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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1: 20. 회개치 아니하므로 21. 화 있을진저
3. 회개하지 아니하는 도시들 ( 11: 20-24. 눅 10: 13-15 )
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마 11: 20. 회개치 아니하므로 -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
예수님은 많은 관심을 가지고 병 고침을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심을 보고 책망하셨다.
1]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권능(*, 뒤나미스)은 자연의 물리적인 힘이나 하나님의 능력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본문에서는 '이적'또는 '초자연적인 행위와 사건'을 가리킨 말로 쓰이고 있다.
공관복음서에서는 그리스도의 이적적 사역을 표현함에 있어서 흔히 이 '권능'이란 말을 쓰고 있다.
* 롬 1: 4, 16 –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2]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고을'이란 신앙과 인격의 주체로서의 전체 성읍을 가리킨다. 고을의 운명은 그 거주자들의 신앙 유무(有無)에 따라 결정이 된다는 것은 히브리인들의 전통적 사상이었다.
* 창 18: 22 -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그런 점에서 예수께서는 선교 대상으로 삼았던 고을들이 당신을 배척하거나 비난했기 때문에 책망한 것이 아니었다. 당신이 메시아시라는 신적(神的)인 이적들을 도시들에서 행하였음에도(5-6절) 불구하고 그들이 회개하고 당신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책망하신 것이다.
* 마 3: 2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 마 4: 17 -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이로써 확인하건대 인간이 심판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베푼 이적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이적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께서 그 고을의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고와 이적들을 다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면 주님은 그들의 완고한 태도에 그렇게까지 분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3] 그때에
11: 20-24의 내용은 눅 10: 12-15에 언급되어 있다.
누가는 본문을 70인 전도 파송 사건 다음에 다루고 있어 예수의 갈릴리 사역 중 후기에 해당하는 때임을 알 수 있다. 반면 마태는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온 사건 다음에 다루고 있다. 누가의 시간순서가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는 마태가 연대순(chronological order)으로 예수의 생애를 기록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본문의 '그 때에'란 표현은 마태가 이를 엄밀하게 규정지을 수 있는 시간 부사로 사용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4] 책망하시되
이 말의 원어 '에릍사토 오네이디제인' (*)을 직역하면 '(비로소) 책망하기 시작하시다'로서 그릇된 종교관을 지닌 유대인들에 대한 예수의 공개적 질책(叱責)이 시작되었음을 암시한다.
특히 23장에 이르러 예수의 책망은 최고조에 이른다.
예수께서는 그 고을들이 자신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책망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메시아 신분을 입증해 주는 대부분의 이적들을 다른 곳이 아닌 그곳에서 보여주었는데도 그 도시가 회개하지 않았던 때문이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이적들을 보고도 믿지 않는 자들의 책임이 얼마나 큰지 또 은혜를 받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자들의 책임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새 언약, 곧 복음을 얻게 될 그리스도 이후의 신약 시대 사람들은 구약의 예언적 메시지를 들었던 자들보다 훨씬 더 큰 축복을 받거나 아니면 더욱 비참한 존재가 된다'(Bengel).
마 11: 21. 화 있을진저 -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
예수께서는 그의 권능의 일들을 가장 많이 베푸셨던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 등의 마을들의 사람들이 회개치 않음을 책망하셨다.
외형적 기적이 내면적 회개를 항상 동반하지는 않는다. 인생의 마음은 얼마나 어둡고 둔하고 완고한지 모른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스스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
1] 화 있을진저.
이 말의 원어 '우아이'(*)는 숙명적인 절망이나 엄숙한 경고 또는 연민의 정을 표현할 때 쓰이는 일종의 감탄사이다.
2] 고라신아,
이 도시는 신약에서 본문과 눅 10: 13에만 등장하는 지명(地名)으로서 그 위치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가버나움에서 북서쪽으로 약 2마일 떨어진 오늘날의 '키르베트 케라제'(Kirbet Keraze)에서 옛날에 파괴된 고라신의 유물들이 발견된다고 한다. 예수의 사역을 기록한 복음서에는 '고라신'과 '벳새다'에서의 활동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예수의 선교 중심지였던 가버나움과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는 점에서 그 고을 선교를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割愛)하셨을 것으로 본다.
