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쏠림 현상’ 첨단산업 인재 확충 위기다
인재들 의대 집중, 의료 인력 수준 높아지지만
이공계 대학 안정성 해치고, 연구경쟁력 약화
과학기술 인재 확보 위한 장기계획 마련할 때
우수 인재들의 소위 ‘의대 쏠림 현상’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이공계 학생들의 1순위 지망이 모두 의대로 몰리고, 이공계에 진학한 학생들은 의대 진학을 위해, 지방 의대생들은 상위권 의대에 가기 위해 반수 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객관적이고 냉철한 고민도 필요하다.
우선 ‘우수한’ 인력의 의대 진학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보기 어려울 수 있다. 생명을 다투는 상황에 처한 환자는 일반적으로 ‘최고로 우수한’ 인력이 자신을 치료해 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물론 ‘의료 인력은 얼마나 우수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할 수 있다.
필자는 상위권 학생들의 극심한 의대 쏠림 현상을 조금 다르게 본다. 최근 논란의 중심이 된 소위 ‘반도체학과’는 사실 큰 문제 없이 정원을 채우고 있다. 서울 시내의 주요 공대 정원이 미달인 적도 거의 없다. 정시에 한 학생이 3곳까지 지원할 수 있음을 고려하면, 우수 학생들이 2순위나 3순위로 관심을 두고 있는 반도체 전공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지나친 의대 쏠림 현상으로 이공계에 우수 인재가 공급되지 않는다는 지적 또한 근거가 모호하다. 올해 전국 4년제 일반대학 모집인원 중 의학계열 비율은 1.89%, 의치대 비율은 1.04%이다. 통계만 본다면 의대 신입생을 제외하고도 상위권 이공계 인기학과에 충분히 우수한 학생들이 진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예시로 든 반도체학과 인력의 함량이 반도체산업에서 일하기에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신과 수능이 가장 뛰어난 학생들이 이공계에 진학하지 않는 것이 관련 인력 양성에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도 가설에 불과하다. 현재 이공계와 정부 그리고 언론은 1순위로 이공계 학부에 우수 인력이 충원되지 않는 현상에만 관심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전형적인 ‘인재 한 줄 세우기’가 아닌가.
그럼에도 의대 쏠림 현상이 대학의 안정적인 교육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우선 기존 이공계 또는 지방 의대에 재학 중인 상당수 학생들이 반수를 통해 의대에 진학하거나 상위권 의대로 옮겨가 안정적인 인력 배출이 어려운 상황이다. KAIST 등 과학기술 특성화대학 4곳에서 최근 5년간 1000여 명이 자퇴했는데, 이들 중 80% 이상이 재수·반수를 통해 의대에 간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하는 특성화대학 입장에서는 큰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의대 쏠림 현상’은 학부와 대학원을 분리해 접근해야 한다. 입시는 학부와 연결된 반면 산업체의 경쟁력은 대학원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이공계 학부는 학생 충원에 큰 문제가 없지만 대학원은 전국적으로 서서히 붕괴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현재 논의는 ‘문제는 학부에, 대책은 대학원에’ 초점을 맞춰 원인과 대책이 분리된 느낌이다.
무엇보다 이공계 인력이 사회에 진출해 좋은 여건에서 근무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공계 대학원을 졸업한 인력들이 기업, 정부연구소, 대학 등에서 합당한 대우를 받게 되면 인재들이 알아서 모일 것이다. 이 일환으로 정부는 정부출연연구소와 대학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정부출연연구소의 경우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임금피크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외환위기 이후 65세에서 61세로 줄어든 박사급 인력의 정년을 회복시킬 필요가 있다.
대학의 경우도 14년 넘게 강요된 등록금 동결로 인해 우수한 인력을 유치할 수 있는 여력이 소진된 상태다. 실제 상당수의 공대 교수들은 대기업에 취직한 대학원 제자들의 월급이 자신들의 월급과 비슷하거나 높아서 흐뭇하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하다고 ‘농반 진반’ 이야기한다. 실제 정부가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학문 분야의 경우 민간과의 임금 격차가 너무 커 교수 임용에 자주 실패한다. 이와 더불어 해외 우수 인력의 유치를 위한 제도도 개선해야 한다.
대통령실도 최근 현상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학에서 첨단 산업 인재를 양성하고, 이공계 학생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실질적 지원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정부는 단기적인 대책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인력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는 물길을 트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 ‘10만 인재 양성’ 등의 구호성 정책으론 현실을 바꾸기 어렵다. 국가의 수준에 맞는 장기적이고 꾸준한 정책의 얼개를 고민해야 한다.
이삼열 연세대 행정학과·언더우드국제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