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로 인해 한 주 미룬 수행 법회가 열린 날,
김해 장유를 물바다 속 혼란에 빠뜨렸던 전날의 폭우가 겨우 진정되어
법회 참석은 한결 수월하였습니다.
원장스님과 함께 보리원 마당에 밀려온 토사를 치우는 일사불란한 손길에서는 수행 정진 못지않은 선심이 풍겼습니다.
약 30분간 도량 정비를 마친 정갈한 마음으로 법당에 앉아 원장스님께 삼귀의계와 오계를 수지하고 함께 니까야를 독송하였습니다.
언제나처럼 유익한 시간 되시라는 원장스님의 격려 뒤에
부처님의 깨달음-사성제, 윤회의 길과 열반의 길 등에 관한 지도법사님의 법문으로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우주 최강의 지성이신 깨달은 분, 부처님!
우리는 부처님 제자로서의 자부심을 가져야하고, 부처님께서 무엇을 어떻게 깨달았는가에 대해 알아야한다.
우리는 니까야와 아비담마 등을 공부하면 그것을 알 수 있는 시기에 불법을 만난 행운의 세대이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사성제이며
고/집/멸/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로 괴로움의 발생(윤회의 길)과 소멸(열반의 길)을 모두 설하셨다."는 말씀으로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을 언급하신 후 '윤회의 길과 열반의 길'에 대한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윤회를 모르고는 백 년을 살아도 의미가 없다.
윤회를 벗어나는 열반을 실현하기는 대단히 어렵지만 불자들은 ‘열반에 이르는 길’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비록 금생에 완성하지 못하더라도 윤회의 흐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것이 불자들의 기본적인 삶의 태도여야 한다.
다행히 우리는 윤회와 업의 법칙을 알고 있고, 이 순간이 윤회를 벗어나기에 얼마나 중요한 시점인지를 알고 있다.
단견과 상견에 빠지지 않고 고성제와 집성제를 넘어 도성제와 멸성제를 실현해야할 책임이 있다.
멸성제의 실현은 윤회를 벗어남이고 마음의 대상으로 열반이 뜨는 경지, 이것이 멸성제의 실현이다.
욕계/색계/무색계의 아름다운 마음에 탐진치가 없다고 그것이 열반은 아니다.
마음이 열반을 대상으로 하였기 때문에 예류도가 일어나는 하나의 심찰라에 유신견, 의심, 계금취가 떨어지는 것이다.
정확히 알아야 바르게 수행할 수 있다.
‘윤회의 길과 열반의 길’이 어디서부터 갈리게 되는가?
육문에 대상이 부딪쳐 식(識)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길이 갈라지게 된다며
『청정도론』 2권 처(處)에 대한 상세한 주석과 「꿀덩어리 경」(M18) 주석을 소개하며 감각장소에서 식이 일어나는 순간을 강조하셨습니다.
- 『청정도론』 2권, 처(處)에 대한 상세한 주석
3) 비롯함이 없는 윤회를 거듭하면서 겪은 긴(āyata) 윤회의 고통이 끝나지 않는 한 이것은 [긴 윤회의 고통으로] 인도한다(nayanti), 생기게 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이 모든 법들은 노력하기 때문에, 생긴 [마음과 마음부수들]을 펴기 때문에, 인도하기 때문에 ‘아야따나(장소), 아야따나’라고 한다.
- 「꿀덩어리 경」(M18) 주석 660)
“오염원들은 일어날 때에도 열두 가지 감각장소를 의지하여 일어나고, 소멸할 때에도 반드시 열두 가지 감각장소에서 소멸한다.”.
육문에서 식(識)이 일어날 때 탐욕/성냄을 일으키며 대상에 들러붙어 무명에 젖어있으면 윤회의 길이 되고,
순간순간 대상을 알아차리고 있으면 열반의 길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12처(6내외처)로부터 시작해서 업으로 확장된다.
<중략>
"이 세상을 ‘피바다’라고 표현하신 것은
일체가 18계이고 그마저 생멸/생멸할 뿐인데 무지하기 때문에 그것을 상/락/아/정으로 보면서 업을 짓고 윤회를 거듭하기 때문이다.
