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울 동네 건물 외벽 페인트도 제대로 안말랐을 때 입주 했으니
동네 상가를 거쳐간 사람들 이력이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아주 꿰다 못해
눈감고도 그 사람들 사연을 좔좔좔~ 2박 3일은 읊어댈수 있다. (뻥이 좀 심한가?? 힛~)
머 오지랖이 오라지게 넓은 도요새 이 인간이 동네 상가사람들의 살아가는
생생한 이야기들을 어찌 놓칠수가 있으랴??
부동산 천여사, 치킨집 언니, 화장품 언니부터 미니슈퍼 형규 엄마
옷 수선집 아줌마, 반찬가게 아줌마 세탁소 아자씨 등등등..
이 수다쟁이가 하나씩 하나씩 그 이야기 들을 다 풀어 놓은것도 있고
아직 안풀어 놓은 이야기도 있거찌만.....
오늘은 울동네 비디오 가게를 좀 들여다 보면 어떨가 싶다.
비디오 가게 자리 십년 역사(?)에 주인은 5번 바뀌었다.
내가 비디오 가게를 했던 그 5명의 주인들과
한결 같이 친할수 밖에 없었던 것은 영화와 담배를 탐하는
나의 오랜 습성탓에 그들에겐 고정매상을 올려주는 단골고객 탓이기도 하고
웬지 좀 모자란듯 한 도요아지매랑 이런 저런 영화야그, 세상야그 동네 야그 하는게
하루종일 자리에 앉아 가게만 지키고 있는 그들에겐 무료함을 달래주는
활력소(?) 적인 역할을 제대로 해내어서 인지도 모른다.
비디오 가게 주인들..그중 2명은 으매.. 영화에 대해 빠꼼이 중 빠꼼이
매니아로서 단지 하루 종일 영화가 보고싶어 그 가게를 하는
골 때리는 인간들이기도 했던 것이다.
암튼 지금 비디오 가게 아저씨.. 성현이 아빠.
성현이 엄마가 나이 41세인걸 보면 아마 서너살 위정도일테니 40대 중반쯤.
딸딸딸 셋을 둔 평범한 가장인데 비디오 가게만을 생업으로 하진 않는다.
얼핏 듣기론 무역쪽 무슨 전문직종인걸로 아는데 조직생활이 너무너무
지겹고 힘들어 프리랜서 선언하고 비디오 가게 주인으로 들앉았다.
가끔 성현아빠가 한두달씩 가게를 비우고 성현 엄마가 가게를 보는때는
남편이 원래 전문직 일을 프리랜서로 맡아서 처리해야 할때 이다.
강원도가 고향인 성현아빠와 경상도 문경여자인 성현엄마는
각자 특유의 지방색 짙은 사투리를 미소와 함께 하는
참으로 법없이도 살 정도로 착해보이고 편해보이는 사람들이다.
중1인 성현이, 초등 3학년인 정현이, 그리고 막내 이제 7살인 소현이
세 딸아이들도 이목구비 뚜렸한 제 엄마를 닮아 예쁘기도 하지만
가끔 마주치는 아이들을 보면 제 부모들이 정말 참하게 키웠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성현아빠~ 요즘에도 아들 낳을라고 줄줄이 딸셋 둔 천연기념물같은 사람도 있수~"
하고 내가 느물거리며 놀릴라 치면...성현아빠는 빙그레~ 웃으며
"에또 그러니깐..내가.. 아들 낳을라고 줄줄이 딸셋이 아니고 가설라무네" 하면서리
자긴 딸아들 절대 구분 안한단다. 뱃속에 아이가 어떤 놈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자식들이 무조건 좋아서 생기는대로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성현엄마 나이 마흔에 첨엔 몰랐다만 어느날 부터 배가 불러오기 시작 했다.
때 늦은 임신에 동네사람들은 속으론 아이고.. 딸이 셋이나 되는디..
또 임신을.. 또 딸이면 우얄라고.. 하고 은근히 걱정을 했고
또 딸이면 어때요..허허허~ 하고 웃는 성현아빠는 배부른 마누라를 보고
당신 아무 걱정마~~ 요즘 세상에 딸아들 구분이 어디있어~ 잘기르면 되지~
걱정이 있다면 노산이 힘들까봐 그게 걱정이지 머~~~
어쩌면 성현 엄마 아빠보다 우리가 더 바랬는지도 모른다.
이번엔 아주 자알생긴 아들이었으면 좋겠다고 더 조바심을 했는지도 모른다.
