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품과 조어의 시세계―이호우론/송정란
시조는 개화기를 거쳐 근대시조로 발전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대시조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시조에 있어 현대시조의 기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해 이견(異見)이 있다. 육당과 춘원 등의 시조를 근대시조라고 한다면, 가람과 노산의 시조는 근대와 현대라는 시점에서 애매모호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현대시조의 태동을 가람과 노산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그 뒤를 이은 김상옥과 이호우로 볼 것인지, 혹은 그 시기를 해방 이후로 늦추어 볼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시조는 시조부흥운동을 통해 이론과 창작 양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조부흥에 반대하는 거센 논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시조는 오히려 그 뿌리를 단단하게 다지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창작에 있어 가람의 혁신시조나, 시조 기원 및 형식과 운율에 관한 고찰 등 다양한 이론적 모색을 통해 시조의 현대화는 가일층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노산과 가람이라는 걸출한 시조시인이 나타났고,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이들의 작품은 육당이나 춘원의 그것과는 확연히 선을 긋고 있었다. 가람에 의해 발탁된 김상옥과 이호우(李鎬雨)가 그 뒤를 이어 시조 창작의 맥을 이어가게 되는데, 이들의 작품 경향 역시 노산과 가람과는 또다른 개성을 보여준다. 김상옥은 이전 시조에서 볼 수 없는 세련된 시어를 구사하여 시조의 문학적 격조를 한층 높였으며, 이호우는 시조부흥의 반대론자들이 지적하던 사회 참여 및 역사 의식의 부재를 시조 속에 구현하였다. 현대시조의 기점을 어느 시기로 할 것인가의 문제는 시조에 대한 창작 태도 및 작법을 이렇게 세 시기로 어느 정도 경계 지을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 세 시기 중 근대시조에서 현대시조로 전환하는 기점은 가람과 노산의 시대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라 생각된다. 가람의 혁신시조는 이미 현대적인 감각과 형식을 담아내는 기본 지침서가 되었고, 가람과 노산이 일구어낸 현대적 작법의 시조가 무르익은 후 초정과 이호우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상옥과 이호우가 노산과 가람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각기 개성 있는 시세계를 구축하며 시조 창작의 영역을 확대시켜 놓았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호우는 1939년 『동아일보』 투고난에 「낙엽(落葉)』이 게재된 바 있으며, 1940년 『문장(文章)』(6·7호 합병호)지에 「달밤」이 가람의 추천을 받음으로써 등단하게 되었다. 첫시조집 『이호우시조집(爾豪愚時調集)』은 1955년 영웅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아호 爾豪愚는 본명 李鎬雨의 음을 취하여 붙인 것이다. 제2시조집인 『휴화산(休火山)』은 1968년 중앙출판공사에서 발간했는데, 이것은 누이동생인 이영도(李永道) 시인과 함께 낸 공동시조집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 중의 제1권이다. 이호우는 1912년 경북 청도에서 아버지 경주 이씨 종수(鐘洙), 어머니 구봉래(具鳳來) 사이에 태어났다. 밀양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4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28년 신경쇠약증세로 낙향하였다. 1929년 일본 동경예술대학에 유학했으나 병이 재발하여 1930년 귀국하였다. 광복 후 『대구일보』 편집과 경영에 참여하여 문화부장·논설위원 등을 지냈고, 1956년에는 『대구매일신문』 편집국장 및 논설위원을 지냈다. 제1회 <경북문화상>을 수상했으며, <영남문학회>를 발족하여 시조동인지 『洛江』을 발행했다. 1970년 심장마비로 타계할 때까지 이호우는 시조 창작뿐만 아니라 시조를 널리 보급하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시조 정형의 근본을 지킬 것을 주장하고 무책임하고 안일하게 창작하는 일부 시조시인들을 배격하였다. 시조를 정궤(正軌)에 올려놓기 위해 그토록 심혈을 기울인 것은, 이호우에게 시조는 우리 민족의 생활과 정서 그 자체이며 우리 민족의 장래와도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호우시조집』 후기에서 씌어진 그의 말을 옮겨본다.
