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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30주일 [성령이 교회를 인치심]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에베소서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에베소서 1: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마지막 날까지 친히 인도하신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신뢰할 존재가 없다.
이 세상 어떤 사람이든지, 마지막 삶의 순간까지 신뢰할 사람이 없다.
그래서, 인생을 살 때, 많은 배반의 아픔을 경험하기 때문에,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 놓고,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하나님은 인간과 전혀 같지 않으시고, 약속을 어기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말씀만으로도 신뢰하기에 충분하다.
간단한 말씀 한마디도, 절대적으로 신뢰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으시고, 연약한 우리의 약점도 돌보시려고, 친히 당신의 약속을 맹세하신다.
히브리서에 보면, 하나님은 말씀만으로도 절대 어기지 않으시는데도, 맹세까지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진리의 약속 뿐 아니라, 맹세까지 하셨는데, 맹세는 성령을 주심으로써 하시는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약속을 성취하시려고 책임지시고 오시는 분이시다.
여기서 성령이 하시는 역할을 볼 수 있다.
보통 성령의 기능에 대해서 물으면, 정확히 받아들이도록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대체로 우리 교회 상황으로 볼 때, 성령은 그냥 거기 계시는 분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능력을 구할 때, 주시면 받고, 주시지 않으면, 그냥 달리 할 일 없이 거리를 두는 정도로 여긴다.
성령에 대해, 무엇을 주시는 분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내가 원하는 능력을 제공하시는 분으로 여긴다.
자기가 생각하는 식으로 성령이 돕지 않으신다면, 굳이 왜 거기 계실까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성령에 대해, 나를 무작정 도우시기 위해 대기하시는 분으로 생각한다면, 원래 가장 본질적 기능을 숙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령은 필요할 때, 부르면 와서 도와주시는 분, 돕지 않으면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그리 합당하지 않다.
성령은 우리의 여러가지를 도우신다.
가짓수로 하자면, 수천가지다. 그 중에서 내게 맞는 기능 하나만 택해서 말할 수는 없다.
가장 골자적으로는 그는 우리의 구원을 지켜주시려고 오신 분이시다.
성령은 우리가 죄와 싸울 때, 힘이 되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죄와 싸울 수 있는 마음의 힘을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마음을 점점 더 거룩하게 하시고, 죄를 이기는 힘이 있는 자로 성장시켜 주신다.
이것이 가장 핵심이다.
한마디로, 성령은 우리의 구속을 우리 시간 마지막 날까지 유지시켜서, 완결시키려는 일을 하러 오셨다.
우리가 원수에게 넘어가지 않게 도우시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홀로 있으면, 사람에게도 속는데, 원수에게 더욱 속지 않겠는가.
그러나, 성령을 받은 자들은 원수에게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성령은 죄에 빠지지 않도록 도우시는 일을 가장 기본적으로 하신다.
어떻게 도우실까.
골방이나 기도원에 들어가야, 힘을 주실까.
성령으로 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나는 속으로 답이 있지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 것은 성령의 기능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의 구속을 완성시키기 위해 오셨다면, 맞는 답을 깔끔하게 할 수 있다.
성령은 그가 구속하시는 자를 양육하는 교회에서 교회 시스템으로 양육하신다.
교회 시스템은 예수께서 승천하기 전에 제자들에게 명하셔서, 대대로 이루어야 할 사명으로 주셨다.
물론 문화와 시대에 따라 약간의 변화가 있지만, 말씀을 통해 수천년이 지나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은 하나님의 디자인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길을 터 놓은 것이다.
이 말씀으로 성도들에게 선포한다.
설교가 원래는 선포다.
또, 경고하고, 계속 죄에 대한 대실패를 일깨움으로써, 되돌아가지 않도록 계속 가르쳐 주시는 것이 주님이 오늘 제공하시는 교회 시스템을 통한 교육이다.
그래서, 죄에 쉽게 물드는 우리에게서 악의 세력을 자꾸 밀어내는 것이 우리를 지키는 방법이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주님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이 자체가 순종하여 우리가 이루고 있는 것이다.
여기는 세상 어디서도 줄 수 없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평범한 선포자의 입술을 통해, 성도들의 깊은 양심을 향해 외치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만 주시고, 떨어져 방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친히 역사하신다.
오늘 성령이 내 곁에서 무엇을 하시는지 잘 알아서, 방향성을 갖고 가야 할 것이다.
