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지 않는 일 / 이미옥
휴대폰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아니 뜨려고 애를 쓴다. 누워서 5분을 가늠하다 벌떡 일어난다. 남편은 출근했는지 보이지 않는다. 큰아이를 깨우고 아침으로 뭘 먹을지 묻는다. 대부분 빵이나 시리얼 또는 떡 등 간단한 것들이라 아침준비는 금방 끝난다. 작은아이는 먹는 것보다 잠이 우선이라 내버려 둔다. 아이들이 등교하고 나면 커피를 마신다.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모두 빠져나간 공간을 돌며 정리를 시작한다. 청소기를 돌리고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설거지를 한다. 긴 옷을 꺼내 달라는 큰아이 말이 생각나 초여름에 넣어 둔 옷을 정리함에서 서랍장으로 옮긴다. 작아지거나 입지 않는 것들은 한쪽에 모은다.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을 가장 빨리 아는 게 옷장이 아닐까 싶다. 버릴 옷들을 현관에 쌓아 두고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세탁실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나를 부른다. 아, 못 들은 척할까.
집에서 공부방을 하고 있어서 집안일은 거의 내 몫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라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남편은 가끔 쓰레기를 버리거나 빨래를 개는 정도이고 아이들은 어쩌다 하는 설거지가 다인 거 같다. 예전에는 안 도와주는 남편에게 화를 내거나 시키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언제부턴가 그마저도 하지 않는 거 같다. 며칠 전 저녁에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앞집 아저씨를 만났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맨손으로 열심히 씻고 있었다. 대단해 보였다. 결혼 초 남편은 다른 집안일은 다 하겠는데 비위가 약해서 음식물 쓰레기는 못 버리겠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하나둘 남편이 못 하는 것들이 늘어갔다.
집안일 중 삼시 세끼를 챙기는 게 제일 힘들다. 그나마 점심은 다들 밖에서 먹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결혼하고 일찍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는 게 제일 고역이었다. 나는 유독 아침잠이 많아 남편에게 밥을 해주는 일이 버거웠다. 남편에게 조용히 아침은 먹고 다니는지 물어보는 시어머니가 무서워 일찍 일어나 보려 했지만 시계 알람에 지는 날이 더 많았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더 힘들어졌다.
집안일은 내가 다하니 아침밥 정도는 알아서 먹고 다녀야 하는 거 아니냐며 큰소리치다가도 시어머니가 오면 새벽부터 일어나 국을 끓여 남편에게 밥을 준다. 늘 그랬던 것처럼. 남편은 피식거리며 밥을 먹는다. 얄밉지만 참는다. 아침밥이 가정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니.
결혼 전에 꿈꿨던 삶은 현실에 부딪히며 자꾸 줄어들었다. 이제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는 커 가는 두 딸에게 반짝이지 않는 일을 빛난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포장을 풀어 속을 보여 줘야겠다. 어쩌면 다 봤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