성현아빠 종갓집 장손인거 다 아는 사실이구 아직은 우리 사회에선
종갓집 맏며느리가 줄줄이 딸 셋이면 시부모님들께선 돌아 앉으셔서
"쯔쯔~ 대를 어찌 이어 갈라고~" 하시지 않는가 말이다.
우리들의 이런 조바심을 알기라도 했는지.. 떡하니 낳은 아들.
그 녀석 재현이!! 아이고~ 잘도 생겼지!!! 태어난지 두달 된 녀석은
새카만 머리숱에 큼직큼직한 눈 코 입. 게다가 어찌나 순한지
보는 사람에게마다 벙싯벙싯 ~ 웃으며 벌써 옹알이를 한다.
유모차에 가만히 눕혀 놓아도 칭얼대지도 않고 혼자서 손발 버둥대며
잘도 논다. 옹알 옹알 옹알..........
암튼 요즘 우리동네 비디오 가게에 들르는 사람이면
열이면 열, 스물이면 스믈...누구나가 얼굴에 함박미소를 짓는다.
담배 사러오신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동네 심술통 할아부지도
"허~ 그놈 참 .." 하며 슬그머니 미소지으시며
재현이의 작은 단풍잎 같은 손을 슬며시 만져본다.
우리는 마치도 갈증에 헤매던 사람들이 시원한 우물을 발견이라도 한듯
모두들 경이와 감탄과 부러움(?)과 그 무어랄가..
암튼 새 생명을 바라보는 그 기분은 어찌 설명 할수가 없다
작은 축제 분위기같기도 하고 .. 너무나 새삼스럽기도 한 것이다.
이번에 성현아빠가 두달 정도 프리랜서 일을 또 맡았기에
아이낳고 겨우 몸 추스린 성현엄마가 유모차 밀고 가게에 나오는 요즘.
난 재현이 보는 재미에 자주 비디오 가겔 들르는 편이다.
아이를 안고 비릿하게 풍기는 젖내를 맡기도 하고
쌔근쌔근 잠든 녀석의 볼에 입도 맞추고 하는 그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가 않다.
어제도 참새 방앗간 드나들듯 우리 재현이 잘있나아~~ 하며 비디오 가겔 성큼 들어섯것다
성현엄만 꾸벅꾸벅 졸다가 퍼뜩 깨더니.. 오셨어요~ 하고 빙그레 웃는다.
집안 살림 하랴, 딸 셋 치닥거리하랴, 갓난아이 키우랴, 가게 보랴
그래.. 몸이 열개이라도 모자라지 ... 잠인들 안모자러건나.. 싶은게
내가 성현이하고 가게 봐줄게.. 잠좀 자아~ 했드니 아니라고 손을 훼훼~ 내젖는다.
"성현엄마~ 그런데 이번에 아들 낳을라고 계획임신 한거야??"
"아뇨~ 재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 꿈에도 몰랐죠. 우연히 아이가 들어섰고
제 나이도 생각하면 챙피하기도 하고 .. 도저히 아이 넷이나 키울 자신이 없어서
전 낙태를 조심스레 말했거든요."
그런데 성현아빠가 우리 딸들..성현이 정현이 소현이 생각좀 해보라면서
저렇게 이뿌고 사랑스러운 딸들같이 크게 될 뱃속의 이 아이도
엄연히 한 생명체고 부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인데
그 생명을 낙태한다면 그런 큰 죄가 어디있냐고 설득하더랜다.
딸이건 아들이건 아무상관도 없다고 딱 잘라 말하드랜다.
"근데.. 도요아즘니..제가 성현아빠 말에 아무 대꾸도 못하고 아일 낳기로
결심할수 밖에 없었던...진짜 이유는요..." 하고 말끝을 흐리는 성현엄마.
"진짜..이유? 응.. 종갓집 맏며느리로 대를 이어야 겠다는...책임감??"
"아니요.. 그건 아니예요..성현 아빠가 너무 고맙고 시부모님께도 너무
죄스러운 일이 하나 있어요.." (설핏 눈가에 물기가 어린다)
울동네 사람들 아무도 모르는디.. 하며 말끝을 흐리는 성현엄마.
(사족 하나 => 난 사람들이 이건 아무도 모르는 비밀인디.. 하는 이야기들을
자주 듣는 편인데 사람들은 왜 내게 그 비밀들을 털어놓는지 몰긋다.
