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07(금)
루카 4,1-13/마태오 4,1-11
마르코 복음 1,12-13
(루카 4,1-2)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40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
시장하셨다.
묵상-
황량한 사막에서 들짐승 소리를
벗 삼아 홀로 죽어나갈 듯한
고독과 싸우며 40일 동안 단련한
세례자 요한에 이어, 이번엔
예수님께서 광야로 불려 나가신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태중에서부터
맺어진 이른바 뱃속 소개팅으로
정(情, 성령의 교감)을 주고받더니,
혹독한 광야 체험 역시 비슷하다.
이스라엘 순례 갔을 때 와디럼 사막에
갔었는데, 거의 인적이 없는 광야였다.
자연이 만들어낸 괴암절벽이
어마무시한데다, 밤이면 하늘에서
별이 쏟아질 것 같아 우산을 쓸 판!
마른 풀들이 사막을 더 황량하게 하고,
밤이 되면 납량특집 영화 찍기에 딱이다.
어디선가에서 들려오는 들짐승들의
울음소리가 꽤나 을씨년스러웠다.
소름이 돋을 만큼 고독하고
무섭고 막막한 기분이 들었던 그곳,
세례자 요한은 그런 사막에서 40일을
보낸 거다. 담대한 사람이다.
예수님께서 오르신 광야를
먼발치에서 바라봤었는데,
사막과 비슷한 분위기의
가파른 산 위였던 것 같다.
자그마치 40일, 한창 활동할
나이 30대 초반, 하루 네 끼
먹어도 시원찮은데 단식이라니!
그런데 루카 복음에서만
단식을, 아무것도 잡수지지 않아!
라고 표현했다.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고,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한다.
마태오, 마르코, 루카 복음 중,
루카 복음이 내 마음에 당첨된 이유다.
나에게 꽂힌 세 단어가 있다.
‘성령, 유혹, 시장하셨다‘ 다.
우리는 일상 안에서 때때로
광야의 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예수님이 받으신 세 가지 유혹,
즉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
세상과 사람을 지배하고픈 권력욕,
인정받으려는 명예욕 등,
내 영혼을 광야로 만드는
유혹의 뿌리를 지닌 까닭이다.
그런데 이 과정들이 우리 인간의
잘못으로만 발생하는 게 아니라는 것,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나간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처럼
우리 역시 주님께서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또 어떤 사명을 주고자
하실 때, 허락하신다는 것이다.
이때부턴 ‘유혹’이라는 단어가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우리에게
달려든다. 유혹은 언제나
‘결핍감’ 안에서 꽃피기 마련,
40일 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
‘시장하셨다.’라고 하지 않았나.
뭔가 충족되지 않은 결핍이
나에게 힘을 발휘할 때,
예를 들면, 생존에 대한
두려움을 촉발시키는 돈에 대한
결핍, 돈이 떨어지면 다들
돈 마귀에 시달린다고 하잖던가.
영적자존감의 결핍 상태인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 역시
마귀가 좋아할 유혹의 타깃이다.
힘 있는 자에게 나의 주도권을
빼앗기거나 명예를 잃어 아무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된 듯이
느껴질 때, 내 마음에선 온통
들짐승 소리가 울어대고,
누구하나 기댈 곳 없는 황량한
들판에 홀로 버려진 것처럼
외롭고 두려워지는 것이다.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
시장하셨다.‘ 와 같은 상태가
되어본 적이 종종 있었을 터,
그럴 때 나는 사막이나
산 위에 있는 광야로 나가는가.
아니면 결핍을 채우려 세상으로
나가 돈, 명예, 사람을 얻으려
안달복달했었던가.
유혹의 파도가 너무 세차서
죽을 것 같더라도 밖(세상, 사람)이
아닌, 내 안의 광야로 들어가,
그곳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과 함께
겪어낼 수 있는 용기를 청해야 한다.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직면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인식할 수 있다면,
헛된 고통이 아닌 값진 광야가 될 거다.
나는 지금 시장 끼를 느끼고 있는가?
그렇다면 어떤 결핍이 나를 그리
만드는지, 그래서 사탄의 유혹을
받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겠다.
언제나 용기를 주시는 주님!
광야에서 홀로 기도하신 당신의
고독을 묵상하며, 제 안에서도
진정한 광야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쌍둥이처럼 따라다니는 결핍과
유혹의 시련 안에서 항상,
성령께 이끌려 광야로 나가신
당신의 고독을 기억하게 하소서
첫댓글 내 안의 광야로 들어가 하느님현존 안에 머무르기. 유혹과 결핍에서 자유로워지기가 가능한 길! 묵상 글, 잘 읽고 마음에 담겠습니다.
박지현 요셉피나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