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韜三略 三略 第二篇 中略 2. 군참과 병도: 때에 맞게 치도를 행하라 1. 패도와 전쟁
三皇의 시대에는 글이나 예악 자체가 존재하지 않던 까닭에 천지자연의 도 자체에 부합하는 皇道를 행했다. 천자인 皇者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德化가 저절로 사해에 미쳤던 이유다. 그래서 천하 만물 모두 덕화의 은덕을 입고도 그 공덕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 길이 없었다. 五帝의 시대에는 천지자연의 도에 맞춰 帝道를 행했다. 천자인 帝者가 하늘과 땅이 만물을 생육하는 것을 본받아 말로써 가르치고 법령으로 다스리자 천하가 태평했다.
夫三皇無言, 而化流四海, 故天下無所歸功. 帝者, 體天則地, 有言有令, 而天下太平.
군신이 서로 태평성대의 공을 양보했던 덕분이다. 천하에 덕화가 널리 행해졌으나 백성은 그 배경을 알지 못했다. 신하를 부리면서 굳이 예우나 포상을 행하지 않아도 저절로 공이 이루어졌던 이유다. 이때는 아름다운 일만 있었고 해로운 일은 전혀 없었다. 우왕의 夏나라, 탕왕의 殷나라, 주문왕 및 주무왕의 周나라 등 이른바 三王의 시대에는 인의예지 등 인위적인 덕목에 기초한 王道를 행했다.
君臣讓功, 四海化行, 百姓不知其所以然, 故使臣不待禮賞有功, 美而無害.
천자인 王者가 인위적인 덕목을 천지자연의 도에 가깝다고 생각해 이를 갖고 백성을 다스렸다. 마음을 즐겁게 하여 성심으로 복종하게 만들고, 법령을 제정해 衰亂을 막고, 제후들이 철에 따라 천자를 알현하자 천자의 업무가 폐해지는 일이 없었다. 비록 군비는 갖추고 있었지만 굳이 전투할 염려가 없었다. 군주는 신하를 의심하지 않고, 신하 역시 군주를 의심하지 않았다. 나라가 안정되어 백성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했고, 신하는 공을 세우면 이내 멈출 줄 알아 적시에 물러났다. 군신 사이가 화목하고 아무런 해가 없었던 이유다.
王者, 制人以道, 降心服志, 設矩備衰, 四海會同, 王職不廢. 雖有甲兵之備, 而無鬪戰之患. 君無疑於臣, 臣無疑於主. 國定民安, 臣以義退, 亦能美而無害.
제후들이 서로 다투는 춘추시대에 들어오면서 왕도가 사라지고 패도가 등장하게 되었다. 제환공과 진문공 등의 패자는 權術과 힘으로 文士와 武士 등의 士人들을 통제했다. 당초 신의를 내세워 사인들을 결속시키고, 포상을 내세워 사인을 부렸다. 그러나 신의가 쇠해지자 사인과 사이가 멀어지고, 포상이 빈약해지자 사인이 군주의 명을 듣지 않게 되었다. 하극상 등으로 인해 전쟁이 빈발하게 되었던 이유다.
霸者, 制士以權, 結士以信, 使士以賞. 信衰則士疏, 賞虧則士不用命.
[三皇]은 전설상의 고대 제왕을 말한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전한 때 孔安國의 《書序》는 伏羲, 神農, 黃帝로 보았다. 동진 때 皇甫謐의 《帝王世紀》와 당나라 成玄英의 《莊子疏》 〈천운〉도 이를 좇았다. 후한 때 高誘는 《呂氏春秋注》 〈맹하기, 용중〉의 주에서 복희, 신농, 女媧로 기록해놓았다. 후한 때 반고가 편집한 《白虎通》의 〈號〉는 복희, 신농, 燧人을 주장하는 견해가 실려 있다. 같은 《백호통》에 인용된 《예기》는 복희, 신농, 祝融으로 되어 있다. 사마천은 《사기》 〈진시황본기〉에서 天皇, 地皇, 泰皇을 들었다. 당나라 歐陽詢이 편찬한 《藝文類聚》에 인용된 《春秋緯》에는 천황, 지황, 人皇으로 되어 있다.
