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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 코리아 원문보기 글쓴이: 죤.웨슬리
존 웨슬리가 본 칼빈주의
한글초록
웨슬리는 온건한 칼빈주의를 인정하였으며, 알미니안주의와 함께 공존할 수 있다고 하였다. 분명히 웨슬리는 원죄를 인정하였으며,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였다. 웨슬리는 칭의 교리에 있어서 자신과 칼빈주의와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와의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말하였고, 더 나아가서 칼빈주의에 대해서 비판을 하였다. 웨슬리는 그 시대의 칼빈주의자들의 예정, 선택과 유기, 저항할 수 없는 은혜, 성도의 최종적 견인 교리에 대해서 비판하였다. 이러한 칼빈주의자들의 가르침은 도덕률폐기론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결국 성화를 무시하게 된다고 하였다. 웨슬리는 그 당시 칼빈주의 신학자인 존 길과의 논쟁에서 더욱 이러한 신학적 성향에 대해서 비판하였다. 그러나 웨슬리가 그 당시 이해하였던 칼빈주의는 하이퍼 칼빈주의이었다. 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은 예정, 선택과 유기, 저항 할 수 없는 은혜, 성도의 최종적 견인 교리를 통하여 인간의 책임 부분을 완전히 제거 해버렸다. 그러나 웨슬리는 이러한 하이퍼 칼빈주의를 칼빈주의로 오해하였던 것이다. 실제로 칼빈은 예정을 가르치면서 성화를 강조하였으며, 칭의와 성화가 불가분의 관계인 것과 성도의 견인에서 인간의 책임 부분이 있음을 말하였다. 따라서 웨슬리는 하이퍼 칼빈주의에 대한 비판을 한 것이다. 물론 하이퍼 칼빈주의는 잘못된 신학이며, 반드시 개혁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날에도 웨슬리처럼 하이퍼 칼빈주의를 칼빈주의로 오해하고 성화를 무시하는 성향이 한국교회에 있다. 따라서 칼빈주의와 하이퍼 칼빈주의를 분명하게 구별하여 잘못된 가르침을 개혁해야 할 것이다.
주제어: 존 웨슬리, 존 칼빈, 칼빈주의, 하이퍼 칼빈주의, 알미니안주의, 도덕률폐기론주의.
들어가는 말
존 웨슬리는 ‘칼빈주의의 가장 자리’라는 말을 사용한다. 즉 자신과 칼빈주의와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을 말한 것이다. 웨슬리는 칼빈주의와 공유할 수 있는 경계선으로서, 모든 선한 것을 하나님의 은혜에 돌리는 것과 모든 자연적 인간의지를 부정하는 것과 은혜에 앞선 모든 능력을 부정하는 것, 심지어 하나님의 은혜로 했을지라도 사람으로부터 모든 공로를 제외시키는 것을 말하였다.1) 웨슬리는 경건하고, 온건한 칼빈주의자들이 복음적 진리에 대해서 올바른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였고 그것은 알미니안주의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2) 웨슬리는 원죄를 인정하였으며,3) 때로는 칼빈주의자들이 강조하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였다.4) 그리고 웨슬레는 칼빈을 지혜롭고 경건한 자로 하나님의 위대한 도구이었음을 믿는다고까지 말하였으며,5) 웨슬리는 칭의 교리에 있어서 칼빈과 머리카락 하나의 차이도 없다고 하였다.6) 칭의 교리를 설명함에 있어서 웨슬리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의 1권 2장의 내용을 인용하기도 한다.7) 그러나 동시에 웨슬리는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돌트회의에 대해서 비판을 한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원죄를 부정하고, 이신 칭의 교리를 부정했다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고 말하면서, 알미니아누스는 원죄와 이신칭의에 대해서 보다 분명하고, 강하게 말하였다고 주장하였다.8) 웨슬리는 이렇게 자신과 칼빈주의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온건하게 말하기도 하지만, 아예 강력한 목소리로 혹독하게 비판한다.9) 그렇다면, 웨슬리는 칼빈주의를 어떻게 이해하였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한다. 특별히 그가 강력하게 비판하였던 칼빈주의는 과연 어떤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웨슬리는 자신의 교리적 체계를 세운 자로서 그 당시 논쟁과 변론을 통해서 그 체계를 전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웨슬리가 강력하게 비판하였던 그 칼빈주의가 무엇인지를 밝혀내고자 하는 것이다.10) 또한 그 칼빈주의는 과연 진정한 칼빈주의인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1. 웨슬리가 강력하게 반대하였던 부분들
1) 선택 (유기), 저항할 수 없는 은혜, 성도의 최종적 견인
웨슬리는 칼빈주의자 (calvinist)를 만나서 그와 상담한 사례들을 싣고 있다. 아주 가깝게 지내던 칼빈주의자가 웨슬리를 찾아왔다. 그는 선택과 유기에 대한 교리를 웨슬리에게 가지고 왔는데, 그 사람뿐만 아니라 대부분 같은 견해를 가진 많은 칼빈주의자들이 실망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웨슬리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였는데, 그들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선택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영원 전부터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워하십니다’라고 그들이 대답하였다고 말한다.11) 이렇게 웨슬리는 선택과 유기 교리가 사람들로 실망을 주는 가르침일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모순되는 가르침으로 이해하였다. 특별히 웨슬리는 칼빈주의자와의 논쟁에서 3가지를 택하였다. 무조건적 선택, 저항 할 수 없는 은혜, 최종적 성도의 견인 (final perseverance) 이었다. 웨슬리는 선택의 교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선택되지 않은 자들이 영원한 정죄를 피할 길이 없이 반드시 영원한 멸망으로 빠지는 것이 때문이라고 하였다. 웨슬리는 저항 할 수 없는 은혜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믿을 수 없다고 하였는데, 그 이유로 저항할 수 없는 은혜가 없는 자는 반드시 정죄되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세 번째인 최종적 견인에 대해서 자신은 믿는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의 삶에서 최종적으로 타락할 수 없는 상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12) 웨슬리는 칼빈주의자들의 무조건적 선택과 저항할 수 없는 은혜, 그리고 최종적 성도의 견인의 교리는 인간의 책임을 완전히 무시하는 가르침으로 이해하였으며, 마지막의 성도의 견인 교리는 자신의 완전 성화의 가르침에 비추어서 믿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13) 1751년 웨슬리는 성도의 견인에 대한 심각한 사고들 (Serious Thoughts upon the Perseverance of the Saints)에서 진정한 신자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 영원히 멸망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14) 웨슬리는 칼빈주의가 인간의 책임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으로 여기고, 그것에 대한 대응으로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칼빈주의에 대해서 맹공을 펼치게 되는데 다음과 같다.
