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말씀은 지혜에 대한 말씀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있고 지혜롭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세상 말에도 머리가 좋지 않으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머리는 좋은 것 같은데 지혜롭지 못하여 고생만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는 일마다 지혜롭게 하지 못하여 그 가는 길이 고됩니다. 하는 일마다 그르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우리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우리 고집과 주관을 버리고 주님말씀을 영접하고 순종하여서 지혜로워져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지혜에 대한 우리 마음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안에는 무궁무진한 지혜가 감취어 있습니다.(골2:3) 또 야고보서 1:5절에는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세상 사람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지혜를 얻기 위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오늘말씀을 통해 지혜에 대한 자세를 배워서 지혜로운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보배를 찾는 것같이 지혜를 찾아야합니다.(2:1-22) 2장 1-4절에서는 지혜를 얻는 자세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먼저 지혜의 말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자세가 아니라 겸손히 말씀을 듣는 자세를 지녀야함을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형제들은 군대가면 여러 교육을 받습니다. 그중 수류탄투척훈련을 받는데, 먼저 고리를 누르고 안전핀을 뽑으라 그리고 왼팔은 앞으로 뻗고 오른 손으로 뒤로 젖혔다가 던지라 하면 그렇게 하고자 신중히 듣고 받아들입니다. 그 시간에 딴 짓을 하지 않습니다. 귀를 기울려 듣지 않으면 실제로 투척할 때 생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잘 받아들여서 마음에 간직합니다. 이와 같이 성경을 아무리 많이 듣고 들어도 잘 실천하기위해 귀담아 듣지 않으면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계명의 말씀을 흘러 듣지 않고 마음에 잘 간직하여야 합니다. 귀를 지혜에 기울여야 합니다. 즉 말씀을 받을 때 졸지 말고 경청해서 들으라는 말씀입니다. 마음을 명철에 두라는 말은 마음을 명철에 잘 적용하라는 것입니다. 3절에는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말씀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과학적인 지식처럼 드러난 지식이 아닙니다. 계시의 말씀으로서 감추어진 지식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 일생 동안 생명 공학을 연구한 대학자도, 일생 동안 빛을 연구한 광학자도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성령의 깨우침을 받고자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진리의 말씀, 지혜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4절을 보면.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강원도에 가면 송이버섯이 산에 많이 납니다. 송이버섯은 올해는 아주 비쌉니다. 송이버섯을 따는 사람들의 눈은 광채가 납니다. 송이를 찾기 위해 온 신경이 눈으로 가고 두리번거리며 송이를 찾습니다. 그리고 송이를 찾게 되면 그렇게 기뻐하고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송이는 아주 비싸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우리가 지혜를 찾되 감추인 보물을 찾듯이 찾으라고 하였습니다. 지혜가 참으로 가치있고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위해서 시간과 마음을 투자하라는 것입니다. 인내심을 갖고 지혜를 찾기까지 찾으라는 것입니다. 지혜는 그 가치와 소중함을 알고 투자하고 노력하고 인내하면 결국 어떻게 됩니까?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로 다가오게 됩니다. 성경 말씀이 참된 지혜요 진리임을 깨닫게 됩니다. 5절을 보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이렇게 지혜를 얻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막연하게 느껴졌던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시며 나와 함께 하시는 분으로, 나를 위해서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신 사랑의 하나님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한편으로는 두려워하며 한편으로는 감사함으로 공경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에게 지혜를 주십니다(6). 이런 자를 위해서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이런 자를 공평의 길로 인도하십니다(7,8). 이런 사람을 음녀 같은 음란한 것으로부터 보호하시며(16), 이런 사람을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십니다
둘째, 범사에 그를 인정해야 합니다(3:1-10) 잠언3장 1-4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축복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며, 마음의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특별히 인자와 진리로 우리 마음 판에 새기면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3,4). 여기서 인자란 히브어로 헤세드인데, 이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긍휼이란 뜻입니다. 진리란 영어로 faithfulness, truth 곧 진실함, 진리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사랑과 진리“는 우리 내면에 조화를 이루어야 할 덕목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살고자 하다보면 진리를 바르게 가르치기가 어렵습니다. 진리를 너무 강조하다보면 딱딱해져서 어린성도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진리의 조화된 성품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조화된 성품을 내면화할 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입으며, 사람들로부터는 귀중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5절을 보면. 하나님께 대한 자세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되 말씀 한 마디로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셔서 모든 만물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절대 주권자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잠언 저자는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젊은 사람들의 특징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교만하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젊은 사람일수록 자기 명철을 의지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자기 명철을 의지하면 인생의 숱한 사건 가운데서 한 두 번은 성공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고, 인생은 큰 좌절과 실패를 겪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여기서 마음을 다하여란 ‘절대적’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는 의미입니다. 