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말에는 대한제국 우표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본 경찰로부터 모진 조사를 받곤 했습니다.”
한 원로 우취인의 증언이다. 이 무렵 대한제국 우표를 손에 넣고 싶고 대한민국 우표를 구하기 위해 틈틈이 서울 광화문우체국을 찾았던 우취인 몇몇이 안면을 트면서 자연스럽게 모임을 만들기로 하고 1949년
7월 1일 창립발기회를 개최, 회의 이름을 대한우표회(大韓郵票會)로 정했다. 8월 1일 조흥은행 본점에서 윤종호 님을 비롯한 9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총회를 열면서 한국우취 첫 단체가 탄생했다.
내가 우표를 처음으로 수집하기 시작한 건 서울 수송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미국에서 누님에게 온 편지에 붙은 멋진 우표에 반해서 기념우표가 나올 때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집 근처 광화문우체국으로 달려가 줄을 섰다. 우체국 문이 열리면 우표 몇 장을 손에 들고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자랑하곤 했다. 특히 1963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의 소개로 대한우표회에 가입하면서 체계적인 우표 수집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의 외화 사정이 넉넉지 못하던 시절이라 외국 우표를 얻기 위해 일부러 여러 나라 외국인들과 펜팔을 했다. 이때부터 우표를 통해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우면서 여러 우취 선배들과 동호인들로부터 수준 높은 우취 지식을 배우게 되었다. 또한 많은 양의 국내외 우표와 시트, 초일봉투, 실체봉투, 문헌 등 각종 우취 관련 자료를 무상 또는 분양을 받아서 이를 활용해 전통과 테마틱 부문의 작품들을 만 들어 국내외 우표전시회에 출품해 여러 번 상을 받기도 했다.
한편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날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통해 카카오톡을 비롯한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으로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있는 상대방과 실시간으로 빠르게 소통하고 있다. 자판을 두드리는 디지털 기기(機器) 문화에는 옛날 손으로 정성껏 편지를 쓰면서 느끼던 감성과 행복감이 없다.
특히 올해 한국우취 70주년을 맞아 어려웠던 시절 우표수집이란 공통의 취미로 만나 열성적으로 대한우표회를 만드신 아홉 분의 우취 선각자들은 모두 고인이 되셨다. 이 지면으로 그분들께 고마움과 존경을 담아 명복을 빌며, 그 전통을 잘 이어 오신 강윤홍, 김탁중, 이철용 세 분의 명예회원님들께는 감사의 손 편지를 써서 3·1운동 100주년 기념우표를 붙인 FDC를 보내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