그가 가는 방향으로 나도 가는 것이 성령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을 근심케 말고, 기쁘시게 하자.
성령이 하시는 일이 힘들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하자.
우리가 고집부리면,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당연한 제한이다.
우리가 거절하면 역사하지 않으신다.
[구원 성취 완료에 대한 약속]
설교자가 자기 마음에 원하는 것을 뽑아서 하면, 나도 모르게 왜곡된 신앙을 가르칠 수 있다.
이 때가 아니면, 에베소서를 못할 수도 있다.
에베소서는 신앙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하나님의 관점에서 소개하고 있다.
우리에게 주신 진리의 실체가 무엇인지 보는 것이다.
에베소서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진리의 말씀. 구원의 복음. 똑같은 것이다.
믿고,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 받음.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으면 구원에 이르고,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다.
이것은 인간이 구원받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다.
문법적으로 믿는 것과 인치시는 것은 동시적이다.
그러나, 시간적으로는 꼭 동시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냥 믿는다고 할 때, 성령이 임한다고 볼 수 없다.
정말 그 사람 속에서, 내 옛사람은 죽고, 그리스도가 사셔야 한다고, 자기를 포기할 때, 그것이 참 믿는 순간이다.
순서적으로 듣고, 믿고, 성령이 임하신다.
성령이 임하는 것은 믿는다는 사실 때문에, 하나님이 인치시는 것이다.
믿고, 성령의 인치심은 동시에 일어난다.
믿는 것은 절대적으로 성령의 인치심과 관계 있다.
우리가 듣는 것은 진리의 말씀이다.
진리의 말씀은 무엇인가.
어떤 용도로 주신 것인가.
진리의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진리의 말씀은 멸망의 위기에 빠진 인간을 살리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진리는 은혜를 값없이 베푸는데 초점을 갖고 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을 통해 분명히 알게 된 것이 있다.
로마서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바울은 사도이므로, 메시지를 전한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주님이 잡으셨다.
사도는 주님이 직접 택하셔서, 주님의 마음으로 우리에게 전했다.
바울은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다.
십자가의 도는 비슷한 말로 진리의 말씀, 화목하게 하는 말씀이다.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나님의 진리는 우리를 구원시키는 능력이다.
복음은 구출작전으로, 하나님에게서 파견되어 나온 선물이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악한 세력의 속박으로부터 우리를 구출한다.
악한 마귀는 우리 육신의 연약함을 이용하여, 신앙을 잃게 한다.
그래서, 죄와 육체로부터 우리는 계속 유혹을 받는다.
이것을 성경에서 계속 말해줌으로 유혹을 끊도록 한다.
원수가 지배하려는 것을 거절하고, 박차고 나올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것이 복음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것을 주어, 우리에게는 엄청난 자원이 있다.
이미 다 주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다 누려봐야겠다고, 특별히 물질에 관련된 것을 생각한다.
물질이 그렇게 오지 않는다.
이것은 오해하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많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더라도, 오늘 다 받을 수 없다.
이 땅에서 다 소모하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다.
하늘에 보관하고 계신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그 축복이 없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전서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이 땅에 있을 때, 축복이 자주 임한다.
그러나, 내가 당장 원하는 물질의 축복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신앙이 진실성이 있는지, 없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도 있다.
구원이 왔을 때, 축복이 함께 와야 하는데, 오지 않는다고 따로 방법을 찾아다닐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 있는 동안, 하나님의 기업을 전부 받을 수는 없다.
아직 과도기다.
몸의 구속을 이겨야 할 시기 안에 우리는 갇혀 있다.
우리는 몸의 구속을 계속 기다리는 것이다.
육신은 아직 땅에 속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의 존체를 아직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말 있는지 고민할 수도 있다.
이런 연약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은 이들을 설득하려고 정말 광대하게 행하고 계시다.
내가 너를 도우리라.
성경 말씀에 있다면, 정말 확실한 것인데, 그는 또한 맹세까지 하신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에게 이 많은 것을 다 주시겠다고 하셨다.
너도 하늘의 상속자다.
이것을 의심하는 자를 위해, 하나님은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셨다.
로마서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성령이 임하시면, 현상으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위의 구절의 영은 다른 해석의 여지없이 성령이다.
성령이 임하심으로 사회적으로 진짜 그리스도인이 된다.
성령의 인도받는 사람만이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는데, 이것은 인침이다.
