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주차구역을 확보하자
살아가면서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질병이나 사고 그리고 노령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나 보조 기구의 도움 없이는 움직이기 힘든 때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장애인을 지원하고 배려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지난 11일, 기장에 거주하는 이진섭 씨는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을 차에 태우고 좌동재래시장 맞은편 ‘좌1동 공영주차장’을 찾았다. 그런데 주차장 내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이하 장애인 주차구역)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할 수 없이 일반 주차면에 주차하고 힘들게 아들을 내리고 태워야 했다. 그리고는 해운대 신시가지 중심지역 공영주차장에 장애인 주차구역이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해운대라이프>로 알려왔다.
본지에서 좌1동 공영주차장을 확인 방문해 보니 역시 장애인 주차구역이 없었다. 공영주차장이라는 이름이 무색한 것이다. 그래서 근처 NC백화점 후문에 있는 ‘도시철도 장산역 1번 공영주차장’도 가보았다. 부산시설공단에서 운영하는 곳인데 총 88면 중 장애인 3면, 임산부 3면이 조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좌동우체국 옆 ‘문화원 부지 주차장’에는 장애인 주차구역이 없었다.
해운대구청 담당 직원(749-4555)에게 문의한 결과 “좌1동 공영주차장과 문화원 부지 주차장에 장애인 주차면이 없는 것은 잘못”이라고 확인해 주었다. ‘해운대구 주차장 설치 및 관리 조례’에 의하면, 노상주차장에는 주차 대수 규모가 50대 이상인 경우 주차대수의 3% 이상의 장애인 전용 주차구획을 설치해야 한다. 구청 담당자는 빠른 시일 내에 좌1동 공영주차장 총 72면 중 3%에 해당하는 3면을 장애인 주차구역으로 조성하고 문화원 부지 주차장에도 같은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 아파트 단지에 제대로 된 장애인 주차구역 드물어
해운대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에도 법에 따라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이 설치되어 있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 등 편의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장애인 주차구역은 주차 대수 1대 기준으로 폭 3.3m 이상, 길이 5미터 이상이어야 한다. 하지만 해운대 아파트 단지 장애인 주차구역이 대부분 법 개정 전에 설치되다 보니 일반 주차구역과 면적과 형태가 동일한 곳이 많다. 이럴 경우 보행이 불편한 장애인이 휠체어나 목발 같은 보조 장비를 사용하려면 운이 좋게 바로 옆 주차면이 비어 있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동승 운전자가 있다면 주차하기 전에 주차장 통행로에 장애인을 내려놓고 얼른 주차하고 오면 되는데, 비가 오거나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이마저도 참으로 난감한 일이 되고 만다.
사실 해운대 신도시와 우동, 중동 지역의 건축한지 20년 넘은 아파트들은 대부분 주차면 부족을 겪고 있다. 주차면을 한 면이라도 늘리기 위해 테니스장 같은 체육시설을 없애는 곳도 있을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애인 주차구역 면적을 늘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장애인 주차구역을 법 규정대로 설치한다고 해도 일반 주차면 1~2개가 줄어들 뿐이다.
장애인 주차구역의 수요는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부산은 지난 3월 말 현재 노인인구 비율이 17.4%로 7대 특별시·광역시 가운데 가장 높다. 해운대구도 예외는 아니다. 그만큼 고령으로 인해 보행에 불편을 겪는 사람들이 급증할 것이다. 따라서 장애인 주차구역을 제대로 설치하고 관리하는 것은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 장애인 주차 스티커‘본인용’과 ‘보호자용’으로 구분
단순히 장애인 주차구역을 제대로 만드는 일뿐만 아니라 기존 장애인 주차구역의 위치나 진입로도 잘 정비해야 한다. 또한 주차 가능 표지가 있더라도 보호자용은 장애인이 탑승한 경우에만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할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위반 시 과태료 10만 원이 부과되며, 추가로 장애인 주차 가능 표지가 회수되고 재발급이 어렵게 된다.
장애인 주차구역이나 구역 양 측면에 물건을 쌓아두거나 그 통행로를 가로막는 등 주차를 방해하는 행위를 하면 무려 5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특히 장애인 주차구역에는 도로교통법 정차시간 기준인 5분과 상관없이 정차만 해도 법규를 위반하는 것이므로 주의가 요구된다.
장애인 주차구역은 비장애인에게는 3%의 양보에 불과하지만 장애인에게는 안전을 보장하는 중요한 장치이며,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 필수적인 시설이다. 장애인 이동권은 장애인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고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이다.
이제 성숙한 시민사회에서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의무다.
/ 신병륜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