심령의 거룩함의 교리, 즉 메도디즘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칼빈주의이다. 지난 50년 동안, 사탄의 모든 궤계는 하나님의 사역을 중단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다했는데, 다름 아닌 바로 이 교리 [칼빈주의]이다. 이것은 죄로부터 구원이라는 가르침을 공격하였고, 그것을 아주 다른 문제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이 교리가 매력적으로 보여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탐욕스럽게 삼키도록 만든 것은, 1) 이것은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리스도를 헛되이 죽으신 것으로 만든다. 왜냐하면 절대적으로 선택된 자는 그리스도 없이 반드시 구원받으며, 선택되지 못한 자는 그리스도에 의해서도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2) 특별히 최종적인 견인 교리는 육신과 혈육을 최고로 즐겁게 만든다.15)
계속해서 웨슬리는 이렇게 잘못된 칼빈주의로부터 메도디스트를 보호하기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하는데, 모든 설교자들이 메도디스트의 글과 플레처 (Fletcher)의 책자들을 주의 깊게 읽으며, 설교자들로 진리를 자주 그리고 명확히 설교하고,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사람들이 칼빈주의자들의 말을 듣지 않도록 매우 자주 충고하라고 하였다.16) 여기서 웨슬리는 선택교리와 견인교리가 인간이 아무것도 안해도, 구원받을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며, 구원받지 못할 사람은 결국 어떤 노력이 있어도 구원 받지 못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2) 예정
웨슬리는 ‘예정’의 제목에서의 설교에서 예정론에 대해 반대하였다. 웨슬리가 예정을 반대하였던 가장 주된 이유는 예정론을 가지고 남용하여 육신적 안일함에 빠져있으면서도, 자신은 구원백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웨슬리는 ‘예정’의 설교에서 하나님의 뜻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아들을 믿는 모든 자에게 그리스도의 형상에 맞추어서, 내적인 죄와 외적인 죄로부터 구원 받고, 내외적인 성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였다.17) 즉 예정 교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에 이르는 것과 내외적인 성결을 이루는 것을 방해하는 교리로 본 것이다. 1740년 브리스톨에서 설교한 값없는 은혜 (Free Grace)에서도 예정론에 대해서 반대하는데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자에게 거져 주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18) 따라서 설교의 목적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인데, 이러한 설교가 선택되지 않은 자들에게는 아무 소용없는 것이기 때문에, 예정론은 설교를 무효화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19) 웨슬리는 예정론은 하나님의 교리가 아닌데, 그 이유로서 하나님은 스스로에게 나뉘어 질 수 없으며, 이 교리는 하나님의 계명의 모든 목적인 성결을 직접적으로 파괴하는 성향이 있다고 하였다.20) 계속해서 예정론은 신앙의 위로를 파괴하는 성향을 가졌는데,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유기된 자로 믿도록 만들고 있다고 하였다.21) 예정론은 선한 일에 대한 열심을 직접적으로 파괴하는 성향을 가졌으며, 기독교 전체 계시를 내버리는 성향이 있어서 결국 신성을 모독하는 가르침이라고 하였다.22)
한편으로 1751년에 존 길과의 논쟁은 ‘선택’이었는데, 1752년부터 ‘예정’으로 옮겨간다. 웨슬리는 예정에 대한 고찰 (Predestination calmly considered)에서 1559년의 프랑스 신앙고백서 12장, 돌트 신조 6항,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장과 기독교 강요 3권 21장을 언급하였다. 그런데 웨슬리는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선택 교리만 믿고 유기 교리를 믿지 않는 것에 대해서, 칼빈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그들은 어리석고 유치한 자들이라고 하였다.23) 여기서 웨슬리는 선택은 믿지만 무조건적 선택은 믿을 수 없다고 하였고, 자신은 유기 교리에는 결코 동의 할 수 없다고 하였다.24) 웨슬리는 예정론을 독이라고까지 표현하였다.25) 웨슬리는 그 당시 오류가 가득한 가르침은 과거의 전통 속에서 내려 온 것이 아니라 절대 예정론을 주장하는 칼빈주의자들에 의한 것이라고 역설하였다.26) 웨슬리가 존 길과의 논쟁에서 예정론에 대해서 반대하였는데, 웨슬리는 예정론이 육신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교리를 근거로 해서 자신은 구원 받았다는 헛된 확신을 갖게 만드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예정론의 남용으로 인한 이러한 잘못된 확신은 사람들로 성결의 삶을 살도록 도전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결의 삶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을 웨슬리는 주목하였던 것이다.
3) 성화
웨슬리는 칼빈주의자들이나 혹은 루터주의자들 모두 믿음의 실천에 있어서 특히 성결과 선행이 미약함을 비판하였다. 웨슬리는 루터주의자와 칼빈주의자들이 너무 믿음을 확대하는 것으로 보았다.27) 그래서 웨슬리는 우리를 위해 주어진 그리스도를 설교할 때, 그 남용이 심각하며, 따라서 우리 안에서의 살아계신 그리스도에 대해서 더욱 강조해야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당신 안에 그리스도가 있는가? 당신은 새로운 심령을 가지고 있는가? 당신에게서 몸 전체의 죄가 파괴되었는가? 당신은 의심과 두려움 없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확신하는가?28) 더욱이 웨슬리는 전가된 칭의에 대해서 제임스 허베이 (James Hervey)와 논쟁하는데 (제임스는 존 길을 추종하는 자이다) 전가된 의의 추상적 교리는 회개로 인도하지 않으며, 오히려 죄에 방임하도록 인도한다고 하였다.29) 왜냐하면, 허베이는 칭의가 하나님의 행위로서 우리가 믿는 순간에 완성된다고 하였다. 웨슬리는 성경에서의 의는 칭의와 성화 둘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고 하였다.30) 웨슬리는 그 당시의 칼빈주의를 칭의 만을 강조하고 성화를 무시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렇게 웨슬리 당시의 칼빈주의라는 이름 아래에서 칭의만 강조되고, 성화가 무시되는 성향이 강하였다. 그래서 웨슬리는 칼빈의 교리들을 지지한다는 사람들 가운데 너무 많은 경우에 도덕률폐기론주의로 전락하고 있었으며,31) 웨슬리는 바로 신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이러한 상태에서 자신의 사역을 시작한 것이다.32) 웨슬리와 휫필드가 서로 의견의 충돌이 있을 때, 웨슬리는 칼빈주의 교리들이 도덕률폐기론주의를 만들어 내는 성향이 강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33) 왜냐하면, 그 당시 영국에는 도덕률폐기론주의가 강하게 조수처럼 밀려왔는데, 이것으로 영국에서는 실제적인 경건이 크게 위협을 받았다. 호웰 해리스 (Howell Harris)와 휫필드 (Whitefield)에 의해서 가르쳐진 칼빈주의도 그들로부터 들은 사람들에 의해서 왜곡되어 도덕률폐기론주의로 전락되고 말았다. 도덕률폐기론주의는 칼빈주의 교리 옆에서 접붙임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 당시 균형있는 칼빈주의 (sober calvinism)와 도덕률폐기론주의와 어떤 독점적인 연결은 없지만, 어떤 이들은 칼빈주의를 도덕률폐기론주의로 생각하였다. 칼빈주의와 도덕률폐기론주의는 너무 서로 자주 만났다.34) 웨슬리는 칼빈의 구원에 대한 진리는 매우 유용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믿음을 뒤흔들어 놓은 위험이 있으며, 실천적 경건에 손상을 주고, 칼빈주의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너무 쉽게 도덕률폐기론주의자들의 죄에 대한 방임과 부주의한 삶에 빠졌다고 보았다.35)
