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나들이] '만화'보러 국립현대미술관 가자
‘새옹지마’라 해도 되겠다. 한때는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던 장르가 오늘날엔 문화요, 예술이 됐으니 말이다. 바로 그 ‘만화’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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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브로프스키의 조각 ‘노래하는 사람’이 시야에 들어오자 비로소 국립현대미술관에 들어선 게 실감난다. 하늘을 향해 턱을 움직이며 실제로 구슬픈 노래를 부르는 이 조각상은 미술관 입구에서부터 여전히 사람들의 호기심을 건드리는 작품이다. 올해로 어느덧 개관 40주년을 맞은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내 유일의 국립미술관답게 대중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공간이다. 초록이 눈부신 계절엔 야외조각공원과 호숫가를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낭만적인 피크닉. 푸르른 관악산과 청계산의 울창한 숲까지 조화롭게 어우러지니 이맘때면 싱그러운 정취의 절정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쏠쏠한 전시까지 감상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현재 진행 중인 기획전시 ‘만화_한국만화 100년’전이 바로 그렇다. 구한말부터 시작돼 100년 역사를 이어온 한국만화가 단일전시로 선보이는 첫 번째 자리로서 놓치기 아까운 의미 있는 전시다. 어떤 이들은 유명 화가의 회화작품이 아닌 ‘만화’라는 장르를 국립미술관에서 전시한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기도 한다. 하지만 그만큼 한국만화의 위치에 대해 우리가 무지한 것은 아니었는지, 그 역사를 재조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충분한 의의가 있다. 사실 돌이켜보면 만화에 대한 추억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유년시절 엄마 몰래 만화방에서 넋 놓고 있다가, 혹은 수업시간에 교과서 아래 만화책을 숨겨두고 보다가 혼쭐난 기억도 있을 테고, 그도 아니면 TV에서 즐겨보던 만화영화 한두 개쯤은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을 거다. |
음악교과서에 나오는 노래보다 만화영화 주제가를 더 잘 외우고 다니기도 했고, ‘하니’ ‘둘리’ ‘영심이’ 등은 친구 못지않게 정을 주던 캐릭터들 아닌가. 또 요즘엔 인터넷시대답게 저마다 좋아하는 웹툰 시리즈도 다양하게 넘쳐난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만화의 현주소는 ‘예술’과 차별된 대우를 받고 있다. 미술을 좋아하는 아이는 인정받아도 만화를 좋아하는 아이를 고운 눈으로 바라봐 줄 부모는 얼마나 될까. 만화는 불량 청소년의 것이라는 이유모를 편견은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다. 이런 시선으로 볼 때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대규모 만화 전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만화는 더 이상 천덕꾸러기가 아닌 문화적, 예술적, 산업적 가치를 지닌 장르로서 새롭게 조명될 만한 당위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우리 만화는 2007년에만 3억 9800만 달러를 수출한 콘텐츠산업으로 성장했고, 현재 만화시장 규모는 4000억 원대에 이르며 전국 140여개 대학에 만화관련 학과가 개설돼 있다. 지난달 열린 ‘만화_한국만화 100년’전 개막식에 장관, 국회의원을 비롯한 각계인사가 몰려 성황을 이뤘던 것은 그만큼 놀랍게 성장한 한국만화의 위상 덕분이었다.
전시엔 1909년부터 현재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만화가 250명의 작품 1,500여점과 한국 만화 100년의 시간 속에 성장해온 현대미술 작가 18인의 작품 60여점이 함께 전시된다. 1909년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렸던 이도영 화백의 최초 시사만화부터 강풀의 ‘순정만화’, 메가쇼킹의 ‘탐구생활’ 같은 최근 웹툰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한국만화 100년의 역사를 생생히 펼쳐놓았으니 대단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특히 ‘고바우 영감’의 김성환 화백이 한국전쟁 종군 때 그린 실시간 스케치들은 한국에서 유일한 자료이자 이번 전시가 최초의 공개 자리인 만큼 귀중한 볼거리이다.
시대별 흐름에 따른 전시공간뿐 아니라 순정만화, 어린이만화, 카툰, 웹툰, 시사만화 등 장르별로 나뉜 기획전시 코너들은 만화라는 주제만큼이나 재미있는 동선으로 구성돼 있어 아이들에겐 즐거운 놀이터가 된다. 홍길동, 독고탁, 까치와 엄지, 둘리 등 친숙한 캐릭터들과 만화 속 공간들이 벽화로 장식되니 마치 내가 만화 속 주인공이 된 듯 흥겹기만 하다. ‘만화’라는 영역은 이제 원 소스 멀티 유즈 콘텐츠로서 충분한 시장성을 지닌 경쟁력 있는 아이콘이 되었다. 사실 만화만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친화력 강한 장르의 예술이 어디 흔한가. 이번 전시를 통해 천덕꾸러기라는 오랜 누명을 벗고 당당히 현대예술의 한 영역으로 재조명되는 우리 만화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보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T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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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2009년 8월 23일까지.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토·일요일 오후 9시까지,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일반(18세~64세) 3,000원/할인(7세~17세) 1,500원/가족(성인2, 어린이2) 8,000원
가는 길 지하철 4호선 대공원역 4번 출입구 바로 옆에서 20분 간격으로 미술관 셔틀버스 운행/1,2,3번 출입구에서 도보로 약 20분 소요.
문의 02-2188-6000 www.moca.go.kr |