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우리의 형제가 이라크 무장단체에 의해 살해(처형이라는 말은 죄인에게나 쓰는 것이다)당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으며 단지 이라크에 갔을 뿐이다. 혹자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교통사고나 살인사건, 자살 등으로 죽어가는 마당에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무덤덤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납치순간부터 죽기 직전까지 당사자가 감내해야 했을 죽음의 공포는 둘째로 치더라도, 한 국가의 국민이 외국에서 납치되어 살해의 위협에 놓였다는 것과, 그의 목숨을 담보로 하여 한 국가의 정책 -그것이 옳은 것이든 부당한 것이든 간에- 을 변경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시도가 -어쩌면 당연하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처형"했다는 것은 분명히 큰일이다.
우리는 어떤 이유나 논리도 배제하고 김선일씨가 무사하길 바랐으나 그는 이제 우리와 다른 곳에 있게 되었다. 나는 김선일씨의 생사여부에 관계없이 비무장 민간인을 상대로 한 테러는 이유야 어찌 되었든 비난의 대상이라고 본다. 알 카에다, 그리고 다른 이슬람 무장단체들, 그들에게는 정당한 저항활동의 일환일 것이다. 하지만 침략국 정규군에 대한 테러도 전쟁법을 어겼다(실은 부시정권이 먼저 어긴 거다)는 이유로 그 정당성이 의심받는 마당에 민간인을 상대로 한 위협-살해는 도덕적 정당성이 전혀 없으며, 부당한 폭력행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편, 이러한 폭력행위가 도덕적 비난을 받는다고 해서, 그 폭력행위의 전제가 된 특정국가 정책의 정당성 여부가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그들은 우리의 파병정책이 표방하는 성격에 대한 어떤 고찰도 없이 자신들의 주적과 동일선상에 두고 또 그렇게 단정함으로써 도덕적 비난을 피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을 살해하겠다는 위협으로써 그 사람이 속한 국가의 정책을 변경·취소하라는 요구를 하는 것은 비겁자의 논리일 뿐이다. 분명히 피랍자와 그가 속한 국가의 정책은 별개의 것이다. 김선일씨가 파병을 결정한 것도 아니요, 김선일씨가 국가의 대표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그들이 일을 벌이기 직전에 발표한 성명은 억지 부리기와 다름없다.
이제 고인의 사례를 들어 파병을 철회했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테러리즘을 종식시키기 위해, 또한 고인에 대한 복수를 위해 전투병을 파병해서 테러범들을 소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옴직하다. 나는 이 두 경우 모두를 감정에 의해 부당한 판단을 한 결과로 치부한다. 전자의 경우는 테러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유사사례가 재발하게끔 하는 결과를 낳게 되고, 후자의 경우는 자존심만 앞세운 개념일 뿐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그럼에도 필자의 감정은 알 카에다나 알 지하드 본부로 쳐들어가 람보식으로 그들을 몰살시키고 싶어한다)
유일신 알라의 이름으로 성전을 한다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꾸란에 의하면 부당한 침략에 맞서 용감하게 싸우다 희생되었을 경우 그들의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부당한 침략에 맞서 싸운 것은 맞을지 모르나, 그들은 용감하지도 않았고, 희생자는 그들이 아니었기에 천국에 들 자격이 없다. 서방세력과 맞설 때 항상 앞세우는 쿠르드 출신 살라딘의 유지를 그들은 과연 충실하게 받들고 있는가? 난 살라딘이 부당하게 포로를 참수하거나, 인질을 이용해 적으로부터 전략적 이득을 추구한 사례를 보지 못했다. 살라딘의 포로와 인질들은 행동의 자유만 제한되었을 뿐 그 외의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았다. 또한 적절한 몸값과 함께 몇 가지 서약을 받은 후 풀어주었다. 설사 나중에 그 서약을 어긴 것조차도 응징을 자제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살라딘은 부당한 침략세력에 맞서 전쟁을 했지만 그들은 막연한 원한을 이유로 양아치 짓을 한 것일 뿐이다. 그들은 聖戰을 한 것이 아니라 살인을 한 것이다.
이곳 안티든 기독교인이든 모두에게 말하고 싶다.
지금 감정이 격앙되어 있는 분들이 있다. 나도 같은 심정이다. 하지만 나는 인간미 없는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국가적 명운을 걸고 어떤 식으로든 뭔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제발 참자. 우리가 테러국인가? 우리가 침략국인가? 우리가 왜 부시와 같은 레벨로 놀아야 하는가?
