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소리를 들으며
전 호 준
우르릉 쾅쾅 한밤중 어디선가 들려오는 수상한 굉음에 놀랐다.
간만에 컴퓨터에 앉아 문우께서 메일로 보내주신 독서자료 삼매경에 빠졌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다. 아니 어디 또 지진이라도 난 것인가? 최근 부쩍 잦아진 지진 소식과 전운이 고조되는 한반도 위기설에 어디서 포탄이라도 날아와 터지는 소릴까? 공연한 조바심에 신경이 쓰여 밖으로 나왔다.
근래 보기 드문 빗줄기 사이로 밝은 불빛이 번쩍인다. 연이어 우르르 쾅쾅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소리다. 구름도 피해 간다는 대구에 웬일이지! 가뭄에 애타는 대구 경북, 이른 봄 보기 드문 굵은 빗줄기와 때아닌 천둥소리까지 괜히 가슴이 벌렁거린다.
개구리 입이 떨어진다는 경칩을 이틀 앞둔 지난 3월 4일 일요일이다. 오후부터 비가 온다는 기상정보에 은근히 기대를 걸었다. 설마 하며 기다리던 비가 밤이 되었어야 한두 방울 오락가락 감질난다. 역시 대구, 또 그러려니 하고 무심히 있던 중. 밤늦게 제법 기분 좋게 내리는 반가운 봄비다.
자연의 이치는 신비하다. 누군가 봄은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어느새 다가온다고 했다. 봄이 마중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배웅의 계절인 것 같다. 봄은 무작정 기다리는 자의 것이 아닌 마중하는 자의 것이다.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일 때 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경칩을 이틀 앞둔 한밤중에 울리는 천둥소리, 깊은 겨울잠에 빠진 철없는 삼라만상의 미물을 향해 봄을 일깨우는 하늘의 계명성(鷄鳴聲) 같다. 이렇듯 봄은 알게 모르게 소리로서 만물을 눈뜨게 한다.
지난 2월 20일이다. 성주 포천 계곡으로 고로쇠 백숙을 먹으러 가자는 지인의 전화다. 벌써 고로쇠나무에 물이 오르다니. 아직도 창틈을 비집는 찬바람에 겨울잠에 웅크린 곰이 되어 이불 동굴에 갇혀 살았는데 전화를 받고 보니 곰이 따로 없다.
고향에서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는 친구를 따라 산을 오른 적이 있었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수액이 신비하다. 나무에 이(耳) 청진기를 갖다 댔다. 아무도 모르는 깊고 깊은 캄캄한 막장, 수맥을 찾아 바위를 헤집고 한 모금 물을 캐어 멀고도 높은 가지 끝으로 펌프질하는 부지런한 여린 광부의 가뿐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또~옥 또~옥 수액 떨어지는 소리, 나무에 생명의 피가 떨어지는 소리다. 흡혈동물이 따로 없다. 생명의 피를 가로채는 얌체 같은 마음이 아프다. 이 또한 봄이 오는 소리가 아닐까? 이렇듯 봄은 간혹 아픈 상처를 감내하며 인고의 몸으로 하소연하듯 찾아온다.
계곡으로 내려갔다. 얼음으로 뒤덮어 시간이 멈춰버린 삭막한 골짜기에 어디선가 쪼록 쪼르르 소리가 난다. 굳어 돌이 된 선뜩한 얼음장을 비집고 봄을 알리려 이제 막 여행을 떠나는 바위틈에서 나는 가는 물소리다.
봄은 때론 바람에 실려 모습을 알린다. 칼날 같은 겨울바람은 쌩쌩 나뭇가지에서 윙윙 울고 비단결 같은 봄바람은 따스한 입김으로 새록새록 새 생명의 싹을 틔운다.
