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이면 김대중과 김영삼 두 야당 당수가 연합하여 1달만에 만든 신민당이 100석 이상을 휘쓸어 전두환 독재정권이 충격을 먹었던 2.12 총선이 있었습니다. 아마 2.12 총선이 끝나고 새로운 국회를 위해 만든 수첩인가 봅니다.
들여다 보니 전부 한자입니다. 한글로 쓴 건 한자로 쓰지 못하는 단어들, 이를테면 외국명이나 한자대체어가 없는 순 우리말인 경우입니다.
심하죠. 저땐 한자를 써야 본때가 나던 때였으니...
의석분포를 보니 민주정의당 148석이고, 신민당 103석, 한국국민당 20석입니다. 무소속 5명을 포함하면 전체 의원의 수는 276명입니다.
23년전 국회수첩인데 지금도 아는 얼굴들이 꽤 나옵니다.
이철 당시 36세군요. 얼마전 철도공사 사장에서 퇴임했죠.
조순형 지금은 73세. 자유선진당의 현역이 되었죠.
박찬종은 참 착한 인상이네요. 김정길은 부산대총학생회장 했군요. 한 인물했네요.
박관용, 이기택. 박관용은 아직 정치적 영향력이 좀 있죠. 하지만 이기택은 김영삼에 맞서서 통일민주당을 이끌다 손해를 좀 봤습니다.
얼마전까지 국회의장하다 퇴임한 이만섭.
고건은 당시도 반듯한 모습.
홍사덕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이군요.
김영삼의 남자 강삼재. 경희대 총학생회장.
얼마전까지 민주당의원이었던 김종인.
국민의 정부 때 안기부장 했던 이종찬.
그리고 밑에 있는 87년 신민당 총재, 실제론 얼굴마담 이민우씨. 전두환 정권과 의원내각제 야합을 하려다 김영삼 김대중 계가 계파 의원을 모두 빼서 통일민주당을 차리는 바람에 쪽박 찼죠.
부산사람은 잘 알죠. 부산시장 문정수. 아직 정계에 남았다면 고소영라인으로 활약 좀 하실 뻔했네요.
강창희 23년 전에도 의원이었군요. 이번엔 자유선진당 바람에 떨어졌죠.
그러나 이번에도 또 당선 이용희.
일찌감치 정계은퇴하고 시사평론가를 하고있는 봉두완.
재밌는 건 지금까지 살아남은 정치인들은 거의 대부분 당시 민주화의 선도자들이었던 신민당의원들이라는 겁다. 민정당 출신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은 김종인이나 고건처럼 관료출신이나 전문가 그룹이거나 이종찬씨처럼 쓰임새 때문에 스카웃 된 일부뿐입니다. 여기에서 한국의 정치판에 5공독재세력이 완전히 퇴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하죠. 독재세력이 모두 퇴출되고 민주화 세력만 남았는데 세상은 왜 이럴까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5공화국 독재세력과 지금의 보수세력은 같은 자들이 아닙니다. 독재세력은 우리에게 자유를 빼앗았지만 가진자와 없는자를 평등하게 대했습니다. 총칼을 쥔 그들은 가진자의 눈치를 보지 않았습니다. 가진자의 두려움을 이용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강력했고 나름의 소명의식을 가진 엘리들에 의해 어느 정도 합리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관철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가진자들이 정치인을 부려먹고 있습니다. 돈으로 정치인을 사고 언론을 삽니다. 가진자들의 간섭으로 정부의 정책들은 누더기 신세를 면하기 힘듭니다. 지금 우리는 그때보다 자유롭지만 우리의 정부는 가진자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독재정부와 노예정부 어디가 더 나을까요?
독재시대가 더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 나라가 한발 더 나아가려면 지금의 단계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가진 자의 눈치를 보지 않는 정치시스템이 하루빨리 만들어져야 합니다. 정치가 자본으로부터 독립해야 합니다. 한발 나아가지 않으면 반동의 용수철이 파시즘적 독재를 부를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땐 가진자와 못가진자 구분도 없겠죠.
이거 너무 심각해졌네요. 그만.
그런데 독재의 시대에 이렇게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수첩업자가 이런 제본 실수를 했네요. 감히 국회의원 수첩을 이따위로.
첫댓글 세월이지나도 그사람은 그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