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 코스는 처형이 살고 있는 양산아래 부산입니다.
부산은 거의 해마다 내려와서 안 가본 곳이 없는데 올해는 특별히 새로운 곳을 찾았습니다.
광안리 옆에 새로 조성된 ‘이기대’라는 둘레길입니다.
두명의 기생이 왜장을 껴안고 절벽에서 뛰어 내린 해안이라는 뜻의 이기대는 역사적 비장함을 뒤로한 채 태종대보다 전망이 다채로웠고 담소를 나누며 걷는 둘레길이 산책길로 제 격이었습니다.
해와 파도가 함께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지는 해파랑이라는 둘레길에서 바라보는 해운대 옆의 달맞이 고개는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해와 파도가 달맞이 고개를 향하듯 아내와 나는 달맞이 고개쪽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달맞이 고개는 아내와 결혼하던 해 여름에 찾았던 추억의 고개이지요.
그 해 어스름 저녁 달맞이 고개에서 바라봤던 바다는 하늘이었고 하늘은 바다였습니다.
감청의 빗깔속에서 하나가 된 저 너머의 세계에 대한 감흥을 다시금 추억하고자 했지만 이십여년이
지난 달맞이 고개는 음식점과 커피점과 수많은 차량들이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달맞이 고개 너머에 자리한 고즈넉했던 송정 바닷가도 화려한 간판들로 채워져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 옛날 우리가 묵었던 민박집은 흔적조차 찾아 볼 수가 없고 예쁜 모텔과 펜션들이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해운대가 포장마차촌으로 유명하다면 송정은 1평 남짓한 커피점이 줄지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은퇴 후 제 꿈은 전망 좋은 곳에서 커피 샵을 차리는 것인데 하루종일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그러니까 손님이 많이 오면 곤란하겠지요.
경제적 여건이 안되면 송정에 와서 1평짜리 커피점이라도 해야 할 듯 싶습니다.
좋은 글귀나 시가 있는 엽서를 자체 제작하여 커피와 함께 선물로 드리는 커피점... 어떤가요?
인터넷을 보고 찾은 해동 용궁사는 절 입구에서부터 아연 놀라고 말았습니다.
특산품과 관광용품을 파는 매장에서 나오는 뽕작 소리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나오는 흥겨운 뽕작 소리보다
더욱 신명나게 울려 퍼지는데 도무지 이 곳이 사찰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절이라는 특성 때문에 관광명소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수많은 인파들 속에 끼어서 밀려들어간 용궁사는 번잡함 때문에 불상을 마주하고도 경건함 마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아내는 두 손 가지런히 합장을 하고 시주를 합니다.
문득 이 수많은 인파가 불현 듯 사라지고 그 적요함 속에서 파도소리에 맞춰 목탁을 두드리면 마음이 승무 춤을 추면서 바람처럼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용궁사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차 한잔의 여유가 특별하다는 어느 블로거의 글은 도무지 수긍하기 어려울 정도로 찻집은 산장 휴게소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다음 날 코스는 여수 향일함을 거쳐 목포 신안 앞 바다로 가는 여정입니다.
‘여수’라는 단어가 주는 아련한 느낌 때문이었을까요...
여수를 향하는 내 마음은 수려한 물빛처럼 흥분되기도 하다가 나그네의 향수처럼 얼마간 쓸쓸해지기도 했습니다.
여수(麗水)는 내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아하는 마을 이름입니다.
우리는 여수에서 노래미탕을 먹을 작정이었으나 제 철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 주인장이 권한 대구탕을 먹었습니다.
여행의 또 하나의 즐거움은 그 지역의 유명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여수에서의 대구탕은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듯한 국물 맛과 부드럽게 씹히는 육질의 고기 맛이 좋았습니다.
돌산대교를 지나 우리는 7번 국도에서 그랫듯이 네비의 ‘빠름’서비스를 고사하고 17번 국도 바닷길을 끼고 드라이브를 즐깁니다.
대한민국의 소도시들이 그러하듯 여수 또한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마을 풍경이 이어집니다.
창문을 열면 소금기 없는 바닷 바람이 솔향처럼 불어옵니다.
오른쪽에 바다를 두고 달리고 있었는데 어느 덧 바다가 왼편에 자리하고 있어 내 마음의 공간 감각이 혼란스러워 지기도 했지만 그냥 신비의 느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태양을 향하고 있는 암자라는 뜻의 향일암은 이름만으로 신비감이 더해지는데 해안의 마을이 드러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길위에서 나는 더욱 신비감이 충만해졌습니다.
하지만 정작 향일암에 다다라서는 수없이 많은 모텔과 식당들 때문에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괜찮으면 이 곳에 하루 묶을 예정도 했지만 방값이 최하 10만원이라는 사실에, 일출 맞이 이벤트의 조악함에, 한 몫 잡으려는 식당 아줌마들의 희번득한 눈빛에 나는 향일암을 서둘러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제 서해안 목포를 향하여 달립니다.
남해 고속도로로 달릴 계획이었는데 딱 한번 잘못 들어선 길이 광주를 향합니다.
아내는 지도를 펼쳐 놓고 광주로 돌아가는 길이 남해고속도로로 가는 길보다 1시간은 차이가 날 것 같다고 합니다.
워낙 길치인 나로서는 분기점에서 조심했어야 하는데, 대화하면 아무 생각 없이 직진하는 운전 습관을 못 벗어난 셈입니다.
2012년의 마지막 날에 길 위에서 그런 사소한 이유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거나 마음 상해하면 안 된다는 이데올로기로 무장되어 있던 터라 우리는 허허허 하하하 웃을 뿐이었습니다.
광주에 들어서면서 눈발이 장난 아니게 굵어지고 퍼 붓듯이 쏟아집니다.
가로등불에 불나방처럼 어지럽게 흩날리는 눈발은 낭만이 아니라 위험 신호로 비칩니다.
아내는 애써 괜찮다며 태연한 척 했지만 난 아내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해안 보다는 내륙 쪽으로 방향을 틀자는 나의 제안에 아내는 반색을 합니다.
그렇게 차로를 급변경한 우리들은 전라도 내륙 어디론가 무작정 달려갑니다...
첫댓글 우~와 왕 부럽습니다.
언젠가 나도 사랑하는(?) 그이랑 한바퀴 돌고 말꼬야? 에이 오늘은 동네나 한바퀴 돌자 ^^
여행을 스토커하고 있어요^^
푸하하 감성도 청춘이고 차림도 쳥춘인 보거스!!! 필여사와 옥여사랑 (언제나 오징어 데친 안주로)함께했던 흑석동 포차생각이나....수학선생이면서 셈보다 시를 잘쓰던 그러나 어딘가 신체기능의 나사가 헐거운 아직도 그러한...최첨단 네비를 장착하고도 길을 잃고 방황하는 오십 중반소년 ㅎㅎ 여행 떠난 당나귀 말이 되어 돌아오지 못하는 법 수많은 여행떠나도 나사 조이지 못하고 보거스로 돌아오는 최재식 무자게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