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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서신 4강 사귐의 결과 ~ 5장 세상 이기는 믿음
26.07.30(목)
요한일서 5장 3절에서 5절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오늘 요한서신서 네 번째 강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요한 서신서 네 번째 강의는 요한 일서 5장을 강의하는 것입니다.
요한 일서의 결론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오늘 이 강의를 시청하시면서 세 가지 정도의 포인트를 잡고서 시청하시면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귐이라는 관점으로 본문을 관찰하고 또 파악하는 것입니다. 또한 일서의 전체의 그런 핵심어가 하나님과의 사귐이었기 때문에 그 사귐의 결과가 어떠한 것인지 내용을 그런 관점을 갖고서 살펴보는 것이고요.
두번째는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파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성되고 사귐이 시작될 때 그때 어떠한 결과들이 나오는가 그것을 요한 1서 5장에서 정리해 주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유익한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과 사김을 통해 살아있는 신앙과 확신을 갖도록 한다. 어떤 것을 공부하고 인지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기 위한 과정이죠. 거기서 머물면 안 됩니다.
그것이 목적이 되지 않아야 됩니다.
오늘 성경을 대하면서 하나님과의 사귐의 결과가 우리에게도 나타나고 또 그 결과가 더 풍성해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가 그런 적용점까지 생각하시면서 시청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자 하나님과의 사귐이 우리에게 가져오는 결과 하나님과 우리랑 사귈 때 하나님은 사귈 때 사귐의 이유가 있어요.
그것이 사랑이고 또 선하심과 인자심의 성향을 뜁니다. 맹목적인 사랑이나 맹목적인 살김이 아니에요.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대상이 뭔가 부족하거나 뭔가 주고 싶은 게 있거나 어떤 경우에 더 온전한 자리에 도달했으면 좋겠다라는 바램이 있겠죠.
완전하지 않은 이상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사귀시면서 그 일들을 만들어 가시죠.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과의 사귐의 결과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것들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또 하나님 편에서는 하나님이 승리하신 것을 우리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것을 누리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들이 있겠습니다. 그러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 아느니라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자 믿음과 하나님의 사랑과 계명 요 세 가지를 개념을 묶어서 설명을 하기 때문에 약간 어려울 수 있는데, 이겁니다.
이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됐을 때 믿음이라는 것은 어떠한 인격을 나의 주인으로다가 영접하는 것이면서 믿음의 자람은 이런 것이에요. 사김이라는 입장에서 믿음을 해석하면 믿음은 하나님과의 사귀면서 하나님을 많이 경험하는 것이 축적되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거기서 자라는 게 뭐냐하면 옛날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됐을 때 필연적으로 오는 게 그의 말씀을 높이고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게 되면서 그 계명을 순종하게 된다.
그러니까 하나님하고의 사귐의 결과를 여기서는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된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결과는 100점짜리를 향해서 가나 20점 30점 40점 그런 단계 단계의 그런 결과를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점진적인 결과들이다. 완전한 결과를 향해서 가나 하나님과의 사귐이 이루어질 때 일어나는 것들이죠. 그중에 가장 맨 먼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된다. 하나님과의 사귈수록 그런 내용을 맨 먼저 하고 있습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나를 사랑하는지라고
사랑을 하게 돼서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옛날보다 계명을 지키는데 어떤 변화가 생기죠 그 무게는 똑같을 수 있으나 어떤 것을 지키고 할 때에 관계에 따라서 그 똑같은 객관적인 내용일지라도 무게감 중량감이 다를 수 있다. 라는 거예요.
오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인데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다.
옛날엔 무거웠어요. 사랑 없이 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건 엄청나게 무겁죠 그러나 사랑하는 자의 말을 들어주는 것은 똑같은 무게일지라도 가볍게 느껴질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지키는 이 무게는 그 자체의 중량감보다는 관계에 따라서 가벼울 수도 있다. 또 굉장히 무거워질 수도 있다.
이렇게 사귐의 현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옛날에는 어떻게 다 지켜 막 이렇게 말했던 것을 즐거워하면서 기뻐하면서 영광스럽게 지키는 그런 굉장히 중요한 결과들이 사귐을 통해서 나타난다
두 번째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 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이겨라 이런 표현들이 유한일서에 있어요.
신자들에게 세상을 이겨라 너희들이 세상을 이길 수 있다. 이렇게 말했을 때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에요.
