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연구 방법에서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실 예 1.
‘新德里’를 한비는 ‘신덕리’라고 읽지 않는다. 그리고 ‘德’자를 ‘덕 덕’자라고 읽지 않는다. 그냥 (고) 조선 글자로 보고, 우리말로 ‘씽 드리’라고 읽는다. (고) 조선 이후 현 중국 땅의 북쪽은 고구려가 차지하고, 남쪽은 백제가 차지했지만, 남쪽의 백제는 인도를 지배하면서 우리말을 전통대로 新德里를 ‘씽 드리’라고 읽고 쓰고 있었다. 이런 면에서 기존 학자들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생각의 차이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新德里를 ‘신 덕리’라고 읽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다.
중국도 新德里를 [ Xīndélǐ ]라고 읽으면서, 뉴델리(New Delhi). 인도(印度)의 수도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 新德里가 어떻게, 뉴델리(New Delhi)로 바뀌게 되었는지, 그 사연을 알아 보자. 영국의 동 인도회사가 어느날 청나라에 가보니 청나라에서는 ‘新’자를 ‘새 신’자라면서 사용하고 있었다. 전에는 들어보지 못하던 말이었다. 그래서 ‘씽 드리’ 즉 달라고 말만 하면 ‘씽 드리’던 말, 新자를 New로 바꾸어 ‘New 드리’라는 뜻으로, 뉴델리(New Delhi)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우리말과 영국 말의 짬뽕어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기존 학자들은 또 모른다. ‘인도’가 ‘이리 다오’라는 우리 말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으니, 위처럼 설명해도 감이 잘 오지를 않고 있다는 한비의 판단이다.
네이브에 의하면
“어느 날, 서동은 신라의 진평왕 셋째 딸인 선화공주가 아주 미인이라는 말을 듣고 무작정 서라벌로 떠났다. 신라궁으로 들어가 먼발치에서 선화공주를 바라보니, 첫눈에 반할만큼 아름다웠다. 그녀에게 푹 빠진 서동은 선화공주를 아내로 삼겠다고 결심하고 ...” 운운 하고 있지만 학계에서는 선화공주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게다가 옛날 말들은 서울 경기도 말과 완전히 달라서 양주동 박사를 비롯한 서울, 경기 토박이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글들로 쓰이어져 있으므로, 그들이 현 국문학계와 역사학계를 주름잡고 있지만, 그들이 연구하여 발표한 모든 해석들은 100% 틀린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간단한 예를 들면
“善花公主 主隱”을 “선화공주 님은”이라고 해석하는 것을 보면, 같은 ‘主’자인데, 한 번은 ‘님’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런 것을 조작이라고 하지 않든가? 다른 곳에서서도 主자를 ‘님’이라고 해석하면 통하지 않을 것이 뻔한 이치다. 그러니 뀌어맞춘 해석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도는 ‘이리 다오’라고 하면 언제든 ‘씽, 갖다 바치던 나라이었다. 그러므로 말도 글자도 모두 (고) 조선 말과 글자를 사용하던 나라이었다. 결코 중국이 주장하듯 漢字로 쓰이어진 글자들이 아니었다.
실 예 2.
Singapore란 (고) 조선 글자로 新加坡 즉 ‘씽 가빠’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백제가 부르면 ‘씽! 하고 재바르게 갔다’는 뜻이다. 이 한마디로 백제의 힘이 얼마나 셌던가를 깨닫게 해준다. 그런 의미의 新加坡를 중국말 식 발음으로 Singapore라고 한 것이다.
실 예 3.
필리핀의 루손(Luzon) 섬에서 나는 여송연은 향이 좋으면서 독한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담배를 피우면 목이 칵 ‘小吕宋(쏘여쏘)’라는 말이 생겼고 중국이 강국이 되었을 때, 이 말에서 ‘吕宋’만 일컬어서 [ Lǚsòng ]이라고 한 것이, 오늘날 呂宋煙이라는 말과 루손(Luzon) 섬이라는 말의 시초가 되어버렸다.
실 예 4.
사실 탐모라국(耽牟羅國)이라는 것은 대만 밑에 있는 필리핀, 말래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폴 등 동남아에 있는 모든 나라들을 총칭한 말로서, ‘다모라구’ 즉 ‘담으라고’라는 말이었다. 뭐든 담으면 다 백제 것이 되니, 동남아에가서 ‘담으라’라고 한 데서 생긴 말이다. 한국 사람들이 잘못 알고 제주도를 탐모라국(耽牟羅國)이라고 한 것은 아주 잘못 알고 하는 말이다. 耽羅도 알고보면 ‘담으라’라는 말이었다.
이 담로(擔魯)라는 말도 ‘담으러’ ‘담으려’라는 말로서, 동남아에 있던 각국의 지방조직으로서 각종 산물을 담기위한 조직이었다. 그러니까 동남아에만 있었던 조직이었다. 백제 본국(지금의 중국 본토)에는 이런 조직이 있을 수가 없었다. 다만 담로가 22개 정도 있었다고 보여진다. 지금 말로 하면 담로란, 각 지방 특산물을 실어나르던 ‘항구’라는 말이다.
탐모라국(耽牟羅國)과 같은 말이다. 이 사실은 매우매우 중요한 사실이므로 명심바란다.
그러나 뉴델리 같은 경우는 항구가 아지지만 담로가 된 경우도 있었다.
실 예 5.
이를 테면 토번은 고지대에 ‘뜨번’ 즉, 높은 곳 또는 공중에 ‘뜨있는 나라’라는 뜻이고, 塔克拉玛干(Taklamakan)은 사막이 한반도의 1.5배에 달하는 거대한 사막이므로, 죽지 않기 위하여 어서 이 사막을 건너서, 건너편에 ‘다끄라마 칸’ 다시 말하면 ‘닫그렴아, 카는’ 염원을 담은 우리말이었다.
이처럼 (고) 조선 글자는 한자와 완전히 다르다. 기존의 학자들은, 이런 사실들에 문외한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고) 조선과 백제가, 옛날 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또한, 한문으로 된 책 100권을 읽으도 한비가 알아낸 사실들을 찾아낼 수가 없다. 중국인들은 나름 지혜를 발휘하여, 이책, 저책을 서로 연결하여, 원용하고 지원하여, 사실이 아닌 데도, 사실인 것처럼 꾸미는 재주?를 가진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