한 민족 국가에는 반드시 그 민족의 호흡(呼吸)인 국민시(國民詩)가 있고 또 있어야만 하리라 믿는다. 나는 그것을 시조(時調)에서 찾고 이뤄 보려 해 보았다. 왜냐 하면 국민시는 먼첨 서민적(庶民的)이어야 할 것임에, 그 형(型)이 간결하여 짓기가 쉽고 외우고 전(傳)하기가 쉬우며 또한 그 내용이 평명(平明)하고 주변적(周邊的)이어야 할 것임으로, 시조의 현대시로서의 성장을 저해(沮害)하고 있는 정형(定型) 즉 단형(短型)과 운율적(韻律的)인 비현대성(非現代性)이 국민시적형(國民詩的型)으로서는 도리어 적당한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호우는 시조의 내용이 생활주변적인 것으로 어렵지 않으며, 단형으로 간결해서 짓기가 쉬우며, 운율이 있기에 외우고 전하기가 쉬우므로 국민시로서 적당하다고 말한다. 한 민족에게는 그 민족의 호흡인 국민시가 꼭 있어야 하는데 시조가 바로 우리의 국민시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나의 시조에 대한 기대와 염원은 오히려 나의 이 민족에 대한 숙명적인 신뢰와 애정”일지 모른다고 덧붙이고 있다. 즉 이호우에게 있어 시조는 우리 민족 그 자체로서, 시조에 대한 사랑이 바로 민족과 국가에 대한 사랑이기도 했던 것이다. 시조를 통해 역사와 현실을 인식하고 비판한 것도 바로 이러한 시조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호우시조집』은 모두 70수의 시조가 실려 있으며, 시조집 후기에 따르면 초기시부터 6·25동란까지의 것을 추린 것이라고 되어 있다. 이호우의 시조를 논할 때 흔히 역사의식과 현실비판의식, 그리고 생명에의 의지 등으로 집약하여 말한다. 그러나 첫시조집에 실린 그의 시조의 대부분은 가람과 노산의 영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실이나 역사의식보다는 인생과 자연에 대한 관조적 태도나 자연합일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현실이나 역사적인 소재를 다룰 때에도 낭만적이거나 감상적인 일면이 엿보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첫시조집의 작품을 크게 네 갈래로 나누어 짚어보도록 한다. 첫째, 향토적 서정 둘째, 생명 인식과 삶에의 의지 셋째, 현실에 대한 인식, 넷째, 역사적 인식과 휴머니즘 등으로 작품의 경향을 분류할 수 있겠다. 첫째 향토적 서정의 세계를 살펴보자. 등단 무렵의 이호우의 시는 특히 향토적 서정과 낭만주의적 감상이 주조를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달밤
낙동강(洛東江)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봅니다.
낯익은 풍경(風景)이되 달아래 고쳐 보니 돌아올 기약없는 먼 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 돌아 뵙니다.
아득히 그림속에 정화(淨化)된 초가집들 할머니 조웅전(趙雄傳)에 잠 들던 그날 밤도 할버진 율(律)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니다.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망정 이 밤 더디 새소서
노을이 지고 푸른 달빛이 스며드는 낙동강에서 알 수 없는 먼 그리움으로 시인은 나룻배에 몸을 맡긴다. 강물의 흐름은 시간을 거슬러 흐르고 낯익은 풍경들도 낯설게 다가온다. 시인의 영혼도 먼 시간의 강을 돌아 어린 시절 순수하고 아름답던 공간에 가닿는다. 그곳에는 아늑한 초가집 안에 영웅들의 무용담과 사랑 이야기를 나직히 들려주시는 할머니와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잠든 천진한 시인이 있으며, 밤 이슥하도록 시조를 지어 읊으시던 할아버지가 계시다. 이렇게 고운 추억을 회상하는 시인에게 세상은 온통 사랑의 숨결로 가득차 혼자여도 외롭지 않은것이다. 『달밤」은 『문장』지에 추천을 받은 작품으로 심사를 했던 가람은 “범상한 제재를 가지고 이와같은 좋은 작품을 지은 것은 그의 천품(天稟)과 조어(造語)가 어떠함을 능히 짐작하겠으며 우리 시단(詩壇)의 한 장래(將來)를 그에게 허여(許與)하지 않을 수 없다”고 평한 바 있다. 고요한 달밤의 강물소리처럼 ‘아무 억지도, 꾸밈도, 구김도 없’는 시적 발화가 먼 그리움의 서정적 세계를 이끌어가고 있다.