아마도 내가 상대에게 크게 부담시련 인간은 아닌가부다. 걍 편하게 느껴져서 그런갑다.)
"큰 아이..성현이는 제가 낳은 딸이 아니예요"
그 말 이후로 난 성현엄마가 눈물 찍어내는 모습을 쳐다보며,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작은 감동이 가슴에 잔잔히 물결쳐 옴을 느꼈다.
너무 길고 높고 험하여 새들도 쉬어간다는 문경새재가 가깝다는
시골이 성현 엄마의 고향이고, 딸아들 합쳐 6명이나 되는 형제중
막내로 태어난 성현 엄마는 서울로 시집간 세째 언니집에 얹혀 살게 된게
고등학교 졸업 후 부터 였단다.
맘 좋고 후덕한 형부가 알아봐준 작은 회사에 경리로 취직하여
열심히 돈도 벌었구, 첫 임신해서 입덧이 심한 언니의 집안일도
도와주면서 살았단다.
조카 성현이가 태어났을 때 부터 거의 언니랑 같이 키우다 시피 한 터라
다른 조카들 보다 훨씬 더 이뿌고 사랑스러운건 당연한 걸거구 말이다.
세째언니와 형부.. 그 사람 좋은 부부는 성현이 두살 때, 불의의 교통사고로
둘다 유명을 달리 했고, 성현이는 친 할머니가 데려 갔단다.
그 후로 성현엄마(진짜론 이모지... 참..)는 직장 생활로 좀처럼 짬을내지 못한터라
멀리 시골로 간 성현이를 찾아보질 못했고.. 24세 젊은 나이로 결혼을 했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물어물어 찾아간 성현이 친할머니 집.
시골집 흙담벼락에 쪼그리고 앉아서 울고 있는 네살박이 아이를 보고
성현엄마는 제눈을 의심했다고 한다. 거지 중에 상거지가 따로 없더랜다.
엉킨머리에 말라붙은 피딱지.. 얼마나 매를 맞았는지 그 어린 것이
온몸 여기저기 상처에 멍투성이더란다. 세상에.. 세상에..말로만 듣던
이런 일들이 실제로 있을수가 있다는게 믿기질 않았단다.
더군다나 저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부터 기저귀 갈아주며 이쁘다고
알캉 달캉 사랑하던 그녀의 조카가 아닌가 말이다.
성현엄마가 아이를 붙들고 하염없이 울고 있을 때...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성현아빠. 성현이 친할머니한테 자기 손녀를 어찌
이 지경으로...당신은 사람도 아니라고 엄청 퍼부은 후
그 자리에서 바로 성현이를 데리고 왔단다.
무작정 신혼 단칸방에 아이를 데려 오긴 했지만 난감한 일이 어디 한두가지 인가 말이다.
다른 언니오빠들에게 성현이를 데려 오게된 상황과 사정 이야길 해 보았지만
형제들은 막내동생의 행동을 탓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선뜻 누구하나
내가 키우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고.. 문경 시골의 편찮으신 친정부모님께
아이를 맡길수도 없었고 말이다.
성현엄마 아빤 서로 상의 끝에 아이를 데리고 주문진 시댁에 가서
무릎을 꿇었단다.
" 아버님, 어머님.. 이 아이를 제 자식으로 키우게 저희 가문에 받아만 주신다면
제 평생 다하도록 그 어떤 고생도 감내하고 뼛골이 부셔지도록 일도 하겠으며
부모님께 진심으로 효도하고 남편을 하늘같이 섬기며 한평생 살아 가겠습니다"
성현엄마가 눈물 흘리며 애원을 하자..시어른들.. 같이 눈물 글썽이며
남의 자식도 입양하여 거두어 주는 착한 사람들도 있다.
아가야..하물며 네 조카인데..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런 학대를 받으며
그리 험하게 사는 것을 본 네 맘인들 오죽하건니..우린 염려 말고 사랑으로 잘 키워주거라..
그렇게 성현엄마는 성현이 이모에서 성현이 엄마가 되었다.
성현 아빠는 신혼 몇달만에 졸지에 4살박이 딸아이의 아빠가 되고 말이다.
이 부부가 성현이에게 쏟은 노력과 사랑은 제 자식이라도
그렇게 까지 못할 정도로 지극정성이었고 말이다.
성현이는 엄마 아빠의 예쁘고 참한 딸로 잘 자라주었다.