오늘 새벽에 나는 기독교인들에게 입닥쳐 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것은 기독교나 이슬람이나 똑같은 부류라는 평소의 주장을 반복한 것이기도 하지만 실은 더 복잡한 이유가 있다. 기독교인들이 단세포적으로 이슬람을 비난하는 발언을 할 때 평상시 같으면 실컷 비웃어주고 이슬람의 편을 들었겠지만, 지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아무리 기독교인들이 헛소릴 한다고 해도 그것을 씹는 것은 고인에게도 누가 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종교적 정당성이 이미 결여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종교가 이슬람을 씹어봤자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무종교인이 이슬람을 씹는 것이 의미가 있느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김선일씨가 무슬림이었다고 해도 과연 무사했을 것이란 보장이 있는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한국의 국적을 가진 희생자가 필요했을 뿐이다.
이 사건은 한 사람에 대한 조직적인 살인행위이지, 약소조직이 거대조직(국가 또는 국제체제)에 대항하는 투쟁의 결과는 절대로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조직이 저지른 범죄행위 자체를 규탄해야 하지 그 이유나 원인을 살펴줘야 할 필요나 의무가 없으며, 그들에게 어떤 동정이나 연민도 가져서는 아니된다. 한편 이들의 범죄행위로써 반대급부 식으로 자기의 조직이나 자신의 이념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도 있어서는 아니된다. 기독교의 교의에 대한 것이든, 이슬람이나 파병에 대한 찬반논리든 간에 이 사건을 가지고 자기주장의 정당성을 담보하려는 어떤 시도도 반대한다.(물론 각 논의에서 이 사건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새벽에 김선일씨의 사망소식이 있기 전에 기독교도로 추정되는 사람이 “김선일씨는 목사를 꿈꾸던 크리스챤”이라는 식의 글을 안티사이트에 올림으로써 안티의 반감을 유발하고, 안티의 시니컬한 반응들을 복사하여 여기저기에서 안티의 도덕성을 비판하는 자료로 삼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개인의 목숨이 경각에 매달려 있는 시점에서 그런 짓거릴 한 사람의 도덕성은 김선일씨를 참수한 자들보다 못하다고 본다.
한편 여기에 말려든 안티들도 분명히 반성해야 한다. 안티는 기독교의 교리나 이에 의한 기독교인의 범죄행위 또는 부조리를 탓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야 한다. 기독교의 독트린과 상관없는 범죄행위는 그가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사회적인 비판을 받아야 하는 성질의 것이며, 그가 기독교인이라 하여 안티가 특별히 그것을 더 부각하여 비판할 이유가 없다. 물론 기독교인이 기독교의 가르침조차 어긴 행위를 저질렀다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사건을 가지고 어떤 형태로든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하거나 논쟁에서의 이득을 취하려 하는 것은 고인과 유가족에 대해 엄청난 반인륜적 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다.
정황상 느껴지는 여러가지 의문을 차치하더라도... 피랍소식 이후 행해진 정부의 "파병강행"이라는 대내외의 선포가 김선일씨의 죽음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봅니다... / 이러한 결말을 감히 행정부가 짐작하지 못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군요...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의문하나는...
첫댓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노통과 행정부의 미숙하고, 무능함에 기인한 것인지... 혹은 의도적인 방조인지... 참으로 아리송송하군요.... / 요즘 노통을 보는 느낌은 앞만보고 달리는 탈선직전의 기관차같다는 느낌입니다...
정황상 느껴지는 여러가지 의문을 차치하더라도... 피랍소식 이후 행해진 정부의 "파병강행"이라는 대내외의 선포가 김선일씨의 죽음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봅니다... / 이러한 결말을 감히 행정부가 짐작하지 못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군요...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의문하나는...
무엇이 노통과 행정부를 이렇게 몰아붙였는가?? 라는 의문입니다...
더불어.. 오늘 발표된 노통의 담화문은 참으로 "부시"스럽다는 느낌마저 들더군요...
다르게 생각하면... "파병강행"이라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도.. 김선일씨를 죽음으로까지 몰고가지 않을만한 어떤 카드를 쥐고 있다고 착각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 어떻게 생각하건... 노통은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느낌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