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 품으로
중복을 하루 앞둔 칠월 하순이다. 전국 곳곳에서 더위가 맹위를 떨쳐 폭염주의보 경보가 속출하고 있다. 이는 지구 북반구 중위도에서 나타난 대부분 현상으로 나라 밖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래도 어제 오후는 강한 소나기가 한 시간 가량 퍼부어 뜨겁게 달군 대지를 식혀주었다. 간밤은 그 소나기 영향인지 열대야를 면해 잠들기 한결 수월했다. 새벽녘 잠깨어 어디로 가려나 궁리했다.
아침밥을 일찍 해결하고 창원실내수영장 앞에서 불모산동으로 가는 102번을 탔다. 마산 월영동에서 첫차로 출발한 버스는 창원시내로 접어들면서 아침 이르게 일터로 출근하는 손님들이 가득 탔더랬다. 정우상가 맞은편과 중앙동에서 다수 승객이 내려 빈자리가 생겨 앉아 갔다. 남산동 터미널과 공단지역에 이르자 승객들은 모두 내렸다. 불모산동 종점까지 타고 간 승객은 나 혼자였다.
근래 불모산동 저수지 아래는 꽤 넓은 부지에 공영 버스 차고지가 생겼다. 회사를 달리하는 여러 버스들이 그곳에 와 정비를 받고 차량 안팎 세차를 하고 기사들이 쉬어가기도 한다. 심야면 운행을 끝낸 각 노선의 버스들이 그곳으로 집결하기에 수백 대에 이르는 시내버스가 주차할 면이 확보되어 있다. 마산 덕동에도 불모산동과 같은 공영 버스 차고지가 마련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내가 불모산동으로 간 것은 볼모산으로 오르기 위해서다. 공영 버스 차고지에서 개울을 건넜다. 창원에 소재한 몇 개 국책 연구소 가운데 하나인 전기연구원 사옥 울타리를 돌아갔다. 그곳은 불모산터널과 가까웠다. 터널 굴다리를 지나 불모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들머리를 찾았다. 여름 장마철이라 그런지 산행객이 자주 다니질 않아 등산로는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이 오래된 듯했다.
터널공사로 옮겨 놓은 고압송전탑을 지나 숲으로 들었다. 어제 내린 소나기로 나뭇잎에는 맺힌 물방울에 소매가 젖었다. 길섶 풀잎에도 이슬이 깨지 않아 바짓단이 젖었다. 소나무와 잡목이 섞여 자라는 혼효림 숲이었다. 참매미와 씨롱매미가 청아한 소리로 울었다. 시내 가로수에서 밤낮도 없이 징글맞게 울어대는 애매미 소리는 소음에 가까웠으나 숲속의 매미소리는 급수가 달랐다.
산기슭에는 매미소리뿐만 아니라 제철을 맞은 풀벌레소리도 들려왔다. 여치와 베짱이 녀석들로 헤아려졌다. 숲속 어디엔가 몸을 숨긴 산새들도 뭐라고 조잘대고 있었다. 산속에 들면 차들이 바퀴 굴러가는 소리와 공장의 기계음은 멀어져가고 숲에서 들려오는 자연음은 더 가까워졌다. 용제봉 만큼 계곡의 물소리를 들을 수야 없었지만 매미와 풀벌레와 산새들의 소리에 귀가 즐거웠다.
불모산은 바깥에서 보기보다 그 산자락 품이 아주 너르다. 상점령에서 정상을 거쳐 안미고개나 시루봉으로 내려서면 한나절 코스다. 불모산동 저수지 안쪽에서 송신탑 정상까지 올라다가 성주사 바깥주차장으로 내려오면 반나절 코스다. 나는 날씨가 무더운 여름이라 무리를 하지 않았다. 삼림욕을 겸해 숲속에서 두어 시간 거닐다가 성주사 절간으로 내려가는 가장 짧은 코스를 택했다.
어느 지점을 지날 때 숲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멧돼지가 부엽토를 파헤친 자국이 역력했다. 멧돼지는 개체수가 늘고 먹이는 한정되어 있으니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낮은 산등선을 넘어가니 어제 내린 소나기로 계곡에는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숲에 드니 인적은 뚝 끊겨 적막강산이었다. 멧돼지가 부스럭 나타나면 더럭 겁이 나겠지만 귀여운 다람쥐 한 마리도 보질 못했다.
계곡을 내려서니 성주사 꼭뒤였다. 절에서 가꾸는 채전이 나왔다. 응진암 입구 바위에 최근 새긴 마애불이 있었다. 공양간 앞엔 돌로 조각한 아기 곰의 조롱박에서 샘물이 졸졸 흘러나왔다. 저만치 계단 위엔 법당이었다. 나는 마당 모퉁이에서 잠시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절간 들머리 종각 곁 연지의 백련은 거의 지고 몇 송이만 남았다. 무성한 연잎은 아직 청청한 그대로였다. 16.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