살구꽃 핀 마을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바람 없는 밤을 꽃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는 초당마다 섧은 꿈도 익으리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살구꽃’은 이호우의 시조에 자주 등장하는 오브제로서, 고향을 상징하는 개인적 표상으로 자주 쓰이고 있다. 그래서 시인에게 “살구꽃이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낯선 타향인을 배척하지 않고 반갑게 맞아들이기에, 살구꽃이 핀 마을에서는 날이 저물어도 갈길을 재촉하지 않아도 된다. 어느 집에서든 반갑게 객을 맞이하고 살구꽃 그늘에 달빛이 이면 초당에서 술을 대접하기도 하는 것이 고향의 인심이기 때문이다. 살구나무는 우리나라 어디에나 흔하게 심어져 있던 나무이므로, 살구꽃 핀 마을은 바로 우리 민족의 소박하고 후덕한 심성의 공간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두번째로 생명에 대한 인식과 삶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이호우의 시세계를 들여다보도록 하자.
연기
가을도 해질무렵 저 멀리 화장(火葬)터에 오늘도 오르는 한 줄기 연기 있다 그 어뉘 소중턴 몸이 속절없이 타느뇨
꿈도 설움도 하 그리 가꾸던 육신(肉身)도 한번 버리면은 저리히도 그만인가 아직은 젊은 손등을 어루만저 보도다
담배 연기를 견우어 바라보다 한 삶의 일체(一切)를 길우는 대상(代償)으론 너무도 아아 너무도 서러운 일이로고
차라리 외로워도 나는 청산(靑山)에 묻히리라 비록 모르고 찾는이 없을망정 진달래 피는 동산(東山)에 내 차라리 묻히리라
죽음 앞에서 인간의 육신은 무력하고 허망하다. 삶의 실체가 한줄기 연기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시인은 자신의 젊음의 끝이 어디에 닿아 있는가를 깨닫는다. 자신이 피워올리는 담배 연기가 마치 육신을 태우는 연기처럼 느껴져 시인은 전율한다. 죽음은 그토록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내부에 있다는 각성이다. 그러나 시인은 삶의 실체가 바로 죽음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부정한다. 한줄기 연기로 사라지기보다 산에 묻히어 삶의 실체를 그대로 보존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길
이미 한 女人을 잊어도 보았으매 일찍 여러 벗들을 보내기도 하였으매 이제 내 원수로 더불어 울수조차 있도다
여우도 토끼도 山은 한품에 안고 비록 더러운 흐름도 바다는 걷웠어라 이제 내 오고 가는일 묻자 하지 않도다
한번 우러러면 한 가슴 푸른 하늘 밤이면 별을 사귀고 낮이면 해를 믿어 이제 내 홀로의 길을 외다 아니 하도다
인간에 있어 사랑과 죽음은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이다. 한 여인과의 아픈 이별도 겪어내었고 친한 벗들의 죽음도 지켜본 시인은, 이제 온갖 더러움을 다 거두어들이는 바다와 같은 자세로 삶을 긍정하고 있다. 삶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는 시인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으로까지 확대된다. 사나운 짐승이든 착한 짐승이든 모두를 품어안은 산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다름이 아니라는 인식에서, 원수마저도 용서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하늘의 별과 태양이 모두 친구이듯 사랑과 죽음도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벗와 같은 존재들인 것이다. 시인에게 있어 생명은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까지 확대되어 무생물에게도 그 생명성을 부여하게 된다. 「바위 앞에서」는 이러한 무한한 생명의식의 발로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바위 앞에서
차라리 절망(絶望)을 배워 바위앞에 섰읍니다
무수한 주름살 위에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
바위도 세월이 아픈가 또 하나 금이 갑니다
견고한 침묵과도 같은 바위에서 시인은 절망과 고통의 상처를 보아낸다. 그것은 비와 바람을 견뎌내며 숱한 세월의 영욕을 지켜본 자의 것이다. “차라리 절망을 배”우는 것은 “또 하나 금이” 가더라도 바위와 같은 단단한 침묵으로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절대적인 생명에의 의지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수작이 아닐 수 없다.
다음은 현실 인식에 대한 이호우의 시조를 살펴보자. 이호우는 일제 식민지라는 암울한 조국의 현실과 가난하고 핍박받는 겨레의 현실을 시조로서 형상화하였다. 다음 두 수의 시조는 감옥에서의 체험과 고향을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는 압제받는 자로서의 설움이 담겨 있다.