1744년 6월 25일 대화에서 웨슬리는 칼빈주의에 너무 기울어진 자에 대해서 우리는 두려워하고 있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칼빈주의와 도덕률폐기론주의에 복음의 진리가 없느냐는 질문에, 정말로 그렇다고 말하면서, 그 둘은 어리석으며, 죄스러운 것인데, 그 이유로 우리는 어느 것 하나에도 동의할 수 없으며,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그것들로부터 멀리 달아나고자 한다고 대답했다.36) 다른 대화의 기록에서는 하나님께서 성결하지 아니한 자들을 내던지시고, 거룩한 백성을 일으키시는데, 사탄이 이것을 방해하기 위해, 칼빈주의와 도덕률폐기론주의를 길에다 놓아서 모든 성결의 뿌리를 직접적으로 공격하고 있다고 하였다.37) 웨슬리는 칼빈주의자와 도덕률폐기론주의자들이 만나는 지점을 선택 교리로 보았고, 그는 이것을 반대하였다.38) 따라서 웨슬리는 도덕률폐기론 칼빈주의 (Antinomian Calvinisim)라고 부르기도 했으며,39) 1781년 6월 27일자 편지에서는 칼빈주의를 편견 (prejudice)이라고 하였다.40)
4) 복음 전도
웨슬리가 칼빈주의를 반대한 이유 중에 하나는 예정론이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계명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오직 선택된 자만이 구원이 확실하고, 그외 다른 사람들을 정죄되는 것으로 예정하셨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복음적 기독교를 위협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1741년 5월 31일자 일기에서, “저녁에 나는 하나님의 위대하고, 영원하며, 변화지 않는 뜻 (이것은 비참하게 오해되어지며, 헛된 사람들에 의해 잘못 설명되어졌다. 현명해져야 한다)을 선포했다.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 믿는 자는 결코 정죄당하지 않는다”라고 기록하였다.41) 즉, 칼빈주의자들이 예정론을 남용하고 곡해하여 복음전도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에 대해서 불편한 마음을 말하였다. 또한 웨슬리는 복음의 일반적 반포 (General Spread of Gospel)의 설교에서, 저항 할 수 없는 은혜의 교리에 의한 복음 전도를 무시하는 것, 즉 구원받을 자는 결국 저항 할 수 없는 은혜에 의해 구원받는 다는 방식의 사고를 비판하였다: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한 시기에 저항 할 수 없도록 역사하실 지라도, 나는 하나님께서 항상 인간의 영혼위에 저항 할 수 없도록 일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아니다. 나는 저항할 수 없는 방식이 아니라고 확고히 믿는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 생명이냐 죽임이냐 그리고 영원한 생명이냐 혹은 영원한 죽음이냐의 선택이 그 앞에 제시되는데, 선택의 음성이 던져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자유를 파괴하지 않으시면서 그들을 회심시킨다.42)
따라서 웨슬리는 복음 전도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죽음이냐, 생명이냐의 선택을 제시하여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렇게 웨슬리는 칼빈주의자들의 교리들이 복음 전도와 모순된다고 생각하였다.
2. 존 길
웨슬리가 이렇게 칼빈주의에 대해서 공격적인 이유는 그 당시 과도한 칼빈주의의 성향으로 인한 것이다. 그 당시의 웨슬리와 논쟁적 위치에 있었던 과도한 칼빈주의자는 존 길과 그를 추종하는 자들을 들 수 있다.43) 따라서 웨슬리가 그토록 칼빈주의를 혐오하게 하였던 이들의 주장들은 다음과 같다.
1) 선택, 유기, 견인 교리
웨슬리가 그토록 칼빈주의에 대해서 공격하였던 것은 선택의 교리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찍이 선택의 교리에 대해서 웨슬리는 휫필드와의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과격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존 길이라 할 수 있다.44) 존 길은 선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삶에 대한 예정인 선택은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의 행위이며,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고, 불변의 뜻이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 전부터 택하신 것이며, 모든 인류 가운데로부터 어떤 이들을 혹은 그들 가운데 특정 숫자의 사람들을 영적인 축복을 이곳에서 참여하게 하셨고, 나중에는 행복을 갖게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45)
이렇게 존 길은 선택을 설명하면서, 선택의 실행인 유효한 부르심 혹은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이 없다. 따라서 선택 교리의 남용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따라서 선택된 자는 결국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든지 구원을 얻을 것이며, 더욱이 선택된 자는 한 사람도 낙오된 자 없이 나중의 행복까지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웨슬리는 바로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 격렬하게 비난하였던 것이다.
존 길은 유기 교리가 하나님의 주된 관심은 아니며, 선택이 주된 관심이며, 유기는 단지 선택의 부산물 정도라고 말한다. 그리고 유기된 자는 자신의 죄 때문에 정죄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유기된 자를 인식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존 길은 유기 교리를 적용하는 것에 있어서 과도함이 나타난다: “유기 교리 때문에 어떤 사람도 우리의 기도에서 제외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유기된 자인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유기된 자들의 회심과 구원을 위해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 모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46) 존 길의 이러한 태도는 결정론적 (deterministic) 하나님의 주권으로 기울어져서, 유기 교리를 잘못 적용하는 길을 열어 두고, 심지어 복음전도의 필요성을 무너트리기에 충분한 기회를 제공한다.
