리”라는 명목으로 마스크, 손소독제를 학생 수에 맞게 구입해 일정량 비치하거나 배부하는 작은 것부터 시작해, 열화상카메라 설치 및 기기 점검, 자가진단시스템 관리, 매일 아침 등교학생 발열측정, 학교생활 중 사회적 거리두기, 각 교실 및 공동구역 일상소독, 온라인 교과서도 없는 보건교육 위한 교육 콘텐츠 제작 등 누가 봐도 과한 업무임에도 뺌 없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교내 확진자라도 발생되면 그야말로 총알받이다. 보건당국과의 협조가 긴밀히 되지 않을뿐더러 다들 한 발 뒤로 물러 선채 보건교사만 바라보고 있으니 한 개의 몸으로는 아무리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해도 그냥 시간에 끌려 다니는 느낌이다.
업무의 과중이 기사화되자 교육부와 시에서 학교 현장에 방역지원인력을 배치해주는 정책을 폈지만 현장의 흐름을 읽지 못한 탓으로 행정업무까지 통으로 보건교사에게 부과되었다. 지원인력을 위한 공고를 내고, 서류전형을 거쳐 면접을 보고, 범죄경력조회 등을 통해 채용하면 업무 계획과 근태 관리, 매월 급여 계산까지 다 해야 하니 업무분장으로 학교 내 갈등을 불러오고, 일부 학교는 행정업무 과부하가 두려워 지원인력을 신청하지 않기도 했다. 업무 편중에 관한 기사가 한 번 나가면 “코로나19 업무담당자에게 과한 업무 쏠림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이라는 문구가 들어가는 공문이 한 장 내려오지만 업무담당자에게 도달 전 관리자가 편철해 버리면 끝이다. 현장에서 해낼 수 없다고 학교마다 사직하고, 병가내고 들어가는 보건교사들이 많아도 이 시스템은 개선의 여지가 없다. 이야기를 들어 지도하고 관리해야 할 부서가 위에 없으니 현장을 고려한 정책은 제로인 셈이다. “힘든 거 다 알아. 그래도 어째? 이 놈의 코로나가 얼른 지나가야지.”라며 공감하는 척 버팀을 강요한다. 힘없는 약자니까. 남의 일이니까. 더 깊이 알려들면 귀찮아지니까.
그럼에도 포기 않고 나처럼 어느 정도 경력이 된 보건교사는 ‘거짓 보고’아닌 ‘일을 실효성 있게 하고 싶어서’라는 이유로 큰 덩어리의 업무를 세분화하여 나누자고 건의하지만 쉽지 않다. 소통의 장을 펼치지만 다수를 대상으로 한 싸움닭이 되기 십상이다. 소통이 잘 된다면 행정실, 교무실과 각 학년부장, 급식실, 보건실 등으로 업무가 나뉘어 조금 더 촘촘히 챙기지만 대부분 한바탕 진흙탕 싸움이 일어난 후 ko패 당하여 보건교사 혼자 총괄하여 그야말로 너덜너덜해진 상처투성이 마음이 더 다치지 않도록 보건실을 수동적으로 운영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 몫으로 돌아온다.
조용히 일 처리되는 학교의 비법을 물으면 대개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선생님, 그런 일로 신경 쓰는 게 더 힘들지 않아? 해낼 수 없는 일을 그렇게 열심히 일해 봤자 성과급은 b인걸. 난 b급 교사만큼만 하고 살래.” 그런 학교는 대체로 아예 아무 일도 하지 않거나, 항목 전체를 “0”로 체크한 체크리스트에 5월, 6월, 7월 이렇게 월만 바꾸어 근거를 생산해낸다.
보건교사는 교육의 성과를 수치화하여 등급을 매기는 교원성과급 내에서 주로 가장 하위등급인 b를 받는다. 교육이 주된 조직 내 구조상 지원파트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자조하지만, 학교에서 “어떻게 담임교사보다 위에 있을 생각을 해?”라고 명확히 선 긋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눈물을 찍어내는 후배 앞에서는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그들은 쏟아지는 업무로부터, 보이지 않는 차등에서 올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보고나 수동적 대처를 통해 고상하게 일처리 잘하고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척 하는 보건교사가 된다. 차마 그럴 수 없다 고집부리는 나 같은 보건교사는 점심급식도 자주 포기하고 그간 쌓아온 실력으로 수당 없는 야근도 버텨낸다. 맘 나눌 사람을 찾아 성토하고, 스스로 쌓인 울화를 게워내고, 눈물 찍어 내가며 잠들다 다음날 날이 밝으면 ‘새로운 태양아래 새로운 날’이라는 희망으로 버티며 살아가지만 최근 들어 대상없는 분노가 자주 일어 자기정화 과부화 상태이다.
메인들이 서브라 부르는 덜 중요한 자리에게는 고유한 업무 외에 보이지 않는 일이 쉽게 배부되고, 부당함이 당연시 자행되며, 그에 따른 어려움은 늘 늦게 알려지거나 개인적인 일로 묻힌다. 참아 해결될 문제는 아니므로 나 역시 저리 버텨내는 게 능사가 아님을 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주변에 부당함을 알리고, 새로운 일을 더 주는 대신 기존 일을 덜어내거나, 새 일을 해낼 인력을 보강해 달라 주도적으로 요청해야 하지만 하나같이 귀를 막고 있으니 어디다 대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마른침만 삼킨다.
첫댓글 이야기만 들어도 머리가 어질어질합니다. 보건교사면 보통 학교에 한 명 아닌가요? 한 명이 어떻게 저 일을 다하죠? 허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오실 것 같아요. 말그대로 고군분투네요. 인력이란 건 비상시에 맞춰 채용해야 하는데, 한국은 늘 가장 일이 없을 때 기준으로 채용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이런 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 덜 일하고 덜 벌면서 살고 싶네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초록이님을 통해 보건교사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됩니다. 르포 읽듯 생생하게 봤어요. 신문에 기고하셔야 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