[인침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
인침은 단어가 히브리어에서 나온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무관하지 않다.
공식적으로 표시한 것이다.
이 문서가 참되다 하고 증명하는 것이다.
옛날 영화를 보면, 편지를 쓰고, 접어서 촛농을 붓고, 도장을 찍는다.
그것을 아무나 뜯지 못한다.
왕이 썼으면, 왕의 권위에 대한 존중을 해야 하고, 어기면 처벌을 받을 것이다.
인쳐진 것은 인친 자의 권위를 함께 갖고 간다.
특별히 인침은 그 문서의 진실성을 확실히 한다.
에스더 3:12 정월 십삼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어 하만의 명을 따라 왕의 대신과 각 도 방백과 각 민족의 관원에게 아하수에로 왕의 이름으로 조서를 쓰되 곧 각 도의 문자와 각 민족의 방언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치니라
특별히 소유권의 의미에서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에스더에 보면, 왕이 속아서 가짜 법령을 선포했는데, 실수했음을 알았어도, 왕의 반지를 써서 찍었기 때문에 취소하지 못한다.
인친다는 것은 중요한 점이 소유한 대상에 찍는다.
성령의 인치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친 사람을 그의 소유로 가지신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과거 유대인들은 할례를 했다.
이방인들은 문신을 함으로써, 이방신의 소유임을 표시했다.
이제는 눈에 보이는 육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 인치신다.
로마서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성령은 양심을 지배할 수 있는 깊은 영역 속에 계신다.
선한 영향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세상은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하늘에 속한 도장으로 사람의 마음속에 찍어서, 누구도 그 사람의 자아를 빼앗지 못하게 하신다.
그가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듯, 우리 정체를 증거해주신다.
이로 인해, 외적 표가 또 생긴다.
우리가 인침 받은 것으로 인해 외적으로 나온 증거는 침례다.
요한1서 3:14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우리가 침례 받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신 것 때문에, 그 사실을 인정하고 믿는 것이다.
침례는 내가 받는다.
침례 자체가 사람을 바꾸지 않는다.
성령의 인침이 우리를 바꾼다.
또, 성령의 인침을 받은 외적 증거는 형제사랑, 교회사랑이다.
성령이 임한 자는 더 이상 악을 행하려고 하지 않는다.
악과는 단절한 자다.
교회를 사랑한다.
예수님처럼 자기가 무너져도, 되갚음 받지 못하는 사랑을 한다.
하나님이 소유한 자이기 때문에, 그런 손해가 아쉽지 않다.
하나님은 순간에 공식적으로 영원히 그를 소유하신다.
겉에 상처를 내서, 그것으로 하나님이 소유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중심에 표를 내어, 소유하시는 것이다.
[안전을 보장하심]
고대사회에서 왕이나 귀족이 문서에 인치면, 함부로 못 건드린다.
왕이 보낸 것을 함부로 뜯으면, 왕을 공격한 혐의로 죽게 될 것이다.
인치는 것은 남이 건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다니엘에게도 왕이 속아서 법을 제정했다.
그 결과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가게 되었다. 왕은 그를 살려주고 싶어도, 이미 왕의 인이 찍혀서 건드릴 수 없었다.
또,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몸을 가져갈 것 같다고, 무덤을 봉해달라고 빌라도에게 요구했다.
인친 것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 안전하다.
이 세상은 눈에 보이는 인을 치지만, 하나님의 것은 성령으로 인치신다.
성령이 인치신 것을 건드리려면, 성령을 물리치고 들어와야 할 것이다.
과거에 자기 가축의 소유를 나타내기 위해, 가축에 인을 찍었다.
인이 찍힌 것은 자기 재산이다. 자기가 보호해야 할 의무도 공식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망하지 않도록 소유자가 보호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에스겔 9:4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에스겔 9:5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에스겔 9:6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요한계시록 7: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요한계시록 7: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요한계시록 7: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7:4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계시록의 내용은 반드시 이루어질 일인데, 무서운 이야기가 있다.
네천사가 와서 세상에 재앙을 내리려고 하는데, 먼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자를 인친다.
인맞지 않으면, 멸망한다.
우리의 지금 현실은 멸망으로 가고 있다.
마지막 시대에 진입되어 있다.
우리는 종말을 준비하는 자들이다.
조금 견뎌가야 한다. 거의 끝에 왔다.