웨슬리와의 논쟁 가운데 존 길은 성도의 최종적 견인을 강조한다. 존 길이 주장하는 것은 성도의 최종적 견인 교리가 성경적이며, 성경 속에서 많은 증거들이 있다고 하면, 이 교리는 하나님의 완전성과, 특별히 하나님의 불변성과 지혜, 능력, 선하심, 공의, 진리와 신실하심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하였다.47) 그리고 자신의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정하신 자신의 목적을 결국 이루시기 때문에 이 교리는 영적인 평화와 위로를 준다고 하였다.48) 존 길은 이 교리를 설명하고 결론으로 빌립보서 1장 6절과 이사야 45:17절을 언급하면서, 하나님께서 처음에 시작한 일을 마지막까지 완성시키는 것을 말하였다.49) 즉, 존 길은 성도의 견인 교리를 설명하는 것에 있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만 언급하였다. 그가 특별히 빌립보서 1:6을 언급하였는데, 이것에 반해서 웨슬리는 인간의 책임인 빌립보서 2:12절을 언급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균형있게 설명되어야 하는데, 존 길은 하나님의 주권으로만 치우쳐 버린 것이다.
2) 예정론
존 길은 웨슬리의 예정론에 대한 고찰에 대해서 다시 반박의 글을 썼다. 이글에서 존 길은 “이 세상에서 일어났으며, 일어나고 있으며, 또한 일어나야 하는 일들 즉, 모든 일은 하나님의 결정 (determination)과 정하신 (appointment) 아래에서 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작정은 지혜로우시며, 자유롭고, 거룩하며 뜻에 의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50) 여기서 존 길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표현한 것을 거의 그대로 인용하였다고 말한다. 존 길이 예정론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인용하여서 설명하였는데, 사실 존 길이 놓치고 있는 점이 있다. 즉, 은혜의 수단 (means of grace)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을 놓치고 있다. 따라서 그는 구원에 있어서 예정부터 시작하며, 정해진 은혜의 수단을 놓침으로 인간의 책임 부분이 없어지고, 결국 결정론으로 흘러가서 예정된 백성은 구원을 받을 것이며, 이들은 마지막 견인까지 적용되어서 구원에 대해서 안전하다고 하는 논리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존 길의 예정론은 은혜의 수단을 배제하기 때문에, 결국 나중에는 복음 전도의 불필요성을 말하기도 한다. 따라서 그의 과도한 칼빈주의 양상에 대해서 웨슬리는 맹공을 펼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3) 칭의론
앞에서 웨슬리와 존 길의 추종자인 허베이의 논쟁에서와 같이 허베이는 칭의 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주장들은 존 길의 칭의에 대한 관점으로부터 온 것이다. 존 길은 칭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 하였다. “칭의는 하나님의 거저주시는 은혜의 행위이다. 이로써 자신의 백성을 죄에서 깨끗이 하며, 정죄로부터 그들을 해방시키시고, 그리스도의 의를 근거로 해서 그들을 의로운 자로 여기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들을 받아주시며, 의를 전가하신다.”51) 존 길의 칭의에 대한 정의는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질문 70번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러나 여기서 존 길은 믿음에 대한 언급이 없다. 물론 그가 믿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믿음에 대해서 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존 길에 있어서 믿음은 칭의의 정수가 아니라 단지 칭의의 산물이다.52) 이렇게 말하는 존 길에 있어서 칭의는 단지 선택에 있어 하나의 가지 (a branch)로 간주하기 때문이다.53) 즉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으면 이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뜻이기 때문에 결국 그들을 의롭게 하신다고 존 길은 생각하였던 것이다. 결국 존 길은 영원 칭의 (eternal justification)를 지지하게 된다. 즉 하나님의 뜻은 선택하신 자를 의롭게 하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54) 존 길은 선택은 반드시 의롭게 한다고 생각하였다. 존 길은 영원 칭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선택의 은혜는 사람들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게 한다. 이 세상의 기초가 놓아지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만약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면 그들은 반드시 의로운 자로 간주된다... 그들은 반드시 의로운 자로 간주되며 그래서 의롭게 된다.”55) 따라서 존 길은 그리스도께서 선택된 자들이 존재하기 전에 벌써 그들을 위해 죽으셨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존재하기 전에 그들을 의롭게 하셨다 라고 생각하였다.56)
그렇다면 존 길의 칭의 교리에 있어서 믿음은 어디에 있는가? 존 길은 알미니안주의에 대해서 극단의 대응을 하였다. 그래서 그는 믿음이 하나님의 언약에 들어가는 것 혹은 칭의에 대한 조건이 될 수 없는 것을 강조하였는데, 만약 믿음이 조건이 된다면 그것은 행위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알미니안주의에 대해서 극단으로 반대하면서, 믿음을 칭의의 은덕이라고 생각하였다. 존 길은 믿음을 설명하면서 연속하여 성도의 견인 교리를 다음과 같이 적용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선택된 자에게 특별한 믿음을 공급해주신다. 그러나 선택된 자들이 때때로 죄를 짓거나 하나님을 믿지 않을 때, 이 특별한 믿음을 거두어 가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은혜와 믿음을 거두어 가시는 것은 일시적이다. 그래서 성도는 죄와 불신앙의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살 수 없다고 하였다.57)
4) 도덕률폐기론
웨슬리 당시 (1730년대), 도덕률폐기론주의 논쟁은 존 길이 토비아스 크리슾 (Tobias Crisp, 1600-1643)의 작품을58) 변호하면서 일어났다.59) 존 길은 크리슾이 도덕률폐기론주의자가 아니며, 그는 경건한 자라고 변호하였다. 그러나 이 논쟁으로부터 존 길은 도덕률폐기론주의자로 분류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더욱이 존 길은 이미 후시와 같이 자유로운 복음의 제시 (free offer)를 반대하였다.60) 이때 테일러는 존 길이 도덕률폐기론을 다시 부활시키고 있다고 비난하였으며, 그의 칭의 교리는 도덕률폐기론에 해당된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서 1732년 존 길은 영원한 연합 (eternal union) 교리를 변호하였고, 죄는 신자에게 어떤 해도 미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특히 로마서 8:28절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께서는 신자에게 있는 죄도 압도하셔서 결국 모든 것을 선하게 하신다고 하였다. 따라서 죄는 선택되었으며, 의롭게 된 자를 최종적으로 정죄할 수 없다고 하였다.61) 그리고 때때로 존 길은 하나님은 신자에게 있는 죄를 보시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존 길의 영원 칭의 교리와 크리슾을 변호하면서 하였던 말들은 죄에 대해 방임에 대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으며, 그를 도덕률폐기론주의로 보기에 충분하다. 물론 존 길 자신은 도덕률폐기론주의자가 아니라고 항변하였다. 존 길과 테일러와의 도덕률폐기론 논쟁은 1730년 후반에 까지 계속되어 졌고, 그가 죽을 때(1771)까지 진행되었다. 이러한 논쟁 가운데, 존 웨슬리가 들어오게 되었으며 그는 도덕률폐기론주의를 공격하였으며62), 이것에 대응하여 완전성화 교리를 주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칼빈주의자라고 하면서 이렇게 도덕률폐기론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자들에게 대해서 공격을 하였고, 때로는 도덕률폐기론주의와 칼빈주의를 동일시하기도 하였다.