3] 벳새다야,
이 지명의 문자적인 뜻은 '사냥집'이며, 이곳은 안드레, 빌립, 베드로의 고향이다.
* 요 1: 44 -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갈릴리 호수와 강둑 위에 위치한 것으로 보이며 사람들은 거기서 사냥을 하거나 낚시를 했던 것 같다.
이곳은 오늘날의 '알 텔'(al-Tell), 또는 '마사디야'(Masadiya) 등으로 여겨지며 일찍이 분봉왕 빌립이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딸인 줄리아(Julia)를 기념하여 뱃새다 줄리아스라고 명명했던 것 같다.
* 눅 9: 10 -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4]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두로와 시돈 - 팔레스타인 북부, 지중해 연안 뵈니게(페니키아)의 항구도시로 구약의 선지자들은 가끔 바알 우상 숭배지였던 이 도시에 대해 심판을 예언하였다.
* 욜 3: 4 –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사방아. 너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가 내게 보복하겠느냐? 만일 내게 보복하면 너희가 보복하는 것을 내가 신속히 너희 머리에 돌리리니
* 사 23 장 – 1 두로에 관한 경고라. 다시스의 배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 두로가 황무하여 집이 없고 들어갈 곳도 없음이요, 이 소식이 깃딤 땅에서부터 그들에게 전파되었음이라. 2 바다에 왕래하는 시돈 상인들로 말미암아 부요하게 된 너희 해변 주민들아 잠잠하라. 3 시홀의 곡식 곧 나일의 추수를 큰 물로 수송하여 들였으니 열국의 시장이 되었도다. 4 시돈이여. 너는 부끄러워할지어다. 대저 바다 곧 바다의 요새가 말하기를 나는 산고를 겪지 못하였으며 출산하지 못하였으며 청년들을 양육하지도 못하였으며 처녀들을 생육하지도 못하였다 하였음이라. 5 그 소식이 애굽에 이르면 그들이 두로의 소식으로 말미암아 고통 받으리로다. 6 너희는 다시스로 건너갈지어다. 해변 주민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 7 이것이 옛날에 건설된 너희 희락의 성. 곧 그 백성이 자기 발로 먼 지방까지 가서 머물던 성읍이냐? 8 면류관을 씌우던 자요, 그 상인들은 고관들이요, 그 무역상들은 세상에 존귀한 자들이었던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냐? 9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것을 정하신 것이라. 모든 누리던 영화를 욕되게 하시며 세상의 모든 교만하던 자가 멸시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0 딸 다시스여. 나일같이 너희 땅에 넘칠지어다. 너를 속박함이 다시는 없으리라. 11 여호와께서 바다 위에 그의 손을 펴사 열방을 흔드시며 여호와께서 가나안에 대하여 명령을 내려 그 견고한 성들을 무너뜨리게 하시고 12 이르시되, 너 학대 받은 처녀 딸 시돈아. 네게 다시는 희락이 없으리니 일어나 깃딤으로 건너가라. 거기에서도 네가 평안을 얻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13 갈대아 사람의 땅을 보라. 그 백성이 없어졌나니 곧 앗수르 사람이 그 곳을 들짐승이 사는 곳이 되게 하였으되 그들이 망대를 세우고 궁전을 헐어 황무하게 하였느니라. 14 다시스의 배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으라. 너희의 견고한 성이 파괴되었느니라. 15 그 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연한 같이 칠십 년 동안 잊어버린 바 되었다가 칠십 년이 찬 후에 두로는 기생의 노래 같이 될 것이라. 16 잊어버린 바 되었던 너 음녀여. 수금을 가지고 성읍에 두루 다니며 기묘한 곡조로 많은 노래를 불러서 너를 다시 기억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17 칠십 년이 찬 후에 여호와께서 두로를 돌보시리니 그가 다시 값을 받고 지면에 있는 열방과 음란을 행할 것이며 18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간직하거나 쌓아 두지 아니하리니 그 무역한 것이 여호와 앞에 사는 자가 배불리 먹을 양식, 잘 입을 옷감이 되리라.
* 겔 26-28장 - 26장 - 두로가 받을 심판. 27장 - 두로에 대한 애가. 28장 - 두로 왕이 받을 심판
* 암 1: 9-10 – 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두로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그 형제의 계약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넘겼음이라. 10 내가 두로 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솔로몬이 성전에 필요한 건축 자재들을 두로 왕에게서 공급받을 만큼 두로는 고대로부터 문물(civilization)이 번성했던 것 같다.
