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麗史99卷-列傳12-李純佑-000
李純佑.
#高麗史99卷-列傳12-李純佑-001
○李純佑字拔之父陽植中書舍人
이순우의 자는 발지(拔之)이며 그의 부친 이양식(李陽植)은 중서 사인(中書舍人) 벼슬에 있었다.
初純佑母朴氏點燈庭中祈嗣于天忽夢有小兒從燈柱而下奉而懷之
처음에 이순우의 어머니 박씨(朴氏)가 뜰 안에서 등불을 켜고 하늘에 아들 낳을 기도를 드렸더니 홀연히 꿈에 초대로부터 어린아이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그를 받아 가슴에 품었다.
因有身及生名之曰請
그때부터 태기 있어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이청(請)이라고 지었다.
以請而得之也
즉 하늘에 청해서 얻은 아들인 까닭이다.
後改純佑
후에 순우라고 개명하였다.
幼能屬文.
이순우는 어려서부터 글을 잘 지었다.
毅宗時擢魁科調忠州司錄明宗初遷供驛丞兼直翰林院.
의종 때에 과거에 장원 급제하여 충주 사록(忠州司錄)으로 되었다가 명종 초년에 공역승(供驛丞)으로 승직되어 직 한림원(直翰林院)을 겸임하였다.
時王太后患乳瘡王命純佑作祈禱文
그때의 왕태후가 유종을 앓고 있었는데 왕이 이순우에게 기도문을 짓게 하였다.
"有瘡生母乳痛在朕心"
“유종이 어머님 흉부에 생겼으나 아픈 것은 나의 마음에 있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之句王覽而嘆曰: "先得朕心矣."
이것을 읽고 왕이 감탄하면서 “우선 나의 마음을 잘 알았다”라고 말하였다.
由是特加寵眷擢除右正言知制誥累遷國子祭酒諫議大夫翰林學士.
이로부터 왕이 특별한 사랑과 배려를 주어 우정언 지제고(右正言知制誥)로 선임하였으며 여러 차례 승직시켜 국자제주 간의대부 한림학사(國子祭酒諫議大夫翰林學士)로 임명하였다.
嘗奏: "近來因八關煎藥命醫官歲取四畿民乳牛絞取乳汁煎而成酥牸犢俱傷
일찍이 왕에게 건의하기를“근래에 팔관회(八關會)로 인하여 궁중에서 약을 달이는 데 쓰기 위하여 의관(醫官)들이 해마다 서울 근처에 농민들의 젖소를 가져다가 젖을 짜서 끓여 초를 만들어 쓰는바 이로 인하여 암소와 송아지가 다 상합니다.
其藥本非備急且損耕牛請罷之."
원래 약, 그것도 구급 약품이 아닐 뿐만 아니라 밭갈이하는 소가 축소되니 이것을 폐지하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制從之民多感悅
결과 왕이 그 건의를 좇았으므로 백성들이 대단히 기뻐하였다.
官至國子大司成爲崔忠獻所殺.
그의 벼슬이 국자 대사성(國子大司成)에 이르러 최충헌에게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