5) 복음 전도
존 길은 누구에게나 복음을 제시하는 free offer 에 대해서 반대하였다.63) 그것은 알미니안주의자들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존 길은 복음을 제시하는 것은 알미니안주의자들의 보편 속죄를 믿는 것이라고 간주하였다. 존 길은 제한 속죄를 과도하게 적용하여서 복음 제시를 반대하였던 것이다. 더욱이 존 길의 이러한 복음을 제시하는 것을 반대한 이유는 그의 복음에 대한 이해로부터 나왔다. 그가 이해한 복음은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이 하신 일과 지금 하시는 일에 대한 선언으로 보았다.64) 복음 그 자체를 하나님의 뜻과 언약으로 본 것이다. 복음은 영원한 언약을 베낀 것으로 이해하였다. 따라서 존 길에게는 무조건적 선택 교리 그 자체가 복음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존 길은 TULIP 교리 자체를 복음의 정수로 이해한 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뜻을 누구에게 전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뜻은 선택된 자에게 드러날 것이며, 이것은 모두에게 드러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65) 존 길에게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말과 혹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말은 용납될 수 없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어떤 특정한 자를 사랑하신다가 그에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었다. 더욱이 존 길은 복음 안에는 명령이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누구도 사람들에게 믿으라고 명령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66) 그래서 존 길은 심지어 복음 전도를 지지하는 칼빈주의자들을 알미니안주의자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복음 전도에 대한 존 길의 태도는 웨슬리로 하여금 칼빈주의에 대해서 혐오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3. 하이퍼 칼빈주의와 칼빈주의
1) 하이퍼 칼빈주의67)
웨슬리 생애의 전 시대에 존 길과 같은 극단의 칼빈주의자들이 지속되었다.68) 그러나 그 시대에는 존 길과 같은 주장을 칼빈주의로 이해하였다. 웨슬리 역시 존 길과 같은 주장을 칼빈주의로 이해하였으며, 이러한 주장에서 온건한 자들을 온건한 칼빈주의 (sober Calvinism)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존 길과 그와 같은 주장들이 칼빈주의가 아니라는 것은 앤드류 풀러 (Andrew Fuller)에 의해서 밝혀진다. 초기에 앤드류 풀러는 존 길과 같이 침례교도로서 존 길의 작품에 상당히 심취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침례교 청교도인 존 번연의 글을 존 길의 글과 비교하였다. 풀러는 번연이 선택과 예정 교리를 가르치면서 복음전도를 강조한 것이 존 길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처음에 번연이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다가 그 후 16, 17세기의 작품을 읽고 마침내 1776년에 존 번연이 옳다는 확신에 이르렀다. 따라서 1784년 The Gospel Worthy of All Acceptation이라는 타이틀로 책자를 발행하였다. 그리고 풀러는 존 길의 가르침이 칼빈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그것에 반대하기 시작하였다.69) 즉, 앤드류 풀러가 칼빈주의와 하이퍼 칼빈주의의 차이를 발견하고, 하이퍼 칼빈주의에 대한 오류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앤드류 풀러가 하이퍼 칼빈주의의 오류를 드러내기 전까지, 웨슬리는 물론이거니와 교회는 칼빈주의와 하이퍼 칼빈주의의 차이점에 대해서 정확하게 분별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2) 칼빈주의에서의 선택, 유기, 저항할 수 없는 은혜 교리
하이퍼 칼빈주의에서의 선택 교리와 저항 할 수 없는 은혜의 교리에서는 회개의 교리가 있을 자리가 없다. 선택하였기 때문에 곧 저항 할 수 없는 은혜를 받고 구원을 얻는 것으로 이해한다. 더욱이 하이퍼 칼빈주의에서의 성도의 견인 교리는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죄에 대해서 느슨한 삶을 허용한다. 그러나 이것은 선택교리와 성도의 견인 교리의 남용이다. 즉 칼빈은 이러한 방식으로 선택을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택 교리가 하이퍼 칼빈주의자와 같은 태도로 남용되어질 것을 경계하였다. 선택 교리는 우리 자신을 죄악에 대해서 느슨하게 할 수 없는데, 만약 이렇게 한다면 그것은 선택 교리를 내동갱이 치는 것이라고 하였다.70) 칼빈은 선택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은 우리로 거룩한 삶을 살도록 권고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선택 즉, 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우리가 이해 할 수 없는 비밀인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라고 말씀한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을 때, 우리에게 악을 행할 기회를 주시지 않으시는 것과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큰 주의를 기울이고 걸어야 하는 것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였다.71) 칼빈은 하나님의 선택의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 선택하셨음을 말하면서, 따라서 우리가 그 쪽으로 행진해야하며, 이것을 우리가 사는 모든 날 동안에 우리가 목표해야 할 표식으로 삼아야 마땅하다고 하였다.72) 칼빈은 결국 하나님의 선택은 그 자체가 비밀로서, 시간이 되어서 그 자체로 보여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는데, 그 이유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완전에 이르도록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73) 칼빈은 이사야 41:8절의 주석에서도, 선택의 목표가 신자의 성화이며, 선택에 대한 신자의 감사는 거룩하게 살고자하는 열심과 부지런함을 증진 시킨다고 하였다.74) 따라서 칼빈에게 있어서 선택의 교리는 우리 자신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의 효과가 있었는지의 여부를 돌아보게 하고, 그것에 대해 감사하게 하는 교리인 것이다. 칼빈뿐만 아니라 청교도 시대에 대표적인 칼빈주의자인 윌리엄 퍼킨스는 “사람들이 선택의 첫 번째 원인들로부터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다만 그 효과로서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성령의 증거와 성화의 역사이다”라고 하였다.75)
한편으로 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의 유기 교리는 마치 결정론적으로 해석해서, 유기된 자라면 복음을 들을 필요도 없으며, 그가 어떤 노력을 하여도 구원 받을 수 없다 라는 방식으로 이해하였다. 그래서 웨슬리도 유기 교리를 사람들에게 절망을 가져다주는 가르침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칼빈은 유기 교리를 이렇게 설명하지 않았다. 칼빈은 에서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휼이 여겼으며, 그는 세상적이며, 자기 길을 취한 자로 설명하고 있다.76) 특별히 에서가 장자권을 판 것은 하나님의 은사들을 경멸하는 표식이었다라고 칼빈은 말하였다. 즉 칼빈에게 있어서 유기 교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 아래에 있지만 은혜의 수단을 무시하고 영원한 것을 경휼이 여기는 자들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기독교 강요의 3권 21장 8절에서는 신앙고백을 통해서 교회에 들어왔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옷을 입지 않은 자들은 결국 위선자들인데, 그들은 경건한 척하였으며,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리스도께서 최종적으로 그들을 물리칠 것이라고 말하였다.77) 즉, 칼빈에게 유기 교리는 위선자에게 해당되는 것이었다. 더욱이 칼빈은 유기 교리가 성도에게 도전을 주는 교리로 보았다: “유기 교리는 성도에게 현세적 생명에 매달리지 말고, 배고픔과 목마름이 있다할 지라도 영원한 생명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가르침”이라고 하였다.78) 윌리엄 퍼킨스 역시 유기 교리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어떠한 자도 자기 자신이나 혹은 다른 사람을 유기된 자라고 확정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어떠한 악인도 회개케 하셔서 자신의 나라의 자녀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으며, 차라리 자신이 유기된 자로 생각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라고 하였다.79)