영어(囹圄) 二
벽에 옮아지는 가느다란 햇볕을 지켜 오늘도 진 종일 시간을 징헌타가 불현듯 하늘이 보고파 발도돔을 하였다
아직도 짐승이 다 되지 못했는가 바람결 풍겨 드는 봄의 내음새에 한 가슴 와락 치미는 이 어리런 情이뇨
가만이 헤어보니 진달래 이미지고 江마을 살구꽃이 철맞아 곱겠구나 어머님 날 생각하시고 그 얼마나 우시랴
날 새면 저물기를 저물면은 또 새기를 다만 바램이란 셋끼의 끼니뿐이 목숨이 진정 목숨이 욕되기도 하여라
감옥은 세상과 차단된 채 시간의 흐름마저 정지되어 있는 곳이다. 그 정지된 시간을 인정해야지만 갇힌 생활을 견뎌낼 수 있다. 그러나 바람에 실려온 봄내음에 마음은 고향마을과 어머니에 대한 생각으로 심란하다. 이미 진달래 지고 살구꽃이 피는 완연한 봄으로 세월은 어느덧 흐르고 영어의 몸이 된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슬픔도 그만큼 더 깊어졌으리라. 새고 지는 날들을 무심히 바라보며 세끼 먹을 것만을 생각하는 짐승이 되어야만 하는 이 생활은 욕되고도 욕된 목숨의 부지가 아닐 수 없다.
이향(離鄕)
이미 반평생(半平生)을 나로 하듯 겪은 설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무던히 치뤘건만 가야 할 北녘 하늘은 몹시 추워 보인다
선영(先塋) 모신山도 이미 멀리 돌아지고 산협(山峽)을 울어예는 귀익은 시냇소리 모르고 살아온 그 情 빙 눈물이 돌구나
인정은 이리도 설운데 山河는 그냥 그모양 봄이 오면은 집집이 또 꽃은 피리니 아에 내 남은날에는 인연 아니 지으리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고향을 등지고 떠나는 길은 설움과 울분뿐이다. 가야 할 북쪽 하늘의 추위는 미리 닥쳐와 시인의 마음을 시리게 하고, 무심했던 고향산천은 새로운 정으로 다가와 시인의 발걸음을 잡는다. 인용한 두 수의 시조는 암울한 시대적 소산으로서 당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역사 인식과 함께 휴머니즘적인 이호우의 시세계를 탐색해보록 하자.
(1) 이단(異端)의 노래
높디 높은 하늘아래 땅은 넓기만 하고 사람의 사랑과 노래 금수(禽獸)보다 복(福)되던 그날 목숨은 불꽃처럼 붉고 뜨겁기만 했으리라
선(山))과 들과 물이 있는곳 어데나 기름졌고 마시고 먹음이 모도 절로던 후예(後裔)이든 어이들 가슴을 앓으며 여위어만 가는가
꽃같은 젊음인데 봄바람을 돌아서서 슬픔도 罪이런가 울수조차 없는 터전 지구(地球)를 번쩍 쳐들어 던져 버리고 싶다
금단(禁斷)의 동산이 어디오 지옥(地獄)도 오히려 가려니 생명(生命)이 죽음을 섬기어 핏줄이 욕(辱)되지 않으랴 차라리 이단(異端)의 자랑앞에 내 나로서 살리라
(2) 바람 벌
그 눈물 고인 눈으로 순아 보질 말라 미움이 사랑을 앞선 이 각박한 거리에서 꽃같이 살아보자고 아아 살아보자고. 욕(辱)이 조상(祖上)에 이르러도 깨다를 줄 모르는 무리 차리라 남이었다면, 피를 이은 겨레여 오히려 돌아앉지 않은 강산(江山)이 눈물겹다.
벗아 너 마자 미치고 외로 선 바람벌에 찢어진 꿈의 기폭(旗幅)인양 날리는 옷자락 더불어 미처보지 못함이 내 도리어 설구나.
단 하나인 목숨과 목숨 바쳤음도 남았음도 오직 조국(祖國)의 밝음을 기약함이 아니던가 일찍이 믿음아래 가신이는 복(福)되기도 했어라.
(3) 깃발
깃(旗)발! 너는 힘이었다. 일체(一切)를 밀고 앞장을 섰다. 오직 승리(勝利)의 믿음에 항시 넌 높이만 날렸다. 이날도 너 싸우는 자랑앞에 지구(地球)는 떨고 있다.