세상에 발 붙이고 세상에서 숨을 쉬고 생활하지만 우리의 소속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침투해 들어온 자처럼 세상을 이기라고 말하고 있고 그 다음에 하나님과 사귐을 통해서 너희들은 세상을 이길 수 있다. 엄청난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긴다 그렇게 말했어요. 세상이 만만하지 않잖아요. 세상을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사귀면서 우리가 점점 더 세상을 이기는 자들이 되어가는 것이죠. 물론 여기서 하나님께로부터 난자와 세상과의 관계를 먼저 살펴본 다음에 어떻게 세상을 이기는 건지 그 내용으로 좀 들어가도록 합시다.
세상과 사람들과의 관계는 세상을 사랑하고 거기에 추종을 해요. 그러니까 세상이 짜여놓은 체계나 시스템이나 가치관이나 이런 것을 그냥 이렇게 지배를 받으면서 가는 것입니다.
성경의 입장에서 보며는 그들은 그거를 순응한다라고 이렇게 얘기할 수 있으나 성경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그것은 세상의 지배를 받으면서 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특성은 요한일서 2장 16절에 유명한 말씀 나왔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이게 바로 세상을 움직이는 특성들입니다.
이 욕망들은 중력과 같아서 모든 사람을 지배하죠. 그래서 우리 안에 이기심이라는 것 욕심이라는 것은 엄청난 흡입력이 있어요.
이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요. 여러분 중력을 이기려면 대기권 상층권을 뚫고 나가야 될 힘이 필요하잖아요.
세상 사람은 이런 힘이 없기 때문에 세상을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추종하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는 것이고. 그게 잘못된 줄도 모르고 그냥 살아가는 거예요.
그러나 중력을 지배를 받는 것처럼 욕망의 지배를 받으면서 세상은 흘러가고 있다. 이런 세상을 우리는 이길 수 있다라고 선언하고 있죠.
세상을 이긴다라는 의미는 뭘까요?
하나님의 나라를 핍박하거나 유혹하는 것을 이깁니다. 이때 인제 핍박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 핍박에 굴하지 않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 신앙을 지키는 것 그 자체가 이기는 것이고.
두 번째는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빛으로 사는 것입니다. 어둠의 죄의 유혹들 사탄의 어떠한 공격들 그것이 유혹이든지 핍박이든 여러 가지가 있겠고 죄를 짓게끔 하는 것들 그것을 이기는 것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 그 다음에 사랑으로 승리하는 것 뭐 이런 것들이 세상을 이기는 것이고.
이 세상 가치를 추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나라 가치를 추구하는 것 그것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세상을 이긴다라는 것은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죠. 말씀이 뭐예요? 하나님의 통치 질서이면서 통치 강령이거든요.
그것을 갖고서 세상과 충돌할 것들이 많이 있어요. 충돌을 하면서 거슬러 올라가는 것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욕심도 있겠고 세상적인 가치관들도 있겠고 사탄의 그러한 시험들이나 사탄의 공격들도 있겠죠. 믿음으로 이기는 세상 그러면 세상은 도대체 무엇을 이기는가 믿음으로 이긴다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뭐예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죠. 그 사귐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뢰가 계속 축적됐을 때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자랄 때 우리가 세상에 계속해서 끌려다녔던 우리들이 세상을 거슬러 가는 힘을 얻게 되고 세상을 이기고 세상에 하나님 나라에 그런 영향력을 끼치는 자들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진리 그것으로 우리가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엄청난 능력이 없으니까 생명이 없으니까 순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고린도 전서에도 말한 바가 있죠.
하나님은 사귐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했던 것 중의 하나가 세상을 이기는 승리를 안겨주길 바랬죠
4~2강
자 세 번째는 하나님과 사귐을 통해서 얻어지는 결과들은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구원의 확신을 갖기 위해서 근거를 얘기해요. 왜냐하면 이 구원의 확신이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게 되잖아요.
그랬을 때 우리 행동만 봐가지고는 항상 헷갈리게 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이게 복음인데 그러면 믿는 것은 우리가 하는 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예수님이 진짜 구원자이시냐 그를 믿으면 정말 구원받는가에 대한 문제죠 그래서 예수님이 진자 구원자라는 것을 여기서 증거를 제시합니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세 증언을 하는데 물과 피와 성령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물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받은 세례를 의미하는데 그때 하늘로부터 말씀이 계셨었죠.
이런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여 내 기뻐하는 자니라 하시면서 예수님이 구원자인 것을 세례받을 때 증언하셨어요.