수성못 가를 거닐었다. 지난 세월의 미련일까? 텅 빈 씨앗 주머니를 아쉬운 듯 매달고 숨을 멈춘 듯 서 있는 배롱나무, 지난겨울 거칠던 피부가 한결 매끈해진 걸 보면 막장의 펌프질은 이미 시작된 것 같다. 물오른 수양버들 가지는 벌써 연록의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리고 봄바람에 빗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얼음에 갇혀 신음하다 해빙된 호수의 잔물결이 봄바람에 찰싹찰싹 못가의 마른 풀잎을 흔들어 사각사각 봄을 깨운다. 물 위에 한가로운 오리 가족의 자맥질 소리에 봄은 벌써 들리듯 말듯 발아래서 소리 내며 서성인다.
어느 날 갑자기 창밖이 소란해진다. 겨우내 칼바람에 적막만이 감돌던 집 뒤 말뫼공원, 개구쟁이들의 재잘대는 소리에 창문을 열었다. 반가운 봄의 소리다. 아이들과 함께 어우러진 새소리가 봄의 하모니를 연주한다. 이렇듯 봄은 이미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음을 소리로 알려준다.
금수강산에 봄이 그립다. 답답하고 막막한 봄소식에 언 귀를 녹여본다.
큰 바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소리에 놀란 것일까? 얼음과 눈의 축제 강원도 평창에서 봄의 소리가 들려왔다. 얼어붙은 동토의 땅에서 내려온 미녀들의 봄노래다. 봄을 흉내 내는 앵무새 소리일까? 한반도에 진정한 봄을 예고하는 전주곡일까?
봄 소리에 허겁지겁 봄 마중에 분주한 북악 기슭에 조수님들, 단숨에 달려간 대동강 모란봉, 얼어붙은 강물은 그대로인데 성미 급한 사공들만 삿대 들고 서성인다. 언제 풀리러나 대동강아! 모란봉아! 삼라만상이 모두 깨어 봄 노래를 하는데 너는 어찌 겨우살이에 벗어나지 못하는가? 대동강이 풀리는 그 날이 오면 삼천리 금수강산에도 봄은 오겠지, 진정한 평화와 상생의 새봄이 강물처럼 소리쳐 내릴 그 날을 기다리며........ 2018. 3. 21
첫댓글 "봄은 기다리는 자의 것이 아닌 마중하는 자의 것이다." 라는 말에 새삼 가슴이 울렁거립니다. 못마땅하고 가슴 아픈 일이 많은 현실이지만 그래도 봄은 사람의 가슴에 희망과 사랑을 꽃피우는 계절이니까요. 잘 읽었습니다.
봄이 오는 소리를 독차지 하여 혼자서 즐기고 있군요. 내게도 적선을 해줬으면 합니다. 성주 포천계곡 고로쇠 물소리, 수성못가 수양버들 바람소리. 모두 봄을 안고 오는데. 더욱 반가운 봄소리는 대동강이 풀리는 소리라. 정말 그소리가 듣고 싶군요. 잘 읽었습니다.
부지런한 사람만이 계곡에서 봄이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봄에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봄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오는군요. 봄이 오는 소리는 정말 반가운 소리인가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봄이 오는 소리에 함께 귀 기울입니다.
저도 어느 때는 고로쇠 물 먹으러 성주 쪽으로 부지런히 다녔건만.....
선생님 글을 보면서 봄의 향기를 느낍니다.
봄의 소리를 대형 악단의 연주곡 같이 이곳 저곳에서 들으셨네요..역시 봄은 기다리기 보다는 마중을 하시는 분에게 먼저인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올봄은 특별이 야단스럽게 오네요. 소나무 가지가 부러지도록 두번이나 눈을 날라 주고 산수유꽃이 눈을 함박 뒤집어 쓰고는 오들오들 떨더랍니다. 우리 매실나무도 열매를 옳게 맺을런지 쾅 쾅 거리는 봄소식에 대지가 놀랐지 싶습니다
봄이오는길목에 함박눈이 내려 꽃위에 눈이쌓여 상고대를 즐겨야 하는 계절의 장난에 정신이 없는 것이 요즘입니다. 여러가지 의미가 담긴 봄의소리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