또 마음을 다하여란 ‘오직’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신뢰하라는 말입니다. 어느 순간에는 하나님께서 과연 나와 함께 하시고, 우리 가운데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는 하나님께서 잠잠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어려움을 외면하시고 주무시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을 놓치고 다른 것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돈을 의지하던가, 눈에 보이는 사람이나 단체를 의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우리가 의뢰해야 할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라” 참으로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을 의뢰하시기를 축원합니다. 6절을 보면.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우리는 범사에, 모든 일에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와 그의 인도하심을 믿고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극히 사소한 것일지라도 하나님께 털어놓고 하나님께 해결책을 구해야 합니다.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가 보고 듣고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의지와 생각과 판단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런 생각을 버리고 매일 새벽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인도해 주십니다.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면 엎드릴수록, 하나님은 더욱 더 우리를 지도해 주십니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합니다. 사실 인생의 여정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확실히 아는 경우보다는 그렇지 못한 때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날마다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것이 생활화된 사람은 다릅니다. 막연하다 해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더욱 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자 순간마다 기도할 뿐입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찬송가 549장 1절) 7절을 보면.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여기서 저자는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것과 악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악의 뿌리는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것입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겨 자기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2절에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성경에서 말하는 악이란 도적질하고, 사기 치는 그런 일이 아닙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겨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악에서 떠나 여호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뢰할 때, 그것이 우리 몸에 양약이 됩니다. 우리 뼈가 튼튼해 집니다(8). 우리는 영육간에 강건하게 됩니다. 실제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는 분일수록,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아 건강해져 얼굴이 윤택해 집니다. 또 물질적으로도 축복을 받게 됩니다(10).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범사에 그를 인정함으로 이런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여호와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3:11-35) 11절을 보면.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요즘 젊은 세대들은 하나님의 꾸지람을 기분나빠하고 싫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훈련을 하십니다. 군인을 가면 훈련소부터 거쳐야 군인이 되는 것처럼 훈련을 통해 지혜로워지고 명철하게 됩니다. 그래서 12절을 보면 “대저 여호와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 이는 사랑하시는 자녀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부성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훈련을 받을 때에 그 훈련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또한 그 훈련을 싫어하거나 거부해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그 훈련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인내로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우리 내면은 여전히 죄악된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플레처라는 분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징계를 받기 좋아 한다. 그가 주시는 징계는 나의 죄악에 비하면 너무 약하고 부드럽게만 느껴진다. 오 하나님, 제가 만일 당신의 징계를 받는 것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껏 당신이 베푸신 자비를 악용할 자일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훈련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하나님이 베푸신 자비를 악용할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참으로 인간은 본질상 간사하고 부패한 본성입니다. 이런 부패한 내면은 하나님의 훈련으로 하나하나 옥석처럼 다듬어 집니다. 하나님의 훈련을 잘 감당한 자는 지혜를 얻게 되고 명철을 얻게 됩니다. 이런 훈련을 통해 얻은 지혜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14-20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지혜는 은이나 금보다 더 귀하고 진주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특별히 그 지혜는 얻는 자에게 생명을 가져다주는 생명나무와 같은 것입니다(18).
우리가 숨겨진 보배를 찾듯이 하나님의 지혜를 찾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함으로 참으로 지혜로운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과 인내로 하나님의 훈련을 받는 가운데, 지혜로운 하나님의 자녀로 성숙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