그 다음에 두 번째 이 피라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위한 그런 십자가의 죽으심이신데 예수님께서 구원자가 되신다라는 것은 그분이 우리의 죄를 처리하셨다라는 증거가 있어야 되는데
그 증거가 뭐예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서 우리의 죄를 다 해결해 주셨다 대신 갚아주신 사건 그게 피에 대한 증거고 그 다음에 성령께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계속해서 증거해 주세요. 우리 마음속에서 그다음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자라는 것을 성령께서 계속 증언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증언을 여기서 언급하는데 하나님의 증언은 굉장히 권위 있는 것이겠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예수는 구원자다 이렇게 증언하시면 그것으로써 모든 게 끝나는 것이니까요? 모든 토론이 끝나는 것이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보내진 내가 보낸 하나님의 아들이며 독생자이며 구원자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증언하신 것을 여기서 덧붙입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 증언으로서는 영생이 있음을 이제 통해 가지고 예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자인 것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내신 자인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죠.
오늘 요한복음의 요한일서에 주제절 중에 하나가
5장 13절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자 되신 분이고 그분을 통해서 우리가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받은 것을 알게 하랴 함이라.
이렇게 유한일서를 쓴 목적을 이야기해요. 13절에서 자 그래서 알게 한다라는 표현이 계속 이제 반복되는데 우리가 요걸 좀 정리를 하면서 넘어가는 게 좋겠어요.
이스라엘 사람들 그러니까 히브리적인 사고로 안다라는 것은 머리 지식이 아니고 헬라 지식이 아니라 경험적인 지식을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안다고 했을 때 확신이라는 것으로 바꿔서 보는 것이 더 이해하기에 편할 것 같습니다. 경험을 통해서 확신하게 되었다.
네 그 다음에 네 번째로,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좋은 결과들 중에 하나가 뭐냐하면 기도응답을 확신하게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하고 사귀니까 옛날에는 그냥 공식처럼 자판기처럼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인격적으로 사귀면서 기도를 더 알게 되고 그 다음에 그 기도 자체가 하나님과 사귐의 수단이었기 때문에 많은 대화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면서 이런 것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라는 그런 기도에 대한 것을 배우고 확신을 갖게 됩니다.
이건 굉장히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죠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하는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 아는 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니라 이거는 기도 응답의 결정판입니다.
여기서 들으신다라는 표현이 나오죠.
들으시는 들으시는 줄 안다 그냥 이렇게 히어링 한다라는 게 아니고 리스닝 하시는 거예요.
귀담아 들으시고 우리를 향해 마음이 열려 있어요. 그래서 이 자녀들이 나에게 뭘 구하나 늘 기다리세요. 하나님이 바쁘시기 때문에 귀찮아하거나 간과하신 적이 없습니다.
기도를 굉장히 귀하게 여기세요. 그래서 요한계시록 요한이 쓴 요한계시록에는 성도의 기도를 뭘로 표현해요. 금 대접에 받은 향로로다가 그 기도를 표현하죠.
그리고 금 대접은 엄청나게 귀한 것이고. 천사들이 금 대접에 기도의 향기를 담아서 보좌로 올라가죠 우리들의 기도가 이렇게 귀하게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의 말과 어떤 요구나 신음소리 하나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죠.
담대하다라는 말은 뭐냐 이게 담대하다라는 것은 확신하게 된다 담대함으로 나간다는 것은 확신을 갖고 나간다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때 이전하고 다르게 사귐의 기도도 하고 무엇을 요청하는 간구도 하게 되는데 마음속에 하나님이 내 말을 다 받아주신다 들어주신다라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도가 살아난다라는 것은 엄청난 은혜이며 특권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하기를 굉장히 요청을 해요.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께 하나님 기도하면 들어주세요. 제발요 알았죠 제발 좀 들어주세요. 이렇게 조르고 하나님께 간청을 해야 되는데 하나님이 오히려 우리보고 계속해서 기도하라 그러세요.
기도해라 명령도 하시고 권면도 하시고 부탁도 하시고 그 다음에 우리에게 정말 기도를 꼭 하라고 애원하듯이 하실 때도 있어요.
마치 아들이 미국에 유학을 가요 처음 가는데 부모님이 보내면서 뭐라고 말해요. 너 가서 어려운 일 있으면 혼자 끙끙대지 말고 꼭 부탁해 알았지 꼭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이렇게 하듯이 말입니다.
사랑은 이렇게 모든 것들을 바꿔놓죠 그게 기도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의 예를 제가 일부러 드리는 거예요.
왜냐하면 같은 요한이 썼기 때문에 일관성을 보이면서 기도 응답에 대해서 요한은 계속해서 우리의 기도를 격려하고 있고 기도 특권 활용해야 된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고.
그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시고 기도를 들어주시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그런 마음의 원함이시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다섯 번째는 죄를 이기게 된다라는 거예요. 여러분들 이거 할 때 좀 약코가 좀 죽죠 어떻게 죄를 이겨 그런데 저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요한 일서를 보면서 이 구절을 보면서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 죄를 용서받죠. 그런데 예수님은 용서 정도가 아니라 죄를 해결하러 오셨거든요.