종말에는 고난이 있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편하게 지낸다면,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고난은 우리에게 훈장과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자로서, 하나님의 도장을 성령으로 찍어서 보호하신다고 생각하면, 정말 하나님께 영광돌려야 한다.
오늘 우리를 어떻게 보호하실까.
내게 무엇을 주셔야 하는데, 왜 안주실까.
관계가 어색하면 안될 것이다.
에베소서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성령은 교회에서 말씀할 때, 양육하여 도우신다.
성령은 교회를 위해 주신 것이다.
아무에게나 하나님이 에너지를 쓰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 하시는 것이다.
교회를 통해 구원이 선포되고, 교회를 위해 하늘나라의 길이 열린다.
교회를 통해, 죄에 빠지지 않도록 막으시는 말씀, 시련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신다.
교회에서 배울 때, 성령이 역사하시고, 우리는 들은 것을 성령이 순종하게 하시는 것이다.
순종하는 자에게 성령이 역사하시는데, 이것은 성령으로 하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우리는 그날까지 참아야 한다.
성령을 근심하게 해서는 안된다.
그가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주셨다. 거듭 강조하고 있다.
[보증으로서의 성령]
그래서, 임하신 분이 약속의 성령이시다.
성령은 약속을 이루시려고 왔는가. 그분 자신이 하나의 약속으로 오셨을까.
둘 다 맞다.
성령은 이미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되어있다.
선지자들을 통해서도 계속 말씀해 왔다.
갈라디아서 3: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사도행전 2: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오시기로 한 약속된 분이 오셨다.
그런데, 그분은 하나님의 약속을 담당하시는 분이시다.
에베소서 1: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늘에서 완전히 완성될 기업에 대한 보증이 되신다.
보증은 히브리어에서 나온 말인데, 약조물이라는 번역으로도 썼다.
우리가 물건을 살 때, 거금이면, 계약금을 지불한다.
그런데, 계약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다시 와서 안살 수도 있다.
그러나, 계약금을 지불했으면, 약속을 더욱 지키려고 할 것이다.
이와같이 일종의 저당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저당이라는 말이 생겼다.
저당은 약혼반지를 뜻한다.
그는 우리의 보증이 되신다.
하늘에서 받을 엄청난 축복에 대한 보증이다.
보증이 되실 뿐 아니라, 그 자신이 보증금이 되셨다.
보증은 첫할부금이라는 의미도 있다.
앞으로 오는 그날의 영광을 위한 첫지불금을 내신다.
성령은 우리 속에서 하늘의 것을 맛보게 하신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 구원의 보증이 되신다.
세상에서 살기 힘들지만, 이 영혼은 구원하실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있는가.
오늘 맛보게 하신다.
오늘 하늘의 할부금으로서, 하늘의 것을 맛보여 주신다.
맛보면, 하늘에 내 기업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스도의 후사임을 깨닫는 자들 되자.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혼반지를 주셨다.
반지를 볼 때마다, 주님을 느끼기 바란다.
고린도후서 5: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우리는 아직 하늘에 오른 것도 아닌데, 안오른 것도 아니다.
긴장상태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나마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후사로서 견뎌가고 있다.
어려움도 있고, 고통이 있어도, 우리 식으로 해석하지 말고, 하나님의 식으로 해석하고, 성령이 나를 구원하려고 할 때, 순종하자.
말씀이 들어올 때는 성령이 우리를 감동하시는 시간이다.
자기 육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영접하는 자들 되자.
[구속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함이다]
하나님은 온 세상에 창조의 완전한 조화를 이루시려 하신다.
우리를 고치시고, 온전한 상태로 바꾸시려고 애쓰신다.
우리는 그 은혜를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누구든지 인간은 더럽지 않은 자가 없는데, 자기에게 영광을 돌린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는 것이다.
자기에게 영광돌리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데 소홀함이 없기 바란다.
위태로운 이 시기에도 하나님이 자기의 아들을 보내어 이루신 구원을 보전하시고, 완전한 구원을 이루시기까지 성령께 순종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자들 되자.
성락교회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영광돌리는 교회 되자.
우리 마음을 받아주시고, 우리 마음에 거해주소서.
명하여 주시고, 견디게 해주시고, 힘을 주시고, 새로운 하늘의 영광을 비춰 주소서.
우리 교회 도와주시고, 성령을 실망시키지 않고, 성령을 부끄럽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보증으로 오셨을 때, 정말 축복된 영혼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