대상에 염오하는 마음을 덜어내야한다.
내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을 의식하고 법으로 바로 보는 방법을 찾아야하다.
대상이 우리에게 투영되는 과정과 업을 짓는 과정이 구분되어야한다.
인식과정 17번의 심찰나 중에서
[오문전향-전오식-받아들이는 마음-조사하는 마음(평온/기쁨함께)-결정하는 마음(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은 과보의 마음이다.
자와나의 마음에서 선한 마음을 일으키는지, 불선한 마음을 일으키는지에 따라 윤회의 길과 열반의 길이 갈라진다.
자와나의 마음을 어떻게 선하게 일으킬 것인가에 집중하라
어떤 대상이 부딪혀오든 그때 일으키는 전오식은 과보의 마음(과거에 지은 업의 결과)이라고 알고 식에 부딪히는 대로 내버려 둘 수만 있다면 그냥 흘러간다.
그러나 탐욕 등의 의도를 일으켜 나도 붙잡고 대상도 붙잡기 때문에 새로운 업지음이 있게된다.
대상이 튕겨 나가게 두고, 만약 그 대상이 살아있는 존재라면 사무량심을 일으키라.
'생명 있는 대상을 만나면 언제든 사무량심을 일으키리라.”'결심하고 명상 주제인 호흡에 마음을 묶어두면 된다.
생각으로라도 끊임없이 무상(無常)이라고, 고(苦)라고, 무아(無我)라고 새기고, 보내고 또 보내고,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나 존재에 대한 갈애는 윤회의 길이구나라고 뿌리치는
이 한 걸음 한 걸음이 열반으로 향하는 길이다.
반조든, 수행이든, 여실지견 할 수 있는 삼매를 길러서 무상/고/무아를 보든 이 모든 과정이 열반으로 가는 길입니다.
자주 자주 열반으로 가는 길로 방향을 틀 수 있기를~~~"
아비담마와 경전을 인용한 법사님의 말씀은 부드럽지만 단호하였습니다.
경전 속 진리들을 내 안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제시하시는 바른 길을 따라
공부모임에서 늘 듣고 배우던 가르침들을 되새기며 두 차례의 명상시간을 가졌습니다.
명상 말미에는 지난 시간 과제 점검 형식으로 취해 두 분( 위숫띠, 자넷띠 )법우님들의 수행담을 들었습니다.
꾸준한 실천에 따른 향상을 더불어 기뻐하며 진정한 선우의 본보기가 되고계신 두 분 법우님들께 감사를 표했습니다.
오후 5시, 원장스님께서 오늘 법회를 마무리 하시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모두 궁극적 행복을 향해 걸을 걷고 있는 수행자다.
아주 사소한 습관으로 인해 어떤 불선법이 일어날 때
'나는 궁극적 행복을 향해 길을 걷고 있는 행자다’라는 생각을 일으키면 자잘한 습관은 고치기 쉽다.
그러나 이런 자부심이 자만심으로 바뀌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이 가르침에 입문하는데 방해가 된다.
8정도를 향해 걷고 있는 나의 이 든든한 자부심은 오로지 나를 향해서 일으키게 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통해 부처님 가르침에 관심을 가지게되고 보리원 문턱도 낮아질 것이다."는 원장스님 말씀을 들으며
오늘 법회를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와 각자의 의지처를 단단히 새기게 되었습니다
자애로운 가르침 주신 원장스님과 멀리서 오셔서 수행지도해 주신 법사님,
함께 수행하시고 수행 경험 나누어주신 법우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사-두 사-두 사-두
10월 보리원 행복한 수행법회는 보리원 사정(동호회 총회 개최)으로 2주 일요일(10/13, 오후 1시~5시)로 변경 운영됩니다.
일정에 착오없으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__()__ __()__ __()__
사두 사두 사두
_()_()_()_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사두~사두~사두~
사두 사두 사두
_()_ _()_ _()_
고맙습니다 _()_
행복한 수행법회 일지를 읽는 것만으로
선법이 충만해 옴을 느낍니다.
덕분에 함께 수행에 동참한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
사~두 사~두 사~두
_()_()_()_
사두 사두 사두
_()_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