* 대하 2: 11-16 – 11 두로 왕 후람이 솔로몬에게 답장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그들의 왕을 삼으셨도다. 12 후람이 또 이르되, 천지를 지으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송축을 받으실지로다. 다윗 왕에게 지혜로운 아들을 주시고 명철과 총명을 주시사 능히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자기 왕위를 위하여 궁궐을 건축하게 하시도다. 13 내가 이제 재주 있고 총명한 사람을 보내오니 전에 내 아버지 후람에게 속하였던 자라. 14 이 사람은 단의 여자들 중 한 여인의 아들이요, 그의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라. 능히 금, 은, 동, 철과 돌과 나무와 자색 청색 홍색 실과 가는 베로 일을 잘하며 또 모든 아로새기는 일에 익숙하고, 모든 기묘한 양식에 능한 자이니, 그에게 당신의 재주 있는 사람들과 당신의 아버지 내 주 다윗의 재주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 하소서. 15 내 주께서 말씀하신 밀과 보리와 기름과 포도주는 주의 종들에게 보내소서. 16 우리가 레바논에서 당신이 쓰실 만큼 벌목하여 떼를 엮어 바다에 띄워 욥바로 보내리니 당신은 재목들을 예루살렘으로 올리소서. 하였더라.
시돈은 아셀 지파의 구역에 위치해 있었으나 아셀 지파는 시돈을 한 번도 점령해본 일이 없었다.
* 수 19: 28 - 에브론과 르홉과 함몬과 가나를 지나 큰 시돈까지 이르고
* 삿 1: 31 – 아셀이 악고 주민과 시돈 주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이 두 도시는 무역과 항해로 대단히 잘 알려져 있었으며 당시에도 이 도시들은 이방 우상 숭배와 더불어 대단한 부(富)와 향락을 누렸던 것 같다.
5]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 하였으리라.
베옷(sackcloth)은 낙타의 짧은 털로 짜 만든, 올이 거친 직물을 가리키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슬픔을 당했을 때 비탄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맨살에다 이 옷을 입었다.
* 삼하 3: 31 – 다윗이 요압과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띠고 아브넬 앞에서 애도하라. 하니라. 다윗 왕이 상여를 따라가
* 왕상 21: 27 -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 욘 3: 5-8 – 5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6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7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사람들은 슬픔을 표하는 방법을 베옷을 입은 것 외에 재(ash)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재를 머리에 뿌리거나, 재 위에 앉거나, 눕기도 하고 심지어는 그 위에서 구르기도 했다.
* 삼하 13: 19 - 다말이 재를 자기의 머리에 덮어쓰고 그의 채색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가서 크게 울부짖으니라.
* 애 2: 10 – 딸 시온의 장로들이 땅에 앉아 잠잠하고 티끌을 머리에 덮어쓰고 굵은 베를 허리에 둘렀음이여. 예루살렘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 숙였도다.
* 욘 3: 6 -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 에 4: 3 - 왕의 명령과 조서가 각 지방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 렘 6: 26 - 딸 내 백성이 굵은 베를 두르고 재에서 구르며 독자를 잃음같이 슬퍼하며 통곡할지어다. 멸망시킬 자가 갑자기 우리에게 올 것임이라.
* 미 1: 10 - 가드에 알리지 말며 도무지 울지 말지어다. 내가 베들레아브라에서 티끌에 굴렀도다.
이 두 행위는 모두 회개와 애통함을 상징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타락한 도시로 알려진 이방인의 도시들에게, 선민이라 자처하는 유대 고을들에게 베풀어졌던 것 같은 이적과 회개의 기회들을 제공했다면 그들은 벌써 회개의 자리에 앉았을 것이라 단언하셨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그런 기회를 제공치 않으셨는가? 라는 의문점이 남는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문제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먼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를 위해 보내셨다.
* 마 10: 6 -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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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일 년동안 건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 사역을 위하여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탄생이 사역에 귀한 윤활유로 작용되기를 기도 드립니다.
💖보좌의 능력과 축복을 가진 자의 지혜로운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도 멋진 날 되시길 바랍니다.💖
기쁜 성탄이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