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작품’인줄 알았는데 ‘AI 작업’… 그림시장 논란
밑그림 요구하자 “AI가 그려” 실토
정보 공개않고 팔면 사기죄 될수도
AI 저작권도 논란… 美 “인정 안해”
어느 쪽이 손그림일까요? 온라인에서 인공지능(AI)으로 그린 그림을 ‘손그림’이라고 속여 판매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왼쪽은 온라인 작가가 사진을 보고 그린 손그림, 오른쪽은 AI가 그린 그림. 작가는 35시간 걸려 그림을 그렸는데 AI 그림은 5초 만에 완성됐다. 김루인 작가 제공·‘Dream by Wombo’ 사이트 캡처
“고작 몇 초면 만들어지는 인공지능(AI) 그림이었는데…. 손으로 그린 그림인 줄 알고 살 뻔했어요.”
종종 온라인에서 애니메이션 캐릭터 그림을 구입한다는 중학생 신모 양(16)은 24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플랫폼에서 좋아하는 캐릭터 그림을 그려주겠다는 아마추어 작가가 있어서 5000원을 주고 부탁하려 했는데 예시 그림을 보니 손가락 모양이 부자연스럽고 윤곽선이 끊긴 부분이 많았다”고 했다.
신 양은 밑그림 등을 요구하며 공방을 벌인 끝에 “AI가 그렸다”는 실토를 받아내고 플랫폼 운영업체 측에 이를 신고했다. 이후 플랫폼 측은 “작가는 반드시 작업 과정을 인증해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 온라인 그림 시장까지 파고든 AI
챗GPT 등 인공지능(AI) 서비스를 일상에서 활용하는 시대가 된 가운데 온라인에서 AI가 그린 그림을 ‘손그림’이라며 판매하는 경우가 늘어 분란이 생기고 있다. AI의 그림 실력이 일취월장하면서 사람이 그린 그림과 구별하기 어렵게 되자 일부 누리꾼들이 아마추어 작가를 사칭하며 손그림 전문 플랫폼 등에서 꼼수를 쓰는 것이다.
실제로 동아일보 취재팀이 24일 트위터에서 관련 키워드를 검색해 찾은 아마추어 온라인 작가의 예시 그림 5장을 AI 판별 프로그램(정확도 96%)으로 감정한 결과 1장은 ‘99% 확률로 AI 그림’이란 결과가 나왔다.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 그림을 자주 의뢰한다는 김태은 양(18)은 “AI 그림은 밑그림, 선화(색칠 전 선으로만 그린 그림) 등의 단계가 없기 때문에 작가와 단계별로 소통하며 원하는 그림을 얻어내기 힘들다”며 “일단 단계별 소통이 없는 경우 AI 작가인지 의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손그림을 자주 요청한다는 안모 씨(22)도 “AI가 그린 그림은 출처와 저작권이 분명치 않은 여러 그림이 짜깁기 돼 있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올릴 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AI가 그린 그림을 손그림이라며 판매할 경우 사기죄에 해당할 수 있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AI 그림을 거래하는 행위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라면서도 “관행적으로 손그림만 사고 파는 시장에서 정보를 밝히지 않고 AI 그림을 판매하는 건 사기죄로 볼 수 있다”고 했다.
● 아마추어 작가들 생계 위협
AI로 손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면서 아마추어 작가들의 생계는 위협받고 있다. 반려동물 그림을 그려주는 김루인 작가(29)는 지난해만 해도 한 달에 10건 안팎의 의뢰를 받았지만, 올해 들어온 주문은 5건도 안 된다고 했다. 김 작가는 “최근 한 고객으로부터 ‘AI 그림 아니냐’는 문의를 받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AI의 ‘그림 시장’ 공략은 이제 시작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장병탁 서울대 AI연구원장은 “앞으로는 (AI 그림과 손그림의) 경계가 모호해져 판별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AI가 그린 그림의 저작권을 둘러싼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은 미국 저작권청이 이미지 생성 AI인 ‘미드저니’로 만들어진 만화 이미지에 대해 저작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놨다고 22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미드저니는 사용자가 단어나 문장을 입력하면 그에 맞춰 만화를 생성해주는 AI 서비스다. 한국 문화체육관광부도 AI가 만든 ‘작품’ 저작권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24일 ‘AI-저작권법 제도개선 워킹그룹’을 발족했다.
주현우 기자, 전혜진 기자, 홍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