온 몸에 햇볕을 받고 旗빨은 부르짖고 있다. 보라. 얼마나 눈부신 절대(絶對)의 표백(表白)인가 우러러 감은 눈에도 불꽃인양 뜨거워라.
어느 새벽이드뇨 밝혀든 햇불위에 때묻지 않은 목숨들이 비로소 받들은 旗빨은 성상(星霜)도 범(犯)하지 못한 아아 다함없는 젊음이여.
세 수의 인용시조는 모두 민족상잔의 비극적인 역사에 대한 반성이며 통탄이며 분노이다. 앞에 예시한 시조들과는 달리 시적 어법이 매우 격렬하고 준엄하다. 이호우는 현실 인식이나 삶에 대한 의지를 표출할 때에도 서정성을 그 바탕에 깔고 시적 형상화를 꾀하였다. 그러나 6·25동란이라는 비극적 현실 앞에서 서정과 감상이라는 시적 요소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또한 ‘목숨’ ‘죽음’ ‘죄’ ‘욕’ ‘지옥’ ‘슬픔’ ‘미움’ ‘깃발’ 등 부정적인 시어들이 시의 서사를 이끌어가고 있어 한층 격앙되고 과격한 시적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전쟁으로 인하여 꽃다운 젊은 목숨들이 숱하게 스러지고 전쟁의 광기로 친한 벗끼리 미쳐버린 듯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현실은 생명이 죽음을 섬기는 이단(異端)의 것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모든 것이 절로 절로 이뤄지던 복된 땅과 사랑을 가진 민족이었다.(「이단의 노래」) 그러나 전쟁으로 인하여 인간성은 상실되고 조상을 욕보이고도 깨달을 줄도 모르는, 차라리 남이라면 좋았을 그런 욕된 무리들로서 우리 겨레는 둘로 갈라지게 되었다. 수많은 젊은 목숨들을 바쳤건만 찢어진 기폭처럼 분단된 조국의 현실 앞에서 오히려 통일을 기약하면서 먼저 죽음을 맞은 이들은 행복할 것이었다.(「바람 벌」) 이제 전쟁과 힘의 논리를 앞세운 깃발이 아닌 “때묻지 않은 목숨들이 비로소 받들은” 순결한 깃발이 신새벽의 횃불처럼 펄럭여야 할 것이다. 남과 북이라는 이념적 갈등과 적대감이 아닌 “절대의 표백”으로서 눈부신 깃발이 겨레의 일체를 밀고 앞장서야 할 것이다.(「깃발」) 이상과 같이 세 수의 시조에는 전쟁과 분단에 대한 비판의식과 전쟁으로 인하여 상실된 인간성의 회복, 그리고 모든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민족적 화합이라는 휴머니즘 요소가 공통분모로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이호우의 시조세계를 네 가지 경향으로 분류하여 살펴보았다. 시조문학사에서 이호우의 시조가 갖는 의의는 그 이전에 거의 부재했던 현실비판과 역사의식을 작품 속에 용해시켰다는 점이다. 시조부흥에 대한 격론이 벌어질 때마다 시조 부흥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시조의 현실부재 의식을 집중 공격했다. 송영은 “시조 자체가 봉건적이기 때문에 가장 퇴폐적이요 고수(固守)적이요 국수적인 내용밖에는” 담아질 수 없다고 했으며, 김동환은 시조의 “내용을 보면 중국의 풍물을 노래한 것, 백성들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은둔과 도피사상을 고취한 것, 낙천적이나 희망이 없는 것”들로서 거짓된 정서를 노래하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그러나 시조에 대한 이러한 비난은 이호우에 이르러서는 더이상 유효한 것이 되지 못하고 있다. 역사와 현실 인식이 비대해지면서 전체적인 호흡이 거칠어지고 섬세하고 함축적인 언어미학의 맛이 떨어지고 있지만, 현실부재라는 시조의 약점을 잃은 만큼의 자리에 채워넣은 것이 이호우 시조의 장점이기도 하다.