삼황의 뒤를 이은 五帝에 대해서도 합치된 견해가 없다. 사마천은 《사기》 〈오제본기〉에서 黃帝 軒轅, 顓頊 高陽, 帝嚳 高辛, 陶唐氏인 帝堯 放勳, 有虞氏의 帝舜 重華로 기록해놓았다.
장수절의 《사기정의》와 《백호통》에 인용된 《예기》, 《대대례기》 〈오제덕〉, 《世本》 〈五帝譜〉 등이 이를 좇았다.
《예기》 〈월령〉은 大皥 복희, 炎帝 신농, 황제, 少皥 摯, 顓頊로 되어 있다. 태호와 소호의 皥는 昊로도 쓴다.
공안국의 《서서》는 소호, 전욱, 제곡, 요, 순으로 기록해놓았다. 《제왕세기》가 이를 좇았다. 《주역》 〈계사전〉은 庖犧 즉 복희, 신농, 황제, 요, 순으로 되어 있다. 남송 때 胡宏의 《皇王大紀》가 이를 좇았다.
[體天則地]는 천지를 법칙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예기》 〈상복사제〉에 體天地 표현이 나온다. ‘체’는 본받는다는 뜻의 法 내지 則과 통한다. 則天武后의 ‘측천’도 같은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美而無害]는 군신의 사이가 화목해 아무런 상해가 없다는 뜻이다.
[王者]는 삼왕을 말한다. 삼왕에 대해서도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다. 동진의 范寧은 《곡량전》 〈노은공 8년〉조의 주에서 하나라 우왕, 은나라 탕왕, 주나라 무왕을 들었다. 이에 대한 전한의 趙岐는 《맹자》 〈고자 하〉의 주에서 하나라 우왕, 은나라 탕왕, 주나라 문왕을 들었다. 상앙의 스승으로 알려진 尸子의 저서 《시자》 〈권 하〉는 하나라 우왕 대신 주나라 무왕을 넣었다. 현재는 하나라 우왕과 은나라 탕왕을 각각 1명으로 보고,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을 한 사람을 간주해 총 3명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設矩備衰]의 ‘설구’는 법규를 제정한다는 뜻이다. ‘구’는 원래 네모를 그리는 곱자를 뜻하나 여기서는 법제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四海會同]의 ‘회동’은 제후들이 천자를 조현하는 것을 지칭한다. 《시경》 〈소아, 車攻〉의 《毛傳》은 “때맞춰 조현하는 것을 會, 함께 모여 조현하는 것을 同이라 한다”고 풀이했다. 당나라의 유종원은 〈봉건론〉에서 “모여서 朝覲하면 회동이 되고, 떨어져 집무하면 나라를 지키는 扞城이 된다”고 해석했다. 한성은 방패와 성을 뜻하는 말에서 나라를 지키는 믿음직한 군대나 인물을 지칭하는 말로 전용된 干城과 취지를 같이한다.
[패자]는 무력으로 제후들을 호령하는 자를 말한다. 춘추시대의 대표적인 패자를 통상 春秋五霸라고 한다.
[오패]는 五伯로도 쓴다. 이때 伯는 ‘백’이 아닌 ‘패’로 읽는다. 오패에 관해서도 견해가 엇갈린다. 《순자》 〈왕패〉는 제환공 小白, 진문공 重耳, 楚莊王 熊旅, 오왕 합려, 월왕 구천으로 보았다. 이에 대해 고유는 《여씨춘추》 〈중동기, 당무〉의 주에서 제환공, 진문공, 宋襄公 玆父, 秦穆公 任好, 초장왕으로 보았다. 당나라의 顔師古는 《한서》 〈제후왕표〉 주에서 제환공, 진문공, 송양공, 진목공, 오왕 부차로 기록해놓았다.
첫댓글 중국의 고대 삼황오제 때를 이상 사회로 그렸군요. 그 시대 때인데도 후대의 손자병법 이전부터 육도삼략이 있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