3) 칼빈주의에서의 예정 교리
하이퍼 칼빈주의에서의 예정론에 대한 태도는 마치 인간이 하나님의 예정에 대해서 아는 것과 같은 태도를 취한다. 그 논리상, 예정에서부터 출발해서 그 다음에 선택, 칭의, 성도의 견인 순서로 풀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칼빈주의가 아니다. 칼빈은 말하기를 “예정 교리는 우리가 소화하기에 어려운 것이며, 만약에 우리 자신의 판단으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이 교리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며, 이 교리는 우리로 겸손하게 하며, 경외하게 하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80) 즉 예정은 하나님의 비밀들이며, 우리의 두뇌로 이 땅에서나 하늘에서 이해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칼빈은 인간의 어리석은 환상적인 방식으로 해석할 것을 금하였으며, 마치 인간이 하나님 보다 더 많이 아는 것과 같은 태도를 취하지 말라고 하였다.81) 더욱이 칼빈은 하나님의 예정 목적을 분명히 말함으로 마치 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의 논리와 같이 예정되었으니, 의롭다 함을 받을 것이며, 결국에는 견인되어질 것이라는 논리를 아예 배척하였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거룩하게 될 것을 예견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택하셨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반대로 하나님께서 우리로 모든 거룩함과 의로움으로 끌어내시며, 우리 안에서 모든 선함이 발견되게 하시기 위해, 우리로 이 뿌리로부터 끌어내신다. 예정의 목적에 따라 우리는 그를 두려워하는 가운데 걸어가야 하며, 우리 안에 고결함이 있어야 하며, 우리는 열심과 애정을 가지고 이것들을 잘 해야 한다.82)
즉, 예정 교리는 더욱 우리로 거룩함과 의로움에 힘쓰게 하는데, 그 이유로서 하나님의 예정의 목적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칼빈은 선택과 유기 교리의 12번째 설교의 결론에서도 하나님께서 예정의 목적과 그 표식을 두었는데, 그래서 더욱 거룩해지도록 자라나야 한다고 말하였다.83) 계속해서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도 예정은 도덕적 삶을 위한 참된 동기를 제공한다고 하였다.84) 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의 예정론은 웨슬리가 반대한 이유이었던 것과 같이 성화의 자리가 없지만, 정작 칼빈의 예정론에 대한 설명은 성화를 강조한 것이다.
4) 칼빈주의에서의 칭의 교리
하이퍼 칼빈주의에서는 칭의를 언급하지만, 칭의에 있어서 중요한 믿음에 대해서는 강조가없다. 왜냐하면 믿음조차도 행위적인 요소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빈은 칭의 교리를 그렇게 설명하지 않았다. 칭의는 구원의 완성이 있는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라고 하면서 그 믿음은 행함이 동반되는 것이라고 칼빈은 말하였다.85) 더욱이 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은 영원 칭의를 말하였는데, 이것은 칼빈주의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1장 4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택함을 받는 모든 사람들을 의롭다 하시려고 작정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때가 차매 그들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그들을 의롭가 하심을 위하여 다시 살아나셨다. 그렇지만, 그들이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성령께서 때를 따라 실제로 그리스도를 적용시키실 때에 비로써 가능하다.86)
즉 작정이 있을 지라도 실제적인 성령의 적용의 역사가 있을 때에야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을 말하였다. 그러나 하이퍼 칼빈주의에서는 실제로 선택된 자의 칭의는 실제적으로 영원부터 (from eternity) 일어난 것으로 말하였다. 결국 영원 칭의 교리는 회심하지 않은 선택된 자는 실제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칼빈주의가 아니라 하이퍼 칼빈주의이다.
5) 칼빈주의에서의 성화 교리
하이퍼 칼빈주의가 도덕률폐기론의 성격을 가지는 것은 신자의 죄에 대한 태도가 매우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영원 칭의의 강조에 의해서 상대적으로 성화가 있을 곳이 없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칼빈은 칭의 교리를 설명하면서부터 믿음이 행함과 분리될 수 없음을 말하였다. 그리스도께서 그 자신 안에 칭의와 성화를 담고 있다고 하였다. 물론 그 둘은 구별된다고 하였다.87) 칼빈에게 있어서 칭의와 성화의 관계는 구원 교리의 전체의 원리이며, 모든 신앙의 근본이었다. 그리고 칼빈은 신자는 삶의 거룩함 속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칭의 되었다고 하였다.88) 즉 칭의의 목적은 성화인 것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칭의가 있다면 성화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칼빈은 교회론에서 성령의 성화의 역사가 있는 자만의 그리스도 교회의 참된 회원이라고 말하였다.89)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도 성화가 구원의 요소인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효과적으로 부르심을 받고 중생하여, 그들 안에 새 마음과 새 영을 창조함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공로를 통하여 그의 말씀과 그들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실제로 그리고 직접 성화되며, 온 몸을 주관하는 죄의 권세가 파괴되고, 그리고 그 죄의 몸에서 나오는 정욕들이 점차 약하여 줄어지고, 그들은 점차 구원하는 은혜 안에서 활기를 되찾아 강건하게 되어, 참된 거룩의 생활을 하게 된다. 이러한 거룩한 생활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보지 못할 것이다.90)
칼빈의 직접적인 가르침은 물론이거니와 칼빈주의의 구원론에서 성화가 중요하다. 따라서 웨슬리가 본 도덕률폐기론의 성격을 가진 칼빈주의는 칼빈주의가 아니라 하이퍼 칼빈주의 이었던 것이다.
6) 칼빈주의에서의 복음 전도
하이퍼 칼빈주의의 가장 문제점은 복음전도 혹은 복음초청의 무용성을 말한 것이다. 하이퍼 칼빈주의에서 복음전도는 알미니안주의자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진정 칼빈은 이러한 주장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칼빈은 그 당시 재세례파들이 말씀의 사역을 거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 가르침을 받는다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 반박하였는데, 이 반박은 하이퍼 칼빈주의에 대한 반박으로도 적용될 수 있다.
