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두 집 살림 / 백현
남편은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서 동네 헬스클럽에 간다. 30분쯤 뛰고 나서 몸을 씻고 집으로 와 출근할 준비를 하고 부모님 집으로 간다. 우리 집에서 200미터쯤 떨어진 작은 아파트에 두 분을 모셔서 온 지 12년이 조금 넘었다. 어머니가 준비해 놓은 아침을 같이 차려서 아버지와 셋이 식사하고 사과 하나를 깎아 나누어 먹고, 가끔은 커피 믹스까지 같이 마시고 출근한단다.
이 일의 시작은 내 발령 때문이었다. 2017년 장흥 대덕으로 가게 되어 통근이 힘들어졌다. 이미 아이들도 대학에 다니느라 집을 떠난 터라, 우리 부부도 홀가분하게 각자도생하기로 하였다. 한 2년이면 끝날 것으로 가볍게 생각했던 주말부부 생활이 길어지자 아들이 부실하게 식사한다고 걱정하기 시작하였다.
두 어른의 마음을 달래려고 아들은 아침을 먹으러 갔다. 저녁보다 아침 식사 시간을 맞추기가 더 쉽겠더란다. 이것도 처음에는 쉽지 않았단다. 출근 준비를 다 해서 들르는 것도 번거롭고, 아침에 깨워 주는 사람이 없으니 늦잠을 자서 말이다. 주말과 방학을 빼고 일주일에 두세 번쯤 아침밥을 같이 먹곤 했다.
일 년쯤 지나서 남편이 방학에도 아버지 집에서 아침을 먹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가 자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시아버지는 그런 줄 알지만, 어머니는 귀찮으실 거라고 했더니, 아버지가 식사를 잘하시니 어머니는 더 수월하고 좋다고 했단다. 그리고 자기가 설거지도 하고 상도 같이 차리고 더 잘하겠다고 했다. 셋이 모인 단란한 아침 밥상이 참 좋겠다는 말로 허락했다.
4년간의 객지 생활을 끝내고 집에서 통근이 가능한 나주로 발령받았다. 발표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남편이 앞으로도 계속 아버지 집에 가서 아침을 먹으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앞으로 이런 날이 얼마나 될지도 모르니 그러라고 했다. 생선과 고기, 제철 특산품을 자주 들려 보내는 것으로 내 나름의 몫을 한다.
그들은 단순한 아침 한 끼가 아니라 일상을 같이하는 끈끈한 운명 공동체이다. 서로의 일상을 쫙 꿰는 것은 물론이고, 할 수 있는 모든 참견을 다 한다. 어느 날은 한 시간쯤 조퇴하고 와서 독감 예방 접종하러 모시고 가고, 또 어머니 모시고 양동 시장에 오리고기, 농산물 공판장에 열무랑 과일 사러 간다. 서리가 자주 끼는 김치냉장고 수리 신청도 하고, 목욕탕에 미끄럼 방지 테이프를 부치는 것으로 모자라 목욕탕 타일을 바꾼다.
자기 몸이 고달프고 힘들 텐데도 내색하지 않는다. “그렇게 누가 시켰냐?”라는 말이라도 나올까 봐 그러는 것 같다. 두 어른은 점점 늙어 가고 그는 더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품도 더 들겠지만 쇠락해 가는 부모님을 보는 마음이 아플 것이다.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어머니를 온몸으로 돕는 남편의 두 집 살림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