몇 년 후 두 딸들이 태어났고 큰언니 이름 끝자를 따서 정현이 소현이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밑에 아이들은 성현언니가 친언니가 아니란 사실을 모른다.
성현이 또한 두살 때 돌아가신 친엄마 아빠일을 기억 할리가 없을거고..
그저 엄마 아빠가 사정상 친할머니 집에 자길 맡겨둔 정도로만 기억하지 못하는것 같단다.
혹시나.. 하고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라며 눈물을 찍어내는 성현엄마.
세 딸아이의 부모로서 성현엄마 아빠는 남들보다 두배나 들어가는 돈을 벌기위해
그간 참으로 열심히 살아왔다. 그리고 이젠 네 아이의 부모가 된것이다.
시골 시어른들이 종갓집 뒤늦은 손주 소식에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은 물론이고
성현아빠도 이게 꿈인가..생시인가.. 할 정도로 기뻐하며
아들을 넋잃고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서 성현엄만 속으로 부처님께 합장했다고 한다.
"불쌍한 제 조카 성현이를 거두어준 착한 성현아빠와 맘 넓은 시어른들께
큰 기쁨을 줄수 있도록 제게 아들을 점지해 주셔서 정말 감사 합니다~"
성현 엄마가 눈물을 찍어내는 동안 잠에서 깨어난 재현이 녀석은
칭얼대지도 않고 혼자 옹알이를 하며 놀고 있다.
세상에~ 천사가 따로 읍다. 너무너무너무... 이뿌고 사랑스럽다.
"성현엄마.. 그래.. 그랬구나.. 이제 더 바랄게 무어 있겠누..
그저 네 아이들 위해 열심히 열심히 사는 일밖엔.."
"그럼요.. 저 너무 행복해요. 우리 애들 넷 바라보면 흐뭇하고
살맛 나서 정말이지 착하게 열심히 살아야 겠단 생각 절로 들어요"
"근데.. 요즘 왜 성현이가 잘 안보이누?? 제 엄마 바쁘고 힘들땐
곧잘 가게도 봐주고 하드니 말야.."
"갸요?? ㅎㅎㅎㅎ...." 그제야 눈물을 거두고 웃음을 보이는 성현엄마.
"갸.. 요즘 기말고사 때문에 박터지게 공부하느라 맨날 밤새요~"
"그래? 성현이 원래 공부 잘하자너~ "
"더 박터지게 하는이유가 있어요 아주 죽기살기로~ ㅎㅎㅎ"
제 아빠가 기말고사 성적이 평균 90점 이상이면
요즘 애들이 선망하는 카메라 폰을 사준다고 약속했기에
그거 갖고 싶어서 아주 목매고 공부한다니깐요.
동생들 좀 챙기라고 해도 시간 없다고 궁시렁 궁시렁 쫑알거리질 않나..
요즘은 사춘기가 오는지 말대답도 곧잘 해요 ㅎㅎㅎㅎ~ 하고 웃는 성현엄마는
내가 언제 울었나는듯이..
어느새 자식자랑을 하는 팔불출 엄마로 돌아가서
우리 성현이가요~ 하며 딸자랑 수다를 한껏 떨고 있고
그녀의 품안에선 재현이가 여전히 벙싯벙싯 웃으며
제 엄마 말을 알아 듣기라도 하듯 오옹~ 오옹~ 하며 옹알이를 하고 있다.
[도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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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뜰
우리동네 늦둥이
도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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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7.02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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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랫만에 도요님의 글 맛깔스럽게 읽고 갑니다../존날 되시길..
올만이다..^^
시작이.. 재미나게 알콩달콩 나가길래 미소 띠며 열심히 읽어 내려갔더니.. 성현이 얘기에 코끝이...그만 울어버렸잖아...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서 기쁘다..잘 봤어..
와~ 도요새 반가워~ 니 글을 모처럼 대하니 정말 좋다. 자주좀 올려주세요~
도요야...어디갔다 왔니...? 자주 좀 보자...ㅎㅎㅎㅎ
도요 글 다시 보게되어 무엇보다 반갑다. 뭔지 모르지만 충전 잘 하였리라고 믿고 자주자주 보기를 바란다.
됴님 글 다시 보게 되어 디기 좋네 방가..
역시 도요새표 수다가 최고여~~~^^
반갑다~ 도요새...더운날에 잘지내고..글처럼 내주위에도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더라~ 남의 자식 정성스럽게 키워주면 복받을껴~ 성현부모님 정말 인간적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