모든 열등한 수단을 거절하고, 날개도 없이 구름위로 오르려는 환상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충분히 가르치시지 않느냐? 그가 믿음을 주시지 않느냐? 사람들의 손에 성령이 계시지 않느냐? 우리에게 설교를 할 필요가 있느냐?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 많이 읽어야 하느냐? 혀를 우리 귀에다 놀리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충분히 우리에게 영감을 주실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축복과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성취하신다.... 사도바울이 말한 것과 같이 믿음은 통상적으로 들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에 의하지 않고서는 믿음을 가질 수 없다.91)
계속해서 칼빈은 선택과 유기 교리에 대한 열 두번째 설교에서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화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할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잘못들이 용서되며 그가 우리를 위하여 흘린 피가 참으로 정결하게 하는 것으로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기 때문에, 비록 그 말씀이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하나님께서 하늘을 열고 우리를 자기에게로 부르신다.92)
기독교 강요에서도 칼빈은 하나님의 초청은 우주적인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93) 주님의 대 명령에 대한 주석에서도 칼빈은 주께서 복음의 사역자들에게 세상의 모든 곳에서 구원의 교리를 전하기 위해서 멀리까지 가라고 명령하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94) 따라서 복음 전도의 무용성을 말하는 것은 하이퍼 칼빈주의이지, 칼빈주의가 아니다.
나가는 말
웨슬리는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또한 칼빈주의에 대해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은 받아들였다. 칼빈을 긍정적으로 말하기도 했으며, 휫필드와 중생에 대한 부분에 동의하였고, 심지어는 1748년 8월에 칼빈주의자들인 청교도들의 작품들을 자신이 편집하여 A Christian Library를 펴냈으며, 선행적 은혜의 이론은 청교도의 회심 신학과 거의 유사하다.95)
그러한 웨슬리가 칼빈주의를 실랄하게 비판한 것은 도덕률폐기론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하이퍼 칼빈주의를 칼빈주의로 오해하였기 때문이다.96) 웨슬리는 성화와 전도를 무시하는 하이퍼 칼빈주의를 칼빈주의로 오해하여서 칼빈주의를 비판한 것이었다.
그러나 웨슬리가 도덕률폐기론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가르침에 대해 비판하였던 것은 마땅한 것이다. 잘못된 신학이 교회의 경건을 무너트리고, 거룩과 성결의 삶을 추구하지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망가트리는 가르침이라면 반드시 비판하고 공격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웨슬리가 하이퍼 칼빈주의를 칼빈주의로 오해하였던 현상은 물론 오늘날 한국교회 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선택과 예정론과 성도의 견인 교리를 남용하여서 성화를 무시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웨슬리가 이해하였던 것처럼 그것을 칼빈주의로 보는 것이다.97)
즉, 칼빈주의가 과도하게 적용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성화를 무시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것은 웨슬리가 개혁하려했던 도덕률폐기론 성격을 가진 하이퍼 칼빈주의가 오늘날 교회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하이퍼 칼빈주의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교회와 신학자들이 칼빈주의와 하이퍼 칼빈주의가 어떻게 다른 가를 분명히 가르치고, 잘못된 신학이 교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경고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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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Thomas Jackson ed.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VIII (Albany: Sage Publication, 1996), 324. (이후 The Works of Rev. John Wesley로 인용함)
2)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V, 46.
3) 원죄와 이신칭의 부분에서는 조오지 휫필드와 자신 (웨슬리) 사이에는 머리 카락 만큼이라도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X, 427) 더욱이 웨슬리와 휫필드는 중생의 교리에 있어서 칭의와 성화를 따로 나눌 수 없으며, 연결되어 있는 것에 대해서 동의하였다. (Timothy Smith, Whitefield and Wesley on the New Birth 참조) 그러나 서로 결별하게 되는 것은 예정론과 알미니안주의에 대한 차이로 인한 것이었다. (각주 18번과 김영한의 「웨슬리 신학의 종교개혁신학적 특징」을 참조하라)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웨슬리와 휫필드의 차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웨슬리가 이해한 칼빈주의를 다룬다.
4)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I, 147.
5)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X, 419.
6)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III, 204.
7)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V, 324.
8)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X, 427.
9) 웨슬리의 칼빈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으로서는 “칼빈주의는 메도디즘에 대해 독이 아닌가? 가장 끔찍한 적이다”라고 까지 말하였다.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XIII, 193)
10) 웨슬리는 칼빈의 세르베투스에 대한 경우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칼빈은 세르베투스를 괴물과 같이 묘사하였고, 그를 따르는 자들을 개, 마귀, 돼지라고 하였다. 칼빈의 반대자에 대해서 칼빈은 늘 그러하다. 칼빈은 세르베투스의 죽음에 대해 자신이 직접적 원인이라는 것을 부정하면서, 단지 위정자들에게 이단을 칼로 억제해야 한다고 조언한 것 뿐 이라고 하는데, 결국 세르베투스는 정죄되었다. 나는 그의 처형에 대해서 할 말이 없다".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I, 357)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웨슬리 당시의 웨슬리가 비판하였던 칼빈주의 (Calvinism)을 드러내는 것에 목표를 두고, 그러한 것이 칼빈의 실제적 가르침과 어떠한 관계를 갖는지를 규명한다.
11)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I, 145.
12)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XIII, 604, 605.
13) 그 당시 무조건적 선택을 강조하였던 존 길 (John Gill)은 은혜와 구원의 보편적 제공 (free offer gospel)에 대해서 반대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은 무조건적 선택교리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14)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X, 340.
15)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VIII, 395.
16)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VIII, 396.
17)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VI, 256.
18) 이 설교에 대해서 조오지 휫필드가 웨슬리에게 편지를 보냈다. (1740년 12월 24일) 휫필드는 설교의 유용성과 선택과 유기교리가 거룩을 파괴하지 않으며, 또한 신앙의 위로를 파괴하지 않고, 운명론적으로 해석해서는 안될 뿐만 아니라 신앙을 내던져 버리는 교리가 아니라고 하였다. 이렇게 웨슬리와 휫필드 사이에 서로 동의하지 않은 부분은 예정론과 알미니안주의에 대한 것이다.
19)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VII, 418.
20)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VII, 418.
21)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VII, 419.
22)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VII, 421, 422.
23)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X, 246, 247.
24)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X, 250.
25)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VIII, 396.
26)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VI, 226.
27)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V, 17.
28)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I, 149.
29)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X, 420.
30)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X, 318, 333.