▣참고시
落葉
임 가신 저문들에 우수수 듣는 落葉 잎잎이 恨을 얽어 이밤 한결 차거우니 쫓기듯 떠난이들의 엷은 옷이 두렵네
괴기는 더디하고 지기만 쉬운 이뜰 이몸이 柴어지면 봄바람이 되어설랑 시름과 恨 많은이들 먼저 찾아 가리라 ―『동아일보』 1939년 가작 입선
遲日
채 맞아 쓰러진 파리 바시시 일어난다 미미한 벌레인들 생명이 다르리오 홀연히 애처로움에 채를 던져버렸다.
남을 남으로 해 나를 달리하였도다 一萬살음이 모두 <내> 아닌가 햇빛이 선뜻 窓에 밝으며 낮닭소리 들린다.
買牛
松花가루 나리는 黃昏 江을따라 굽은 길을 어슬렁 어슬렁 누렁이 멀리 간다 그 무슨 기약 있으랴 정이 더욱 간절타
山마을 농사집이 끼인들 옳았으랴 육중한 몸인지라 채직도 심했건만 큼직한 너의 눈에는 아무 탓도 없구나
너랑 간 밭에 봄보리가 살붓는데 걷우어 찧을제면 네생각을 어일꺼나 다행히 어진 집에서 털이 날로 곱거라
목숨
저리도 넓은하늘 어딘들 못하리오 이리도 좁은하늘 어디서 살으리오 須臾의 목숨을 안고 내 우러러 섰도다
정좌(靜坐)
설청(雪晴) 부신 창을 스미듯 처맛물 소리 조용히 먹을 갈아 붓에 먹이며 먹이며 마주한 옥판선지(玉板宣紙)의 보살같은 살결이여.
봄
얼마나 아름다운 젊의 숨결이기 이 江山 이다지도 푸르고 다사오리 새하얀 옷자락들이 나래인양 가벼워라
시냇가 실버들은 아련히 꿈이 절고 미나리 살찐 골에 풀피리 연연하다 胡나라 강낭이밭에도 봄은 아니 오는가
임이 아마 보냈으리 저 하늘 종달새를 노래만 전해주고 기약은 말이없다 이 봄도 진달래처럼 홀로 붉다 지오리까
원수 없는몸이 도리어 외로워라 미움도 사랑처럼 쏟아볼길 있는것을 즐기얄 봄이요 시절을 두견같이 우닌다
가는 봄
먼 영(嶺) 위로 사라져 가는 무지개의 엷은 빛깔 여일(餘日)은 한꺼번에 소낙비로 쏟아져라 오히려 아낌을 받으며 꽃잎처럼 지고 져 ―『죽순』(1949. 7)
춘정
일찍이 하늘로도 다스릴 수 없던 젊음을 한 가슴 감당치 못하여 쏘대는 춘풍 애정은 고성(孤城)을 지키는 기폭(旗幅)처럼 괴롭다.
이단(異端)의 이름밖에 남김없이 가버린 시절 다시사 않으리라 다지고 다진 꿈이 소보다 미련한 정일다 진정 미워라 미워라. ―『죽순』(1949. 7)
난(蘭)
벌나빈 쉴리 없는 깊은 산 곳을 가려 안으로 다스리는 청자빛 맑은 향기 종이에 물이 스미 듯 미소같은 정이여. ―『휴화산』(1968. 2)
휴화산
일찌기 천길 불길을 터뜨려도 보았도다 끓는 가슴을 달래어 자듯이 이날을 견딤은 언젠가 있을 그날을 믿어 함부로 ㅎ지 못함일레. ―『휴화산』(1968. 2)
개화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가만 눈을 감네 ―『휴화산』(1968.2)
聽雨
無常을 타이르는 가을밤 비소린데
서로 죽임을 앞서려 뿌리는 放射能塵
두어도 百年을 채 못할 네가 내가 아닌가.
비키니섬
方向感覺을 잃고 헤매다간 숨지는 거북
끝내 깨일 리 없는 알을 품는 갈매기들
자꾸만 그 <비키니>섬이 겹쳐 뵈는 山河여.
三弗也
무슨 業綠이기 먼 남의 骨肉戰을 생때같은 목숨값에 아 던져진 三弗軍票여
그래도 祖國의 하늘이 고와 그 못 감고 갔을 눈.
은행나무
낭만은 젊음의 꽃잎 그 낙화로 묻혀간 세월 아픔도 황홀도 다만 더딘 밤의 추억인가 너와 나 이제는 두 그루 덤덤히 선 은행나무. ―『한국시조선집』,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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