지은 죄에 대해서 처벌하지 아니하고 없는 것처럼 다 용서하시는데 죄를 용서하시는 건 또 뭐겠어요. 뭘 원하시겠어요. 죄를 안 짓기를 원하시죠.
그런데 우리 성도들은 죄를 용서받는 것은 믿겠으나 어떻게 죄를 안 지어 이러면서 이렇게 말하죠.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다 지켜 어떻게 죄를 하나도 안 지을 수가 있어 이런 말을 하는데 죄를 짓더라도 그렇게 말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건 왜 그렇게 말할까요? 내가 죄를 지을 수도 있다라는 어떠한 방어 기지를 쓰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건 소극적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엄청난 발언을 하는 거예요. 죄를 이길 수 있다. 물론 여기서 죄를 이길 수 있다라는 것은 우리의 힘 갖고 되는 것이 아니죠.
그래서 죄를 이길 수 있는 이유 몇 가지 예를 들어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기 때문에 그 마귀의 일이라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죄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이고.
하나님께로도 난 자들이 죄를 짓지 않는 이유 그것은 하나님의 씨가 우리에게 있고 성령이 우리에게 있으며 그래서 말씀이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가 죄를 이길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죄를 이길 수 있다라는 것은 어둠의 영역에 있던 자들이 거룩한 영역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강조하는 부분이 있고 우리가 이것 때문에 현재 완료형으로 되어 있죠.
지속적으로 죄를 짓는 것은 우리가 이길 수 있다. 실수를 하거나 무지해서 이렇게 연약해서 짓는 죄들은 있을 수 있으나 지속적이고 의도적이고 이런 것들은 이길 수 있다.
그리고 이겁니다. 내가 이 죄는 짓지 않을 거야. 하면서 하나님께 부탁하고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그 죄를 이길 수 있다라는 거예요.
나는 죄 못 이겨 이렇게 패배주의로 가지 마시고 오늘 본문을 붙들고 죄를 이길 수 있다고 했으니까 성령님이 계시고 우리를 의지하면 져요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을 의지하고 갈 때 우리가 죄를 이길 수 있다라는 그런 자신감을 갖고 확신을 갖고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여섯 번째는 하나님께 속함을 안다 이겁니다.
하나님과 사귀면서 우리에게 굉장히 큰 변화들이 많이 있었지만 소속감이 분명해진다는 거여요.
우리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라는 것입니다.
소속감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데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근본적으로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소속돼 있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로 하나님과 사귀면서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알게 된다는 거예요. 경험적으로 알게 되고 확신하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이것이니 그러면서 우리에게 지각을 하나님께서 주셔 가지고 예수 그리스가 누구인지 알게 됐고 예수 그리스를 그래서 믿게끔 됐다.
예수 안에서 그것을 믿음으로 들어오게 됐다.
그런 얘기를 하고 그래서 여기서 예수 안에 들어왔다는 것은 구원의 총체적인 표현이에요.
예수 안에 있는 것이고. 예수님과 생명의 관계를 맺는 것이고. 그 다음에 구원을 누리는 것이고. 영생을 누리는 이 모든 것들이 예수 안에 있다라는 내용의 표현들이고 그 다음에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 삶에 이런 것들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첫째는 나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이 있음을 확신하는가? 확신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래야 우리가 안정성 있게 어떤 핍박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갈 수 있기 때문에 그렇고 누릴 수 있기 때문에 그렇죠.
두 번째는 나의 신앙은 구원의 교리를 넘어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친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가
요한 일서에서 계속해서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던 것이 뭐냐면 하나님과 관계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는가 이거였었죠.
마지막에서도 이 부분을 강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이 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김의 결과를 얼마나 풍성히 누리고 있는가 7가지가 있었는데, 어떤 것은 더 보완해야 될 것도 있겠고 어떤 것은 많이 간 것들이 있겠죠.
이것이 100점짜리가 되려면 아직 갈 길이 우리에게는 다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요한일서를 대하면서 이 7가지 결과들이 나에게 총체적으로 종합적으로 일어나고 있는가 이것을 점검하시면 우리 신앙에 엄청난 근본적인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요한 서신의 두 번째 서신 요한이서를 강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요한이서는 한 장짜리 서신이지만 그 내용이 사실은 굉장히 묵직한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요한 일서와의 관계도 있고 요한 삼서와도 관계가 있는데, 다음 시간에 요한 이서 한 장을 떼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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