31) 영국에서의 도덕률폐기론에 대한 논쟁은 청교도 시대인 제임스 왕과 촬스 1세 때로부터 시작되었다. (Antinomianism in English history,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period, 1640-1660 참조)
32)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V, 20.
33)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V, 24.
34)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V, 43.
35)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V, 44.
36)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VIII, 323.
37)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VIII, 346.
38)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X, 399.
39)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X, 530.
40)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XII, 173.
41)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I, 350.
42) The Works of Rev. John Wesley VI, 315.
43) 이것을 하이퍼 칼빈주의라고 부른다. 하이퍼 칼빈주의는 1690년부터 독립교회와 침례교도들 사이에서 알미니안주의에 대해서 과도한 반대를 하면서 형성된다. 1690년에서 1720년 사이에는 Davis, Hussey, Skepp과 같은 신학자에 의해서 주도 되어 왔다. 웨슬리가 본격적으로 사역을 하는 시대인 1740년대부터는 존 길이 하이퍼 칼빈주의의 대표적인 신학자가 되었다. (Daniel Curt의 “Hyper-Calvinism and John Gill” 참조)
44) 그 당시 칼빈주의자로서 조오지 휫필드와 존 길을 비교할 때, 휫필드는 중도적 (moderate) 칼빈주의자라 할 수 있으며, 존 길은 하이퍼 (hyper) 칼빈주의자 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하는 신학적 근거는 두 사람 모두 선택을 강조했지만, 휫필드는 선택의 교리가 비그리스도인과 이제 막 회심한 자들에게 강조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존 길은 선택 교리에 있어서 휫필드에 동의하지 않았다. (Daniel Curt의 “Hyper-Calvinism and John Gill” 참조)
45) John Gill, A collection of Sermon and Tracts Vol 3 (London: Keith, 1814), 105, 106.
46) John Gill, A collection of Sermon and Tracts Vol 1 (London: Keith, 1773), 82.
47) John Gill, The Doctrine of the Saints Final Perseverance (London: Keith: 1752), 3.
48) Gill, The Doctrine of the Saints Final Perseverance, 4.
49) Gill, The Doctrine of the Saints Final Perseverance, 59.
50) http://www.pbministries.org/books/gill/Sermons&Tracts/sermon_07.htm
51) John Gill, Body of Divinity (Philadelphia: Graves, 1814), 27, 28. (이후 Body of Divinity로 인용함)
52) Curt Daniel, "Hyper Calvinism and John Gill" (Ph. D. Dissertation, University of Edinburgh, 1983), 293.
53) Gill, Body of Divinity, 205.
54) Gill, Body of Divinity, 203.
55) Gill, Body of Divinity, 205.
56) Gill, Body of Divinity, 207.
57) Gill, Cause of God and Truth (London: Aaron Ward, 1855), 134.
58) 책 제목은 Christ Alone Exalted로서 1643년에 출판된 작품이다.
59) 존 길 이외에도 조셉 후세이 (Joseph Hussey), 존 스켑 (John Skepp)이 논쟁에 연루되어 있었다.
60) Curt Daniel, "John Gill and Calvinistic Antinomianism," in The Life and Thought of John Gill Michael Haykin, ed. (Leiden: Brill, 1997), 180.
61) John Gill, A collection of Sermon and Tracts Vol 3 (1814), 8-10.
62) 모라비안주의자들 가운데 도덕률폐기론주의자들이 있었다. 웨슬리는 이들을 향해서도 공격하였다. (Earl Crow, John Wesley's Conflict with Antinomianism in Relation to the Moravians and Calvinists 참조)
63) 이 부분에서 휫필드와 구별되는데, 휫필드는 선택의 교리를 중요하게 여겼지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의무로 생각하였다. (Whitefield's Letters 189 참조)
64) Daniel, “Hyper Calvinism and John Gill,” 384.
65) Daniel, “Hyper Calvinism and John Gill,” 387.
66) Daniel, “Hyper Calvinism and John Gill,” 390.
67) Peter Toon, "Hyper Calvinism" in the New Dictionary of Theology. S. B. Ferguson, D. F. Wright and J. I. Packer, eds. (Leicester, UK; IVP, 1988), 324-25.
68) 영국의 특별침례교회 (Particular Baptist)에서 유행하였다.
69) T. E. Watson, "Andrew Fuller's Conflict with Hyper Calvinism" in the How Shall They Here. ed. John Harris (Mirfield: John Harris, 1960), 24.
70) John Calvin, Sermons on Election and Reprobation (Audubon: Old Paths, 1996), 45. (이후 Sermons on Election and Reprobation로 인용함)
71) Calvin, Sermons on Election and Reprobation, 46.
72) Calvin, Sermons on Election and Reprobation, 47.
73) Calvin, Sermons on Election and Reprobation, 72.
74) John Calvin, Commentary on the Book of Isaiah Vol 2 (Albany: Sage, 1998), 90.
75) William Perkins, Golden Chain (Cambridge: University of Cambridge, 1600), 177. (이후 Golden Chain 으로 인용함)
76) Calvin, Sermons on Election and Reprobation, 108.
77)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trans. Ford L. Battles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60), 3. 24. 8. (이후 Institutes로 인용함)
78) Calvin, Sermons on Election and Reprobation, 118.
79) Perkins, Golden Chain, 178.
80) Calvin, Sermons on Election and Reprobation, 29.
81) Calvin, Sermons on Election and Reprobation, 30.
82) Calvin, Sermons on Election and Reprobation, 39.
83) Calvin, Sermons on Election and Reprobation, 281.
84) Calvin, Institutes 3. 23. 12.
85) Calvin, Institutes 3. 11. 1.
86) G. I. Williamson,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나용화 역,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강해』(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80), 179. (이후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라고 인용함)
87) Calvin, Institutes 3. 16. 1.
88) 유창형, 『죤 칼빈의 성화론』(용인: 목양, 2009), 153.
89) Calvin, Institutes 4. 1. 8.
90)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13:1.
91) Calvin, Sermons on Election and Reprobation, 246.
92) Calvin, Sermons on Election and Reprobation, 270.
93) Calvin, Institutes 3. 22. 10.
94) John Calvin, Commentary on Matthew, Mark, Luke Vol 3 (Albany: Sage, 1997), 299.
95) Robert Monk, John Wesley: His Puritan Heritage (London: Epworth Press, 1966) 참조.
96) Iain Murray, Wesley and Men who Followed (Edinburgh: Banner of Truth Trust, 2003), 60, 61.
97) 연규홍 “한국장로교회와 칼빈신학의 유산” 한국장로교신학회 제 18회 학술 발표회 (2011. 9. 24)의 미출판 논문 101쪽 참조.
김홍만 (국제신대원, 역사신학)/한국개혁신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